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교회론


A. 교회의 개념


교회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베드로를 통하여, 완전한 교회상을 예언하였으며 이 예언은 오순절에 모였던 제자들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교회에 대한 예언과 실현 마16:16-19; 행1:4-512-14,2:1-4.)


회심이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실제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 대하여 높은 차원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표현되었듯이 "이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가르침으로 교회를 소중한 것으로 존경하도록 하였다. 또한 바울의 서신들을 통하여 진정한 교회의 정의는 정립되었다.( 교회의 정의 엡1:21-232:20-22,3:10-11; 딤전3:15.) 



B. 교회의 정의


바울의 서신들은 우리들에게 교회에 관한 바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풍부한 재료들을 제공해준다.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에클레시아" 곧 교회라는 말이 60회 가량 기록 되어 있다. 바울은 이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예배와 신앙 교육을 위하여 어떠한 특정한 장소에 함께 모인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백성들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들을 묘사한다.


결국 바울은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교회 곧 모든 지역 모든 나라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전체모임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했다. 그는 교회를 통하여 보게될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에 관해서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해서 말했으며(엡 3:1021)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엡1:22-23; 골1:18.)


바울은 교회라는 말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고 삶을 바친 사람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교회라는 말을 하나의 건물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란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고 삶을 바칠 것을 서약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의 회합을 가리킨다. 



C. 교인에 대한 호칭


바울은 교회형성의 기본이 되는 교회의 교인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말들 가운데 나오는 교회의 교인들을 가르키는 세 가지의 호칭들이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호칭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⑴ "성도들": 서신들 중 가장 잦은 호칭

바울 서신에서 교회의 교우들을 가리켜 성도들이라는( 성도들 롬1:78:2712:13, 15:25,26,31, 16:2,15; 고전1:26:1214:3416:115; 고후1:18:49:11213:12; 엡1:11518, 2:19,3:8,18,4:12,5:3,6:18; 빌1:14:2122; 골1:24, 12,26; 살전3:13; 살후1:10; 딤전5:10; 몬1:57; 히6:10, 13:24.) 말로 40회 가량 불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 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였다.


이로 볼 때 교회의 교인들도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믿지 않는 일반사람들과는 구별되어 있음을 뜻한다. 비록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도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듣고 그 명령들을 지키려고 애쓰며 사는 삶을 말한다. 그의 삶은 여전히 세상안에서 사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의 전체 생활은 세상을 기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고 사는 삶이다. 성도들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이란 뜻이다. 교회의 등록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받친 사람들이다.


⑵ "형제"들: 그리스도인들을 가르키는 호칭

바울은 서신들에 마지막에 형제들 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형제들 롬1:138:299:312:1014:101316:1423; 고전1:1105:116:57:128:11-13,9:5,15:6,58,16:11,12,20 고후1:182:138:11822239:311:912:1813:11; 갈1: 21119; 엡6:2123; 빌1:12142:254:21; 골1:124:7915; 살전1:43:24:65:2627; 살후1:33:615; 딤전4:65:16:2, 딤후4:21; 몬1:171620; 히2:1112173:17:58:1113:23.) 여기에는 교회는 형제들의 무리가 됨을 뜻하는 위대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형제가 됨을 뜻한다.

만일 어떤 교회가 영적으로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그러한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가 중단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형제의 관계가 아니라면 그러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형제들의 무리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⑶ "신자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호칭

다시 말해서 교회의 회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사실로 받아 들이는 자요, 또 그 말씀이 참되도다라는 확고한 전제 위에 삶을 영위하는 자이다.( 신자 또는 믿는 자: 행10:45; 롬1:6, 3:22,26, 4:5,11,24, 9:33, 10:4; 고전1:21; 갈3:22; 살전2:1013; 살후1:10; 딤전4:10.)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의 구세주가 되심을 확신하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생의 주님으로 삼는 자이다.


이와같이 호칭받은 자는,

 

① 세상과 관련해서; 교회 성도는 그가 그리스도의 기준들 앞에서, 그 기준들을 따라서 산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②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해서; 교회의 회원들은 형제애를 가지고 교제하며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③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교회의 회원은 그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베푸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또 그의 생을 위해서 명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아 들인

    사람을 말한다.


이와같이 바울의 서신들에는 교회의 교인을 가르켜 "성도들,형제들,신자들, 또는 믿는 자들"이라 호칭하였다. 




