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에 대하여


 

1. 세리 마태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레위 족속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마태의 유대식 이름은 ‘레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마태를 호칭할 때에 ‘레위’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세리 마태’라고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후에 ‘세리 레위’에게 붙여주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고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새로운 이름 붙여주시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나라의 세금을 로마에 바쳐야만 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들의 세금을 효과적으로 걷어내기 위하여 현지의 유대인들 중에서 지원자를 선별하여 세리를 뽑았습니다.


아마도 이때 마태는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리로 자원한 것 같습니다.

이로 보건데 마태는 본래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매우 강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세리들은 로마의 세금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일반 유대 백성들에게 부담시켰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일정액의 세금을 납부하고 나서 남아있는 상당액을 착복하여 부귀를 누렸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세리들은 상종하기조차 싫은 죄인이요 민족을 배신한 악랄한 반역자였습니다.

세리를 창기보다 더럽고 추악한 죄인으로 여겼으며 회당에 출입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산에서는 곰과 사자요, 시가(市街)에서는 세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길을 지나다가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북쪽으로는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과 가이사랴 빌립보, 그리고 그 남쪽으로는 유대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마태가 가버나움의 세관에서 세금을 거두고 있던 때는 공교롭게도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중요한 근거지로 삼으시고 갈릴리지방에서 한창 전도하시던 때였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 근처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부르시고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모도 고쳐주신 때였습니다.


마태는 가버나움의 세관에서 세금을 걷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시기 바로 직전에 갈릴리의 전(全) 지역을 아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네 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싣고 와서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어 메어달아 내린 사건이었습니다(마 9:2~8, 막 2:2~12, 눅 5:18~26).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최초로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온 갈릴리와 유대 전 지역을 발칵 뒤집을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예수님에 대한 소문 중에서 가장 큰 이슈는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참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태가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을 접했을 때,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과 같은 최 말단의 죄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세관을 지나시면서 마태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때 마태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우레와 같이 크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세리직도 버리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이 너무도 좋아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열기 시작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부르신 12제자들 중에서 마태의 핸디캡이 제일 컸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12제자들은 자기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높냐를 놓고 자주 다투었습니다(마 18:1, 막 9:34, 눅 9:46, 22:24)


사람의 속마음이야 다 알 길은 없겠지만 정황상 마태는 최소한 겉으로나마 그러한 다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가 무척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태에 대한 기록은 예수님께서 처음 가버나움에서 마태를 부르실 때와(마 9:9~13, 막 2:13~17, 눅 5:27~32),

12 제자의 명단에서(마 10:1~4, 막 3:16~19, 눅 6:12~16),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받아 성령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제자들의 명단(행 1:13)에서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성경에서는 마태에 대하여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서 판단해 보건데, 마태는 12제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묵묵히 주님을 뒤에서 좇았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 10:2~4)

 

마가와 누가는 12제자 중에서 마태를 7번째로 소개하고 있지만 마태는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에서 8번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보다 더 뒤에 자신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는 8번째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세리 마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리라는 수치스러운 직함을 영원히 지워버리고도 싶을만한데 오히려 마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복음서에 낙인을 찍어버리듯이 자신을

 ‘세리 마태’라고 기록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겠습니까?


마태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이었는지,

그리고 이토록 추악한 죄인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았고 평생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세리 마태’라고 칭함으로서 죄인에게 쏟아 부으신 순전한 은혜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마태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 성령님의 강권하시는 인도하심이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설교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인상 깊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마태는 아마도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을 것입니다.

세리들에게 있어서 기록(記錄)이란 생명과 같은 행동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복음) 중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를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것만 보아도 그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누가 뭐라 하여도 단연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6장, 7장)과 ‘천국은 마치...’로 시작하는 ‘천국 비유’일 것입니다(마 13장, 마 20:1, 마 22:2, 마 25:1).


마가복음에는 산상수훈의 교훈이 아예 나와 있지 않고 누가복음에는 채 한 장의 분량이 다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눅 6:20~49).

그러나 마태복음은 무려 석 장에 걸쳐서 산상수훈의 내용들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천국의 비유는 마가복음(4:26,30)이나 누가복음(13:18,20)에도 나와 있지만 마태복음의 말씀이 제일 풍성하고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마태에게 있어서 산상수훈의 말씀과 천국의 비유는 깊은 충격과 인상을 준 말씀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한 때 재물 욕심에 사로 잡혀서 살았던 세리 마태는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인상 깊게 들었을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마 6:24).

  

3.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의 마태에게는 동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었습니다.

마태는 자신의 동족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재물만이 마태의 유일한 낙이었을 것입니다.


마태가 동족에 대하여 애정이 없었듯이 마태의 동족인 유대인들도 ‘세리 마태’에게 눈곱만큼의 애정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동족을 향하여, 동족은 마태를 향하여 애정이 없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가 성령의 세례를 받고 거룩한 성도로 변화된 후로는 자신의 동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멸시하고 천대(賤待)했던 동족을 향하여 이제는 애끓는 사랑과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을 통해서 신약 성경의 시작을 여는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주요 대상은 유대인들입니다.

마태복음의 주요 타깃(Target)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마태복음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 가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마태복음을 읽을 필요가 없겠구나!”라고 말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마태복음은 모든 성도가 읽고 묵상해야 할 보편성을 가진 복음서입니다.

다만 이 복음서의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서 풀어지지 않는 자물쇠를 열어주는 키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마태복음의 내용을 개괄할 때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마태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태가 얼마나 거룩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유명한 교회사가(敎會史家)인 유세비우스는 마태가 에디오피아에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받아 순교했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산상수훈의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팔복의 말씀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살았고 마침내 가장 복 있는 사람으로 진실하게 생애를 마쳤습니다.

 

우리도 마태복음의 말씀들을 대할 때 마태처럼 진실해져야 하겠습니다. 아멘!!!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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