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창조과학 사역을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혹은 훈련의 부족으로 알고 있는 사실도 잘 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내에서 역사적이나 과학적 사실성을 요구하는 구절에 가서는 전혀 답변을 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그냥 지나쳐 버리던지 아니면 무조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우리들의 제한된 지식으로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는 내용도 또한 상당히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한 번쯤은 궁금해 보았을 대표적인 질문은 바로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질문 같지만, 그래서 왠만한 교회의 성경공부 시간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 같은 것은 별로 안해 보았을 내용이지만,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질문 하나도 그 답이 교회에서 주어지지 않았을 경우, 얼마든지 한 사람의 영혼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그의 믿음을 실족시킬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성경을 연구하고 그에 걸맞는 훈련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 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보았다는 <cosmos>라는 천체 우주 documentary program으로 유명한 Carl Sagan 박사는, 그의 자서전격인 소설 <contact>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자신은 어렸을 때 주일 학교에 다녔었던 적이 있지만, 어느날 성경을 읽다가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 궁금했었고, 그에 대한 답을 교회서 얻지 못했을 때, 차츰 성경을 불신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교회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Carl Sagan은 그 후 철저한 진화론자로 탈바꿈 하여, 인간 보다 고등한 외계의 생명체를 찾아 보겠다고 수억의 돈을 투자하여 설립한 천체 망원경을 가지고 외계에서 오는 radio 신호를 찾는데 그의 일생을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진화론적 세계관을 토대로 낙태를 옹호하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contact></cosmos>


결국, 사소한(?) 질문에 답변이 준비되지 못했던 교회는 한 사람의 영혼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반기독교 인물을 배출하는데 간접적인 역할을 하고만 셈이 되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열려 세인의 관심을 크게 끌었던 소위 원숭이 재판에서는,

당시 대표적인 기독교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던 William J. Bryan이 피고측 변호인으로 나섰던 Clarence Darrow의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었는데,

여기서 Bryan은 특히 여러 가지 난해한 성경구절들을 골라 질문해대는 Darrow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후에 이 재판이 끝나고 난 뒤에 마치 그가 무식하고 근시안적이며, 맹신적인 기독교인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도 되는 양 media에 묘사되는데 이용당하게 되었다.

 

 Darrow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지만, 그 중에 하나는 바로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복음의 내용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고, 사회적인 여러 가지 issue에도 관심이 많았던 Bryan이었지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성경의 몇 가지 구절들이나 그와 관련된 질문들에는 미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마치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 전체가 비합리적이고 맹신적인 믿음의 바탕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세인들에게 주고 만 것이었다.

 

자, 그러면 과연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 그 답을 찾아 보기로 하자.


우선, 성경은 아담이 첫 사람이며 (고전 15:45), 그의 아내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었다고 (창 3:20) 기록하고 있으므로,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성경은 아담이 930세 까지 살았으며, 그 동안에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창 5:4-5) 있으므로,

아담의 큰 아들인 가인에게는 배필로 삼을만한 그의 여동생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아담의 자손들이 계속하여 인구를 늘려갔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가인은 필경 당시 아주 큰 인구를 이루었을 아담의 자손 중에서 아내를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당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을(창 1:28)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인류가 번성하여 자리를 잡기까지,

