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식민시절 행정구역이 현재 남미 국경선으로

입력 : 2017.10.26 03:08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후 교황 중재로 스페인, 브라질 제외 남미 지역 지배
영토 경계 불분명해 분쟁 이어지다 전쟁 통해 지금의 국경선 정해졌죠

최근 남미 국가 중 하나인 볼리비아가 "칠레가 국경에 묻어놓은 지뢰(땅속에 묻어 압력 등 자극을 받으면 폭발하는 무기)를 다 제거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어요. 칠레는 1970년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페루·볼리비아와 영토 분쟁을 겪으며 1000㎞에 달하는 일부 국경 지대에 지뢰를 묻은 것으로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는데요. 1997년 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오타와 협약'을 체결하면서 칠레 역시 지금까지 묻어놨던 모든 지뢰를 제거하기로 약속했지요.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뢰를 전부 없애지 않아 마을을 지나던 사람이나 트럭이 지뢰를 밟고 폭발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답니다. 이처럼 남미 국가 상당수가 아직도 국경을 둘러싸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제국주의 손길이 뻗치기 전까지 남미 원주민들은 오랜 세월 다양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어요. 이때는 나라와 나라 간에 근대적인 의미의 '국경(national border)'이라 할 만한 명확한 경계선이 없던 때였지요. 그러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경계'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1492년, 스페인 여왕의 원조를 받고 항해에 나선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해요.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신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두 나라가 남미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식민지 건설을 둘러싸고 분쟁을 거듭하자, 1493년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중재에 나섰어요.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조약을 체결한 거예요. 아프리카 서쪽 카보베데르 섬으로부터 약 1500㎞ 떨어진 지점에 일직선을 긋고, 기준선 서쪽은 스페인이 차지하고 기준선 동쪽은 포르투갈이 차지하는 걸로 결론을 낸 거예요. 기준선 동쪽은 현재 브라질에 해당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브라질은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제외한 나머지 남미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하는 모양새가 됐답니다. 이런 영향으로 지금도 남미 국가 중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어요.

1823년 에콰도르 이바라 전투에서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군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 등 남미 5개 국가를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해방시킨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어요.
1823년 에콰도르 이바라 전투에서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군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 등 남미 5개 국가를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해방시킨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얼마 후 포르투갈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를 넘겨받습니다. 스페인 땅과 포르투갈 땅을 구분해놨던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유명무실해진 거지요. 또 뒤늦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고 달려들면서 중남미 전역이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오랜 식민 통치를 받던 남미에서 독립의 물결이 인 건 19세기 들어서부터입니다. 남미 독립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계층이 바로 '크리오요(Criollo)'였는데요. '크리오요'는 신대륙에서 태어난 유럽 백인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이들은 식민지 지배계층으로 유럽에 유학을 많이 다녀왔고, 19세기 유럽에 번진 자유주의·계몽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 결과 자신의 뿌리가 있는 식민지 본국에 반기(反旗)를 들고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한 거랍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시몬 볼리바르(1783~1830) 입니다.

시몬 볼리바르는 현재 베네수엘라에 속한 지역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크리오요였어요. 대지주의 아들로 풍족하게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장 자크 루소의 자유·정의·평등 사상을 접하고 인간의 기본권에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볼리바르는 1810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첫 독립운동에 나섭니다. 처음엔 실패를 겪었지만, 영국군 등 지원에 힘입어 1819년 누에바그라나다(현재 콜롬비아) 독립을 쟁취하고 1821년 카라카스(현재 베네수엘라)와 키토(현재 에콰도르)를 잇따라 해방시켰답니다.

볼리바르는 지금까지 남미의 '해방자'라고 불려요. 그가 해방시킨 알토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 나라 이름을 '볼리비아'라고 지었지요.

◇뺏고 뺏기는 영토 분쟁

남미 지도
또 다른 남미 독립의 영웅은 호세 데 산 마르틴(1778~1850)이에요. 역시 '크리오요' 출신이었답니다. 마르틴은 라플라타(현재 아르헨티나)와 산티아고(현재 칠레)를 잇따라 독립시켰고,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볼리바르와 손잡고 에콰도르와 페루를 스페인 지배에서 해방시켰답니다. 이렇게 남미 식민지 대부분이 1810년부터 1825년 사이에 독립합니다.

그런데 독립 당시 만들어진 국경은 현재 남미 국경과 약간 다르답니다. 스페인이 식민지 시절 만들었던 행정단위가 독립과 함께 '국가'로 변했기 때문에 영토 경계가 애매한 지역이 많았어요. 특히 남미 내륙 지역처럼 인구가 희박한 경우엔 식민지 시절에도 행정단위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훗날 영토 분쟁의 씨앗이 되었지요.

독립국가들이 국경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남미는 수차례 전쟁에 휩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칠레와 볼리비아 사이에 벌어졌던 '남미 태평양 전쟁(1879~1882)'이에요. 이 전쟁의 결과로 칠레는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아타카마 사막을 차지하고 북쪽으로 영토를 길게 확장한 반면,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의 영토를 빼앗겨 완전히 내륙에 갇힌 국가가 되어 버렸어요.

1864~1870년에는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가 동맹을 맺고 파라과이와 전쟁을 벌여 파라나강 상류를 빼앗아오기도 했고(파라과이 전쟁), 1995년에는 페루와 에콰도르가 천연자원이 풍부한 아마존강 밀림 지역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둘러싸고 '세네파 전쟁'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 7월 에콰도르 정부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페루 정부와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높이 4m짜리 국경 장벽을 쌓아 양측간 긴장이 조성됐어요.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미국처럼 하나의 연방국가로 성장하길 소망했다고 해요. 하지만 현재 남미를 '한 국가'라는 틀에 묶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여요. 식민지 시대가 낳은 갈등의 씨앗이 남미를 더 이상의 분쟁으로 몰아넣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정하 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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