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에서 오순절까지의 구속사
I. 예수의 행적과 교훈을 기록한 책들
4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어떤 편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활동과 교훈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동 자료들에 나타난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도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도표가 나오지 않아 강의 시에 보충할 것임)
II. 예수의 생애와 봉사활동 개요
A. 연대적 구분 (SDABC 참고)
1. 탄생으로부터 성장에 이르기 까지 BC 5년 가을-AD 27년 가을
2. 초기봉사활동 AD 27년 가을-28년 봄
3. 유대 봉사활동 AD 28년 첫 유월절-29년 두 번째 유월절
4. 갈릴리 봉사활동 AD 29년 두 번째 유월절-30년 세 번째 유월절
5. 공중봉사활동 일시 중단 AD 30년 세 번째 유월절-30년 가을
6. 사마리아/베레아 봉사활동 AD 30년 가을-31년 네 번째 유월절
7. 수난주간 AD 31년 네 번째 유월절
8. 부활과 승천 AD 31년 봄
B. 연대 산출 근거
1. 요한복음 3회 유월절 언급--2:23; 6:4; 13:1
AD 28년 유월절에(2:11-13) 예수께서 수침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시어 메시 야적 사명을 선포하고 사업에 착수하시었다.
5:1의 “명절”이 2차 연도의 유월절이라면 4회 언급(SDABC지지)이 된다.
첫 유월절을 마지하기 수개월 전 수침과 4차례 유월절 언급에 비추어 3년 반 공 생애 활동을 하였다.
2. 누가복음 연대
(1) 2:1-2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구레뇨(Cyrenius, 또는 Quirinius) 총독 부임 후 첫 호적령은 6 B.C.
이 호적령은 6 BC 훨씬 이전에 시작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이 로마에 예속되는 AD 6년까지 완수되지 못하였다.
(2) 3:23 30세 쯤 공중 봉사 활동 시작
3. 예수 탄생은 헤롯 사망 이전--헤롯 사망 직전 월식현상이 있었고 그는 유월절 직전 사망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 그의 사망은 750 A.U.C.3월 12 또는 13일이 될 가능성있다, 헤롯이 예루살렘에서 34년간 통치, 그렇다면 헤롯은 717 A.U.C.에 통치 시작(750-34=717)을 하였다.
C. SDABC 제5권 <복음조화>가 요약한 179개 사건 기사들의 복음서별 비율
<사건 기사 수> <독자적 사건 수와 비율>
1. 마가복음--79/179 44% 1 96% 연대순 기술
2. 마태복음--95/179 53% 14 88% 연대순 기술(주제별 기술)
3. 누가복음--118/179 66% 43 94% 연대순 기술
4. 요한복음--48/179 27% 31 철저하게 연대순기술
D. 복음서별 이적(표적)과 비유 수
<이적> <비유>
1. 마가복음--18/35 6/40
2. 마태복음--20/35 21/40
3. 누가복음--20/35 26/40
4. 요한복음--8/35 0
E. 수난주간을 다룬 章 수 (27/89)
1. 마태복음--7/28
2. 마가복음--5/16
3. 누가복음--5/24
4. 요한복음--10/21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논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수난주간에 많은 분량을 할당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그 사역 중에도 그의 죽으심에다가 역점을 두고 있는 점을 엿볼 수 있다.
F. 공관복음(The Synoptic Gospels)
"같은 시각으로 보는“ 공관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적인 기술 순서
(1) 탄생 --> (2) 침례--> (3) 시험--> (4) 갈릴리 봉사활동(공관복음서 기사의 주 종을 이룸)--> (5) 예루살렘 여행--> (6) 수난--> (7) 부활
2. 유사한 예수의 말씀 수록
3. 예수를 대 이적 행사자와 무비의 교사로 제시
4. 사건 묘사의 독자성--예수의 시험 기사, 부활 사건 기사, 십자가 죄패 기사
공관복음 기원 관련 학설들
1. 구두전승설
2. 문서설-- 두 문서인 마가복음과 Q자료
3. 마태의 Logia
III. 예수 그리스도 생애를 다룬 자료들
A. 성서적 자료들
1. 4복음서--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보의 주된 자료
2. 사도들의 글
(1) 바울 편지서--그리스도로부터 직접적인 계시에 기초를 둔 정보 제공(고전 11:23; 고전 15:3)
(2) 요한계시록 1:1
(3) Agrapha (unwritten things)--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여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행 20:35; 살전 4:15)
B. 비정경적 자료
1. Gospel of Thomas
도마복음서는 대략 A. D 2세기경에 희랍어(그리스어)로 기록되어 내려오다가 20세기로 들어선 때 이집트의 나일강유역 서쪽 끝에 있는 옥시링쿠스(Oxyrhynchus)에서 파피루스 형태로, 그리고 1945년에 이집트의 나그함마디(Nag Hammadi) 에서 동일 내용의 파피루스로 다시 발견되었다. 된 문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예수의 가르침, 예언, 격언, 우화를 담고 있다. 학자들은 공관복음서의 저자 마태, 마가, 누가가 복음서를 쓰기위하여 참고한 공통 자료("Q" 로 불린다)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바 이 공통자료와 도마복음서는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추정된다(헬뭇 쾨스터, Helmut Koester의 도마복음서 소개 글에서). 도마복음서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들어있다. 전부 114절로 되어있고 예수가 답하는 것과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Hyppolytus(d. 235)와 Origen은 이단 그룹들이 도마복음서를 사용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도마복음서에는 114의 예수의 logia가 담겨 있다.
