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구약 사본(寫本, codex)을 통한 전승
구약 성경의 원본은 일찍이 사라지고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손으로 기록한 필사본들의 전수에 의한 것이다. 바벨론 포로 이전 시대의 사본의 전승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으며, 단지 ‘율법 책’을 언약궤 옆에 두고 매 칠년마다 초막절에 낭독하라는 명령(신 31:9-13) 과 B.C.621년 요시야 시대에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했다는 기록(왕하22:8)을 통해서 그 이전에도 사본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징할 뿐이다.
구약 사본의 본격적인 전수는 B.C.5세기 에스라 시대부터 서기관들의 활동에 의해서 이우러졌다. 이런 일련의 활동에 속한 사람들은 ‘서기관 학파’라고 하는데, 이들의 임무는 성경의 사본을 만들고 가장 정확한 본문의 독법을 규명하여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으로서, 맛소라 학파는 이를 이어받아 오늘날의 히브리어 성경을 완성한 것이다.
한편 현재에 알려진 구약 사본의 수는 신약 사본의 수에 비해 매우 적다. 그 이유를 우리는 서기관들의 엄격한 필사 작업 및 필사본의 보존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서기관들은 매일 필사를 하기 전에 그가 사용할 갈대 붓을 시험해 보기 위해 먼저 ‘아말렉’ 이라는 이름을 쓰고 그리고 나서 다시 그것을 지운다.
그 다음에 복사할 사본을 큰 소리로 반복하여 읽은 후에 그 부분을 필사한다. 필사 하는 중에 ‘여호와’ 라는 신명(神名)이 나오면 즉시 쓰는 일을 멈추고 ‘내가 그분의 이름의 거룩성을 위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쓰노라’ 라고 말한다. 그리고나서는 목욕을 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붓을 깨끗이 빤 후에 ‘여호와’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만일 쓰다가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금까지 사용하던 파피루스 종이 전체를 소각하여 버렸다. 이와 같이 사본을 필사하는 중에 성경 사본의 표준화에 일치하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게니자’(Geniza) 라는 회당에 보관하였다가 정기적으로 소각하거나 경건한 사람을 장사 지낼 때 무덤에 함께 묻었다. 사용하다가 남은 필사본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이 정확한 본문을 보존하려는 필사자들의 미신적이리만큼 엄격한 필사습관으로 말미암아 현존하는 필사본의 수는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사본의 질은 매우 우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B.C.1-2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최근까지 신빙성에 있어 많은 의심을 받았던 맛소라 사본이 위와 같은 필사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매우 정확한 사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됨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구약 본문의 정확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1천여 개에 달하는 구약 사본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개의 사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명칭 | 수록 범위 | 필사 연대 | 관련 사항 |
사해사본 | 성경을 기록한 두루마리와 성경이 아닌 내용 즉 성경 주석과 생활 규범서가 포함되어 있음. 성경으로는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의 모든 책. | 시편의 단편 일부는 B.C.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사본은 B.C.2세기 경에 필사되었다는 주장이 고고학적으로, 혹은 본문 비평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1947년 2월 사해 서북 해안선을 따라 있는 쿰란 와디 게곡 부근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사본(Dead Sea Scrolls) 은 구약 사본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사본은 맨 처음 인근 타아미레 부족의 두 목동에 의해 발견 되었으나 그것들의 가치를 몰랐던 목동들은 사본을 골동품 상인에게 팔아버렸다. 그 후 약 1년 후에 시리아 교구장 사무엘에 의해 비로소 그 진가가 확인 되었는데, 이로 인해 본격적인 쿰란 동굴 탐사 작업이 있었고, 12개의 동굴 속에서 많은 구약 시대의 고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이 가운데 제1동굴(1Q) 과 제4동굴(4Q) 이 가장 중요하며 여기에서 대부분의 구약 사본들이 발견 되었다. 이것은 오늘말 우리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 본문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 시대에 확정된 본문 및 B,C,2세기에 사용되던 본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성경 각 장에서 상호 인용하고 있는 인용구의 정확성과 구약 성경의 인명과 지명이 고대 문헌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성경 필사 과정의 정밀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나쉬 사본 | 십계명(출 20:2-17). 일부와 쉐마)신(6:4-9) | B.C.100년(Cross) 또는 B.C.50년(Albright). | 1902년 나쉬(W.L. Nash)가 이집트에서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캠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사본으로 이집트 파이염(Fayyum)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쿰람 사본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1947년)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알려졌다. |
맛소라 사본 | 구약과 히브리 성경 전권 | A.D.10세기 이후에 완성됨. | 히브리어의 ‘맛소라’는 ‘전통(傳統)이라는 뜻이다. A.D.500-950년에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전통을 올바로 전수하기 위하여 노력한 학자들을 ’마소라 학파‘ 라고 부른다. 이 학파는 거의 500년간 게속된 연구 활동을 통하여 서기관 학파로부터 전수 받은 모든 구약 사본을 기초로 하며, 히브리 성서 본문의 전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본래 자음만으로 된 히브리어 성경에 모음과 엑센트를 붙여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필요한 경우에 성경의 본문 옆이나 위 아래, 또는 각 책의 끝에 모음과 엑센트를 붙여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필요한 경우에 성경의 본문 옆이나 위 아래 또는 각 책의 끝에 주(註)를 달아 본문의 이해를 도왔다. 이 사본은 미쉬나 탈무드 그리고 많은 랍비 문헌들에 인용되었으며, 탈굼, 페쉬타, 벌게이트 역본 성경의 기초 본문이 되었다. |
대영 박물관 사본 | 오경(五經) | A.D.850년 | 이 사본은 오경 사본이지만 창세기와 신명기의 많은 부분이 상실되었다. 본래는 자음만으로 작성 되었으나 작성 연대로부터 약 1세기 후에 모음이 첨가되었다. |
카이렌시스 사본 | 전선지서와 후 선지서 | A.D.895년 | 모세 벤 아셀(Moses ben Asher)dp 의해 자성된 이 사본은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카라이트 공동체(the Karaite Community) 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1099년 십자군이 전리품으로 탈취해 간 후 지금은 카이로에 있는 카라이트 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다. |
레닌그라드 사본 | 구약 전권 | A.D.890-895년경 | ‘모세 벤 아셀 사본’이라고도 한다. 이 사본은 키텔 히브리어 성경(Kittel's Biblia Hebraica) 제 3판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 학자들의 표준 성경 사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
사마리아 오경 사본 | 오경(五經) | A.D.1149년 이전 |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은 마카비 시대 히브리 고어체로 기록된 것으로 번역본이 아니라 히브리 오경사본의 수정 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마리아 오경은 맛소라 사본과 단어 철자의 차이 이 외에는 거의 일치하지만 가끔씩 그들의 종파를 옹위하기 위해 삽입한 구절들도 있다. 예를 들면 출 20:17 뒤에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을 삽입하고 있다. 이는 바렐론 포로 이후 시대 유대 백성들로부터 이방인들과 혼합되었다는 이유로 배척당하자 (스 4:1-6), 그리심산에서 따로 예배 처소를 마련한 사실 (요 4:20)을 정당 화하기 위한 삽입이라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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