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
4.1. 사도적 교부들
교부들 (church fathers)
1세기 - 속사도 또는 사도적 교부들
2-3세기 - 변증가들
4-5세기 - 후기 니케아 교부들
“교부들이라 함은 초대교회 기독교 저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들도 있고 저자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시기로서는 1-5세기에 있는 분들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헬라 교부들’, 즉 동방교회의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 즉 서방교회의 교부들로 나누기도 합니다. 전자는 헬라어를 사용하셨던 분들이고, 후자는 라틴어를 사용하셨던 분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 부류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적 교부들, 변증가들, 그리고 후기 니케아 교부들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어, 교수님! ‘사도적 교부들’이라고 하셨고 ‘속사도’라고도 하셨는데 그 차이점이라든지 아니면 그 용어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누군가 오늘 처음 오신 분과 같은 여학우가 긴장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예, 그럼요.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니까 말씀하신 대로 용어부터 설명해 드려야지요. ‘사도적 교부들’이란 말은 1-2세기에 살았던 초대교회 기독교 저자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그들의 작품들이 신약성경에 포함되었지만, 대체적으로 ‘사도적 교부들’의 작품들은 신약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 용어는 17세기, 즉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1672년 잔 코텔리에르 (Jean Baptiste Cotelier, 1646-1695)가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그가 쓴 책의 이름은 『사도시대에 활약했던 거룩한 교부들의 작품들』입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들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가졌던 분들을 의미했습니다. 이 분들의 글들은 대체적으로 서신들, 아니면 윤리적이거나 예식적인 일들을 적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해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예,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질문이 더 있습니다. 사도적 교부들의 작품들은 모두 한꺼번에 우리들에게 전해졌는지요?”
“참 어려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하셨으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외에 1세기에 등장한 기독교의 최초의 문학작품들을 우리는 대체적으로 ‘사도적 교부들’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음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또 앞서 말한 코텔리에르는 두 권의 책을 내면서 『바나바 서신』 『허마의 목자』 『클레멘트의 두 서신』 『익나티우스의 7개 서신』 그리고 『폴리캅의 서신』 등을 비롯하여 후기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을 속사도 작품들에 포함시켜 발표했습니다.
그러다가 약 100년 후, 1765년에 와서 안드레아스 갈란디 (Andreas Gallandi)가 디오그네투스 (Diognetus)에 보내는 서신과 파피아스와 쿠아드라투스 (Papias and Quadratus)의 파편들을 덧붙였습니다. 또 약 100년 후, 1873년에 이르러 비렌니오스 (Byrennios)에 의해 『디다케』가 첨가되면서 지금의 사도적 교부들의 작품들이 이뤄졌습니다.”
“위에 상술된 사도적 교부들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서신형식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 서신』과 『디오그네투스의 서신』의 특징은 신학적 소책자로서 기독교를 위한 구약성경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상 기독교를 위한 간략한 설명서로 보입니다. 『클레멘트의 두 서신』은 기독교 최초의 설교 또는 설교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마의 목자』는 묵시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특별히 세례 후 회개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디다케』는 교회 매뉴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피아스와 쿠아드라투스의 파편들은 신학적 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피아스는 주님의 교훈들을 설명하고 있는 5권으로 구성된 책으로서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에 대한 주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쿠아드라투스는 황제 하드리안에게 보내는 변증서였습니다.”
“그럼, 이제 ‘사도적 교부들’ 범주에 드는 작품이나 인물들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등을 돌려 흑판에 교수님은 사도적 교부들의 작품이나 인물들을 쓰셨다.
