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서신
신약성경에서 바울서신과 계시록을 제외한 서신서들을 공동서신(The Catholic Epistles)이 라고 부른다. 그 외에 일반 서신(The General Epistles)이라고 명하기도 한다. 이 서신서들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서신서의 수신 대상이 어느 특정한 개 교회가 아니라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독자를 상대로 기록된 것이기에 공동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 외에 바울서신과 구분키 위해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공통된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만일 바울서신에서 제외할 경우), 야고보, 베드로, 요한, 유다에 의해 기록된 서신서들은 그 주제와 내용이 각각 다르다. 그리고 각각 40여년 간의 기간 사이에
기록됐다. 초대교회는 제4세기경 베드로전서와 요한1서를 정경으로 공인했다. 기타의 서신들은 6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모든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했다. 개인적으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히브리서를 제외한 현재의 7권의 서신을 공동서신으로 인정했으며, 그 후 1545년 트렌트 회의에서 정경으로 확인한 것이다.
1. 공동서신 저자에 관한 견해 차이들
개혁교회의 보수주의에서는 공동서신이 그 편지의 발신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람들은 비평적인 관점에서 볼 때 훨씬 후대 교회 사람들이
유명했던 사도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한서신도 베드로전서, 유다서도 또 야고보서도 실제 그 사도들의 기록물이 아니라 익명의 성도들이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서신의 집필 시기도 주후 64-200년까지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진보와 보수측의 견해 차이는 공동서신 각론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대체로 정통 보수측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각 서신서에 기록된 당시의 사도들과 전도인들이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2. 공동서신의 가치
바울서신이 기독교와 그 복음 진리를 해석하고 적용하고 확립시킨 '골격'의 가치를 지녔다면, 공동서신은 '힘줄과 살'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공동서신은 심오한 신학론이나 신비스러운 경험보다는 대중적이요, 윤리적이요, 교훈적인 내용이 주된 주제다. 실제적인 신앙 훈계와 권면으로 당시 핍박과 이단의 유혹과 신앙적 시험에 둘러 쌓였던 모든 교회에게 힘과 지혜를 주고자 기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서신을 통해 당시 초대교회가 당면했던 보편적인 문제와 다양한 삶의 구조를 알 수 있다. 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바울 이외에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의 신앙 사상과 생각과 인품들을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공동서신이 깊고 높은 신학적인 내용은 바울서신과 비교해 볼 때 가볍다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바울이 말한 신학과 진리가 공동서신 속에서는 '육화'되어 나타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만이 신야성경의 기자로 세우시지 않고 다양한 공동서신의 기자들을 따로 세우신 뜻은 이 세상의 성도들과 그 삶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논리와 공동서신의 풍성한 교훈은 서로 상호 보완하여 성도의 신앙을 깊고, 넓고, 높은 자리로 인도해 줄 것이다. 이처럼 공동서신의 가치는 신약의 감동된 정경으로서, 또 그 시대의 역사적 기록물로서 그리고 문학적인 가치로서 바울서신 못지 않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3. 공동서신의 특징
앞에서 말한 공동서신의 가치는 그 구성과 내용의 특성에서 기인된다. 우선 특정 지역이나 교회가 아닌 모든 교회를 염두에 두고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정황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실제적이며 대중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바울서신처럼 이론적이며 예방적인 성질보다 당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의 삶의 애로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이나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그 내용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대중적인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 그 다음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다. 히브리서는 율법과 예언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베드로후서는 참희망과 참지식을, 요한서신은 사랑의 가치를, 유다서는 이단자들에 대한 경계를 주제로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 기독교 진리의 다양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터득할 수 있다.
4. 공동서신의 각 개관
본 연구에서는 바울서신에서 다루지 않았던 히브리서도 공동서신의 범주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1) 히브리서
작자 미상이다. 바울, 아볼로, 바나바 등으로 추론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목회자, 신학자, 철학자의 자질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기록할 수 있는 심오한 내용과 구체적인 신앙 권면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율법과 제사와 예언의 완성이시며 본체이심을 강조하며, 그분만이 영원하고 유일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한다.
2) 야고보서
헤이스(Hayes)라는 신학자는 '야고보서는 신약 속의 구약성경이다'라고 말했다. 그 안에 기록된 그리스도께 대한 두 세 구절의 언급을 제외시킨다면 마치 구약의 잠언서를 보는 듯하다. 야고보서는 바울서신의 대주제인 '신앙으로 인한 구원'과 반하는 듯한 내용이 있어 몇몇 개혁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예도 있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신앙을 성도의 전인격을 통해 관조하고 강조한 것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사도 바울의 사상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생각'이 분명 아니다. 인격과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이는 바울서신서에도 강조되는 내용이다.
