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의 영성생활


 

공성철.교회사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의 가정을 찾아 가셨다. 꿈에나 그릴 만한 이를 만난 나사로의 누이들 마리아와 마르다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기쁨에 겨워서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들으며 황홀해 했고, 마르다도 기쁨에 겨워서 예수님을 대접하려 분주하였다. 준비할 것들은 많은데 마음만 급하였다. 가만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는 마리아가 원망스러워서 예수님을 향해서 퉁명한 소리로 '마리아도 일하라'고 시켜주실 것을 부탁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주신 대답이 한가하게 들린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10:42).

예수님의 한마디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라는 말은 수도원적 움직임에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은둔을 한 수사들의 삶에 대한 근거 구절이다. 방랑 수도사들이나 홀로 있으려는 수도사들의 삶이 기초하고 있는 말씀도 바로 이 말씀이다. 동방 수도원이나 서방에 있는 수도원들이나 수도사인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고 하였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다.

고대 교회가 보여주는 금욕주의는 금하고 누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만 몰두하여 살 수 있도록(coram Deo)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함이었다. 또 그 목적을 위해서 분주함을 떠나 무료함에 적합한 공간을 찾아 나섬이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떠남이 아니라, 적극적인 뜻을 내포한 '목표를 향한 돌진이었다'고 우리는 지난호 글에서 정의한 바 있다. 세상이 말하는 명예와 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길이기에 그들은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밭에 보화가 감추인 것을 발견한 자가 기뻐하며 돌아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마 13:44). 하나님께 몰두하며 사는 보석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과 같은 소유를 다 팔아 치울 수 없다. 아니 사막을 찾은 은둔 수사들은 자기들의 것을 팔기는 고사하고 거저 주었다. 그들의 초개같이 버리는 행동은 하나님만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금욕주의의 목적은 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있는 것을 향한 전향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나님 때문에 재산을 버리고, 가정을 이루지 않고 사람 살지 않는 곳, 광야로 가서 무덤 속으로 가는 자들이라면 그들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세속적인 것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세속을 떠나는 거이었다. 세상 가치를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가 '본능을 누르는 금욕 행위'에 무게 중심을 가질 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자기를 죽이려는 금욕에서 그들은 자기 의를 높이는 파멸의 죄의 구렁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의 육적 욕심을 없애는 금욕에서 금욕적 삶의 목적을 잃을 때 자기의 명예와 이름을 내는 아이러니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버리고 떠난 세속이 대표하는 "자기 의를 높이는 사건"이 금욕주의자들에게 발생했던 것이다.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다는 것은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에게 기쁨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기쁨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 하는 때 마르다가 분주해지면서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 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준다. 어떻게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기쁨의 주님이 "염려와 근심"의 제목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기쁨의 주님을 잘 대접하려고 할 때 "대접함"이 목적이 되면, 주님은 두 번째 자리에 있게 된다. 하나님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죽일 때, '떠남'이 목적이 되고 '누룸 자체'가 가치를 가지면 하나님은 사라진다. 거기에는 '자기' 만이 남는다. 놀라운 일을 향한 '자기 의'가 드높아진다. 십일주와 일주일 두 번의 금식은 하나님 때문에 행했지만, '행함'이 목적이 될 때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하나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금욕주의자들이 보여 준 금욕적 삶의 근거가 된 구절은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라는 나사로 집안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때문에 자기를 죽이고 버렸는데, 거꾸로 금욕주의자들 안에서 '자기'가 높아졌다는 놀라운 사례의 원형도 바로 그 본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다. 기쁨의 주님이 염려와 근심 제목으로 변하게 된 마르다에게서 금욕주의자들이 겪을 일이 이미 발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받아들여야 할는지, 아니면 성경의 예언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할는지 당혹스럽다.

서방 수도원의 시작은 동방 수도원 보다 약1세기가 늦다. 그리고 아직까지 어떻게해서 시작이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동방 수도원의 영향을 아주 받지 않았다는 소리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리겐과 에바그리우스 등의 수도원적 사고와 삶이 서방으로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졌기 때문이다. 또 아타나시우스가 쓴 아토니우스의 생애가 또 에바그리우스에 의해서 라틴어로 번역이 되어서 어거스틴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을 생각하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방 수도원의 독특한 특징의 하나는 고대 철학자들처럼 전원적인 삶으로 낙향하던 시대 풍조와 수도원 운동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특징에서 나타난 현상은 귀족 계급의 여인들이 낙향하여 수도원적 생활을 할 때, 함께 데리고 간 하녀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함께 수도원적인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서방에서 수도원 생활이란 신분의 상승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어거스틴이 그의 규칙서에서 경계하는 것도, 이러한 신분 상승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리라. "밖에서 감히 가까이 대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해서 머리를 쳐들지 말고 오히려 마음을 드높여 지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부자들은 겸손해지는 반면 가난한 자들이 교만해진다면, 수도원이 부자들에게는 유익한 곳이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곳이 될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만 바라 보는 삶인 자기를 죽이는 금욕주의는 하나님과 반대의 길, 자지가 살아나는 세속의 길로 가는 첩경의 역할도 하였던 것이다.