사도적 교부들
디오그네투스 서신
로마의 클레멘트의 서신 1
디다케
허마의 『목자』
익나티우스의 7서신들
폴리캅의 서신
파피아스
로마의 클레멘트의 서신 2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살펴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발췌하여 말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흑판에 쓴 이름들 중 아마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익나티우스, 폴리캅 정도는 이미 ‘핍박들’이란 주제를 통해 어느 정도 접했으리라 믿어집니다. 그럼 먼저 ‘디오니그네투스 서신’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꼭 하나 숙지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공부하는 ‘교부들’이란 주제에서 초대교회로 되돌아가자고 그렇게 역설했던 종교개혁자들이 말했던 초대교회가 어떠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물론 기록된 문서들 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초대교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4.1.1. 디오그네투스 서신
“디오그네투스 (Diognetus) 서신은 라이트푸트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 작품들 중 가장 귀중한 작품’이라고 불립니다. 조셉 라이트푸트 (Joseph Barber Lightfoot, 1828-1889)의 동상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대학원 입구에 우뚝 솟아 있는 신학자이며 더럼의 감독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연구에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이분에 대해 보다 아시기 원하시면, 바우먼과 클라우버가 편집한『기독교 역사가들』이란 책의 15장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앞으로 우리가 교회사를 배우는데 있어 기독교 교회사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다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다시 디오그네투스 서신으로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서신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약 100-150년에 쓰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서신은 사도적 교부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입니다만 형식에 있어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사도적 교부들의 수신인들은 대체적으로 기독교인들이었지만 이 서신의 수신인은 외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변증서에 가깝다고 해도 좋습니다. 무엇을 변증하려고 했는가 하면, 기독교 윤리와 삶에 대해서입니다. 기독교의 삶은 ‘생명의 길’, 즉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교와 유대교의 길과는 사뭇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삶은 영적이지 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서신의 5장 1-17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기독교인들은 민족, 언어, 또는 관습에 따른 인류들과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함께 도시에 살고, 그들이 말하는 언어를 말하고, 그들이 행하는 이상한 관습을 행하지 않습니다. . . . 헬라 도시들과 야만 도시들에 그들도 살고 있습니다. 관습대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함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탁월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독교들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외국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행하지만 외국인들처럼 모든 것을 견디고 있습니다. 모든 외국은 그들의 조국인 동시에 모든 조국은 그들에게 외국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며 자녀를 낳고 살지만 자녀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공유하지만 아내들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육체 안에서 살아가지만 결코 육체를 따라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아가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지키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그 법에 초월하여 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들에 의해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은 알려진 자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정죄를 받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처하지만 생명으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부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모든 것에 풍족합니다. 불영예적이지만 그 가운데서 영광을 받습니다. 중상모략을 받지만 변호 받습니다. 그들은 저주를 받지만 복을 빕니다. 그들은 비난을 받지만 존경을 표합니다. 그들이 선행을 행하지만 악행자로 처벌을 받습니다. 처벌을 받지만 그들은 생명으로 나갈 수 있기에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어떠십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이 서신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 삶이 사랑과 믿음의 삶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가는 삶임을 알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며, 심지어 적들까지 사랑합니다. 그들은 늘 하늘의 삶을 추구하며 세상보다 하늘의 기쁨을 추구합니다. 성적 생활에 있어 청결하며 육체를 따라 살아가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훌륭한 시민들입니다. 이렇게 디오그네투스 서신은 기독교 윤리를 균형 있도록 우리들에게 가르칩니다.”
“교수님, 디오그네투스 서신이라고 할 때 디오그네투스란 사람의 이름을 말합니까?”
“예, 참 좋은 질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사람 이름입니다. 아마도 존경받는 이교도로 여겨집니다. 디오그네투스란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안 시절에 흔했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선교사인 쿠아드라투스, 아니면 데오피루스, 클레멘트, 아폴로스, 마르키온, 아펠레스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그를 저스틴 마터라고 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작품 역시 원본이라기보다는 사본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을 뿐입니다.”
4.1.2. 로마의 클레멘트4.1.2. 클레멘트 1 서신
“클리멘트 서신, 즉 1서신은 1628년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시릴 루카리스가 성경의 복사본인 고대 알렉산드리아 문서(Alexandrian manuscript)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1633년 왕국 도서관장이알렉산드리아 문서 옥스퍼드에서 출판하여 영국의 왕 찰스 1세에게 헌납하였다. 제임스 1세에게 헌납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클레멘트라는 분은 베드로의 후계자며, 로마의 네 번째 감독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앞으로 변증가들 분야에서 등장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여기서는 ‘로마의 클레멘트’라고 부릅니다. 클레멘트는 파우티누스의 아들로서 로마인이었고, 베드로 또는 바울에 의해 개종하여 사도들과 함께 다니면서 그들의 사역을 도왔다고 여겨집니다. 베드로에 의해 개종되었다고 할 때는 그가 바나바와 함께 가이사랴에서 그를 만났을 것이고, 바울에 의해 개종되었다고 할 때는 그가 62년에 빌립보에서 바울을 만났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클레멘트는 성경 저자인 누가에게서 70인역 성경(Septuagint)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으로 믿어진다. 헬라어 실력은 탁월했음을 그가 쓴 서신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70인역 성경의 파편
“교수님, 강의를 막아서 죄송합니다. ‘70인역 성경’이라고 언급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 예, ‘70인역 성경’요? 제가 설명 없이 막 나가서 죄송합니다.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0인역 성경’이란?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번역은 대체적으로 3-1세기 B.C.에 이뤄졌다고 봅니다. 특별히 ‘70’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번역에 걸린 기간이 72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럼 계속할까요? 제가 어디까지 말씀을 드렸나요?"
