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


1. 손양원 목사의 생애

손양원 목사1)는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서 손종일(후에 장로가 됨)과 그의 부인 김은주(집사가 됨)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했다. 손양원 목사가 태어날 때 시대적 상황은 밖으로는 열강들의 도전으로 나라를 개방하지 않을 수가 없는 때이었고, 안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자유와 개화를 추구하던 시기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한국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이 교회의 움직임과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게 되던 시기였다.
그는 1908년 7세 되던 해에 부친의 입신(入信)과 함께 자신도 입신하게 되었다.


손 목사의 신앙 입문은 1907년에 있었던 ‘대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손종일은 1919년 칠원 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으며, 교회를 중심으로 칠원 읍내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검속, 8개월의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뜨거운 신앙과 나라사랑의 열정을 본받은 손양원 목사는 일제시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을 벌였으며, 6.25 동란시에는 공산주의의 반대와 목자로서의 본분2)을 다하다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1950년 9월 28일 11시 여수 근교 미평에서 총살당하여 48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2. 손양원 목사의 사상적 배경

손양원 목사의 사상적 배경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게 받은 신앙심과 민족애이다.

손종일 장로는 철저하게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었다. 손종일 장로에 의해 새벽기도와 아침 저녁으로 가정예배가 드려졌으며, 십일조 헌금과 주일 성수가 가정의 규칙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특히 일제하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벌였으며, 이러한 손종일의 애국심은 믿음의 유산으로 물려져 손양원, 손의원, 손문준이 목사가 되어 복음으로까지 승화시키는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다.

둘째, 일본 나카다 목사에게 받은 신앙의 의의 체득이다.

나카다 목사는 당시 일본 동경의 판교 성결교회 목사였으며 일본 각지에서 노방 전도 운동을 벌였고, 기성 교회에 대한 비판과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에 의한 신생, 신사 참배 거부 등을 강조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당시 황순덕 전도사에게 그가 나카다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중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중생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간증하기도 했다.

셋째, 주기철 목사에게 받은 말씀과 삶의 일치이다.

손양원 목사는 1926∼1929년, 24세에서 27세까지 경남 성경학교에 다니면서 주기철 목사를 만나 말씀과 삶의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 주기철 목사를 만남으로 손 목사의 삶은 그가 말한 대로 “오직 예수의 내용에 생명을 다 던진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는 순교적 신앙이 말씀과 삶의 일치라고 강조하였다.

넷째, 성경 공부와 성조지(聖朝誌)를 통한 영적 성숙이다.

손양원 목사는 “30세 이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생명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 영적 인간, 기독자의 생활을 하는 자가 되었다"고 고백하였는데, 그가 말한 이 30세 - 1932년에 성조지(聖朝誌)를 가지고 감만동 교회에서 사경회 공부처럼 한 주간을 가르쳤던 해이다. 당시 성도였던 문신활은 그때에 생명적으로 자라는 참 진리로 해방을 받아 한없는 희열이 넘쳤다고 간증했다. 손양원 목사는 성조지를 통해서 영적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가 움직이게 하시는 대로 움직이는 영적 인간, 나환자들에 대한 사랑, 진리 사수에 대한 신앙 등의 영향은 받은 듯하나 무교회주의는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3.손양원 목사의 순교 사상

손양원 목사의 사상은 그의 설교집과 옥중 서신, 그리고 피의자 심문 조서 등에 잘 나타나 있다. 1950년, 그가 순교하자 서울 남대문 교회에서는 그의 추모 예배를 드렸으며, 손 목사가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한 근거는 첫째는 믿음에 있고, 둘째는 사랑에 있고, 셋째는 소망에 있다고 하였다. 그의 순교 사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 중심 사상이다.