이 사막의 은둔자들과 금욕주의자들의 한계를 바로 파악하고수도원 운동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온 자가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파코미우스(Pachomius)이다. 그가 기존의 금욕주의에 새롭게 도입한 것은 공동의 삶을 사는 수도원 제도이다. 수도원의 삶이란 함께 사는 것이다. 문지기를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울타리가 있는 같은 거주지에 함께 살며 수도하는 것이다. 공동으로 기도하고,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식사하고, 공동으로 잠자는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도원장이 있었다. 수도사들은 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수도원장에게 복종을 하여야 했다. 이러한 것들이 일반적으로 파코미우스가 따로 따로 거하면서 생활하던 은둔 수사들의 금욕 생활이 새로이 도입한 점이라고 알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파커미우스가 공동의 수도 생활을 도입하였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첫째, 사막의 은둔자들은 함께 사는 공동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Koinobion). 그들도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이 아닐 뿐이지, 함께 식사하고 함께 기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개인적이며 필요에 의해서 모인 공동체이다. 이미 안토니우스에게서도 함께 사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도사의 생사는 함께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둘째, 이미 처음 사막의 은둔자들이 따로 생활했어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에게도 선배요 어른(Abbas)이 있었다. 은둔자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였다. 그를 어기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떤 처벌이 무서워서 할 필요는 없도록 그들은 각자의 은둔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복종을 스스로 엄격하게 지켰다. 왜냐하면 이 복종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던지는 사람의 특징인 '자기의 뜻과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코미우스의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복종보다 훨씬 더 엄격한 모습의 복종을 은둔 수사들은 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파코미우스가 금욕주의적 움직임에 새롭게 기여한 것은 공동으로 생활한다는 것에 있지 않다. 또 선배나 노(老)수도사에게 복종을 한다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수도원 움직임에 특별히 기여한 것은 공동체에 뚜렷한 규율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엄격한 이 규율은 "파코미우스의 규율(Regual Pachomii)"이라고 하였다. 수도원에 도입된 수도사들이 지킬 교율은 이후에 등장하는 유명한 어거스틴의 규율, 교사의 규율 그리고 베네딕트의 규율 등이 가르쳐 주듯 수도원의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파코미우스는 수도원 움직임에 규율을 도입하면서 수도원 역사에 새로운 장을 폈다. 그래서 그를 '수도원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바로 이 말을 이해하려면 규율이 그의 공동체에서 가진 의미와 규율 도입의 역사적 이유를 알아야 한다. 파코미우스의 규율은 은둔 수사들이 고승에게 복종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의 규율에는 수도원장도 복종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전 은둔 수사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고승을 따르는 것이라면, 파코미우스의 공동체가 따르는 것은 누구도 넘지 못하는 '규율'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지킬 때만이 금욕적인 삶을 택하게 된 목적(곧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이루게 되는 '규율'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에게만 몰두하려는 수도사들이라면 말이다.

여기에 파코미우스 규율이 갖는 수도원 역사에서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위해서 세속을 떠난 자들이 다시금 빠져드는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이상(理想)을 이 땅에서 이룩해 보려는 자들은 그 이상(理想)을 잘 정비된 사회나, 조직이 갖추어진 제도 교회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광야로 가고, 홀로 은둔하여 살아가는 여기에 인간이 이 땅에서 이상(理想)으로 여기는 "천사같은 삶"이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세속을 버렸던 자들이 바로 세속의 특징인 '자기 의'를 드러내고 '명예와 이름'을 드러내는 삶으로 회귀하였던 것이다. 파코미우스는 이 숙명적인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은둔 수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높아가는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길이 '내 소유', '내 가정'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내 사회'를 버리고 가는 길로 알았다. 모든 인간의 잘못된 점이 소유라는 개념과 '나'라고 하는 개인주의가 들어오면서 있었다는 문제를 깨닫고 은둔의 길을 간 것이었다. 그런데 버리고 버리고, 죽이고 또 죽이는 전설적인 금욕을 하는 거기에 다시금 그 일을 하는 주체인 '나'가 살아난 것이다. 피하고 피하는 행위에서 '누가 더 많이 피했나' 낮아지고 낮아지는 거기에 다시금 '누가 더 겸손한가'라는 '비교급'이 있음을 은둔 수사들의 삶은 가르쳐 준다.

