고대 교부들의 구원론


사도들은 영지주의자들의 반율법적 태도에 대해서는 율법을 옹호하면서

유대적 율법주의에 대해서는 복음을 들고 대항하였다.


육체의 구원을 무시하는 금욕주의자들에게는

육체로 임하셔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육체의 자유와 구원의 귀중함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 이전의 모든 교부들이 구원을 얻는 데는

자유와 은혜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친 것은 확실한 사실이요

누구에게나 다 예외 없이 알리어 진 사실이다.


인간이 구원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신약 성경의 진술과 일치하게 초대 교부들은 이 모든 조건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속사도 교부들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후대 교부들에 의해서 더욱 더 발전하였다.


이것은 바울의 구원론과 조화되지 않는 도덕주의를 나타내고

신 율법주의 복음으로 묘사되면서 신앙과 회개는

때때로 단순히 인간의 자유 의지에 좌우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구원은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좌우되나

곧 인간의 자원적 협력에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선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수단으로서의 신앙과 동등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 선행관은 복음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율법적이었다.

이것은 유대 율법주의가 기독교회에 들어올 문호를 열어 준 셈이다.



① 펠라기우스의 은혜관:


펠라기우스(360?-420?)는 어느 초대 교부들보다도

구속의 적용을 표현함에 있어서 성경적 입장과 멀어 졌다.

그는 영국의 수사이자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성자와 같은 인품으로 유명했다.


그는 기독교인의 행위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지역 사회에서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도덕적 상태를 향상시키는 데 헌신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지도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최상의 기독교 전통에 일치하여 그는 특히 개인적 정결과

이 세상의 천박성과 부패로부터 절제를 강조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엄격했고,

교회 안에서 더욱 많은 신중한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가졌다.


그는 동방 교회의 인정을 받고 그의 주장은 동방 교회의 주된 신학 신조들이 되었다.

그는 초대 교부들이 신성시하던 성경적 기초를 버리고

이교 철학의 자아 충족 원리를 재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적 필요성을 부인하였다.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연의 은혜는 보편적이며 또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것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인정했다.

복음의 은혜는 보편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인간을 구원하는 데 쉽게 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은혜의 역사를 거절할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성격을 닮아 가는 자로 생각하였다.



② 어거스틴의 은혜관:


어거스틴(345-430)은 사도 바울 이래로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개인적 자질과 지적 능력은 굉장한 것이었고,

변증학에서의 그의 타고난 자질은 당대에 뛰어났다.

그의 주장들은 정통 교리로 서방 교회에 받아들여 졌고 칼빈에 의하여 계승되므로

현대 교회에도 폭넓고 원만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믿고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였다.

공로 없이 선물로 받는 은혜는 하나님의 독력적인 것이다.

그는 은혜의 독력성과 협력성을 구별하였다.

전자는 인간이 원하지 않을 때 그것을 하도록 앞에서 인도하여 주며

후자는 인간이 하기를 원할 때 무익한 것을 하지 않도록 뒤에서 보살펴 준다.

인내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이미 받은 은혜를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주목할 만 한 특징은 그가 모든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에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교리는 모순을 나타내며 수정을 하기에 이른다.

은혜와 모순되는 의식주의와 이신득의의 방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인간은 은혜의 역사하심과 믿음의 선물을 받기 전에는

아무런 공로를 갖지 못하지만 갱신과 신앙의 은혜가 그 마음 속에서 일한 후부터는

그의 역사는 참으로 공로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한 번 더 구원의 공로를 가능케 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은혜의 교리는 선행의 장려와 함께 은혜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여

로마 교회주의와 밀접하게 되었다.



③ 반(半) 펠라기우스파의 은혜관: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부인하면서도 은혜 없는 구원을 부인하였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협력을 주장하면서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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