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의 권고(목회자들에게)  

우리 목회자들은 목회 사역이 전문직업화되어 감에 따라 점차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선지자의 마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마땅히 품어야 하는 마음도 아니다.
직업인의 근성이라 하는 것은 기독교 목회의 본질이나 중심과는 전혀 무관하다.

 
직업인이 되기를 갈망할수록 눈을 떠보면 영적으로 더 죽어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전문직업에는 아이다움(마 18:3)이란 없는 것이며 온유함(엡 4:32)이란 없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갈망(시 42:1)이란 없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니다.
우리는 머리 둘 곳이 없는 자들이다.
우리는 세상 나그네요 유랑자들이다(벧전 2:11).
우리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우리는 뜨거운 기대감으로 주님을 기다린다(빌 3:2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바라는 사랑을 직업적인 일로 바꾸어버린다면 그것은 그 사랑을 죽이느 ㄴ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란 어리석고 위험한 것!"

거리끼고 위험한 것으로서의 기독교가 되기 위해 이 땅의 목회자들은 무엇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 


1.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러나 전문직업인은 지혜롭다. 우리는 약하다 그러나 전문직업인은 강하다.

전문직업인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조롱을 받는다.

우리는 전문직업인의 생활방식을 확보하려 애쓰지 않으며,

오히려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집도 없는 자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2.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분의 영광을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보다 그분의 영광을 더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기초가 된다.


3.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무한한 가치이다.

하나님의 의는 언제나 자신의 영광을 높이고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헌신이다.

하나님의 자족적인 영광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일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데서 가장 높아지고 가장 잘 드러난다.


4. 형제들이여, 이신칭의를 삶으로 실천하고 가르치십시오.

이신칭의 교리는 머리이며 모퉁이 돌이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교회를 낳고, 기르며, 세우고, 보존하며, 방어한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교회는 한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마틴 루터)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의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돌려진다.


5. 형제들이여, 채무자의 윤리를 경계하십시오.

채무자의 윤리 :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순종의 동기를 감사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감사가 순종의 동기라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감사란 자신이 받은 유익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누군가의 선의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무리의 기쁨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자발적 반응은 또 다른 순종의 행위를 낳는 큰 잠재력이 있는데, 이는 순종에 대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의에 대해 그분께 감사할 때, 공짜라는 그분의 선의의 본질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그분의 선의의 목적을 높이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께 빚을 갚음으로써 감사를 표하려는 채무자의 윤리는 공짜이며 은혜라는 그분의 선물의 본질과는 모순된다.


6. 형제들이여, 양떼에게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말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그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그를 섬기는 것은 마치 개울이 그 근원이 되는 샘을 채우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무엇을 찾으시는가? 조력자들? 그렇지 않다. 복음은 '도움주세요.'하는 광고가 아니다. 복음은 도움을 주겠다는 광고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위해 일할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게 아니라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 속에서 자신을 통해 능력으로 일하시게 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힘없는 우리의 머리를 들어올리고 우리 입에 숟가락을 넣으시는 간호사이십니다.

그분이 얻으시는 것은 섬김을 받는 자의 영광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자의 영광이다.


7. 형제들이여, 기독교 희락주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8. 형제들이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세상을 축복하길 기뻐하신다.

자신을 의지하길 포기하고 뜨겁게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높이는 것은 없다.

기도를 제쳐 놓고 벌이는, 우리의 모든 허둥거림과 지껄임과 연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해당된다.


9. 형제들이여, 신성한 대체물을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 큰 위협이 되는 것은 훌륭한 목회 활동이다.


10.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자유를 위해 싸우십시오.

우리는 저절로 채워지는 샘이 아니다. 우리의 두레박은 새고 있고, 물을 퍼올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영혼은 되살아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영혼은 차근히 읽고 생각할 시간도 없고 설교 준비 때문에 늘 중압감에 시달리다가 위축되고,

 목회적 죽음이라는 망령이 고개를 내민다. 영적 양식과 묵상이 빈약한 상태에서 밎어진 격앙된 행동이 낳는 메마름만큼 우리를 강하게 위협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영혼과 섬기는 교회의 생명을 위해, 풍성한 독서로 우리의 영혼을 먹일 시간을 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11. 형제들이여, 본문을 탐구하십시오.

목회자는 누구나 성경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양떼를 먹이려면 성경 진리에 관한 지식이 날마다 진보해야 한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주장을 놓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결심 : 나 자신이 동일한 지식에서 자라나는 게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성경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주 연구할 것이다.


12. 형제들이여, 원어 연구를 통해 성령의 검의 능력을 맛보십시오.

확신있는 해석은 능력있는 설교를 낳는다.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연구하지 않을 때 목회자와 그들의 교회는 2차 자료(최근에 읽은 책의 저자를 들먹임으로써 서로에게 잠시 감명을 줄 수는 있겠다.)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2차적인 음식은 양떼의 믿음과 거룩을 유지하지도 깊게 해주지도 못한다.