3) 베드로전·후서
베드로전서는 대사도 베드로의 아름답고 거룩한 신앙 인품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신앙고백서요, 위로서이다. 당시 로마 제국 판도 안에서 이질적인 존재들로 업신여김받고 오해받고 핍박받는 모든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쓴 베드로의 첫째 서신이다. 그 주제는 '고난을 상쇠하는 참희망'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본분 중 한가지이며 그와 같은 삶에는 영원한 축복이 따름을 역설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처럼 핍박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는 생활을 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삶의 종말적인 위기가 올지라도 말은 사회적, 신앙적 의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전하는 내용이다. 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장과 같다. 순교하기 전 자신의 마지막장을 감지하고 보낸 공동회람 문서이다. 당시 교회에 일어나기 시작한 신비철학 종교인 지혜 종교(영지주의)의 폐단을 지적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시임을 강조하고 있다.
4) 요한서신들
요한서신중 요한1서를 제외하고 2,3서는 특정한 사람에게 보낸 서신이다. 그래서 공동서신의 범주에 제외시키는 이들도 있다. 요한 1서의 주제는 참사랑이다. 이는 요한복음 14,15장의 확대다. 신앙과 지혜와 덕의 권능은 사람에 있음을 강조한다. 당시 성행하던 영지주의에 물든 자들을 깨우치고 교화하며 예방키 위해 쓴 것으로 본다. 참된 성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와 그 증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증거를 지닌 자임을 말한다. 요한2서는 1서의 내용과 관계된다. 즉 거짓 진리를 전하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다. 요한3서는 교회의 질서에 대한 교훈이다. 교만하고 그릇된 어느 신자의 예를 들어 그것을 정죄하며 진리 안에서 행할 것을 강조한다.
5) 유다서
유다서는 주 예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의 동생 유다가 쓴 서신이다. 베드로후서와 그 내용이 흡사하여 논란이 많은 서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다가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서신서를 기록한 것으로 본다. 그 내용은 역시 이단자들의 침투와 오염을 경계하는 것이며 그들의 운명에 대해 통렬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공동서신의 주제와 내용은 다양하고 풍성하다. 그만큼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메시지가 풍요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서신의 내용은 오늘 현재 경건한 삶을 갈망하는 모든 성도들의 삶에 있어 각 분야의 교사가 될 것이다.
제 1 강 히브리서
1. 명칭
본 서신의 명칭은 한마디로 애매하다. 초기 전승은 본 서신의 명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거나 언급하는 경우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주후 2세기경 활동한 판테누스와 터툴리안 역시 본 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 서의 표제만은 '히브리인들에게'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명칭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2세기에 이 문서가 바울 서간집에 포함되었을 때 편집자가 '로마인들에게'와 같은 말에서 유추하여 이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명칭은 단순히 수신자가 유대인들 또는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편집자의 막연한 느낌을 반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명칭에 관한 불확실성은 본 서신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점이 되어 왔다. 물론 서신의 내용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을 찾아내어 추론할 수도 있지만 본 서신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은 매우 애매하고 단편적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명칭에 관한한 누구도 확정적인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2. 수신자
만일 '히브리인에게'란 명칭이 원래의 명칭이 아니라 편의상 편집자가 본 서신에 갖다 붙인 이름이라면 수신자를 밝히는데 있어서 명칭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가능한한 성경 본문의 내증에 근거하여 밝혀져야만 한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본 서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그의 말씀을 듣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어떤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집단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개종한 이래 계속 박해를 받았는데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생활이 시작된 직후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아주 떠날 위험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계속 신앙의 전진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헬레니스트였음을 본 서신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들은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옛 제사의식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구약성경을 읽은 데서 얻은 것이지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직접 접한 데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암시되어 있다.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계속되는 박해의 위협 속에서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강한 유혹에 처한 헬라어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로 보여진다.
3. 저자
1) 바울 저자설
본 서신이 누구에게 보내졌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여 또한 누가 이 서신을 보냈는지도 알 수 없다. 바울이 저자라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유세비우스 등의 신념은 동방 기독교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고 궁극적으로는 4세기 말엽에 서방 교회의 판단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본 서신에 대한 바울의 저작설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경우처럼 단정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본 서신에 나타난 문체와 사상의 양식은 바울의 것과 같지 않다. 즉 본 서신은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에서만 구약성경을 인용했으며 바울의 문체보다 훨씬 유창한 헬라어를 구사하고 있다. 특히 바울 서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은 바울의 저자설을 부인하기에 충분하다.