“클레멘트에 관해 말씀하시던 중이셨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클레멘트는 로마제국 황제 도미치안 (81-96)의 핍박을 통해 인내와 신중을 겸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이은 황제 네르바 (96-98)가 짧은 시기동안 통치한 후, 이어서 황제 트라얀 (98-117)이 제국을 치리했는데 초기부터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불허했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 핍박의 시기라 불리는 이 시기, 즉 약 100년에 클리멘트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클레멘트는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고린도전ㆍ후서를 보낸 후였습니다. 그 당시처럼 클레멘트의 시대에도 여전히 불경건하고 혐오스러운 분열이 있었다. 그들은 존경받고 귀중한 지도자들에 반대하여 무리를 지어 항거했고 그들의 직분을 폐하려고 시도했습니다. 96년 로마제국의 황제 도미치안이 죽은 직후, 클레멘트는 로마교회의 이름으로 이 서신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쓰였다고 여겨집니다. 자신이 직접 썼지만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 서신을 가리켜 초대교회에서 가장 귀중하고 존중받는 작품이라고 격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각각 기독교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서로를 꾸짖거나 조언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이 서신을 쓰게 된 클레멘트의 동기는 당시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예스럽지 못한 자들이 영예스러운 자들에 반대하여, 유명치 않는 자들이 유명한 자들에 반대하여, 어리석은 자들이 현명한 자들에 반대하여, 젊은이들이 나이 든 자들에 반대하여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3:3).
더욱이 ‘선행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영예를 지키고 고결한 목회를 하지 못하도록 목회자들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44:6). 이렇게 반역하여 일어난 자들은 스스로 자제력이 강한 자들이라고 자랑하고(38:2), 신실한 자들로서 주장들을 판단할 수 있고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영지’(gnosis)를 가졌다고 주장하고(45:2), 방언을 한다며 자랑하고(21:5), 특별한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들은 대체적으로 분파를 일으켰다는 것이 교회사를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방금 ‘영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 뜻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예! ‘영지’요? 영지라 함은 우리 한국 분들에게는 ‘영지버섯’이 생각나죠? 그런데 전혀 다릅니다. ‘신비로운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사 세 번째 주제인 ‘이단들’을 배울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초대교회 이단들을 발생시키는데 가장 영향력을 끼친 혼합사상입니다. 그래서 이 사상을 가리켜 ‘영지주의’라 합니다.”
“다음은 32:4의 내용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 자신으로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 이해, 또는 경건으로도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마음으로 행한 일들로 인해서도 우리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모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방법을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 .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선행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그리고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그러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만 하는 것을 주님께서 참으실까요? 다시 말씀드리면, 자발적으로 열심히 모든 선행을 행하도록 합시다.
다음은 36:1의 내용입니다 :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변호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흠이 없으시고 고결하신 모습을 반영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의 눈은 열립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어리석음과 어두운 이해력은 빛으로 환해집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영원한 지식의 맛을 보도록 하십니다. 위엄에 가득 찬 밝음의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이름과 같은 천사들보다 훨씬 위대하십니다.
다음은 42:1의 내용입니다 :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를 위해 복음을 전수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고,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둘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의해 준비된 것입니다. 그분들의 교훈들을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은 또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신다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성령의 완전한 확신 안에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시와 시골을 통해 사도들은 그것을 전파했다. 그들은 미래 신자들의 감독들과 집사들로 초기 개종자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그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것은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독들과 집사들은 훨씬 오래 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의로 감독들을 세우고 믿음으로 집사들을 세울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어려운 핍박의 시기에 클레멘트는 성도들을 은혜로 보호하기 위해 감독들과 집사들을 세워 교회를 온전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조금 쉬는 시간을 갖고 다음의 교부의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성민은 정말 신기하고 귀했다. 1세기 신앙의 선배들의 글을 읽으니 가슴이 찡하게 느껴진다. 2,000년 동안 신앙의 선배들이 이러한 글들을 사모하며 읽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지난 시간에는 핍박에 대한 강의를 통해 전율을 느꼈다면, 이제는 보다 사려 깊은 강의를 통해 기독교인임을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확신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쉬는 시간 동안 녹차를 마시며 학우들과 담소를 나눴다.
