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윤리
[본문 해설]
기독교 신앙은 관념적이고 피안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 개혁적이고 역동적이다. 따라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기독교에 있어서 윤리학은 필수적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윤리는 금욕주의와 맥을 같이 하였다. 후에 이것이 청교도 신앙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금욕주의 자체를 기독교 윤리로 인정한 것은 올바른 이해라 할 수 없다.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종래의 입장이 깨어졌고, 계몽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거치면서 적극적인 기독교 윤리적 입장은 사회 구조와 여러 부조리들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한편 기독교 내에서도 윤리의 위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윤리 무용론자에 의하면 구원과 연관된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무가치하므로 그에 따른 윤리도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학은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강령임을 인식하고 올바른 윤리관 정립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제 °해]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전인간을 구원함에 있다. 전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그 영혼은 물론 현실적 삶의 변화와 구원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내세와 천국민의 종교가 아니라 현실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실제적 종교이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윤리학의 근거와 이유가 있다. 기독교 윤리학은 변화받은 구체적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뿐 아니라, 올바로 이끌어 주는 가장 중요한 학문인 것이다.
1. 기독교 내에서의 윤리학의 흐름
1) 금욕주의
초기 기독교와 그 이후 중세까지 기독교 윤리의 주체는 금욕주의적인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기독교는 세상에 대해서 적극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피하고 오히려 대적하는 종교로 인식되었다. 결국 세속적 욕구들을 멀리하는 것만이 최상의 기독교적 윤리 실천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금욕주의적 사고 방식이 후에 청빈한 청교도적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지만 금욕주의 자체를 기독교적 윤리의 전형으로 간주했던 것은 올바른 이해라 할 수 없다.
2) 적극적 윤리
금욕주의적 윤리를 중시하던 입장은 종교개혁을 이후로 완전히 깨어졌고, 점차 올라븐 기독교적 삶과 윤리에 대해 관심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세속 속의 삶과 직업도 거룩하며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이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사회․직업 윤리를 제시했다. 칼빈 이후, 세속에서의 직업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되었다. 기독교 윤리를 사회에 대해서 소극적, 수구적 입으로부터 적극적, 혁신적 입장으로 강한 반전을 한 것이다.
3) 적극적 사회 윤리
계몽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이후, 기독교 윤리도 개인의 성실한 직업 생활은 무론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빈곤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개인의 죄와 악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죄와 악의 결과들까지 치료해 주어야만 진정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윤리의식의 성장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극단적으로 사회 윤리만을 중시하거나 세속적 방법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시도는 비판받아야 하나, 사회적 관심으로의 윤리적 확장은 바람직한 기독교 윤리의 발전을 가져 왔다.
2. 기독교 내에서 윤리의 위치
1) 잘못된 윤리의식 : 윤리무용론
기독교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윤리를 전혀 무가치하다고 오판하기도 한다.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시므로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무언가를 시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물론 궁극적 의미에서 인간의 행위가 아무런 가치도 지닐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기 기억할 점이 있다.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발적 능력이 있기에 기독교인이 윤리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윤리적 명령들에 순종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2) 윤리의 가능성과 가치
과연 인간은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인간의 윤리적 삶은 가치가 있는가? 한마디로 신앙 이전 인간의 윤리 의식과 행동은 궁극적으로 무가치하도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신앙을 통한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완전히 변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신앙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나 변화받은 인간만이, 궁극적 가치를 지니는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럴 경우에만 윤리적 삶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결국 신자의 윤리적 삶은 믿음이 당연히 동반할 수밖에 없는 행함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3. 기독교 윤리학
1) 일반 윤리학과의 차이
일반 윤리은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에 대한 낙관과 신뢰 그리고 인간이 비록 비윤리적 존재라 할지라도 이성과 교육에 의해 올바른 윤리로 선도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인간에 대한 윤리적 신뢰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무능력에서부터 출발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적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성 회복과 새로운 피조물로의 거듭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한다. 바로 이 점이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가 지니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2) 기독교 윤리학의 신학 내의 자리매김
기독교 윤리학은 신학의 구체적 실천 강령으로 역할하며, 동시에 어떤 현실적 문제에 대한 조직신학적 해답을 제시하는 구체적 학문 작업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학은 조직신학이 삶에 대해 제시하는 가장 최종적인 학문적 해답이다. 즉 기독교 윤리학은 실천신학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기독교인의 삶을 진두 지휘하는 분야로서 삶에 있어서 직접적 접촉점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윤리학은 신학의 학문적 결론이자 삶의 실천에 있어서 구체적 행동 강령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분법을 넘어섬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학문과 삶이 나뉘어지고 교회와 세상이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신학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신앙을 고양시킬 수 있어야만 하며,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면서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바로 그러한 역할을 가장 현실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학이다. 학문과 실천을 겸하면서 세상속에서 기독교인이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이분법적 모순을 극복하는, 넘어서서 전진하는 전위 부대가 바로 기독교 윤리학인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은 변화받은 새로운 피조물을 전재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존재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으며, 동시에 궁극적으로 윤리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참된 신앙인의 신앙 표현이 바로 윤리적 삶인 것이다.