2) 바나바 저자설
주후 220년에 글을 쓴 터툴리안은 히브리서의 저자로 바울의 동료이며 사도인 바나바를 지적한다. 이 견해는 아프리카 지역의 교회들의 일반적인 견해로 보여진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유력한 인물로서 '권위자'(행4:36)라고 불렀으며 헬라 사상에 젖어 있던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제사 제도를 구속사에 정확하게 적용하여 기술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했으므로 히2:3의 내용과 부합된다. 그러나 이것은 터툴리안이 지나치게 반유대주의저인 편에 있는 가짜 바나바의 편지와 성경의 사용법이 유사한 것을 보았을 뿐 초대교회 당시의 외적 증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3) 기타 저자설
419년 칼타고 회의 때 가서야 비로소 본 서에 대한 바울의 저작설이 동방에서처럼 사방에서도 전통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비평적 판단을 하는 주석가들은 여전히 본 서의 저자가 로마의 클레멘트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가를 본 서의 번역자 또는 편집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칼빈은 누가나 로마의 클레멘트를, 루터는 아볼로 저작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하르낙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본 서를 썼다고 주장했다. 분명한 것은 저자는 제2세대 그리스도인으로서 70인역에 정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풍부한 어휘력을 가졌으며 바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수사학적인 문체의 대가였다. 그는 성경에 능한 자로서 스데반과 빌립의 동료들이며 이방 선교의 선구자들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을 이어받은 한 헬레니스트였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본서를 썼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그 진상을 아실 뿐이다.
4. 기록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관하여 성전이 아직 기능을 하고 있었던 시대로 보는 견해가 전통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성전 파괴 이후로 연대를 계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크게 본 서신의 기록연대는 조기 기록설(A.D.58-60년)과 예루살렘 멸망 직전설(A.D.70년이전)과 그 이후의 설(A.D.80-90년)로 각각 나누어진다. 이와 같은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로마의 클레멘트 히브리서 인용, 성전 제사의 진행여부, 박해 시기, 신학적 발전 여부에 따른 내, 외증에 의해 결정한다.
5. 목적
그 당시 독자들은 예전에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현재 계속되는 기독교안에 대한 박해와 죄의 문제로 딜레마에 빠져 유대교로 회귀함을 통해 제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들은 세례 이후 죄의 문제로 시달리면서 예수를 믿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신학적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히브리서 독자들의 특별한 상황에 비추어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이 계속 우리에게 도움이 됨을 논증하기 위해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저자는 예수께서 현재 대제사장 되심과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계속적으로 주고 계심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종말론적으로 한 번 영원히 효과 있는 제사로써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제사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좀 새로운 논제로 이 문제의 해결을 전개한다.
제 2 강 야고보서
1. 서론
우리는 이제 신약성경 중 공동서신(General Epistles)이라고 부르는 부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바울서신처럼 어떤 특정한 교회에 보내진 서신서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것이요. 그리고 여러 사도들의 서신서를 묶은 것이기에 공동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첫머리를 장식한 서신이 바로 야고보서라고 불리우는 본 서이다. 야고보서는 흔히 '신약의 잠언서'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신앙의 실천, 신앙인의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저자와 기록 연대
1) 본 서의 저자 문제
많은 사람들이 본 서의 저자가 주 예수의 육신의 동생인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 이유로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 본 서와 같은 고상한 희랍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요, 그 다음 문제로는 성모마리아를 신봉하는 구교에서 제기한 내용으로 예수님에게는 사촌만 있고 형제들은 없다는 견해 때문에 비롯되었다. 즉 마리아의 '무흠수태'(Immaculat conception) 교리를 지킴으로써 마리아의 순결성과 거룩성을 보호하고자 지어낸 이론으로 이것을 '히에로니무스 설'(Hieronymian)이라 부른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한 후 순결을 지켰으므로 야고보와 같은 예수의 씨다른 형제는 있을 수 없고 오직 사촌들만이 있는데 성경에서 그들을 예수의 형제나 가족으로 부르는 것은 유대인들이 사촌들도 그렇게 칭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히에로니무스 설을 신봉하는 자들은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알패오의 아들 사도 야고보'이며, 예수의 사촌으로서 글로바의 아내, 즉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자매인 마리아의 아들로 보는 것이다.