D. 교회의 근원


바울은 그의 서신들중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모든 권위와 영적 역사의 근원이 된다 하였으며,( 교회의 근원 엡1:22-23; 골1:15-1824) 또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성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였다. 그는 로마서 12: 4-5 에 "우리가 한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학적 사상으로 보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와 절실하게 연관되는 개인으로서 구성되며, 또한 교회에 속한 각 신자들은 서로를 한 연결체와도 같이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같은 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은 형제간에 서로 죄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형제간에 죄짓지 말것 고전8:13; 갈6:1-2, (참고 요일2:1-23:3-6,14-15,4:20)) 서로가 서로를 자기몸과 같이 생각하며 상부상조 유무상통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상부상조, 유무상통, 행2:44-474:32.) 또한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 사랑의 목적이 교회인 것이다.( 희생적 사랑 엡5:1-2; 롭5:8; 고후5:14-14 (참고 요일3:16).)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신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하나님의 권속 엡2:19-22; 빌3:20.)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12절에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이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하였으며 에베소서 5장 26-27절에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하심이니라"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봉사의 직분을 마련했으며,( 교회의 봉사 엡4:11-12 (참고 벧전4:10-11).) 또한 교회를 흠없게 하시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고저 하신다 하였다.


또한 그는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이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 하고, 에베소서 3장 10절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심이니" 하였다. 교회는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공동체이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며 교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지게 된다.(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교회 엡3:10-1220-22; 고전6:19-20.)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움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였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교회란 외적으로는 구원받은 무리들의 모임이며,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인류 인종차별없이 주 안에서 연결되여, 성령으로 한 몸되어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교회이며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본체이다.( 하나님의 기본체 엡4:4-6; 고전3:16-176:19-20.) 



E. 온전한 교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교회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의 재창조이며 바로 완전한 교회인 지상천국을 말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9-20절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였으며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또한 에베소서 1장 7-12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디모데전서 2장 4-5절에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으며 갈라다아서 3장 20절에는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피조물인 저주받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코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인간들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시켜 하나님과 화목시키려는 중보자의 역활을 담당하게 하였다. 중보자로 오신 예수가 자신을 집자가 상의 제물로 받쳐 그의 흘린 피로 타락한 인간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였다.( 화목 제물 롬3:23-26; 엡2:13-18; 히10:1014.)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시 창조당시의 본 모습인 그 아름다운 조화로 회복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화목의 역사는 바로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완전하 교회상이다.( 하나되는 완전한 교회 엡1:7-132:18-22,4:4-6; 고전12:12-13.)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5-29절에 "내가 교회의 일군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마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니라, 이 비밀은 너희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내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였다.


또 골로새서 1장 24절에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하였다.

바울의 이러한 확고한 교회관은 그로 하여금 더욱 선교에 대한 의식을 굳게 하고 주어진 사명에 더욱 충성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 복음의 사명을 땅끝까지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자기의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다.( 몸된 교회 골1:1824; 엡1:22-23.)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관은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사명에 충성하였다.

 


바울의 종말론(그리스도의 재림)


바울의 종말관 사상은 구약성서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 당시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 사13:6-10; 살전5:3.) 바울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그가 배운 유대 학문과 유대교적인 교육을 통해서 얻은 언어를 종종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히 이사야 26장과 27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그 구절들 간에 뚜렷한 병행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1. 주의 오심 : 사26:21; 살후2:1

2. 심판의 임함 : 사26:21; 살후1:92:8

3. 죽은자의 부활 : 사26:19; 살전4:16

4. 나팔소리 : 사27:13; 살전4:16

5.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고 회집할 것, 이는 마지막 날에 관한 유대사상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 사27:12; 살전4:17


또한 기본적으로 독특한 특징과 초점에서 전개시킨 바울의 기독론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기독론의 연장 갈4:4-5; 엡1:4-5, 2:1-5,10; 빌2:13-16 (참고 요1:10-12, 3:16, 35-36, 5:25-29))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인간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역사를 진행하셨다.( 사람의 몸으로 오셔 빌2:6:10; 딤전2:4-5; 롬1:1-4 (참고 사8:1411:1-5; 마1:23) 죽으심과 부활 롬1:4; 고전15:3-412-21; 엡1:20-21 (참고 눅24:5-9).)