손 목사의 순교자적인 삶의 원동력이 된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 사상(Sola Gratia)"이다. 하나님의 은혜 사상은 손 목사에게 전부였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만 만족한다는 뜻이며 그로 인하여 순교의 삶을 살게 한 힘이 바로 이것이었으며, 옥중에서 승리케 한 것도 이것이었음을 고백하였다.
“이 시편 23편은 옥중 6년간 기도의 소원이었으며 만족한 감사였습니다. 내가 아무 염려 안한 이유도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이 무엇이냐는 말씀에서였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는 지혜시요, 능력이시요, 내 보호이시니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함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 중심 사상이다.

손 목사는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여주동거(與主同居)" 즉,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께만 절대 순종, 죽고 또 죽어도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겠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백영희 목사는 손 목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 사랑이며, 특별히 옥중 생활 속에서 고생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며, 취조를 받는 것, 매를 맞는 것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순교한 것도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그의 삶 전부는 하나님을 그의 전체로 사랑한 사랑의 삶이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중심 사상이다.

손 목사는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마디 말로 답하면 66권 신구약 성경대로 살려는 자"라고 했다. 그는 성경을 삶의 유일한 신조요 신앙의 목표로 삼았으며, 성경에 따라 생활 원칙을 정하였고 그래로 실천하였다. 손 목사는 신구약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이라고 하며, 성경을 절대 예지 예정의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대적 예지 예정인 성경" 말씀에 입각해서 신사 참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넷째, 하나님의 재림 중심 사상이다.

손양원 목사는 언제나 재림의 긴박감 속에서 생활하였다. 말씀과 삶의 일치 생활을 하게 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재림에 대한 소망이다. 그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당시 신사 참배를 거부함으로 당하는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었으며 예수 생명 내용에 자신의 전부를 내 던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불의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은 재림에 대한 소망 가운데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긴박한 재림 주장은 현실을 도피하고자 함이 아니고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있다 해도 이러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하나님을 위한 순교 사상이다.

손 목사는 순교하기를 기도했고 소원했으며 늘 잘 죽자고 했다. 그는 순교하기를 바라는 열정으로 살았다. 그는 말하기를 “제일 좋은 죽음은 주를 위해 죽는 죽음이니 한없이 복됩니다. 나는 이제 살기를 도모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주를 위해 잘 죽을까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손 목사는 기독자로 순교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은 곧 성령 받은 것을 의미하며 성령충만 받은 자라야 순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손양원 목사의 신앙 사상

그는 말하기를 “기도, 독경(성경읽기, 성경연구), 성결, 1일 선행, 성직 충성생활이 주봉생활(主逢生活)이다"라고 했다. 그는 주봉생활에 충성함은로 한날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한날의 충성에는 괴로움이 있기 마련이므로 주께 충성함으로 그날 주어지는 괴로움은 그 날에 자족 대사라고 했다. 그의 신앙의 삶을 요약하면

첫째, 자족의 삶. 그는 말하기를 “보통으로 생각할 때는 머리가 아프고 … 하여 병인줄 아나 근심이 병인 줄 아는 자가 적고 … 걱정이 죄가 되는 줄 아는 자는 별로 보지 못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그는 가족들에게 어려운 가운데 있으나 자족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자신이 옥중 자족 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족의 절정은 여순 사건 당시 동인, 동신의 장례식에서 고백한 아홉 가지 감사3)일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우리가 안락을 도모치 말 것은 내 주님 맛보시지 않으신 세영(世榮)과 육락(肉樂)을 내 어찌 감히 생각인들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의 삶은 자족 그 자체였으며 그 자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사상의 열매인 것이다.

둘째, 기도의 삶. 그는 기도가 일 중에 가장 큰 일이라고 하였으며, 죄 중에 대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라고 하였다. 그는 ‘기도'라는 설교에서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이며, 기독교인은 “기도의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의 기도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 무릎을 꿇으면 자기가 완전히 죽어지고 주님이 완전히 자신을 다스리기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손 목사가 사랑의 사도요 순교자가 된 것은 자기를 죽이는 이 기도 때문이었다.

셋째, 찬양의 삶. 그는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옥중에서도 항상 찬송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찬양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성신에 취하여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영혼의 숨소리와도 같은 것이 기도와 찬송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악기라고 했으며 따라서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했다.

