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알리스터 맥그래스.


 

<요 약>

 

제 1 장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었다.”

4세기초에는 그 영향력이 로마 제국 전체에 결정적일 만큼 기독교는 중요한 것이 되어 있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 논쟁”으로 유명하다. 이 논쟁에서 던져진 질문은 “예수님은 정말 신이였는가?”라는 것이었다. 아리우스는, 사람은 성육신이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펴 아타나시우스와 논쟁을 벌인다.


여기에 아타나시우스가 전개한 논증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신약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분명히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우스 논쟁은 ?칼케돈의 정의?에서 결국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인 동시에 진정한 인간이라는 선언으로 결론지어진다.



제 2 장 히포의 어거스틴(Hippo Augustine. 354-430) : 하나님의 은혜


“나의 모든 소망은 오직 당신의 긍휼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느 바를 명하소서.”

바울의 죄와 은혜에 대한 가르침은 어거스틴을 통해 비로소 제 빛을 보기 시작한다. 당시 펠라기우스는 기독교의 도덕적 개혁을 주장하며 인간의 선행능력을 매우 강조하였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는 완전히 자유로우며,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주인(흠이 없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그 유명한 ?펠라기우스 논쟁?이 벌어진다. 어거스틴은 ?인간 본성은 흠 없이 창조되었으나 타락 즉, 아담의 불순종에 의해 흠이 생겼고 타락의 결과 인간 본성 가운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죄로만 향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 원죄는 다음세대로 옮겨가는 유전병같은 것이며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빠져 나올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며 형벌을 수반한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임을 선언하지만 동시에 그의 죄의 권세를 깨뜨릴 수 없는 수단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이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은혜는 율법이나 행위가 개입할 수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할 죄인은 없다.?고 반증했다.



제 3 장 캔터베리의 안샘(1033-1109) : 그리스도의 죽음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결받은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롬5:19)

안샘은 르멕 수도원에서 학문과 신앙을 길렀으며 1066년 그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15년간 재직하다 영국의 캔터 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안샘은 1109년 75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15년간 대주교 자리에 있었으며 그의 저서중 『Why God Became Man』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안샘의 논의는?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실때 자비와 공의 두 가지 속성이 모두 개입된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우선 그 부드러운 자비심때문에 우리를 구속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를 어떻게 구속하셔야 할 것인지를 공의로 결정하신다.


안샘에 따르면?하나님은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안샘은 곧 법적 개념을 활용하여 “배상”이라는 개념으로 사상을 전개한다. 우리의 불순종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배상 된다는 것이다.(롬5:19)



제 4 장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 1225-1274) : 신앙과 이성


“하나님은 인간의 말과 상징을 통하여 믿을 만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시다.”

그는 “신학대전”으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이 대전은 “신앙과 이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전제로 할때 설명 될 수 있으며, 이 세상이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를 믿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이 존재함을 다섯가지 논증을 통해 지지하였다. 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운동하거나 변화한다는 관찰로 부터 시작한다. ② 인간관계라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③ 우연적인 존재와 관련이 있다. ④ 진리, 선, 수고함등과간은 인간의 가치로부터 출발한다. ⑤ 목적론적 논증.


여기서 발전시킨 그의 ?유비이론(類比理論)“은 기독교 사상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맞는 비유나 관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겠지만, 그 계시로 인해 하나님의 일상 생활에 맞는 비유나 관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겠지만, 그 계시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맞는 비유나 관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겠지만, 그 계시로 인해 하나님의 일상 세계의 수준으로 축소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이간의 말과 상징을 통하여 믿을 만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다.



제 5 장 마르틴 루터(Martin Luder.1483-1546) : 신앙과경험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1520년 루터가 그의 명성을 대종교 개혁자로 확립시켜 준 주요 저서 세권을 독일어로 발표하였다.

“①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② 교회 베벨로의 감금 ③ 그리스도의 자유.”가 그것이다.


여기서 그는 신자의 자유와 의무를 동시에 강조했다.

그 후 마르틴 루터는 더욱 더 공부하여?이신칭의(以信稱義)“교리를 터득하였으며 그의 유명한 ?십자가 신학(Theologia Crcucis)”이 나왔다. 루터는?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십자가 아에 대개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 숨은 모습으로 게시되셨다는 숨은 계시 사상을 전개 해 나갔으며 또 한가지 중여한 것을 다루었는데 그것은 ?믿음?이란 이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경험속에서 임재와 활동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패배를 인정하게 하고 이제는 더 이상은 하나님이 어떤 분일까 하고 짐작하려 들기 전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면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루터는 우리가 우리의 죄와 죄의 의미를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선언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 6 장 마르틴 루터 Ⅱ : 죄인의 정의


루터는 1513-1514년 동안 그의 관심은 온통 성경의 한 구절에 몰두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를 찿았지만 찿지 못하고 1515년 어느 날 그는 깨달음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복음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우리를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준엄한 심판관이 아니라 의로부터 도움 없이는 결코 없는 것을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하나님앞에 우리가 의로운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게 되려 했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은 그가 선물로 주신?의?때문이지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의?때문이 아니다.



제 7 장 훌드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 : 예수를 기억하라


“주의만찬에 참예하는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뻐하고 그 죽음으로 인해 주께 감사 드림을 증거하는 것이다.”

인문주의의 발흥은 종교개혁의 발판이 되었는데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인문주의의 영량으로 성경 자체에 대한 연구를 새로이 강조하게 된 것.

둘째. 성경을 라틴어나 번역이 아닌 원어로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인문주위에서 온 것.