이 같은 근친간의 결혼은 불가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의 결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줄어들게 되다가, 모세의 때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율법(레 18-20)으로 금지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또한 근친간의 결혼을 통한 유전적인 위험성도 상당히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류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그 유전인자에 여러 가지 환경 요인으로 인한 결함이 많이 늘어나게 되고, 근친간의 결혼은 이와 같은 유전적 결함을 유전병으로 발현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담이후 초기의 인류에게는 근친 결혼을 하더라도 아직 이같은 유전적 위험이 나타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얼마 되지 않은 때이므로 매우 건강하고 장수하였음을 성경에 나타나는 족장들의 나이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성경을 잘 읽어 보면, 노아의 홍수를 기점으로 족장들의 나이가 급격히 감소함을 발견할 수 있어, 아담이 창조된 때부터 홍수 이전 까지의 대기와 환경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장수하기에 적합하였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인이 범죄한 후에 만나기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성경에 보면, 가인이 범죄 한 후에 아담은 셋을 새 아들로 얻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가 130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5:3). 한 세대를 25년으로 잡고, 세대 당 평균 8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건강과, 자손을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적게 잡은 숫자이다), 아담의 나이 130세가 될 때에는 이미 5세대를 지나 적어도 2000명 이상의 인구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가인이 범죄 하였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이미 상당히 많은 수의 아담의 자손들이

주변에 퍼져 살았을 것이다.


성경에 보면, 가인은 범죄 한 후에 땅에서 유리 하는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만나 죽임을 당할까 염려하였는데 (창 4:14),

이들은 바로 다름 아닌 주변에 흩어져 살던 가인의 친족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 역사책은 아니요, 과학책은 더더구나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 어떤 역사적이거나 과학적인 기록이 나올 때는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가인이 만나기를 두려워 했다는 사람들이나(창 4:14) 그가 결혼하여 아내를 얻었다는(창 4:17) 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다시 추적하여 그려보면, 별 어려움 없이 역사적 사실로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아무런 모순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접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적어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은 성경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라


(사 34:16). 하나님께서 그 답을 주실 것이다. 적어도 제 2의 Carl Sagan 같은 이는 나오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김정훈
연세대 의대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 중에서


과거 근친결혼 문제(청년회 사역중 받은 질문입니다)  
 

요즘 청년들하고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부터 차례대로 해나가려 하고 있는데 창세기 4장을 공부하는데 한 청년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인데 어떻게 자손들이 많이 나올 수가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그 당시에는 근친결혼을 통해 자손을 낳았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렇다 아니다 할수는 없지만 정황상 아마도 근친혼을 허용하시지 않으셨겠냐고 답변을 했는데 제대로 답변을 해 준 것인지 모르겠내요. 교수님이 만약 이러한 질문을 받으셨다면 어떻게 답변을 해주셨을런지요? <xmp></xmp>

 

맞습니다!


지금 사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을 테니 당연히 근친 결혼이었겠지요. 지금은 우생학적 문제와 사회 윤리 문제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근친 결혼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으나 과거는 달랐습니다. 수십명의 후궁을 두었던 세종대왕을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지금의 잣대로 비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 시대의 결혼 윤리는 지금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통일신라, 고려 시대까지는 왕실 근친결혼이 참 많았습니다. 신라 진성여왕이 삼촌과 연애한 것이나, 진흥왕의 부모가 대표적이지요. 신라 22대 지증왕의 손자로 태어난 24대 진흥왕(본 이름은 삼맥종, 심맥부였음)은, 아버지는 법흥왕의 동생이었고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로, 근친간 결혼이었습니다. 즉 부계로 보면 법흥왕은 진흥왕의 삼촌이 됩니다. 그리고 지증왕은 법흥왕의 아버지이므로 진흥왕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모계로 따지면 법흥왕은 삼촌이 아닌 외할아버지가 되고 지증왕은 외증조할아버지가 됩니다. 촌수가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도 사촌간 결혼이 있습니다. 일본 야마구치 현 출신으로 일본 최고대학인 도쿄제국대 법학부를 나오고 과거 1960-70년대 초 일본 수상을 지냈던 <사또 에이샤쿠(佐藤 栄作, さとう えいさく)>라는 사람은 자신의 사촌 동생과 결혼한 사이였습니다.