이 문제의 원인을 파코미우스는 다시금 '홀로 있는 나'에 있다고 단정한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자기를 죽이고 사는 금욕자에게 바로 그 금욕이 또 하나님을 반대하는 올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시작된 것이 오늘날 '수도원'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모습의 수도원의 시작이다. 여기에 그를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본거지인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가고 은둔하였지만, 죽이려는 자기가 죽이려고 하는 자기 행위 속에서 다시금 부활하였던 것이 이전 은둔 수사들의 문제였다. 파코미우스는 이 문제를 정확히 보았고, 그 해결이란 떠나 있는 자들도 다시금 평범해지게 되는 길을 모색하는데에 있다고 보았다. 그 해결이 수도원장도 뛰어넘지 못하는 규율이었다. 누구도 뛰어넘지 못한 그것이 바로 홀로 사는 자들이 함께 사는 곳인 수도원에 있는 규율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금욕자가 고행하고 기묘한 삶의 형태는 사라지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삶이 자리 잡게 되었다. 수도 생활의 특별함이 아니라, 수도원이라는 공동체와 그 질서 준수가 수도사들에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로써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자기의 의를 높이는 함정에 하나님만을 위해 살려다가 빠지지 않는 방법이 금욕주의에 들어왔다.



파코미우스의 공동체가 규율과 함께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육체의 노동이었다. 이것은 그 이전에도 존재하였다. 안토니우스도 음식 만큼은 이웃에게 받는 것을 당연시 하다가 어느 날 깨닫는다. 바로 내가 먹는 것은 내가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이 일로 아무도 괴롭히지 않게 되어 좋았고 또 자신이 어떤 일에서도 누구의 신세를 지지 않게 되어 즐거웠다." 파코미우스도 수도사의 의무로 노동을 하여서 자급자족을 꾀하였다. 더욱 나아가서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의 차원에서 의무화시켰다. 체계적인 노동 분업을 꾀하고 생산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수도원 밖에서 일하는 것마저도 파코미우스는 허락하였다. 체계 있는 노동과 노동의 도구 등을 갖춘 생산 공동체로서의 수도원은 이미 고요한 가운데 묵상하는 수도원은 아니었다. 나아가서 이러한 조건을 갖춘 수도원은 순식간에 부의 축적이 이루어져서, 수도원 밖의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이것은 다시금 세속의 모습을 대표하는 '소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극단의 금욕을 행하는 자들도 다시금 빠져드는 인간의 한계, '자기 의'를 극복한 파코미우스 수도원은 다시금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의 이상인 '청빈'에서 이미 벗어났다. 물론 그들은 수도원의 소유를 '그리스도의 재산'이라고 불렀다. 수도사 개인도 여전히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안전이 보장된 가난'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함께 사는 수도원은 재산과 힘을 상징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결과로 수도원적인 움직임에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금욕적인 삶에서 출발한 수도원이 이미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 운동에 주었던 '공동의 삶'은 후에 나타나는 수도원 움직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는 제도 교회의 감독으로 있던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도 공동의 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이끌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거스틴은 교회의 직책을 맡은 실현시키면서 성직자 수도원을 세웠다. 파코미우스와 차이가 없이 그들 모두는 '공동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공동의 삶에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위해서 본능을 억누르고,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도 넘지 못하는 '자기의'를 높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도 '공동체 움직임'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해서 계속되고 있는가 보다!



고대의 영성생활 Ⅳ


공성철, 교회사

고대 교회의 영성 생활에 관련해서 파코미우스를 '수도원의 아버지'라고 평가한다. 이 평가의 이유를 단순히 그가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의 모델을 만들고, 거기에 규율을 제시하고 적용시킨 탁월한 조직력에서만 찾으면 안된다. 외적으로 볼 때 그가 제시한 것은 이미 기존에도 있었다. 하나님께만 몰두하면서 살려는 금욕 주의자들에게도 이미 '공동 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는 점에서 노(老) 선배 은둔 수도사들에게 '복종'하는 것도 기존에 금욕주의자들 가운데도 있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이러한 것들을 수도원에 적용하려 했던 동기에서 그의 탁월함이 나타난다.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금욕주의자들에게서 금욕이 목적이 되면서 원래 목적하였던 '자기를 죽임'이 사라지고, '자기의 의'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 그로 하여금 '수도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직과 규율을 만들게 했던 것이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롬 7:10)는 바울의 절규를 그는 금욕주의적인 영성 생활의 한계로 깨달았던 것이다.