세째, 종교개혁 이전과 비교 할때 성경이 훨씬 널리 보급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인문주의자들의 공헌으로는 출판 활동에 크게 이바지 했다는 것이다. 루터가 교회의 교리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쯔빙글리는 개개 신자들의 삶을 비롯한 교회 생활의 개혁에 관심을 두었다. 쯔빙글의 공헌으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주의만찬, 성찬식, 유카리스트 등이 있다.


성찬식이나 세례식은 신자가 기독교 공동체에 충성하겠다는 공개 선언을 하는 것이다. 성찬식에서?떡?은 우리의 묵상을 자극하고 집중시켜 줌으로써 예수님을 기억하게하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제 8 장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간에게는 신을 의식할 수 있는 본능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속에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 놓으셨다.”

칼빈은 행동파라기 보다는 사상가라 할 수있다. 칼빈은 바로 종교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1536년에 출판 하였으며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주요 원리들 조직적이고 명료하게 해설한 강해서였다.


또한 칼빈의 사상적 관심은?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관하여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여기에서 키케로는 말하기를?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며 성찰할때 신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이른다고?말하였다. 칼빈은 인간이 이성을 통하여 존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신에 대한 자연적 지식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계시 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자연과 이성의 계시를 위한 접촉점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칼빈은?우리의 모든 지혜, 다시 말해 진정한 지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로 보았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그것이다. 또 지혜란 칼빈은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의 구속자이심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성육신 교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우리 수준으로 내려 오신 것을 말한 것이다.



제 9 장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 현대 문화의 도전


“신령한 눈을 뜬 사람은 이성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청교도주위는 영적갱신과 성장에 열정적 관심을 쏟은 운동으로서 소속 사회의 영적인 복지뿐만 아니라 물질적 복음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목회적 관심을 보임으로써 기독교 복음 진리를 시대적 요청에 걸맞게 선도하고 변호하려는 열망이 타오르는 운동(16c말-17c초 영어권내 기독교 운동의 주요 세력)을 말한다.


이 노샘톤에서도 1734년에서 35년까지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오 변화가 되어서 기독교적 역사가 일어났다. 그는?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라는 제목의 책으로 당시 대각성 운동을 여러 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했으나 자신의 교회 문제 때문에 그는 스톡브리지의 한 교회로 옮겨 신학 저술 활동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 하게 되었다. 그의 공헌으로는?현대 문화의 발생이 복음전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하는 것이며 그 움직임에 대하여 대하여선?성취적 기독교?라고 하여, 인간의 능력과 성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나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에 재해서는 긍정적이었다. 에드워즈의 설교들은?하나님은 세우시기 전에 먼저 깨어 부순다?는 원리가 철저히 적용된 탁월한 모범으로 알려져 있다.


대각성 운동의 역사적 사건은, 첫째, 교회에서 있을 수 있는 영적 정체기나 쇠퇴기를 극복하고 영적 회복의 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둘째, 복음을 믿을때 삶과 사회 현상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운동이었다. 세째,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님은 여전히 역사하심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제 10 장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신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 모든 신학의 언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자극을 받고, 도전받기 때문이다.”

그는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며 그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당시 자유주의적 개신교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 기본 개념은?인간 문화의 진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역사는 신의 인도에 따라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높여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근본 신념은 인간과 문명이 선하다는 것을 근본 신념으로 삼고 있었으며 문명의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을 깬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 했던 것이다. 그후로 바르트는 전반적인 시각을 재고(再考)하고 자유주의적 개신교 사상의 안일 하고 피상적인 전제들을 단번에 물리쳤다. 그 주요한 주제로는?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르트는 교회의 사명, 곧 교회의 사명, 곧 교회의 선포, 예배, 찬양의 기초는 세 가지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학자로 인정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맡아 기본적으로 교회의 가르침과 실행을 비판할 줄 아는, 성경을 푸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다.



제 11 장 시에스 루이스(1898-1963) : 하나님을 향한 갈망


“인간의 갈망에 상응하는 만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써만 얻게 된다.”

시에스 루이스는 고전학과 철학, 영어에서 최고 우등상을 받았으며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어린 유년 시절에 신앙을 버렸지만 다시 신앙을 찿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씨름하다가 결국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취할 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는 회심하게 되었다. 루이스의 주장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 실존의 한 국면 을 나타내 주는 심오한 인간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를 인간으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진한 그리움의 감정이라 했는데 세상의 경험이나 다른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루이스는 이러한 감정을?기쁨?리라고 한다음 이 감정은 근원이며 최종적인 목표인 하나님께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 마디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줄 대상에 대한 감은 그리움으로 달콤함과 씁쓰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애틋한 갈망이다.

루이스는 그러한 갈망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보고 그 감정의 충적 또한 하나님 안에서 찿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 평>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위대했던 우리들의 신앙의 선배들의 고민과 고뇌가 서려있는 듯 하다.

그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는 듯 하다.


신학생으로서 한번쯤 고민해 볼 만한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

또한 이러한 고민을 해보지 않는다면 신학생이 아님을 자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


믿음의 선배들의 고백은 때론 나를 눈물짓게 하였고, 때론 기쁨의 미소를 짓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로 내게 다가왔다.

 ‘이러한 고백이 나에게도 있어야지’하는 생각이 앞선다.

나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서 이러한 위대한 고백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각 장의 끝에 있는 “더 읽을 자료들”이다.

이것은 각 사람에 대해서 짧고 명료하게 소개해서 좀더 지식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찾아서 읽어 볼 수 있도록 한 저자의 배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사람안에 내가 포함되어서 하나님께 사용되어지기를 원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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