2) 본 서의 저자가 주의 동생이라는 증거
그렇다면 우리는 본 서의 저자가 어떤 이유로 예수그리스도의 동생인 초대교회 사도 야고보로 볼 수밖에 없는가? 먼저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예수의 동생들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마13:55). 그 중에는 분명히 야고보도 언급되어 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약속대로 예수를 출산한 후 결혼하여 많은 자녀를 낳았으며 예수와 육신적으로 이복 관계인 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정통 개혁교회들은 믿는데 이 이론을 '헬비디우스 설' (Helvidian)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본 서의 저자가 주의 동생 야고보가 될 수 없다는 이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다음 희랍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모국어와 함께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도 요한도 많은 서신서를 고급스러운 희랍어로 사용치 않았는가? 그 다음 약1:1에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밝힌 점이다. 이 사실이 저자의 권위에 대한 확실한 증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 감독이자 사도였던 주의 동생 야고보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만일 그가 아니라면 다른 표현으로 자신을 밝혔을 것이다. 그 다음 본 서 전체에 나타나는 명령적인 용법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가장 친근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리스도 예수와 유사한 표현법과 내용 등이 본 서가 주의 동생 야고보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산 증표이다. 그는 주후 62년경 순교했으니 그 시기 직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한다.
3. 수신자와 기록 목적
본 서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1:1)라고 시작한 것으로 보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 성도를 주대상으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로페스(Ropes)라는 신학자는 "모든 성도들은 저 하늘나라 본향을 떠나 이 땅에 흩어진 순례자(Diaspora)이며 새로운 이스라엘이다"라고 했다. 비록 야고보 사도가 유대 출신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었을지라고 그 내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작용된다. 기록 목적은 '시험과 갈등의 해결'을 위한 것으로 본다. 외적인 박해로 인한 시험, 교회 내 다른 이웃과의 갈등을 그리스도 예수의 교훈을 순종하고 실천함으로써 해결하라는 것이 야고보서의 중심 요지인 것이다.
4. 타성경과의 연관성 문제
루터와 같은 개혁가는 본 서를 '지푸라기'라 불렀다. 바울에게서 확인 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와 배치되는 듯한 인상을 본 서에서 받았으리라. 그러나 본 서의 내용 중 행위가 강조되는 것은 바울서신서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이다. 바울서신에서 강조된 믿음 역시 실천적인 삶을 요구한다. 야고보는 다만 그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5. 본 서의 특징
1) 유대교적인 논증
내용이 일관된 논리적인 진전이나 사상의 체계는 없다. 다만 당시 유대 랍비와 희랍의 지혜자들의 교수법과 설교 양식이 발견된다. 즉 설교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그 답을 하는 식이다.
2) 교리 중심이 아닌 생활 중심
본 서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속죄, 고난, 부활이 없다. 다만 일상생활에서의 신앙적인 인내, 정절, 선행 등이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본 서를 신약의 잠언서라고 칭하는 것이다.
3) 예수그리스도와 흡사한 교수법
본 서에는 자연을 사용한 비유법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수법이다. 주 예수와한 지붕에서 오랫동안 지낸 주의 동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교수법이다.
6. 본 서의 내용 개관
1. 시험과 시련에 관한 교훈(1:1-16)
2. 참예배와 그릇된 예배에 대한 교훈(1:17-2:13)
3. 무가치한 신앙 생활에 대한 교훈(2:14-3:12)
4. 참지혜에 관한 교훈(3:13-18)
5. 교회의 분쟁과 세속화에 대한 질타(4:1-12)
6. 불의한 유력가에 대한 경고(4:13-5:6)
7. 인내에 대한 격려(5:7-11)
8. 맹세, 고난, 질병, 기도, 전도에 대한 금언(5:12-20)
제 3 강 베드로전서
1. 서론
우리는 이제 공동서신의 두 번째 서신을 접하게 된다. 베드로의 첫 보통 서신(The First General Epistle of Peter, KJV)으로 명명된 본 서신은 공공 서신 중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리스도의 가장 밀접한 사도였던 신앙과 위로와 교훈으로 가득한 이 서신의 가치를 온전하게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해 경건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귀중한 격려와 소망을 주는데 있어서 본 서만큼 가치가 있는 책은 없다고 할 것이다.