파코미우스는 금욕주의자들이 가지는 한계를 수도사들이 모여있는 곳에 울타리를 쳐놓고 엄격한 규율을 세워 놓고는 아무도 예외 없이 일생동안 시켜 나가도록 하면서 극복하려고 하였다. 홀로 있는 인생이 피하려고 몸부림쳐도 피하지 못하는 자신을 공동 생활에서 규율을 지키는 것으로 극복케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엄격한 규율을 가진 공동체로 수도원을 이끌어 가려고 한 파코미우스의 노력은 동·서방을 막론하고 수도원 운동에 불변의 구조가 되었다. 그의 뒤에 등장한 가이사랴의 감독 바실리우스의 수도원에도 공동 생활은 수도 생활의 당연한 모습으로 되어 있었다. 홀로 있는 은둔 수도사의 전통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공동 생활의 수도원이 금욕주의적 영성 생활의 주도적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파코미우스의 공동 생활을 통한 이상은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인 어거스틴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는 수도원의 모습을 '공동체성'으로 보고 있다. "너희는 아무 것도 자기 것이라 말하지 말고, 모든 것을 너희의 공유로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 원장이 너희 각자에게 음식과 의복을 나누어 주겠지만, 모든 이가 똑같은 건강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모두에게 똑같이 하지 말고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줄 것이다." 어거스틴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직'이란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수도사들이 당연히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는 감독이 되고도 수도원적인 공동생활이 그리워서 '성직자들의 수도원'을 만들면서까지 하나님 앞에 사는 영성 공동생활에서 공동 생활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수도원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파코미우스적 공동체는 재정적으로 풍성해지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영향력을 상실했다. 이 말은 그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부유하게 살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수도원의 재정적인 안정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수도사의 기준인 '청빈'이 상실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수도원이 재물을 축적했다'는 말은 듣는 사람을 의아하게 한다. 어떻게 재산을 팔아 남에게 주고 가정도 없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자들이 돈을 모아서 주위에 원성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재산 축적의 시작은 아름다운 동기였다. 그것은 '자급 자족'과 '이웃 사랑'이었다.

수도사로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자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욕 생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안토니우스도 마지막에는 혼자서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는 이 일(먹고 사는 일)로 아무도 괴롭히지 않게 되어 좋았고 또 자신이 어떤 일에서도 누구의 신세를 지지 않게 되어 즐거웠다." 자급자족을 했다는 면에서 파코미우스의 수도원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후 6세기에 나타난 베네딕트 수도원 계율까지 예외가 없다.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고 사는 그때에 참으로 수도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중세 말기 그리고 오늘에까지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더구나 파코미우스의 수도원 이상에서 나온 '이웃 사랑'은 성서에서 출발하여 모든 수도원에서 목표로 했던 것이다. 안토니우스도 말하기를 하나님만을 위한 자신들의 노력의 목적은 이웃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자기 이웃에 달려 있다." 파코미우스가 노동으로 자신들도 살지만 이웃을 돌보려고 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삶에서 이웃 사랑이 동반된다는 지극히 성서적인 확신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비록 그의 수도원에 대한 인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을지라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점에서도 그도 예외가 없었고, 후에도 차이가 없었다.

