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일까요?


어디서나 주목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뭔가 신비롭고 알 수 없는 특징으로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는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말을 들은 이들은 단순히 인간성 외에 여러 부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의 말을 듣고 삶을 목격한 이들은 나사렛의 예수에게 타인들과 다른 뭔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에게 존경을 받을 어떤 자격이나 특징이 있다면 그 자신 뿐입니다. 책을 쓰거나, 군대를 이끌거나, 공직을 맡거나, 재산을 소유한 것도 아닙니다. 마을의 수백 마일 내에서 돌아다녔으며 군중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놀라운 이적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위대함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본 이들에게 명백하게 나타났습니다. 많은 위인들이 결국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지만 예수는 아직도 수천 의 책들과 수많은 매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논쟁은 대개 예수가 자신에 대해 내세운 급진적인 주장, 즉 그의 추종자들과 옹호자들도 놀라게 만든 주장을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예수에 대해 로마와 유대인 지배층 모두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예수만의 주장이었습니다 내세울 업적이나 정치적 권력기반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예수는 3년 내에 향후 20세기의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다른 도덕적 및 종교적 지도자들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나사렛이 고향인 이름없는 목수의 아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요? 단지 위대한 성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존재였을까요?

이는 예수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핵심을 묻는 질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예수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 선생이며, 단지 세계 최대 종교의 지도자였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였다고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이 인간의 몸으로 친히 세상을 방문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삶과 말을 면밀히 연구한 캠브릿지 대학의 회의론자 교수 C.S. 루이스는 자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는 어떤 사람일까요? 많은 이들은 예수가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다고 답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쟁거리가 된 인물을 좀 더 깊이있게 살펴보는 작업의 첫 단추로, 예수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는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위대한 도덕 선생일까요?

타 종교에서도 예수가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인도의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의 도덕적인 삶과 깊이있는 발언을 높게 평가했습니다.[1]

마찬가지로 유대인 학자 요셉 클라우스너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예수는 가장 순수하고 심오한 윤리를 가르쳤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며, 그러한 가르침은 고대 현자들의 도덕적 계율과 격언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2]


예수의 산상수훈은 한 개인의 발언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평등한 권리”로 알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예수의 가르침이 낳은 결과입니다. 비기독교인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예수는 ‘평등한 권리’를 위한 삶을 살았고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지금였다면 그런 사람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을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은 모든 일반적인 지혜 중에서도 정치적인 관념 일체에 대한 반전이었습니다”라고 예수에 대해 말했습니다.[3]


많은 이들은 간디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단지 고귀한 도덕적 원칙을 가르친 선생이라 생각하고 윤리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자신에 대한 주장을 별개로 구분하려 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택한 방법으로 신약에서 예수의 신성함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잘라내고 윤리 및 도덕에 대한 가르침과 관련된 문구는 남겨두었습니다.[4] 그렇게 개조한 신약을 지니고 다닌 제퍼슨은 예수를 사상 최고의 도덕 선생으로 존경했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미국 독립 선언서에서 제퍼슨이 쓴 인상깊은 문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신에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합니다. 독립 선언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받았다는 진실이 자명하다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제퍼슨은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신이라는 주장이 거짓이라면 훌륭한 도덕 선생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실제로 자신이 신성하다고 주장했을까요? 예수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가 단순히 위대한 종교 지도자였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일까요?

놀랍게도 예수는 자신이 종교 지도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종교적 정치에 끼어들거나 야심찬 목표를 밀어붙인 적도 없으며 목회 활동 역시 기존의 종교 프레임을 거의 완전히 벗어나서 진행했습니다.


예수를 다른 종교 지도자와 비교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차이가 나타납니다. 힌두 문화에서 성장한 라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는 세계의 종교를 연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주요 종교의 창시자들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종교를 보면 신도에게 내리는 지시, 즉 삶의 방식이 존재합니다. 조로아스터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조로아스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를 태어나게 한 존재는 부처가 아니며, 우리는 부처의 사성제를 통해 배움을 얻는 것입니다. 마호메트가 나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코란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가르침 그 자체였습니다.”[5]