4.1.3. 디다케
디다케의 3:1-2, 1:3“‘디다케’는 ‘12 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이유는 ‘디다케’라는 헬라어의 뜻은 ‘가르침’ 또는 ‘교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제목을 본래 ‘12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주는 주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디다케가 사도요한이 살아있을 당시 초대교회에서 사용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에서 사용된 최초의 교리문답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다케의 내용은 주로 둘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두 가지 길’이란 내용입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란 제목 하에 기독교인의 도덕성, 덕행과 악행들에 대한 개요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세례, 금식, 성체, 선교, 그리고 종말에 관련된 교회 예배의 규정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필로테오스 브롄니오스“그리고 1-6장은 세례받기 원하는 이방인들에 행해야하는 유대적 도덕 교훈집이며, 7장은 세례식에 대한 것이고, 8장은 주기도문을 포함한 금식과 기도에 관한 교훈이지만 마태복음의 것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9-10장은 성체식에서 사용되는 두 가지 기도 형식이고, 11-15장은 교회 지도자들과 방문자들에 관련된 다양한 교훈들이고, 그리고 마지막 16장은 종말에 관한 교훈입니다.”
“디다케의 저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인 것이라 합니다. 요즈음 학자들 가운데서는 디다케가 기독교인이 되기 전의 유대적인 자료들에서 저자가 임의로 삽입하고 제거하여 편집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아무튼 디다케의 전체 문서는 14세기동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었지만 현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73년 필로테오스 브롄니오스에 의해 어느 콘스탄티노플 수도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동방정교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디다케를 다뤄야만 하는 이유는 사도들의 시대와 사도적 교부들의 시대 간에 있었던 초대교회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는 옛 규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정들은 기독교 교회가 처음부터 유지하고 있었던 보편성을 증명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음은 디다케 작품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입니다. 두 길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이와 같습니다. 먼저, 당신이 하나님을, 즉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당신의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1:1).
가르침의 두 번째 계명입니다. 살인하지 마십시오. 간음하지 마십시오. 소년들을 속이지 마십시오. 도둑질 하지 마십시오. 마술을 행하지 마십시오. 마약을 드시지 마십시오. 낙태를 하지 마십시오. 신생아를 제거하지 마십시오. 거짓 증인이 대지 마십시오. 악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사악한 마음을 먹지 마십시오(2:1).
세례를 베푸십시오. 앞에서 진술한 교훈들을 말한 후, 성부, 성자, 그리고 성자의 이름으로 생수로 세례를 베푸십시오. 만일 당신이 생수가 없다면 다른 물로 베풀어도 좋습니다. 만일 냉수가 없다면, 온수로 해도 무방합니다. 만일 당신이 둘 다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세 번 부으시기 바랍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에 세례를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금식해야 합니다(7:1).
외식하는 자처럼 기도하지 마십시오.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당신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오며, 뜻이 하늘에서도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죄에서 구원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사옵니이다. 아멘. 이렇게 매일 세 차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8:1).
주일에 모이십시오. 그리고 빵을 떼고 성체를 베푸십시오. 하지만 먼저 당신들의 잘못들을 고백하십시오, 그런 후 당신의 희생은 정결하실 것입니다. . . . 이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14;1).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세상에서 속이는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의 손아래 놓을 것입니다. 세상이 시작한 이래 행해진 적이 없는 사악한 일들을 그는 행할 것입니다. . . . 그리고 진리에 대한 표적들이 이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첫째, 표적은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둘째, 트럼펫 소리에 대한 표적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것이며, 그분의 모든 성도들은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런 후 세상은 하늘의 구름 위에서 임하시는 주님의 재림을 볼 것입니다(16:3).
“어떠십니까? 현재에도 신자들이 꼭 필요한 말씀들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배우는 모든 진리들을 신앙의 선배들도 이미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4.1.4. 허마의 목자
허마의 목자“『허마의 목자』(c.140-150) 작품은 성경, 즉 로마서 16:14에 사도바울과 함께 등장하는 허마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허마는 본래 그리스인 노예였지만 로데라는 여성 기독교인에게 팔린 후에 자유인이 되었던 자입니다. 그는 로마와 쿠마에 사이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면서 사업에 전념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는 영적 삶을 등한히 여기게 되었고,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이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핍박이 일어나자 신앙을 고수하는 그와 그의 아내는 자녀들에 의해 고발을 받아 검거되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자녀들이 부모를 고발했다는 것입니다. 검거된 그들은 소유한 모든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해야하겠다는 열정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허마의 목자』를 쓰게 이른 것입니다.”