2. 교부들의 전승
3. 외경복음서들--약 25종의 외경 복음서들로 예수의 제자들 이름을 빌린 위경 복음서들도 들어 있다. Gospel of Andrew, Gospel of Philip, Gospel of Peter, Gospel of James, Gospel of Thomas에는 전설 및 금욕주의 사상(노스틱 사상)이 담겨 있다.
4. Tacitus(61-117 AD)
콜넬리우스 타키투스는 A.D. 112년 소아시아의 총독이었다. 그는 로마의 정부 문서 보관소에 접근하여 정보를 찾는 신중한 역사가로서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에 관련한 상세한 것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로마의 역사가는 네로 황제의 로마 방화 사건을 다룬 기사를 남겼다. 그는 기독교인이 로마를 방화했다는 네로황제의 허위적인 고발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받는 박해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Christus (그리스도)는 그 이름의 창시자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했다. 빌라도는 티베리우스황제 통치시기에 유대의 총독이었다. 한 동안 잠잠했던 유해한 미신이 불행의 시발점인 유대의 전 지역뿐 아니라 로마시를 휩쓸며 다시 일어났다” ( Annals XV 44 ).
그는 이 글에서 방화 루머 진압 차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화재 원인을 귀속시켜 백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창설자는 Christus로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당하였고 그 추종자들은 제압당하였으나 발호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5. Suetonius (70-c. 130)
Suetonius는 A.D. 125년 로마의 사관으로서 <열두 황제의 생애>, 특히 Life of Claudius에서 크레스투스(그리스도)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주 소요를 일으키자 클라우디오 황제(AD 41-54)가 그들을 추방했다고 기록하였다.
6. Pliny의 편지
플리니는 A.D 112년 로마령 비두니아 (터어키)지방의 총독이었다. 그는 황제에게 자신이 심문할 기독교인에게 할 질문과 관련하여 교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글을 썼다. 그는 “기독교인은 빛이 밝기 전에 확실히 정해진 날에 모이는 습관이 있다. 이들은 신에게 하듯 그리스도에게 찬양을 드린다. 이들은 사악한 것을 하지 않으며 결코 거짓말, 도둑질, 간음, 거짓 증거하지 않으며 믿음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아도 결코 믿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엄숙한 맹세를 한다” 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저술 Epistle X 96에서 이것을 믿는 자들은 황제 트라얀을 섬기지 않고 극심한 고문에서도 조차 자신들의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지 않는다고 서술했다. 플리니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떤 값을 치루고서도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기술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거짓으로 알고 있는 것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순교는 예수에 관한 복음서의 기술이 진실인 것을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한다.”
7. Flavius Josephus (c.37-c.100)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제사장과 바리새인 유복한 가문의 아들로 로마군과 전쟁 시 갈릴리 사령관이었다. AD 67년 로마군이 갈릴리의 유대군을 물리칠 때, 요세푸스가 친히 수비하던 요타파타 요새가 함락되자 그는 뒤에 로마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투항하였다. 포로가 된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제 즉위를 예언하여 풀려난 뒤 이름을 플라비우스로 바꾸고 로마군에 협력하였다.