넷째, 사랑의 삶. 손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는 자는 사랑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사랑을 강조했으며,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활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섯째, 애국의 삶. 그는 애국은 국민으로 국민의 의무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손 목사는 국민된 의무로서 신사 참배를 못하겠다고 했다. 곧 신사 참배를 안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이면 국가의 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국민된 의무로서 왜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했다. 특히 손 목사는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국가 체계를 복음 전파라는 수단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다. 그는 칼이나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 전파로 인해서 신자가 많아지면 자연히 국가 체재가 바꾸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섯째, 일치의 삶. 손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천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조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스스로 실천한 사도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생'한 자라야 실천할 수 있다. 특별히 중생자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될 때만 실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사는 실천적 삶의 기초는 구원에 있다.


5. 손양원 목사의 목회 사상

손양원 목사의 목회 사상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에 비해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비판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교회관과 목회자상, 그리고 강단과 설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목회를 했던 사람이었다.

첫째, 이상적인 교회상. 손 목사는 교회의 타락은 교회당을 함부로 쓴 까닭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교회가 부패해진 까닭이 교회당을 성전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고 말하며 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회합처"로만 쓰여질 것을 강조하였다.

둘째, 이상적인 목회자상. 그는 항상 “여주동거(與主同居)"하는 목회자를 말한다.

 “시대에 적합한 일꾼이 되라"는 설교에서 손 목사는 사랑의 일꾼으로서, 지혜의 일꾼으로서, 모범적인 희생적 일꾼으로서의 목회자를 강조했다. 또 성령 충만한 목회자, 성령의 권능으로 일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자신 또한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셋째, 이상적인 강단과 설교. 손 목사는 강단을 남용하므로 교회가 타락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음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사이비한 학술 강연으로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거나 자기 구변이나 재주를 나타내려고 하며 강단을 남용하니 어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라고 말하며,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하는 곳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6. 손양원 목사의 생활 사상

손양원 목사의 삶은 “나와 내 식구"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공동체 의식에서 일탈한 소영웅주의, 수단을 가리지 않는 치부 의식 등으로 병들어 있는 오늘날의 사회 현상에 대해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있고 바람직한 삶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손양원 목사는 무엇보다도 ‘효'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효란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가 되는 것이며,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의 아들 동인에게, 그의 아내 정양순씨에게 보낸 서신에서 ‘효'가 무엇인지를 몸소 밝혀 전하였다. 이러한 손 목사에 대해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손 목사를 “나의 참 효자야"라고 쓰고 있다. 그의 효는 성경의 말씀 중심 사상의 열매인 것이다 .

둘째로 그는 배움을 강조하는데,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생명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면서 “생명의 진리 도를 구하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 교육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며, “교육 칙어라도 성경에 쓰여 있는 취지에 합치하면 의로울 것이로되 합치하지 않는 것은 불의다"고 했다.

셋째로 그는 노동과 물질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노동을 하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고 순수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봉사를 위해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의의 봉사자"로서 “의의 종"이라고 했다. 의의 종으로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일의 대가로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베풀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손양원 목사의 이러한 노동관은 바람직한 물질관이 무엇인지로 이어진다. 그는 물질에 대해 엄밀한 의미에서 소유권은 소유자가 하나님, 국가, 개인이라고 밝히고 정의로운 관계성 속에서 소유권은 행사되어야 하며, 어느 한 쪽만을 위하여 소유권이 행사되어도 안되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소유권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양원 목사는 그의 순교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되돌아 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그처럼 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살아갔으며 예수의 정신을 몸과 마음에 새겨 삶을 통해 실천한 아름다운 순교자이었다.

“오 주님이시여! 내게 있는 부모나 형제나 처자나 의식주나 기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지라도 오직 당신을 신뢰하는 신앙만은 빼앗아 가지 마옵소서. 모든 것은 다 잃어버릴지라도 신앙만 남아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보다 유여한 것이오며, 모든 것 다 넉넉히 가진 내가 되었을지라도 신앙의 마음이 없다면 벌써 패망한 자가 된 것이외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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