파코미우스의 이후 수도원 역사는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이라는 그의 이상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그의 이상을 토대로 하여서 체계화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수도원 운동에 뚜렷한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가이사랴의 감독 바실리우스가 그 모습을 보여준다. 훌륭한 가문과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자기 어머니 가문과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자기 어머니와 손위 누이 마크리나 그리고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세바스타의 유스타티우스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금욕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후에 공동 생활을 하는 수도원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다. 삼위일체 신론을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니케아주의자를 대표하는 신앙적 이론가로 생각된다. 또 가이사랴의 감독을 지낼 정도로 그는 교회 정치가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이론가이기 보다 실천가요, 교회정치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금욕주의자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금욕주의자로서 바실리우스는 금욕 생활을 하는 수도사는 공동 생활을 할 것을 말하고 실천하였다. 그는 은둔하여 홀로 있는 것이 없이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은둔하여 홀로 있는 자들을 인정하는 길은 공동 생활에서 뿐이라고 하였다. 홀로 있는 것의 부정적인 것을 파코미우스가 경계한 것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그리고 적극적인 면에서는 형제끼리 서로 '고해'를 받아 주는 것에서 공동 생활의 필요를 주장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허물 많은 인생이 홀로 있을 때는 보지 못하는 면을 보완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바실리우스는 파코미우스의 공동 생활에 관한 이상을 그대로 넘겨 받았다. 노동을 하여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파코미우스보다 한 층 더 강조하였다. 그에게서 자선 행위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니라, 기구들로서 확고하여졌다. 순례자들이나 나그네들이 쉴 수 있는 숙소 시설을 만들고, 병자들이 쉴 수 있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또 없어서 먹지 못하는 자들이 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어서 운영하였다.

'수도원의 아버지'라 불릴만큼 공동체적인 수도원의 이상을 현실화시킨 파코미우스를 떠나서는 수도원 운동이 있을 수 없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떠난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성직자들의 수도원'을 만든 어거스틴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파코미우스가 구체화한 '자급자족'과 '이웃 사랑'은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다. 반대로 이것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바실리우스에게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 그에게 영향을 준 세바스테의 유스타티우스에게서도 바로 이러한 자선의 강조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파코미우스의 수도원의 비판을 받고 이후의 수도원 역사에서 그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일반적인 평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대체 변한 것이 없이 자선을 베풀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먹고 살면서 왜 그의 노력을 그보다 더 체계화시킨 바시리우스와 구별시키는 것일까



고대교회 영성생활 연구 4

번호:125 글쓴이: 풍자향
조회:1 날짜:2004/09/14 22:40




파코미우스와 똑같은 이상을 가지고 더욱 강화된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바실리우스가 파코미우스와 달리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독으로서 이행했다'는 사실이다. 금욕적인 생활과 이웃 사랑의 실천 그것은 교회를 떠나서 할 일이 아니었다. 교회의 직책을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이 금욕 생활이 아니다. 수도원과 그곳에서 하고 있는 것은 바실리우스에 와서 교회의 일이 되었다. 바실리우스에 이르기까지 고대교회의 은둔 수사나 금욕주의자 심지어 수도원안에서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교회를 떠나 특별한 것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범인(凡人)들이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자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너나 나나 원하고 사모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실천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실리우스는 수도원을 교회와 연결시켜서 이끌어 나가면서 '금욕주의의 일반화'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파코미우스가 금욕주의에 또 하나의 차원을 보여 준 것도 홀로 있으면서 행하는 개인적이고 특수한 금욕을 수도원 안에서 '일반화'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바실리우스는 아직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도원 자체를 '일반화'시켜 버린 것이다.

영성 생활이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알고 사는 삶이다. 그 하나님께만 몰두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었다. 분주한 여러 가지 일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에게만 몰두 하는 것 그것이 금욕주의자들, 수도사들이 원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분주함의 상장인 도시를 떠나고, 염려 근심의 근원인 재물과 가정을 포기한 것이다. 나중에는 비록 같이 살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있는 수도원에서 그 이상을 실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실리우스는 같은 목적과 같은 실천을 하는데 그것을 교회의 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특수한 금욕 생활을 일반적인 신앙 생활로 끄집어 들이고 승화시켰던 것이다.

