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바는 누구인가?

 

 

가야바라는 이름의 뜻은 '오목하다' '비어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본명은 '요셉'으로 전직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18:13)의 사위이며 후계자로서 사두

개파 교인입니다.로마황제 디베료 가이사(A.D. 12-37)가 재하던 정치, 종교적 혼란기에 로마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본디오 빌라도의 전임자)에 의해 대제사장 직

에 임명되주후(A.D.)18년부터 36년까지 18년간 재직하였으며 대제사장 재직시 세례 요한이 활동하였습니다.(3:1-2)

 

오랫동안 예수님을 대적하다가 마침내 잡으매 먼저 '안나스'에게 데려가고 다음에 자기가 심문하고 무리한 판결로 사형에 처할 죄인이라하여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고(18:28), 주님 승천하신 후에는 사도들을 핍박하였고( 4: 6-7), 그 후 몇 해 안되어 수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면직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인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로마와 결탁하고 유대 지도자들과 야합하였습니다. 자신의 공직을 남용하여 불법적인 재판을 자행하며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는 군중의 뜻에 영합한 기회주의적이고 비양심적인 면모를 지녀 가룟유다, 빌라도와 함께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는 역사적인 오명을 남겼습니다.예수님과 제자들을 박해한 대제사장 가야바에 대해 좀 더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시대적 배경

A.D. 18-36년까지 18년간 대제사장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대의 최고 종교 지도자입니다. 가야바는 본디오 빌라도의 전임 총독이

었던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어 약18년 동안 유대의 종교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가요, 외교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A.D. 36년경 수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면직되었습니다. 한편 그의 시대는 로마 식민 통치하에서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탁했으나 종교적으로는 더욱 혼탁했던

 시대로서 종교 지도자들의 부정 부패가 비일비재하던 때였습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종교적 개혁의 분위기도 많이 무르익어 있던 때였습니다.

      

2. 주요 생애


1) 예수 심문 이전* 출생 * 대제사장 안나스의 사위가 됨(18:13) * 대제사장으로 임명됨(A.D. 18; 3:2) * 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죽이라고 말함

(A.D.29; 11:5

0) * 예수를 심문함(A.D. 30; 26:57-68)


2) 예수 심문 이후 * 예수의 사형을 선고함(A.D. 30; 26:66) * 예수를 빌라도 에게 넘겨줌(18:28) *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함(4:5-22) * 대제사장직에서 면직됨

(A.D. 36) * 죽음

       

3. 성품과 행적


종교 지도자이면서도 복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도리어 예수와 사도들을 핍박한 것으로 보아 권력에 대한 집착력이 매우 큰 자입니다(26:66;4:1,2). 불법적인 재판으로 예수를 사형 선고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정치,  득권 유지를 위해 공적을 남용한 비양심적인 자입니다(26:57-68). 로마 황실, 유대 종교 지도자, 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처세술에 밝은 자입니다(26:57-68;11:47-68).

정치적인 인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로마와 결탁하고 유대 지도자들과 야합한 자입니다.
자신의 공직을 남용, 불법적인 재판을 자행하며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는 군중의 뜻에 영합함. 기회주의적이고 비양심적인 면모를 지닌 자입니다.
가룟 유다, 빌라도와 함께 예수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는 오명을 남긴 자입니다.

 

       

4. 구속사적 지위


예수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26:57-68).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이며예수님을 핍박하고 사형 선고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과 십자가의 죽음을 증거 함.


5. 주요 업적과 실수


1) 업적 당시의 급속한 정치, 종교 직위자의 변화에 비해 18년 동안이나 대제사장직을 수행(18:13).
(2) 실수 법적인 재판으로 예수께 사형을 언도(26:66). 복음 전파하는 사도들을 핍박(4:1-22).

 

6.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산헤드린의 음모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는가 하면(45) 일부 사람들은 즉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했습니다.(46) 그리하여 긴급히 소집

된 산헤드린 공회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살해하려고 본격적으로 모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피신하지 않을 수

없으셨 습니.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으로 가 머무십니다. 이는 실로 장차 닥치게 될 폭풍 전야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유대 종

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관만 하고 있을 경우에 발생할지 모르는 심각한 현상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더 이상 내버려두면, 유대의 지도자로서 자신들이 누리고 잇는 지위와 특권에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로마 정부로부터도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방관한 죄로 문책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이같은 생각은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야로 자처하면서 추종 세력

을 이끌고 로마 제국에 항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를 가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48) 이처럼 예수님의 존재가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에 위협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판

단을 내린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후 마침내 체포령을 내립니다.(57)

 

한편 산헤드린 공회의 논의 중에 나온 예수님을 희생시킴으로써 유대 민족 전체를 살리자는 가야바의 말은 예수가 죽으면 반란은 일어나지 않고 나라는 평온해지며 자신

들의 지위는 안전하게 되리라는 지극히 이기적이고도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미처 본인은 깨닫지 못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는 장차 예수님이 당하실 죽음의 의미를 밝혀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때때

