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세자빈 줄리아 여사, 하남 임대주택서 힘겹게 사는 이해원 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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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태자인 영친왕(가운데)과 이방자 여사(오른쪽)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줄리아 여사.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대한제국의 마지막 세자빈 줄리아 리(94) 여사가 하와이의 한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줄리아 여사는 대한제국 황태자인 영친왕의 둘째 아들이자 마지막 세손인 이구 황손과 1958년 결혼했지만,
혼혈을 막는다는 이유 등으로 종친으로부터 이혼을 종용받았다.
 
1977년부터 부부는 사실상 별거상태로 지내다가 1982년 사실상 강제 이혼을 당했다.
이혼 후에도 한국에 계속 머물며 장애인 돕기 활동을 하던 줄리아 여사는 1995년 하와이로 떠났고,  한국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줄리아 여사가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2000년 <줄리아의 마지막 편지>라는 ‘MBC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당시 여든이던 줄리아 여사는 중풍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조선왕가의 유물과 한국의 근대사 사진을 전 남편인 이구 씨에게 전해주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구 씨를 만나지는 못했다.
 
줄리아 여사의 한국 방문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이 잊혀진 조선왕실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비록 한국을 떠났지만 줄리아 여사는 평생 한국을 잊지 않았다.
2000년 한국방문 당시 줄리아 여사는 시아버지인 영친왕의 무덤인 영원(英園)을 참배한 후 “제 평생에 시아버님은 한 분입니다.
시어미님도 한 분, 시아버님도 한 분, 남편도 한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로 만족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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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이구 황세손과 줄리아 여사 모습.

필자는 2005년 5월 줄리아 여사를 직접 본 적이 있다. 필자와 일행 몇 명은 종묘제례를 보기 위해 정전 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그늘에 한 서양 여자가 의자(걸을 때는 보행보조기로 쓰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필자는 한눈에 이분이 줄리아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줄리아 여사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이때 정전으로 들어가고 있던 의친왕의 둘째 따님인 이해원 옹주도 줄리아 여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 두 분은 몇 십년 만에 만난 것이라고 했다.
 
줄리아 여사는 보행보조기구가 없으면 걸음을 걷지 못하고, 오른손은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줄리아 여사는 “종묘제례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줄리아 여사를 부축하여 정전을 향해 걸었다.
줄리아 여사는 “이구 씨가 틀림없이 한국에 와 있을 것”이라면서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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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돈화문을 나서고 있는 이구 황세손의 장례행렬이씨는 2005년 7월 24일 경기 남양주의 영친왕 묘역인 영원에 안장됐다. 줄리아 여사는 운구가 종로 3가를 지날 무렵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이구씨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조선DB
 
그러나 이날 이구 황손은 제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이구 황손이 일본 도쿄의 자신이 태어났던 아카사카 호텔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구를 한번 보고 싶다”던 줄리아 여사의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종로 3가를 지나던 이구 씨의 운구 행렬을 행인들 틈에 숨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줄리아 여사의 모습이 TV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정전 입구에 도착한 줄리아 여사는 우리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필자는 줄리아 여사의 보행기를 들고 뒤따랐다.
우리는 줄리아 여사를 정전 마당 오른쪽에 마련된 텐트 쪽으로 안내했다.
제례에 참석한 일부 귀빈들이 앉아서 관람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다.
줄리아 여사가 계단을 오르는 사이 우리 일행 중 다른 한 명이 줄리아 여사와 이해원 여사가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텐트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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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종묘제례에 참석한 줄리아 여사. 종묘제례 관계자 중 줄리아 여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의자를 좀 마련해 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행사 진행요원은 “지금 와서 의자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진행요원과 실랑이를 하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이분들은 황실의 최고 어른들이다.
고령의 노인들인데 앉을 수 있게 의자라도 좀 가져다줘야 할 것 아니냐”고 거듭 부탁을 했다.
진행요원은 “안 된다. 자리가 없다”는 말만 계속 했다.
 
우리 일행이 진행요원과 자리 확보 때문에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사이 줄리아 여사와 이해원 여사가 텐트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줄리아 여사의 보행보조기를 의자와 의자 사이에 펴서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정전 안쪽에 있는 두 동의 텐트 중에 한 동은 문화재 청장을 비롯하여 여러 ‘귀빈’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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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무렵의 줄리아 여사./조선DB

사람들은 줄리아 여사는 물론이고, 조선의 왕실과 왕족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그나마 몇명되지도 않는 조선 왕실의 후손들은 평소 철저하게 잊혀져 있다가 세상을 떠나면 잠깐의 관심을 받는다.
덕혜옹주가 그랬고, 이구 황세손이 그랬다.
 
의친왕의 둘째 따님 이해원 옹주는 
2006년 무렵 경기도 하남의 무허가 판자촌 단칸방에서 아들과 함께 살며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세인의 관심을 잠깐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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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0세가 되는 의친왕 둘째 따님인 이해원 옹주. 2007년 9월 모습이다. 칠순의 아들의 수발을 받으며,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이해원 여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를 맞는다.
지금까지 500년 조선 왕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장수한 왕족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근 이해원 여사를 찾아본 필자의 지인은
“과거에 비해 기억력은 떨어졌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며 “하남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곤궁하게 살다가 최근 재개발되면서
칠순의 아들과 임대주택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불거졌다”며 근황을 전했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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