즉 예수의 탄생, 천국 복음 전파, 십자가에 죽음, 부활, 그리고 신도들(그리스도인들) 속에 있는 성령의 역사는 전체 구속 과정을 성화시켜주는 "첫열매"이요 마지막 완성에 대한 확증이라 하였으며( 처음 익은 열매 예수:고전15:22,성도:롬8:23 마지막 완성 히12:1-210:9-10,14.)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과의 휴거는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 휴거 요14:1-35:25-29.) 그리스도의 재림 곧 휴거에 대한 바울의 사상은 오직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복음에 근거한 재림 고전15:51-54; 마24:30-31; 살전4:15-17; 마24:30-31; 살후1:5-10; 눅17:29-30; 살전5:23; 요17:17.)


바울의 종말론은 그가 목회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천을 보이고 있다고들 주장하고 있다. 미래의 휴거를 크게 강조하는 묵시주의로부터 현재속의 완전과 죽음에 임했을 때의 불멸성을 강조하며 보다 세련된 실존주의적 이해로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 확증 롬8:9-1138-39; 고후1:21-2213:5; 갈2:19-20; 빌1:20-21.)


그러나 바울에게서 발전의 증거로 인용되는 여러 요인들은 사실상 시종 그의 서신들속에 함께 나오는 것이지 서로 대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종말관이 초기에 기록한 서신들과 말기에 기록한 서신들 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사상을 탈피하거나 혹은 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종말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상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었다. 바울의 서신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서신은 데살로니가전후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거리의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관한 문제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5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 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같이 예수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답변하면서 그들을 확신시켰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생애동안에와 자기가 전한 서신의 내용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하였다. 이 서신가운데 주의하여 볼것은 몸에 대한 언급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들이 몸을 갖고 있는 상태로 살아서 있을 것을 기대했던 점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도들과 자신의 생애 동안에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따라서 그의 초기의 서신들에 보면 그의 전도 설교가 개종자들에게 미래주의적 색채를 담고 있다.( 예수 재림 살전1:103:134:13-17,5:23; 살후1:8-10.)

그러나 바울의 중반기 서신들에서는 초기의 서신들에 기록되었던 그의 종말관은 보다 세련되어 실존주의적 이해로 성숙해 갔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신자들 마음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역설하고 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 롬6:6-98:9-10,14:8-9; 고전3:16-176:19-20,17; 고후13:5; 갈2:20; 빌1:20-213:10-14.) 고린도전서 및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에 인간의 죽을 때 체험할 육체와의 분리, 그리고 주와의 공존을 말하면서도( 영적 구원 고후5:1-10; 고전15:4450 (참고 벨전1:9).)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이루어질 완성, 온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주의 강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교회생활을 바라고 있다.( 재림 기대하는 생활 고전15:51-53; 고후4:16-185:1 (참고 살전5:22-24).)


하지만 로마 옥중에서 쓴 후기 서신들을 보면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몸"을 주장하면서도 주님의 재림의 날을 고대하며 비천한 우리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만들어 주실것을 믿고 있다.( 영광의 몸으로 고전15:43; 고후4:14-16; 빌3:20-21.)

목회서신에서도 현실에 관한 교회적 관심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오실 복된 소망의 날을 기다리게 한다.( 영광으로 오시는 날 딛2:12-13; 딤후4:6-8.) 그의 기독교 신앙 경험과 목회를 일괄해서 변함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바울의 신앙 사상의 중심점은 바로 재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앙사상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연합을 의미하며 성도의 몸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로서 성도의 죽을 몸이 "그의 영화로운 몸처럼 되도록" 변화(성화)를 받게 되며 이는 성도들이 부름받은 아들로 완성됨을 뜻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화로운 몸 롬8:28-30; 고전15:42-496:7; 빌3:21; 살후1:11-12; 엡2:20-22; 고전12:12-13.) 뿐만 아니라 휴거는 심판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구원에는 심판이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믿는 성도는 심판에 영향 안받음 롬8:1-2; 고전3:13-15; 롬8:38-39; 살전5:4-6 (참고 벧전4:5-6; 요일5:18; 계20:6).) 따라서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에게는 휴거가 심판으로 임한다.( 심판 대상자 롬3:29; 고전16:22; 살후1:8-92:12 (참고 벧후2:9; 계20:12; 요5:27-29).) 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는


① 이방인의 완전한 수가 달성됨 ; 롬11:25, (참고 계6:11)
②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실현됨 ; 롬11:26-27
③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인해 받던 운명의 쇠사슬에서 해방됨 ; 롬8:19-21 (참고 계21:3-4)
④ 모든 권세가 예수께 굴복함 고전15:27; 엡1:21-22; 빌3:21
⑤ 죽음 곧 마지막 원수가 파멸된다. ; 고전15:24-25 (참고 계20:14)
⑥ 이렇게 해서 모든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당하게 될 때 아들자신도 당신에게 모든것을 굴복시켜주신 하나님께 굴복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됨. 고전15:28; 엡4:5-6


주께서 죄악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역사적 성취는 이미 완성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의 역사는 지금도 살아서 계속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도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견고케하시며 믿음의 결실을 이루게 하신다. 그의 정점(클라이막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결 짓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의 하나님의 참 아들로 완성되며 구원의 계획의 완전 성취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열망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렸다.( 바울의 심정 롬8:24:25; 빌3:10-1420-21; 딛2:11-13; 살전5:23-24; 히3:13-1412:1-2; 고후4:16-185:1.)