[자료 해설]
1. 윤리의 어원
1) Ethics
헬라어 tovhqo"(토 에도스)에서 유래되었는데, 원래는 마굿간 내지 축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윤리란 인간의 본능적인 모든 싸움에서부터 막을 수 있는 보호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을 인간되게 해주며 인간의 존엄을 유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Morals
실질적이고도 개인주의적 의미인 개인의 도덕적 양심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로서 개인의 덕성, 관습, 양심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개인적인 도덕의 의미가 사회적인 윤리의 의미보다 더 강조된 표현이다.
3) 倫理
무리나 또래를 상징하는 윤(倫)과 옥을 갈아 다듬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리(理)의 두글자가 결합하여 倫은 질서를 나타내고 理는 이치와 이법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인간의 문화에 대한 이치와 이법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결국 윤리는 인간의 행위(삶)의 도덕적 가치 판단과 그 기초를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그 판단과 도덕적 가치의 근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되므로 인간의 삶을 인간 개인의 문제라고만 한정지을 수 없고 공동체의 존엄과 관련된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2. 기독교 윤리학의 관점
1) 서술적 관점
서구인의 기독교 윤리 관점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서구인들은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를 혼용하여 모든 것을 구분 없이 윤리의 문제로 보았다. 즉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의 경계가 약화되어 기독교 윤리가 세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의 독특한 면을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다.
2) 규범적 관점
원칙적 논의에서 볼 때 기독교 윤리는 우리 삶의 도덕적 판단이 신앙에 의해 규정되므로 일반 윤리와 구별되는 독특한 윤리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신앙에서 윤리를 찾아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배타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과 보편성의 긴장 관계 속에서
기독교 윤리를 바르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기독교 윤리학과 자연 윤리학의 관계
1) 상충론
자연 윤리만이 진정한 윤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적 철학자인 니체와 쇼펜하우어 등이 이런 상충론의 비기독교 세력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사랑의 윤리를 말하지만 이 사랑의 윤리를 가지고 사회 정의를 약회시키고 약한 자들을 더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진정한 윤리를 초인의 윤리라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윤리만이 진정한 윤리라고 답변했다. 바르트와 브룬너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우리의 행위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덕 판단의 정당성의 기초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자율의 윤리를 주장하였다. 또한 브룬너는 칸트와 후셀의 윤리학을 기초로 해서 일반 윤리의 핵심 주장인 자율의 문제를 신학적 작업을 통해 비판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율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죄이며, 자율이 아닌 신율에 의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올바른 판단적 판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도덕 판단의 근거는 결국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병합론
빌헬름 헤르만(Wilhelm Herrman)이 대표적인 학자로서 모든 종교는 인간 안의 도덕적 본성, 윤리성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도덕성을 종교의 출신처라고 하며, 종교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간 안의 도덕성이 일어나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성을 담을 수 있는 그릇 혹은 양태를 도덕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종교성이 인간의 독특한 점을 지니고 있고 도덕성은 인간의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하였다. 즉 독특한 종교성에 기초한 기독교 윤리는 일반적인 도덕성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반드시 도덕성을 포함한 도덕적 매체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3) 보완론
고전적인 윤리 체계인 행복론을 기독교의 사랑의 윤리로 뒤바꾸어 놓은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 사랑을 윤리의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도덕적 법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개념하에서 일반 도덕 개념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덕의 기준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신학 체계를 윤리 체계에 그대로 적용시킨 사람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는 기독교적 도덕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의식이 표출하는 모든 행동을 기독교적 윤리와 삶으로 보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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