아래 제가 썼던 칼럼을 복사하여 수록하니 참조하세요^^

조덕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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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노아손자들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을까?(인류 초기 근친혼의 문제 어떻게 볼까?) / by E. S. CHO



성경에 대한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하는 질문은 성경에 대한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이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의 소생으로 가인과 아벨 그리고 아담이 130세에 낳은 아들 셋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 소생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을까 궁금해 한다. 홍수 이후 노아의 손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궁금증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 홍수가 아닌 부분 홍수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과 다른 홍수 전후 출산 환경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저주받은 가인이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 가인 이외에도 당시 사람들이 번성했음을 말해준다(창 4:14). 아담은 셋을 낳은 이후에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 성경이 기록한다(창 5:3~5).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셋 이전에도 가인과 아벨 이외의 자녀를 낳았을 것이다.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노아도 오백세 전후해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것을 보면 당시의 출산 환경은 지금과 분명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그런 환경 아래서 가인은 근친결혼(近親結婚)을 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인류 초기 근친결혼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담과 하와는 비록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범죄 하였으나 여전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전에 가까운 인류였다. 범죄 이후에도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조차 대홍수 이전에는 일천년 가까운 장수를 누렸으니 지금의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부분에서 혜택을 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결혼은 지금의 근친 간 결혼처럼 심각한 열성 유전이나 돌연변이나 기형아의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사회적 법률과 도덕과 윤리는 사람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서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근친 간 결혼은 결코 낯설지 않았을 거라고 여겨진다. 다만 성경이 남성 위주의 족보나 생존 사실만을 전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조차 남녀 차별이 심한 구조를 당연시 하던 죄악의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즉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 스스로 옳은대로 움직이는 즉, 힘과 권력이 좌우하는 타락한 인간 사회를 적나라하고 담담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것이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의 족보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성경이 추적을 간과한 이유가 된다 할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근친결혼 현상


지금은 우생학적 문제와 사회 윤리적 문제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근친결혼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으나 과거는 달랐다. 수십 명의 후궁을 두었던 세종대왕을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지금의 잣대로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 시대나 홍수 이후 노아 시대의 결혼 윤리는 지금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근친혼은 사실 노아 후손들 이후에도 고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오랫 동안 일상화 되어 있던 혼인 풍습이었다. 지금은 문명국가에서 금기시 되는 성경의 형수취수제도는 우리 민족의 뿌리인 고대 부여나 고구려, 옥저, 동예 등에서도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고려 시대까지도 왕실 근친결혼이 참 많았다. 신라 진성여왕이 삼촌과 연애한 것이나, 진흥왕 부모의 근친혼은 대표적이다. 신라 22대 지증왕의 손자로 태어난 24대 진흥왕(본 이름은 삼맥종, 심맥부였음)은, 아버지는 법흥왕의 동생이었고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로, 숙부와 조카 간의 근친결혼이었다. 즉 부계로 보면 법흥왕은 진흥왕의 삼촌이 된다. 그리고 지증왕은 법흥왕의 아버지이므로 진흥왕의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모계로 따지면 법흥왕은 삼촌이 아닌 외할아버지가 되고 지증왕은 외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촌수가 아주 이상해지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이 이 같은 관계를 전혀 이상스럽게 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사촌 간 결혼이 허용되고 있다. 일본 야마구치 현(縣) 출신으로 일본 최고대학인 도쿄 제국대(현 도쿄대) 법학부를 나오고 과거 1960-70년대 초 일본 수상을 지냈던 사또 에이샤쿠(佐藤 栄作, さとう えいさく)라는 사람은 자신의 사촌 동생과 결혼한 사이였다. 그는 아시아 최초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다. 수상까지 지낸 지금 일본의 유력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수상)가 바로 그의 조카이다.


나가면서


'아담과 이브의 생애'(Life of Adam and Eve)라는 위경(僞經, Pseudephigrapha)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서른 명의 아들과 서른 명의 딸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의 기록이 믿을 만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에게 가인이나 노아의 손자들이 어떻게 아내를 얻을 수 있었는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여겨진다.


kict조덕영 목사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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