재커라이어스의 말에 담긴 진실은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가르침이 단순한 “내게 오라”, “나를 따르거라”, 또는 “내 말을 따르거라”였던 횟수로 입증됩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최우선 과제가 죄를 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휴스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World’s Great Religions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 너무나 큰 감명을 준 나머지 유일하게 갖는 의문이 ‘저 분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저 분은 무엇인가?’였던 성인은 단 두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와 부처입니다. 이 두 분이 내린 답은 질문과 정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부처는 자신도 신이 아닌 한 인간이라고 명백하게 말했으며, 마치 후일 자신을 숭배하려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눈치챈 것이나 다름없는 답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는 자신의 신성함을 주장했습니다.”[6]


이는 예수가 자신에 대해 어떤 주장을 실제로 했는지 확인하는 다음 단계로 이어지며,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실제로 자신이 신성하다는 말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는 신이라고 주장했을까요?

그렇다면 예수가 신이라고 주장했다고 많은 학자들이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인 존 파이퍼는 신(하나님)만이 유일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예수가 주장했다는 설명을 합니다.


“…예수의 친구들과 적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몇 번이고 크게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길을 걷다가도 몸을 돌려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노라’ 또는, ‘나를 보았다면, 내 아버지를 본 것과 다름없다’ 아니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은 후에는 매우 침착하게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의 자식은 이 땅에서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다’ 죽은 자에게는 이 두 마디만 던졌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오라’ 또는 ‘일어나라’ 그렇게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다에 폭풍이 불면 ‘잠잠해져라’라고 했으며 한 덩어리의 빵을 ‘수천 명이 먹을 빵으로 되어라’고 말했습니다. 말하는 대로 즉시 이루어졌습니다.”[7]


그렇다면 그런 말을 통해 예수가 의미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가 단지 모세나 엘리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였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복음서를 간단히 살펴보면 예수는 자신이 선지자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선지자는 없었으며, 사실 어떤 선지자도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예수가 절대로 “나는 신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나는 인간이다” 또는 “나는 선지자다”라고 명백하게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분명한 인간이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예수를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간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자신이 선지자라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신이다”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성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예수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은 그가 단순한 성인 또는 선지자였다는 생각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여러 번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일컬었습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과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룹 U2의 리드싱어인 보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제게는 과한 생각이 아닙니다. 보세요. 세상의 반응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예수는 위대한 선지자였으며, 매우 흥미로운 사람임에는 분명하고, 엘리야, 마호메트, 부처, 공자 등 다른 위대한 선지자와 비슷한 말들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는 그러한 생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죠.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 아니다. 나는 내가 선생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니 선생이라 부르지 말아라. 내가 선지자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신이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천만에요. 그냥 선지자로 계셔 주십시오. 선지자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8]


예수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가 그러한 주장을 유일신에 대한 유대인의 믿음을 바탕으로 주장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유대인이라면 절대로 하나 이상의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아버지(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하면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9]


하지만 이 기도를 하면서 예수는 자신의 아버지와 항상 함께 존재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빌립이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하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립, 나와 그렇게 오래 지냈으면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라면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10]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 됩니다. “예수는 자신이 우주를 만든 히브리인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는 자신이 아브라함과 모세의 신이라고 주장했을까요?

예수는 계속해서 듣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표현으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파이퍼에 따르면 예수는 다음과 같은 대담한 발언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전에 내가 있었노라”[11] 마르다와 그녀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 것이다”[12] 이와 비슷한 말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13] “나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14] “나는 ‘진리’이다”[15]라는 발언도 했습니다. 이 외에 여러 발언은 신을 위한 거룩한 말씀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I AM / ego eimi)”보다 나중에 있었습니다.[16] 이러한 발언을 통해 예수는 무엇을 의미했으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이해를 위해 다시 한 번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약을 보면 모세가 불에 타는 가시덤불에서 신에게 이름을 묻자 신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I AM).” 신은 모세에게 자신이 유일신이며 신만이 시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항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지만 예수 역시 자신에 대해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가 될 것입니다.


모세 이후로 목회 활동을 하는 유대인이 자신이나 그 누구도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스스로 있는 자”라 주장하자 유대인 지도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은 지도자들이 왜 자신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한 인간인데 자신을 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오.”[17]


예수가 신의 이름을 사용한 행동이 종교 지도자들을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구약 학자들도 예수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우주의 창조주인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초래했을 내용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주장일 것입니다. 자신이 신이라는 예수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러한 발언 외에도 그에 대한 반응도 확인해야 합니다.