2. 저자 문제
본 서는 1세기 말엽부터 교회들이 베드로 사도의 첫 편지로 인정해 왔다. 로마 교회의 교부 클레멘트, 또 유명한 폴리갑, 이레나이우스, 터툴리안 그리고 3세기의 오리겐에게 이르기까지 베드로전서가 베드로 사도의 것임을 의심치 않고 그 내용을 공공연하게 인용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의혹을 제기한다. 첫째, 본 서에서 사용된 헬라어가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고상하다는 것이요, 그 다음 본 서의 내용이 너무나 바울 사도의 사상과 흡사하다는 것이며 그리고 본 서에서 다루는 고난과 박해는 베드로 사도가 순교하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 문제는 본 서 5:12에서 밝혔듯이 용역자 실루아노가 대필했음이 분명하며, 그는 바울의 중요한 동반자로서(행15:40 ; 행16:19) 바울에게 깊은 신학적인 영향을 받았기에 베드로 사도의 말도 바울처럼 표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언약과 교훈을 직접 체험한 사도로서 그분의 죽음, 고난, 부활, 승천, 재림의 언약도 직접 목도한 사도이기에 바울서신의 교리들을 산 경험으로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도인 것이다. 또 박해와 고난 문제는 네로 황제가 다스리던 주후 62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상도들은 개인적으로 위기를 느낄만큼 성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임박하는 말세적인 대박해를 통해 모든 성도들에게 박해와 고난에 대비한 신앙 무장을 강조했던 것이다.
3. 저작 시기와 장소
1) 저작시기
대개의 학자들은 본 서가 로마 제국의 대박해 시기 중 어느 한 시기의 직전이나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본 서의 분위기나 표현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벧전4:7) 또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4:17)라고 베드로는 종말적인 대환란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베드로 사도는 주후 68년경 대박해 기간 중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네로 황제에 희한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첫 박해는 주후 64년경부터이다. 그 당시 네로는 기독교를 불법 단체로 간주하고 온 로마 판도 각처에서 개인적으로 사회로부터 냉대와 불이익을 당했었으며 누구나 곧 대대적인 박해가 닥칠 것을 예견했고 교회의 위기가 도래하게 될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온 주후 63-64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2) 저작 장소
본 서에는 그 저작 장소가 언급되어 있는데, 즉 바벨론에 있는 교회(벧전5:13)에서 기록하여 보낸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바벨론(벧전5:13)에서 기록하여 보낸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어디인가? 중세의 에라스무스, 칼빈 등은 유브라데 강 유역의 유대인 정착지인 바벨론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집트 카이로 근처인 앗시리아인 정착지가 바벨론으로 불리워졌으므로 그 곳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바벨론은 당시 로마를 상징하는 기독교의 보편적인 은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계14:8 ; 계17:5). 구전에 의하면 베드로는 말년에 20여년간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주후 64년 늦여름 네로의 분노의 희생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본 서가 로마에서 기록된 것임에 유력하다.
4. 저작 목적과 대상
본 서는 임박한 대박해로 인한 삶의 시련에 대한 신앙 무장을 위해 쓰여졌다. 물론 그 대상은 로마 판도 안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의 위대한 점은 다가올 박해를 소극적으로 맞을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박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영광스러운 것이요, 그 상급으로 영생 복락을 맞이하게 되는 축복임을 강조하므로써 성도들에게 한없는 힘과 위안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본 서는 격려의 서신 또는 소망의 서신으로 부르는 것이다.
5. 본 서의 특징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
벧전1:2은 본 서의 주제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다.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신 성부, 고난과 영광에 참예케 해주신 성자 그리고 위로의 성령에 관한 내용이 본 서 전체에 흐른다.
2)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관한 자세
고난은 곧 닥칠 것이나 한시적인 것이요, 그 고난으로 교회와 성도들은 더욱 견고케 될 것(벧전5:11)이며 극 고난으로 성도들은 더욱 성화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고난의 증인인 베드로 사도의 빛나는 교훈은 고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다. 즉 고난으로 삶의 종말이 올지라도 성도의 본분과 사명을 더 열심히 감당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선을 행하며, 열심히 봉사하며, 더 뜨겁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벧전4:7-11). 이와 같은 자세는 오직 고난의 주 그리스도의 그 자세를 본받음으로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다(벧전2:18-25). 그러므로 본 서는 종말때에 행할 성도의 신앙 윤리의 지침서의 가치도 지닌다.