75년부터 79년 사이에 쓴 《유대전쟁사 Bellum Judaicum 》(7권)는 BC 2세기 중반 이후의 유대 역사를 기술하고 66~70년의 유대 반란과 로마의 군사전략과 병법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93년에 완성된 《유대고대사 Antiquitates Judaicae》(20권)는 유대 역사를 창조 이후부터 반란 전까지 기술한 책으로 성서의 이야기들을 각색하여 실었고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의 합리성을 강조하였다
요세푸스는 다음 Antiquities XVIII, 3, 3 자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제 그의 시간이 되자(새로운 소동의 때) 예수라 하는, 그가 만약 인간이라고 불리울 수 있다면 마술장이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그는 진실로 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였기 때문이었다)‥‥사실 그는 그 이상한 가르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한 속임수에 능한 선생이었다...·"그러고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또한 헬라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유혹하여 꾀었으며 (그들에 의해서) 메시야로(받아들여 졌다)‥‥ 우리 중의 유력인사들이 고소하여,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했으며, 그러나 그렇게 되었어도 전에 그를 그토록 찬양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 대한(헛소리를) 예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3일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나타난다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다시 살아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수 만 가지의 놀라운 일들을-예언한대로 된다고 그들은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따라 '메시아 주의자들'(Messianists)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은 소멸되지 않고 있다."
요세푸스의 이 기록은 예수가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는바 이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하나였고 요세푸스 당대에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Antiquities of the Jews (3.9.1)에서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죽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아나너스(High Priest)가 경질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이제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행정장관 이었던 페투스가 죽고 신임 장관인 알비너스가 부임지 노정에서 오는 중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법관위원회를 소집하고 그들 앞에 야고보라는 예수의 형제와 다른 사람들을 끌어내었다. 이들을 범법자로 고소하고 그들에게 돌로 쳐 죽이라고 넘겨주었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요세푸스의 문구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소위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에 대한 구절의 권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침례요한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유대인 중 일부는 헤롯 군대의 멸망이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롯은 침례자라고 불리는 요한에게 가한 처벌처럼 똑같이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헤롯은 선한 사람인 그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서로 정의롭게 행하고 하나님을 앞에서 경건하여 선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침례를 받으러 오라고 하였다. 물로 씻는 것을 죄를 씻거나 용서 받기 위해서 뿐 아니라 신체의 정결을 위하여 이용해도 좋다고 하였다.
영혼은 정의를 실행하여 벌써 완전히 정결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군중이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이자 헤롯은 자신의 권력의 지키기 위해 요한이 끼치는 거대한 영향력이 모반을 일으키기 쉬운 백성의 성향에 어떤 악영향이 미칠까 염려하였다. 헤롯은 요한이 몰고 올 불행을 방지하려면 요한을 죽게 하여 스스로 어려움에 빠지지 않는 것이며 또한 자신에게 회개하게 만들 사람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한은 헤롯의 의심 많은 기질 때문에 죄수의 몸으로 마케루스 성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사형을 당했다 (Antiquities of the Jews, 18.5.2).
요세피우스의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먼저 언급한 다른 자료들과 함께 예수가 1세기 경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라는 상당한 증거를 제시한다.
8. Julius Africanus (c. 170-240)과 Thallus
연대 시간 측정학자 쥴리우스는 A.D 215년에 북아프리카의 기독교인으로 탈루스라는 로마 또는 사마리아 출신 이교도 역사가의 저술에 나오는 십자가 사건 시 암흑에 관한 해석을 문제시하였다. 탈루스는 예수 부활 직후 인A.D.52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탈루스는 A. D. 32년 유월절에 땅 표면을 덮었던 기적 같은 어두움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쥴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탈루스는 그의 역사서 제3권에 이 어두움을 일식으로 설명해 버렸다. 그러나 내게는 합리적인 것 같지 않다.” 쥴리우스는 탈루스 이론을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개기일식과 만월이 동시에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망한 때는 유월절 만월 시기 였다.
이교도 역사가 탈루스의 이런 역사적 언급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될 때 땅을 덮었던 어둠에 관한 복음서 기록에 확신을 갖게 하였다. 예수 죽음 당시 이런 초자연적인 어두움을 언급한 또 다른 고대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유월절시기 였던 만월에는 일반적 일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쥴리우스 주장이 옳다고 한다. 이 성직자는 만월에서 달 모양이 가장 적어지는 시기까지를 면밀하게 계산해 보았다. 유대인의 예배력은 행사 전부 특히 유월절은 정확하게 달 모양과 천체에 놓인 위치로 세기 때문이다.
9. Talmuds
탈무드(300-500년 경 완성)는 예수의 초기 상황에 관한 진술을 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복음서 기록과 조화되는 내용이다. 그의 이름은 나사렛 Yeshu's로, 간음한 여인의 아들이었으며(예수의 독특한 탄생에 대한 부정적 묘사), 마술을 행사하였고(예수의 이적에 대한 폄하 진술), 이스라엘을 현혹 오도하였다. 그는 지혜자의 말을 모욕하였다. 그는 5제자를 두었다. 그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폐하려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거짓 교사로 처형당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병자들을 그의 이름으로 고쳤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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