C. S. 루이스는 처음에는 예수를 근거없는 신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화를 잘 알고 있었던 문학적인 천재인 그 역시 예수가 분명히 실존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루이스는 예수 관련 증거를 조사하면서 예수가 실존 인물일 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도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유대인 중에서 갑자기 자신이 신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한 남성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죄를 사한다고 했으며 항상 그 곳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18]


루이스에게 예수의 주장은 일반적인 학자나 종교 지도자가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심오하고 급진적이었습니다. (예수의 신성함에 대한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시려면 “예수는 자신이 신이라는 주장을 했을까요?”를 참고하십시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신이었을까요?

일부에서는 예수가 신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신의 일부분이며, 우리 마음 속에는 신성함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는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수정론자적이며 예수의 가르침과 믿음, 그리고 그 사도들이 이해한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인이 이해하는 신, 그리고 구약에서 묘사한 것과 동일한 신이 자신이며 뉴 에이지 운동에서 이해하는 신과는 다르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나 그 추종자들은 스타워즈를 본 적이 없으므로 신에 대해 언급할 때 우주의 힘를 말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가 신의 개념을 통해 제시한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인디언과 같은 다신교자라면 자신이 신의 일부거나, 신과 함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인이었으므로 그런 의미로 신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언어에서 신이란 이 세상 밖의 존재이며 세상을 다른 어떤 것보다 무한히 다르게 만든 존재입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예수가 말한 의미가, 간단하게 보자면, 인간의 입술 밖으로 나온 말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19]


예수를 위대한 선생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신으로 부르기 꺼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신론자로서 우리는 토마스 제퍼슨이 도덕과 윤리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한편 예수의 신성은 부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0]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더 깊이 파고 들게 되면 예수는 자신이 주장한 존재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그러한 대안 중 어떤 것도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저는 지금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하는 말 중에서도 정말 어리석은 말을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저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신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21]


루이스는 진실을 찾던 중에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답은 한 가지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맞거나, 그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예수는 위대한 도덕 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예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예수에 대해 가장 가혹한 비평을 퍼붓는 이들도 예수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고결한 도덕성과 윤리적인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가 자신의 주장과 다른 존재라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 영향력이 큰 정치적 작품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532년에 쓴 ‘군주론’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충성심, 믿음, 정직함에 비해 권력, 성공, 이미지, 효율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가 단지 권력, 명성, 성공을 위해 거짓말을 기반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사실 예수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은 예수가 속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에게 질문을 퍼부어 실수를 유도하려 하고 자가당착에 빠뜨리게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으로 대응했습니다.


우리가 다뤄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평생을 거짓말쟁이로 살았다면, 그렇게 만든 동기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는 신이 거짓과 위선에 반대되는 존재라고 가르쳤으므로, 거짓을 행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또한 추종자들을 위해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예수를 버리는 대신 순교를 택했기 때문입니다(“사도들은 예수가 신이라고 믿었을까요?” 를 참고하십시오). 이제 남은 것은 타당성 있는 두 가지 설명 뿐인데, 둘 다 문제가 있는 설명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대부분 거짓말의 동기는 자신이 얻는 혜택입니다. 예수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분명한 답은 권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신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예수에게는 엄청난 권력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와 같은 고대 지도자들이 신성함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의 문제점은 예수 스스로가 왕좌에 앉을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포기했으며 그 대신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들을 꾸짖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는 창녀와 나환자와 같이 버림받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이들은 영향력이 없느니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예수가 행한 모든 행동과 말은 권력과 정반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권력이 예수의 동기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십자가를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사도들에게, 십자가가 자신의 운명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잃음으로써 권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죽음은 모든 것을 제대로 된 관점으로 맞춰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알려진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 순교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모든 희망도 분명 십자가 위에서 종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는 단 하나 뿐인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신약 학자인 J. I. 패커는 이 제목이 예수의 신성함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말했습니다.[22]


무슨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렇다면 만약 예수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거짓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한 존재였다고 치면, 그가 내세운 급진적인 주장들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조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해도 사람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면 슈퍼스타가 되려는 이들의 열정은 급속히 식어버릴 것입니다.


여기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굽히기만 했더라면 절대로 비난을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이 신이라는 주장과 이를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였습니다.