원어 성경은 당신에게 커다란 고통을 요구할 것이며 또한 그 고통에 풍성한 대가로 보답할 것이다. (존 뉴튼)


13. 형제들이여, 신앙 전기를 읽으십시오.

신앙 전기는 교회라는 생명체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단이다.

전기는 평범하게 살려는 타성을 물리치는 데 다른 어떤 인간적인 힘보다 큰 역할을 한다.

전기를 읽지 않으면, 나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끝없는 수고와 그분을 향한 끝없는 열망에 어떤 기쁨이 있는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14.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어려운 본문에 영감을 주신 이유를 말하십시오.

절망 : 하나님이 힘주시길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간구 :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인식 : 성경 본문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한다.
교육 : 양떼가 열심히 기도하고, 잘 읽고, 부지런히 생각하도록 훈련시킨다.


15. 형제들이여, 성도들을 구하십시오.

우리가 설교하는 것은 성도들의 성장을 위해서일 뿐 아니라 그들이 자라지 않으면 멸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며, 택하신 자들은 성장할 것이며, 택하신 자들은 회개할 것이며, 택하신 자들은 틀림없이 구원받을 것이다.(롬 8:29-30)

그러나 이들이 충실한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구원받지는 않을 것이다.


16. 형제들이여, 우리는 지옥의 진리를 느껴야 합니다.

마음이 더 이상 지옥의 진리를 느끼지 못할 때, 복음은 좋은 소식에서 단순히 그저그런 소식에 불과해진다.

기쁨의 강도는 떨어지고 가슴에서 넘쳐나는 사랑도 말라버린다.


17. 형제들이여, 즐거움을 통해 회개로 인도하십시오.

진정한 복음적 통회, 진정한 회개에는 모든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이 거룩하지 못한 것 때문에 울기 위해서는 거룩을 하나님에 대한 소중한 경험과 묵상으로 갈망해야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을 진정으로 슬퍼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는 기쁨을 전해야 한다.


18. 형제들이여, 세례/침례의 의미를 강조하십시오.


19. 형제들이여, 우리의 고난은 그들의 위로를 위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고난은 그의 양떼의 위로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그 고난에서 하나님의 크고 첫째 되는 계획은 우리가 더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 형제들이여, 강이 깊이 흐르게 하십시오.

형식주의는 진짜 위험하다. 하지만 즉흥성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열정이 없으면, 마음은 생명 없고 뜻 모를 즉흥성을 낳는다.

그러나 마음에 불이 붙으면 어떤 형식도 그 불을 끌 수 없다. 형식과 열정이 반드시 모순될 필요는 없다.

감정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강과 같고 형식은 강둑과 같다. 강둑이 없으면 강은 얕게 흐르고 들판을 쓸어버린다. 그러나 강둑은 강이 깊게 흐르게 한다.


21. 형제들이여, 장난감 총으로 탱크와 싸우려 하지 마십시오.

율법주의는 알코올 중독보다 더 위험한 질병이다. 왜냐하면 율법주의는 질병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은 사람들이 실패하게 만든다. 율법주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도록 돕는다. 알코올 중독은 사람들이 술병을 의지하게 만든다. 율법주의는 사람들이 자만하며 아무도 의지하지 않게 만든다. 알코올 중독은 도덕적 결심을 무너뜨린다. 율법주의는 도덕적 결심에 힘을 실어준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도덕성이 교회에서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

율법주의는 행동에 대한 성경의 기준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성경에는 있지도 않은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맞춰 교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비성경적 배타주의) 율법주의의 두 형식의 공통된 뿌리는 불신앙이다.

원수는 우리를 공격하기 우해 자기 신뢰와 자만이라는 대포로 무장한 육적인 탱크를 매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장나감 총 같은 규정들을 가지고 자신이나 교회를 방어하려 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이기는 것 같을 때라도 패배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방어책은 "그(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믿음에 굳게 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은에 이르게 하시는"분을 의지하며,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는" 것이기에 "머리를 붙드는" 것이다.


22. 형제들이여, 불확신과 겸손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시대에는 확신을 가리켜 오만이라고 말하며 불확신을 겸손이라고 말한다.

불확신과 겸손을 혼동하지 말라.


23. 형제들이여, 구리면 족하다는 것을 가르치십시오.

우리는 즐겁지만 전시처럼 검소하게 살면서 우리가 번 것 가운데 남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더는데 사용해야 한다.

물질을 가지고 사는 삶에는 세 수준이 있다.

(1) 갖게 위해 도적질하는 것 (2) 갖기 위해 일하는 것 (3) 남에게 줄 것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세 번째 수준의 삶을 촉구한다.

충분한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넘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길 원한다면 금으로 만든 전선이 될 필요는 없다.

구리면 족한다.


24. 형제들이여, 양떼가 재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섬기도록 도우십시오.

온 나라가 삶과 죽음과 악과 상실과 아픔을 이야기 하는 이러한 시기에 목회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25. 형제들이여, 양떼의 가슴에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심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명성을 사랑하고, 그 분의 이름을 그 어떤 것보다 높이는데 헌신되어 있다면 세계 선교에 무관심할 수 없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 "모든 민족"이 그분의 이름을 알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한 목적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우리가 불순종하면 실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선교적 사명은 미전도 종족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열방'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구분된 인종 집단을 의미한다.