 

결 론


철저한 율법주의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복음의 사도된 바울의 신앙사상 중심을 흐르고 있는 그의 독특한 윤리관을 끝으로 고찰하여 "바울신학"을 결론 짓고저 한다.

바울의 신앙사상 중심을 흐르고 있는 그의 윤리관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그 안에서 "바울신학"이 정립되고 있다. 이와같이 바울은 철두철미한 신앙사앙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A. "그리스도 안에"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기초하고있다.


인간이 하나님앞에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피조물 롬8:1-2; 고후5:17.) 이같은 기반을 떠나서는 바울의 신앙윤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바울의 신앙 기반 롬6:3-614:7-8; 고전6:1719-20; 고후5:14-17; 갈1:11-1215-17,2:19-20, 엡4:21-24; 빌3:7-910-14.)


B. "그리스도의 법"과 "그리스도의 정신"의 상관 관계를 통하여 인도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는 "그리스도의 법"과 "그리스도의 정신" 양자의 관계속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법 갈6:1-2; 히10:16 (참고 요13:34; 요일3:16).) "그리스도의 법"은 예수의 교훈이 "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데 참된 방법론이며( 하나님의 법 성취 방법 행13:37-38; 고전2:10-11; 롬6:138:9-14,12:1-2; 엡5:1-2; 살전5:14-18.) 또한 예수 자신이 친히 본이되어 " 하나님의 법"을 실현하였다. 고로 "그리스도의 법"은 바로 " 하나님의 법"안에 성취됨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자 롬15:5-6; 고전11:1; 엡5:2; 갈3:27; 빌3:10-14; 골3:1-3; 살전1:6-7.)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도에게 있어 모세의 율법은 불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 필요없다. 롬7:5-610:4; 갈2:163:23; 히10:11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는 예수의 새계명(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율법과의 연속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확실히 입증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원칙들의외적 표현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의 완성 롬10:413:810; 히10:9-101412:2 (참고 마5:17).)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대한 길과 방향을 지시해 주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인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게 하며,(고전 2:10-14) 각각 윤리적 판단을 갖추도록 한다 하였다.( 윤리적인 판단 롬12:214:7-8; 고후5:8-107:1; 엡4:29-325:15-17; 살전5:19-22.)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법"은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하였다.


C.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법" 자체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 지어주며 이를 실천하도록 인도 하신다 하며,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자비하심과 참사랑을 알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다 하였다.( 참사랑 알게 하심 롬5:812:913:810; 엡2:3-5 (참고 요일3:164:9-10,20)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케 함 롬15:5-6; 엡1:3-61214; 빌1:11; 골3:16-17; 히13:15.)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윤리적 근거를 계시하고 있다 하였다.


D. "그리스도의 영"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에 소망과 용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의 영"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의 윤리적 삶의 근거와 맥락을 제시해 주듯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소망과 용기르 제공해 준다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또한 성령을 통해서 우리 죽을 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하였다.( 하나님의 영(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임 롬8:9-14, 26-27, 15:13; 고전2:10-12, 6:11, 12:12; 고후1:21-22; 엡1:13, 2:18, 22, 4:30 (참고 요4:246:6314:1626).)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영"을 힘입어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적 근본을 이룸을 강조하고 있다.


E. 이와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사적 성취를 통해 이미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아직 이루어져야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완성을 위한 긴장속에 전개되고 있으며, 이같은 긴장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살고 있다.

그러므로 "첫사람 아담 안에서" 죄인되었던 우리들은 또한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받음을 늘 자각하며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의 현재에 대한 승리와 전망과 그리고 궁극적 하나님 나라에 자녀되는 대망을 품고 소망 가운데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감수하며( 소망으로 환난 감수 롬5:1-48:24-25,15:4,5-6; 딤전6:11-12; 히10:34-36 (참고 약1:2-412; 벧전3:174:1-2).)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 간다 하였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