바실리우스에 의해서 놀라운 금욕의 생활을 하는 자들도 교회에 속해 있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신앙인이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단지 그들은 모델이 될 뿐이었다. 바실리우스에게 금욕적인 영성 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적인 삶이었다. 버리고 떠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하나님 때문에 버리고 떠나는 헌신적인 삶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하는 것이다. 기존 수도원은 모든 제도적인 구조 속에서 '제도 교회 안에서 하나의 직책'을 갖는다는 것도 수도 생활과는 먼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수도원은 성직과 먼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성직과 금욕이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바실리우스는 그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감독의 직책을 가지고 그는 금욕을 수행하였다. 많은 자선 행위를 하여도 교회와의 연결 속에 있게 하였다. 수도사들끼리나 하는 행위라고 하던 것을 그는 평신도들에게 열어 놓았다. 평신도들도 공동체 속에 들어가서 고해를 하고 시편을 낭송하였던 것이다. 그가 일으킨 이러한 변화는 나아가서 성직자들의 도덕성을 높여 놓는 계기가 되었다. 금욕은 특별한 사람들, 성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과감히 허물게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무언의 금욕적인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여서 놀라운 금욕주의자들을 배출하였다. 자신의 소유라고 보는 것은 모두 남에게 주어 버리고 가난을 자초하는 그 쉽지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의 예는 너무나 많다. 안토니우스, 뚜르의 성자 마틴, 빈손으로 살던 수 많은 수도사들, 중세의 한가운데에 있던 프란시스 그리고 오늘날의 떼제 공동체 등 자신들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는 관대하기 위해서 버리고 빈몸되어서 자기 손으로 일해서 겨우 먹고 사는 자들이다. 애써서 버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노력하였다. 이 땅에서 그 이상의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 이 아름다운 삶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 파코미우스 공동체이다. 자기들끼리 생각이 맞아서 저 바깥과 담을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거기에 흐르지 않는 물의 부패가 있을 수 있었다.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없는 그 내부의 불투명에 인간 본성이 다시금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죽이려고 애를 쓸수록 애를 쓴 자기의 아름다운 의가 살아나는 비극적인 현실이 홀로 사는 은둔 수사들에게 나타났듯이 말이다. 이것을 극복하려고 금욕 생활에 공동 생활을 전제로 만들었던 파코미우스는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겠다던 아름다운 동기에서 부가 축적되어 자신들의 삶의 출발이며 기준인 '청빈'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바실리우스 감독인 그의 공동체는 이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가이사랴의 감독 바실리우스의 탁월함은 그의 살아 생전에 '대'라는 칭호를 받게 하였다. 이것을 이해하는데는 그가 신학과 교회 정치에서 보여준 역량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가 교회 안에서 행한 모든 것은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살려는데서 나온 것이다. 교회를 떠난 것에서 금욕주의를 이해한다면 그를 제도적 교회의 감독인가 아니면 금욕주의자인가를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금욕적인 삶, 곧 영성 생활은 자신이 처한 현실인 교회와 분리 되어 있지 안다. 거꾸로 그는 성직자들이 금욕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세속과 성직을 가진 채 행하는 금욕 생활에 관한 이러한 생각과 성직자들끼리의 수도원을 만든 어거스틴은 같은 생각이었다. 이것은 후에 성직자의 독신주의를 도입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임을 알고 사는 신앙인들의 삶이 영성 생활이다. 범사에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데도 악을 행하지 못하던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저질러서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이 하나의 목적으로 산다는 자들의 모습을 지금까지 크게 넷으로 보았다. 이원론적인 신학에 근거하여서 물질과 육을 악한 것으로 보며 자신들이 죽는 것까지도 불사하는 영지주의적인 이단, 그리고 몬타누스 등의 이단 종파들의 금욕적 삶이 있다. 그와는 달리 몸도 물질도 신학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사는데 방해가 되는 혈연 지연을 훌훌 떠나 버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님께 몰두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분주한 곳을 떠나 은둔하여 혼자살던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은둔 수도사들에게서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같이 된 인간'은 하나님 때문에 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의'를 높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면서 극복하려 했던 시도가 있었다. 피하려던 자기 의가 살아나는 이유를 혼자 있고, 특별해지는데서 발견한 파코미우스가 보여 준 것은 공동 생활을 통한 금욕 생활의 일반화였다. 그러나 그의 수도원에서도 재산이 축적되면서 수도사들이 원했던 '청빈'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것은 바실리우스에 의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되었다. 그것은 교회와 구별된 수도원을 지양하고, 교회와의 연결 속에 있는 수도원이었다. 그것은 세속에서의 금욕주의라고 할 수도 있고, 다시금 특수화되는 것을 넘어서는 '일반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고대 교회가 보여주는 네 가지의 영성 생활의 모습은 던져진 자리를 다시 찾아 오는 부메랑을 연상케 한다. 인간은 '못말리는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시금 '영성 생활'의 의미를 음미해 보면 그것은 절망할 일이 아니다. 영성 생활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갈 때만 인생은 자신의 영혼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자는 자신을 보는 자라면, 자신의 어제를 버리고 오늘 새로운 자신을 세우는 자이다. 그리고 영성 생활은 하나님 앞을 살아가는 자 누구나가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고대 교회의 영성 생활 역사는 가르쳐 준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그러나 해를 창조하고 해보다 밝은 곳에 거하는 분에게는 새 것이 있다. 그분은 인간이라는 옛 모습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모습 밖에는 보일 것이 없는 인생을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성 생활은 후패하는 겉 사람을 가진 인간이 속 사람으로는 날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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