“교수님, 그러면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1628-1688)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나요?”
생전의 디트리히 본훼퍼 모습“예에, 그렇군요. 저도 생각지 못한 연상인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옥중에서 쓰인 책은 그 외에도 디트리히 본 훼퍼 (1906-1945)가 쓴 『옥중서신』(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도 있습니다.”
“교수님, 혹시 본 훼퍼 목사님이 아돌프 히틀러 암살계획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신 분이 아니신가요?”
“맞습니다. 독일고백교회 지도자였던 본 훼퍼는 아돌프 히틀러의 반셈(antiseminitic)사상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압베흐’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고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탈출시키는 일에 적극적인 행동을 하였기에 1943년 검거되었습니다. 히틀러 암살계획이 무산되므로 그것과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1945년 4월 9일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3주 후 그 도시는 자유의 도시가 되었는데 . . .”
“다시 『허마의 목자』에 와서 봅시다. 이 작품의 목적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교회의 무질서에 대한 책임을 각성시켜 회개하게 하는데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필요성, 회개의 효력과 조건 등은 행위의 기초가 됩니다. 허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트론’(Matron)이 자신에게 준 비전들과 계시들을 말하는 선각자로서 나타냅니다. 독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실제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허마는 예상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표상이 두드러집니다. 첫째는 각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다 어리고 보다 은혜가 풍성한 나이 든 여인(‘Matron’)의 형태를 가진 교회입니다. 두 번째 표상은 회개의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허마가 신뢰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또 『허마의 목자』의 내용은 세 가지로, 즉 5가지 비전들, 12가지 계명들, 그리고 비유들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덕행, 선행, 믿음, 주님을 경외, 순결, 단순성, 인내, 절제, 진실, 그리고 참 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하는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허마는 문화적인 인물이거나 심오한 학문을 지닌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적 자비에 대한 깊은 감성을 가진 탁월한 도덕가라는 재능들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허마의 목자』의 한 부분“그러면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이미 나눠드린 인쇄된 종이들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김정식 형제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의 말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평화롭게 지냅시다. 서로를 돌보도록 합시다. 서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당신들만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창조하셨다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떤 사람들은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인해 병 걸릴 것입니다. 마음대로 사는 것은 풍요롭게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공유하지 않는 당신들에게도 해가 될 것입니다.
다가올 심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피난처가 완성되면 선을 행하는데 주력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부귀를 자랑하는 사람은 가난한 자들이 주님께 부르짖지 않도록 그들을 보살펴야 할 것이고 피난처의 문을 항상 개방해야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박영은씨! 그 다음 부분부터 읽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왜 표상은 나이 많은 어느 여인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첫 번째 비전으로 당신에게 나타낼까요? 그 이유는 당신이 영적으로 나이 가 들었다는 것이고, 아니 이미 죽어가고 있으며 일어날 기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느슨한 삶과 당신이 가진 의심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일상생활로 인해 지쳐있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면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심으로 회개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집에서 기도하고 침대에 앉아 있을 때 어느 빛난 얼굴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는 목자와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어깨에 염소 가죽옷을 걸쳤고, 등에는 작은 가방을 가졌고, 그리고 손에는 지팡이를 지녔습니다. 다음은 그 목자가, 즉 회개를 촉구하는 천사가 나에게 받아쓰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어, 정기정 형제님! 우리를 위해 그 다음 부분을 읽어주시겠습니까?”