6. 내용 개관
1.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1:1-12)
2. 은혜에 대한 성도의 자세(1:13-2:12)
3. 고난중에 지녀야 할 자세들(2:13-3:12)
4. 고난중에 행해야 할 일들(3:13-5:9)
5. 축복과 인사(5:10-14)
제 4 강 베드로후서
1. 서론
교회의 위기는 성도의 신앙적 삶의 위기에서 기인된다. 교회 구성원인 성도 각 개인의 삶의 정황이 곧 교회의 형편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교회 위기의 배경은 무엇인가? 베드로전서는 외적인 박해로 인한 위기에 대한 지침서인 반면 베드로후서는 이단 사설로 인한 교회의 내적 위기에 대한 경계서이다. 성도 각 개인이 거짓 교사와 거짓 교설에 물들어 반성서적인 신앙을 지닌다면 교회는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2. 저자 문제
1) 가장 의심받는 본 서의 저자
신약성경 중 본 서처럼 저자의 진위 문제에 논란이 많은 정경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 서는 2,3세기경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전서를 사도 베드로가 쓴 것으로 인정했으나 베드로후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리겐(Origen)도 마찬가지로 제2서신서는 다소 의심스럽다고 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와서도 루터(Luther)만이 베드로의 저술을 인정했고 칼빈(Calvin)이나 에라스무스(Erasmus)는 부인했다.
20세기의 학자들(진보적)은 거의가 베드로후서를 위작으로 보며, 신약성경 중 가장 후대에 기록되어 삽입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전서와 후서의 전혀 다른 주제의 차이. 또 문제의 차이와 표현이 전서는 매우 고상한 반면 후서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그 다음 유다서와 내용이 많이 중복되었다는 점과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언급한 점(벧후3:4) 그리고 신앙의 조상들(사도)이 이미 잠들었다고 언급한 점과 교회가 늦게 베드로후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본 서가 2세기경 어느 무명인에 의해 위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2) 베드로 사도가 저자인 증거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제들이 오히려 사도 베드로만이 본 서의 저자임을 대변해 주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드로는 분명히 '시몬 베드로'(벧후1:1)라고 자신을 밝혔다. 만일 위작이라면 그냥 베드로 사도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생한 신앙의 경험담, 즉 변화산에서 주님이 변모하신 사건을 말하고 있다(벧후1:16-18). 이는 베드로 자신이 아니면 증거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다음 문체나 어휘가 틀린 것에 대해서는 전편이 실루아노의 대필로 작성된 것이라면 후편은 베드로 스스로 쓴 것이기에 헬라어의 수준이 다르고 문체가 다른 것으로 본다. 또 유다서를 인용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베드로후서는 '거짓 교사'들을 앞으로 나타날 존재들로 말하며 미래 시제로 표현했고, 유다서는 현재 시제로 말했음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유다서가 베드로후서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어휘나 내용이 전서와 1/6이 일치한다. 이는 전서나 후서가 같은 사람이 쓴 것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권위 있고 단호하게 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의 영감적 권위(정경성)를 인정하는 내용도 있는데(벧후3:16), 이는 사도 베드로 외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은 몇몇 사례만 볼지라도 본 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3. 저작 시기와 장소
만일 본 서가 베드로가 쓴 것이라면 전서의 집필 시기인 주후 63-64년에서 순교한 주후 68년경 사이일 것이다. 벧후1:13에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암시한 듯한 내용으로 볼 때 본 서는 순교 직전인 67-68년사이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장소도 마지막 활동 무대였던 로마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대상과 목적
이 공동서신 역시 베드로의 첫째 서신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교회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 판도에 있었던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벧후1:1에서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한 것이다. 본 서의 수신자들은 이미 기독교의 모든 진리 체계를 이해하고 믿는 자들이다(벧후1:12). 그들은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이미 알고 있고 그의 가르침에 진지한 열의와 사모심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으로 본 서를 기록했을까? 그 목적은 크게 베드로 사도의 개인적인 문제와 당시 세계 교회의 보편적인 당면 문제 때문일 것이다. 즉 사도 베드로는 유언적으로 온 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5)는 말대로이다. 그 다음 세계 각처에서 성행하는 이단적 종교 사조인 '영지주의 풍조'를 경계하고자 본 서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벧후2:1-3). 영혼만 귀한 것이요, 육체는 하찮은 것이니 육체로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과는 관계없다는 교설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사도 베드로는 종말적인 심판을 염두에 두고 거룩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한다.