선교의 과제는 개개인을 낚는 것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디모데형 선교사(이미 복음이 전파된 지역에서 기존 교회와 함께 일하는 국내 사역)는 많지만, 바울형 선교사(하나님의 이름을 세계의 미전도 종족에게 알리는 개척 사역)은 적다. 국내 사역은 개척 선교의 목표며, 개척 선교는 국내 사역을 확립시킨다.


26. 형제들이여, 인종차별의 뿌리를 뽑아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의 선을 넘어 서로 화해하는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려는 목적을 갖고 계신다. 인종적 다양성을 적용하고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문제이다. 요한계시록 5장 9절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인종적 다양성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사셨다고 말한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과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문제이기도 하다. 


27. 형제들이여,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위해 나팔을 부십시오.

잉태된 인간 생명체를 파괴하는 것은, 그것이 배아 단계든, 태아 단계든, 생존 가능한 단계든,

인간을 지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를 공격하는 것이다.


28. 형제들이여,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본질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반영하는 행동이 예배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본질은 지역적으로 국한된 외적인 행위가 아닌, 내적이고 영적인 경험으로서, 그것을 일차적으로 공예배에서가 아니가(공예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매일의 삶에서 표현함으로 드러난다.

예배란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 나타내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가치를 의식적으로 숙고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를 찬양함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보다 더 높아지심으로써 죽음에서 찬양을 받으신다.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삶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다. 예배의 초점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맞출 때 예배의 중심엔 미묘하게 하나님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리는가에 대한 문제가 자리 잡게 된다. 급기야 예배의 우수성과 능력을 그 예술적 행위가 기술적으로 우수한가의 문제로 정의내리기 시작한다.

예배의 내적 본질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이라면 예배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일 수 없다. 수많은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예배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예배하며,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예배하며,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예배하며, 일꾼들을 모으기 위해 예배하며, 교회의 도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예배하며, 재능있는 음악가들에게 소명을 다할 기회를 주기 위해 예배하며, 아이들에게 의의 길을 가르치기 위해 예배하며, 잃어버린 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예배하며, 어떤 프로젝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예배하며, 교회에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예배한다.

물론 예배가 교회의 생명에 수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예배하게'될 때 예배의 진정성은 그 만큼 잃게 된다.


29. 형제들이여,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결혼의 신비 

(1)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의도하신 관계를 의식적으로 모방해야 한다.

(2) 결혼에서 배우자 각자는 상대방의 기쁨에서 자신의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즉 결혼이 기독교 희락주의의 모체가 되어야 한다.

배우자를 세상의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 동시에, 하나님보다는 덜 사랑하라.


30. 형제들이여, 신학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강의실과 교수들의 어조는 강단의 어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교수들이 열정을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젊은 목회자들도 열정을 갖게 될 것이다. 교수들이 소홀히 하는 부분은 강단에서도 소홀히 다루어질 것이다.

"신학교를 선택할 때는 교수진을 보게" 그 조언은 옳다.

우리가 신학교를 위해 기도할 때 특히 교수진과 이들을 평가하고 고용하는 사람들의 지성과 감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를 가르치도록

- 학생들에게 인간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을 기르도록

- 학생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기르도록

- 학생들에게 성경에 깊이 충실하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성경에서 전하고 가르친 것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의 깊고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목표 삼게 가르치도록 



 존 파이퍼

존 파이퍼(John Piper)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베들레헴교회의 목사이자 탁월한 영성작가이다. 자신의 비좁은 경험세계만을 손쉽게 파고들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얄팍한 위로를 남발하는 일부 영성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복음에서 떠나기를 호리는 현대 문화의 유혹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무릎 꿇게 하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회심케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말씀사역과 저술사역을 하고 있다.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와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를 거쳐 뮤니히 대학(University of Munich)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델 대학(Bethel College)에서 6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노엘 파이퍼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저서들을 집필했는데, 대표작으로 고전으로 평가받는 「하나님을 사모함」(Desiring God), ECPA(미국 복음주의출판협의회) 금메달 수상작으로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서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God`s Passion for His Glory) 등이 있다.

'기독교 희락주의자'라는 그의 별명답게 「하나님의 기쁨」 (은성), 「여호와를 기뻐하라 」(생명의 말씀사), 「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 (좋은씨앗) 등 기쁨에 관한 탁월한 저서들이 번역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묵상 1, 2, 3, 4 」(좋은씨앗), 「금식기도」 (생명의 말씀사), 「하나님의 방법대로 설교하십니까」(엠마오) 등의 번역서가 있다.


이 외에 잘 알려진 「열방을 향해 가라」(좋은씨앗)는 선교를 주제로 한 탁월한 책이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경험을 두루 가지고 신앙의 한 부분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부분에 균형되고 깊이 있는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의 진정한 장처일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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