로 악인들의 간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역경과 고난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이루어지

며 그러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참기쁨과 소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7. 가야바가 예수님을 대적한 까닭


예수님을 어찌해야 하는지 골머리를 썩이며 의논하고 있는 공회원을 향해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전 민족을 위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희생시키는 일이 유익하다고 말했

습니다. 가야바는 온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는데에 대한 부담감을 깨끗이 없애 버렸습니다. 물론 가야바의 이 말은 결국 본문

에서 요한이 언급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온 민족과 온 인류를 위해 계획되어진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따라 곧 있게 될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예고한 것이 되었으나, 그렇다

고 하여 가야바가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바로 알아 예수님의 죽음을 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무지함과 완악함으로 인해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로

분별하지 못했고 결국 그를 대적하여 어떻게 해서든 죽이기 위해 이와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이 어찌 하나님의 종 대제사장의 바른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 종

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순종하기 보다 오히려 그 뜻을 이루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대적한 가야바, 그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

을까요?

 

1)하나님보다 로마의 군사력을 더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표적은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음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습니다.

(14:11) 보십시오. 그러므로 공회원들도 예수님을 어떻게 할 엄두를 못내고 고민하지 않았습니까?(47)그렇다면 공회원들은 물론이거니와 대제사장으로서 가야바는 누

구를 두려워했어야 합니까? 로마의 군사력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예수님입니까? 바로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가야바는 로마의 군사력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실언을 하고 급기야는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다면, 이와 유사한 과오를 범하고 씻지 못할 수치를 당하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이는 하나님입니다.(10:28, 4:19)


2) 세상적인 자기 지위에 연연했기 때문입니다.

가야바가 예수님을 기필코 죽이려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대제사장직이 위협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직은 단순히 종교적인 최고 지도자의 자리만이 아

니었습니다. 유대 자치의 최고 수장(首長)을 겸한 자리로서 로마 정부에서 임명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소요가 일어나면

 쉽게 대제사장을 갈아 치우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야바는 예수님으로 인해 큰 소요가 일어날 것 같자,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죽이

기 위해 이 말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경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 지위가 좋더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죄를 범하고 악행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빌라도도 바로 이러한 이유로(27: 19- 26) 오늘날까지 사도신경

의 신앙 고백을 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으로 우리에게 지탄받고 있지 않습니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제사장 가야바가 본문에서 한 말이 그가 범한 잘못

전부였습니까?


그보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도록 로마 병사에게 넘겨 준 사실이 더 큰 죄 아니겠습니까?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보다 로마 군사력을 더 두려워하고 자기 자리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가야바는 예수님 당시의 전형적인 종교지도자로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정치적 입지를 위해 그들을

핍박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일찍이 그는 나사로의 부활사건 직후에 공회에서 말하기를 "사람 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

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11:50)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 가야바의 이기적인 행동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려 했던


교만한 가야바는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대제사장에서 암살자로 격하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겸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배우게 됩니다.(23:12)

 

4. 가야바는 자신의 종교적 입지

  

확보를 위해 예수께 사형을 언도하고 사도들을 핍박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11:50 ; 4:1). 이처럼 세속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욕심에 사로잡히다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잃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에 우리 성도들은 이기적인 생각과 세상 일에 마음이 빼앗겨, 영적

인 안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우리의 행동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4:23-27).

        

5. 가야바는 예수의 죽음


유대인의 유익을 위한 희생으로 이해하고 한 사람이 모든 백성을 위해 죽어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로마와 결탁하고 예수를 핍박하기에 급급했던 가야바의 이 발언은 비록 자신은 전혀 다른 의도에서 한 말이지만 결

국 구속사적 관점에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예수의 구속 희생에 대한 예언적 발언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비록 악한 자의 행동과 말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11:50).

6.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 기회를 저버린 채 자신의 욕망만 채우다가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26:66 ; 18:28). 이에 우리 성도들도 자신이 가진 지위, 재능, 재물을 내 욕심만을 위해서가 아닌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아 사는 자들의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리로 만들어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고 거짓을 옳다고 하며 섬

기는 모습입니다. 또한 자기만 그럴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참조, 1:18-32). 가야바 역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한

자로 만들어 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참조, 26:65-66). 한마디로 가야바는 선을 미워하고 악을 숭배하는 아주 사악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을

악에게 내주어 그 양심이 화인 맞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악은 진리를 미워하면서 진리를 없애려 하면 할수록 진리는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악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더욱 드러낼 뿐입니다. 진리는 선하며 영원하여 결코 소

멸하지 않는 반면에 악은 거짓되고 유한하여 활동하면 할수록 그 추하고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악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선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칼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가야바와 그의 일당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자초한 것이며 오늘날에 일어나고 있는 악인들의 행동도 이 사실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 11- 12)

사악한 가야바와 유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진리는 더욱더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 더욱 널리 전파되었습니다(참조, 9:31). 진리

에 속한 이들은 이와 같이 고난이 오면 올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임할 때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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