5. 주제
'신앙적인 참지식'이 본 서의 큰 주제이다. '앎, 지식'(Know, Knowledge)이라는 말이 16회나 반복된다. 끝 말도 "오직 우리 주 곧 구주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벧후3:18)고 했다. 이는 당시 특별한 영적 지시과 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미혹하는 영지주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강조했다(벧후1:5-7). 영지주의에 미혹된 자들이 극단적으로 무도덕한 생활을 했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 참지식과 지혜임을 교훈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활은 종말에 필히 시행될 하나님의 대심판을 염두에 두고 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신앙의 참 지식, 참지혜가 본 서의 강조점이다.
6. 내용 구성
1) 참된 지식의 의미(1장)
2) 거짓 지식을 전하는 자에 대한 경계(2장)
3) 참지식과 거짓 지식을 따르는 자들의 미래(3장)
제 5 강 요한서신
1. 요한서신의 서론
요한 1,2,3서를 요한서신이라고 한다. 이 서신들은 공동서신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견들이 있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문서들-요한복음, 요한 계시록-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요한서신은 세 개로 나눌 수 있는데, 논문 형식을 취한 요한 1서와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취한 요한 2,3서가 있다. 각 요한 서신들간에 보여지는 상이점도 있지만 이 서신들을 일괄적으로 연구하는 데는 별무리가 없다. 따라서 세 서신을 일괄적으로 연구함으로 요한서신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2. 요한서신의 저자와 저작 연대
1) 요한 서신의 저자
본 서신들이 요한의 저작이라는 데에는 학자들간에 많은 이견들이 있다. 요한의 다른 문서들과 요한1,2,3서의 저자가 다르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사랑의 사도로 불려지는 요한이 이단에 대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점을 들어서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무식한 어부 출신인 요한이 본 서에 나타나 보이는 것처럼 깊고도 오묘한 글을 썼을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아닌 본 서에 등장하는 '장로'요한이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의 대다수 학자들(Alford, Calvin, Meyer)은 요한이 저자라는 데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Fragment)에서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주교들(Tertullian, Origen, Cyprian)도 요한의 저작이라는 것에 동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라고 표현한 것은 직분을 가리키기보다는 헬라어의 원뜻인 '연장자'라는 의미에서 사도 요한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본 서신의 기독론에 대해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이것은 요한복음의 사상과 비슷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요한의 저작인 다른 문서들과 문체나 신학 사상 그리고 어휘들을 살펴볼 때 요한이 본 서신서들의 저자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학자들도 이 사실에 대해 동의를 한다고 한다.
2) 요한서신의 저작 연대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저작 장소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저작 장소에 대해 알아보면, 요한이 팔레스틴 지역에서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요일5:21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많은 역사가들(Eusebius, Irenaeus)은 에베소에서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본 서신은 에베소에서 요한이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며,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본 서신이 요한복음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 둘째로는 본 서신과 요한복음이 같은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요한복음보다 본 서신이 후대에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본 서신이 요한의 말년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연대를 말한다면 주후 90-95년경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요한이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의 상황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의 공격이 있었으며,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D.81-96)라는 로마 황제의 박해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본 서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3. 요한서신의 주제와 목적
1) 요한 서신의 주제
먼저 요한1서에서 보여지는 전체저인 주제는 '교제'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1서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물든 초대교회에 대해서는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요한2서에서는 성도들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즉 성도들의 삶은 참된 사랑을 실천하여야 하며, 한편 요한3서에서는 성도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면서 특히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성도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주제를 종합하여 본다면, 요한서신의 주제는 '사랑의 윤리에 대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이 말하는 사랑의 윤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보여 주신 사랑이 전통적으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실천을 성도들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이론으로 끝나 버리는 사랑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열매 맺는 사랑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우리의 형제요, 이웃임을 요한은 밝히고 있다.