신뢰성과 역사적 명성을 높이는 것이 예수가 거짓말을 한 동기였다면 가난한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될 상황을 예측했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메시지가 오랫동안 전해질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의 제자들은 도망갔고 베드로는 그를 부인했습니다. 종교적 업적을 남기기 시작하려는 시도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근거가 많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까요? 학자들은 예수의 도덕성에 결함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찾기 위해 그의 말과 삶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사실, 정말 열정적인 회의론자마저도 예수의 도덕성과 윤리적 순결함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필립 샤프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상, 또는 일반적인 역사에서도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논리와 상식,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도대체 어떻게 거짓말을 일삼고 이기적이며 부패한 사람이,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고귀하며 가장 완벽한 진실의 느낌과 현실성을 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23]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설명은 그가 가르치고 실천했으며 목숨을 바친 모든 것에 역행하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학자에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주장을 부인하려면 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그리고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남은 유일한 설명은 스스로를 속였다는 것이 됩니다.


예수가 스스로 속인 것일까요?

인류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1952년에 노벨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정신이상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주장은 틀렸지만,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이 실제로 메시아라고 믿도록 속은 셈입니다.


루이스 역시 이 설명을 면밀하게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예수는 미친 사람이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루이스의 생각은 자신이 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위대한 도덕 선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삶은 달걀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지옥의 악마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24]


예수의 삶과 말을 연구해 온 많은 학자들은 예수가 극단적일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자신의 삶이 영생과 개인적인 회의론으로 가득했지만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1712~78)는 예수의 우월한 성격과 심리상태를 이러한 말로 인정했습니다. “상상 속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플라톤의 설명은 정확하게 예수의 이미지에 부합합니다. …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은 철학자의 삶과 죽음이지만, 예수의 삶과 죽음은 신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25]

U2의 보노는 “미친 놈”이야 말로 예수에 대해 붙일 수 없는 별명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남은 것은 예수가 자신이 주장하는 그런 존재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미친 놈이라는 것입니다. 즉 희대의 살인마였던 찰스 맨슨 정도의 정신이상자라는 뜻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정신이상자 하나 때문에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발전해 온 시간 동안, 그리고 전 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이 바뀌고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그 정도면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26]


그렇다면 예수는 거짓말쟁이거나 정신이상자였을까요? 아니면 신의 아들이었을까요?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예수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신성함은 부인한 제퍼슨의 생각이 옳을까요? 재미있는 점은 예수의 신자나 적을 모두 포함하여 그의 말을 들은 이들은 모두 예수를 단순한 도덕 선생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만난 이들은 크게 증오, 공포, 또는 경배 등 3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끔 강요하고 있습니다. 루이스가 말한 바와 같이 예수를 단순히 위대한 종교 지도자 또는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루이스와 같이 과거에 회의론자였던 이들도 이런 말을 통해 우리가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과거, 그리고 현재에 신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정신이상자이거나 그보다 더 심한 경우였는지 말입니다. 어리석다고 몰아세워 입을 닫게 만들거나, 침을 뱉거나, 악마로 몰아서 죽이거나,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으로 경배하거나 신으로 모시거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가 사람인 위대한 선생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스스로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도도 품은 적이 없습니다.”[27]


루이스는 자신의 저서인 순전한 기독교에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본 결과, 예수 자신이 주장한 내용이 정확하게 맞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의 삶과 말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이 천재적인 문학자는 그 전까지 믿고 있던 무신론을 버리고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U2의 보노, C.S.루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방문한 신이 바로 예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오늘날 살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이 하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입니다. 예수는 단지 뛰어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바울, 요한 등 사도들이 믿은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신이었을까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단지 믿음만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역사적인 증거가 존재할까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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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왔다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신께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까요? “왜 예수인가?”에서 놀랄만한 답변을 확인해 보십시오.


이곳을 클릭하면 “왜 예수인가?”를 읽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한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있을까요?

“왜 예수인가?”는 예수가 오늘날 갖는 중요성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수는 이러한 삶과 관련된 중요한 질문들에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예수는 삶과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난 목적에 대한 주장을 했으며, 우리는 예수를 부정하거나 무능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예수는(Why Jesus)”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예수가 왜 이 땅에 왔으며, 예수의 재림이 인간에게 뜻하는 바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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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JesusOnline Ministries. 본 기사는 Bright Media Foundation & B&L Publications에서 Y-Jesus 에 부록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Larry Chapma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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