2) 요한서신의 목적
요한의 서신에는 크게 다섯 가지의 주제가 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서로간에 사귐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쁨을 주기 위하여, 죄악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잘못된 교리들에 대해 승리하도록 하기 위하여, 구원의 확신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은 새로운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야기된 상황이었다. 이 가르침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는 복음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주장과 진리의 복음을 구분할 수 있는 표준을 알지 못해 우왕 좌왕하는 상황 속에서 본 서신이 쓰여졌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란 분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이탈자들이 아니라 독자들 자신이 그 표준임을 알리기 위하여 본 서신이 쓰여진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셨으며, 참하나님이시며,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이심을 요한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 서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선재설을 밝힘으로써 두 가지의 성품-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면서 거짓 가르침에 대해 논박하고 있으며, 예수그리스도가 보여 주셨던 사랑을 성도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요한서신의 특징
1) 요한서신의 특징
요한1서는 2,3서와 같이 편지글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으며, 교훈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서신은 일반적인 독자들이 아니라 교회에서 영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진 것이다. 왜냐하면 본 서신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랑이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극히 단순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심오한 요한의 사상은 '사도적 권위의식'을 잘 표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도와 같이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본 서신의 문체는 히브리서의 문체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요한2,3서는 신약의 서신 중 가장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이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6 강 유다서
1. 저자와 저작 연대
1) 저자
본 서신은 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에 의해 기록되어졌다. 본 서신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기록하였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반박을 하고 나선 일부 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본 서신에 나타나는 영지주의 이단은 2세기에 있었던 것이며, 본 서신은 인용한 인용구는 외경인 에녹서와 모세승천기에서 인용된 것으로 이것은 2세기경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많은 외적인 증거에 의해 묵살되어 버리고 만다. 즉 초대 교부들은 본 서신이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기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에서도 유다의 저작으로 보고 있다. 내적인 증거로는 유1:1에 잘 나타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유다란 이름이 많이 나온다(막3:19 ; 막6:3 ; 눅3:30 ; 눅6:16 ; 행5:37 ; 행9:11 ; 행15:22). 그러나 이들 중 여러 가지 여건상으로 보아 본 서신이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막6:3)가 기록하였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4세기 이후에 와서였다. 오늘날도 본 서신의 저자가 유다라고 알고 있는 것에 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저작 연대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기록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근사치에 가까운 연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 서신의 저작 연대를 2세기 중엽에서 말엽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본 서신이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과 이후 중 어느 한 때에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본 서신의 내용 중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멸망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후 70년 이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세기 후반에 발흥되었던 영지주의에 대한 성도들이 경계를 그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으며,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예연적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함락 이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유다가 주후 70-80년에 순교하였을 것으로 추정됨으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주후 80-90년으로 보든지 훨씬 이후인 1세기 말엽으로 보는 것이 모든 상황에 적절할 것이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유다서가 공식적으로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때는 아다나시우스(Athanasius)가 주후 367년에 그의 정경에 본 서신을 포함시킴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인정은 주후 397년에 카르타고 회의(Council of Carthago)에서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었던 니케아 공의회(Nicaen Council)에서는 본 서신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이 외경인 '에녹서'와 '모세승천기'를 인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본 서신은 비록 짧은 문장으로 기록되어져 있지만 그 구조 면에서 서신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 서신의 마지막 축도 부분이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롬16:25-27)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과 상통한다는 사실을 들어 유다가 바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기도 한다. 유다서의 내용이 난해하기 때문에 본 서신 자체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짧은 내용 속에 구약의 많은 인물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이단자들에 대한 태도가 아주 논리저이고 단호한 것도 본 서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외경을 인용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바울도 이방 시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였으며(행17:28), 랍비의 문헌인 미드라쉬르 인용하기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고전10:4).
2) 목적
유다서는 교회 내에서 일고 있는 이단들의 정체와 그들에 대한 성도들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유다는 교회 내에 침투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하게 하며,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단자들을 경계하고,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야 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본 서신은 영지주의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며 성도들의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본 서신은 베드로후서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의 침입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수신자들에게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울 것을 말하고 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그래서 기존적으로 받아들인 성도의 구원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를 하나의 색욕거리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가르침에 현혹되는 성도들이 있음을 알고 유다는, 이들의 종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성도들이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헤어나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본 서신의 목적은 유1:3과 유1:4에 잘 나타나고 있다.
3. 유다서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와 내용 그리고 주제
1) 유다서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
유다는 당시 만연해 있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이원론적이다. 즉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육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도덕적으로 방탕한 모습을 보였다(유1:4). 그래서 유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말한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종말에 심판하실 심판자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유1:15). 그리고 이단자들로부터 성도들을 영원까지 보호하여 주시며(유1:24). 언제나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유1:21).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하나의 색욕 거리로 만드는 이단자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인 것이다. 유다가 말하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할 때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유혹이라도 굳건히 이기며 신앙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2) 유다서의 내용과 주제
본 서는 크게 세 가지의 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위와 예수그리스도의 우월성 그리고 믿음의 실천이 믿음을 지키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이단자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본 서신의 내용은 이단자들의 특징적인 면과 그들이 종말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을 것이라는 확신적인 면 그리고 이들에 대한 성도들의 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본 서선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단자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인한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울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경 66권 전체가 그러하듯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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