첫 번째 계명 :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들의 질서를 유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존재하는 것에 이르는 모든 만물들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당신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자기를 주도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계명 :
선을 행하십시오.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당신의 노력의 열매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과 고유하시고, 당신이 주어야하고 당신이 주지 말아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십시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에게 받은 모든 것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계명 :
진리를 사랑하십시오. 진리 외에는 아무 것도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모든 말에서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는 거짓된 것이 없으십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은 주님을 해합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훔치는 도적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받을 것처럼 동일한 방법으로 선물을 주님에게 되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영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합니다. 내 생애에 나는 진실한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심지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보이는 것처럼 가장하여 거짓을 나타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선생님! 그러면 채송화씨가 우리를 위해 계속하여 읽어주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마의 목자』의 한 부분
넷째 계명 :
죄를 짓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나는 명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들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능력으로 모든 것을 붙잡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회개해야만 합니다. 회개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회개는 곧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다섯째 계명 :
인내하신다면 당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움과 악령의 그늘은 그분을 결코 어둡게 할 수 없습니다. 넓고 열린 방에 거하시는 그분은 즐거워하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 . . 하지만 분을 가진 영이 성령을 내쫓으려고 할 때, 부드러우신 성령은 갑갑함을 느낄 것입니다. 주님은 인내 속에 거하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분노 가운데 거합니다. 그러한 영들이 성령과 함께 동일한 용기에 거하게 될 때, 그 용기는 결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영이 악령과 함께 또는 야단스럽게 거하시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인격으로부터 떠나십니다. 부드럽고, 인내하고, 조용한 장소, 즉 가정과 같은 곳에 거하시를 원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음성이 매우 곱습니다. 마치 성우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신 것을.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그러면 우리는 뭐야?’하고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의 순수한 의견을 왜곡시키지 마십시오. 하하하. 농담입니다. 다음은 구형철님께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여섯째 계명 :
의의 천사는 부드럽고 순결하고, 친절하고 조용합니다. 그분이 당신의 마음을 흔드실 때, 그분은 의, 순결, 거룩, 그리고 자기 극복에 관해 당신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며 모든 의로운 행위들과 모든 영광스러운 덕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격들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 때마다 의의 천사가 당신과 함께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노가 당신에게 일어날 때, 또는 증오의 불길이 타오를 때 사악한 천사가 당신 안에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계명 :
만일 당신이 주님을 두려워하신다면, 당신은 사탄을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능력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광스런 능력을 소유한 사람만이 두려움을 갖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을 위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여덟째 계명 :
간음과 난잡한 성행위, 마시기를 즐기는 것, 악의를 가진 사치, 먹기를 탐하는 것, 현란, 자랑, 교만과 자만, 거짓말, 중상과 외식, 원한과 악의 찬 언어 등과 같은 모든 행동들은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모든 악의 모양들입니다. 이런 모양들로부터 하나님의 종은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함께 읽고 각자가 받은 인쇄물을 집으로 가져가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초대교회 때에 가장 널리 읽혀진 『허마의 목자』를 읽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계속하여 순교자 『익나티우스의 7개 서신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중한 주말과 주일이 되기기를 바랍니다. 그럼 일 주일 후에 뵙도록 하지요. 샬롬!”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민은 오늘 배웠던 ‘교부들’의 작품을 머리에 새기려고 되새겨 보았다. 그러면서 집으로 되돌아가서 빨리 나눠주셨던 인쇄물을 읽어보리라 여겼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썼던 『허마의 목자』를.
선한 행동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십시오. 당신이 싸워야 하는 것과 부족해서는 안되는 것은 믿음의 모든 것, 주님을 경외하는 것, 사랑, 연합, 의로운 말씀, 진실, 그리고 인내 등입니다. 이런 것들보다 사람들의 삶에 소중한 것이 있지 않습니다.
다음의 것들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과부들에게 도우십시오. 고아들과 가난한 자들을 방문하십시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시오. 하나님의 종들이 가지는 모든 고초들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친절하십시오. . . 아무에게도 거침이 되지 마십시오. 요란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보다 가난 하십시오. 나이 드신 분들을 존경하십시오. 의를 실천하십시오. 형제의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학대를 그만 두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위로하십시오. 미혹당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지 마시고 돌이켜 즐겁고 신뢰하도록 도우십시오. 죄인들을 훈계하십시오. 빚진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억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런 것들과 같은 행동들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 상의 말씀을 읽으면서 성민은 자신의 신앙을 반영시켜 보았다. 정말 나는 이렇게 행하고 있는가? 아니 행하지 않는 것을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핑계로 삼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한 후, 곧장 방에 들어가 계속하여 읽어보았다.
아홉 번째 계명 :
의심하는 마음을 갖질 마십시오. 의심은 당신에게 ‘아마도’라는 마음을 주어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도록 미혹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아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분에 대해 많이 지은 죄들을 지었지만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로 향하십시오. 쉬지 말고 그분에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측량할 수 없는 자비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아까워하는 사람과 같은 분이 아니시기에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채우실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열 번째 계명 :
슬픔이 모든 영들 중 가장 사악한 것이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임을 당신이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통찰력을 전혀 갖고 있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슬픔은 다른 모든 영들이 결합한 것보다도 더욱 당신을 패망시킬 것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성령이 오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은 당신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 . .
열한 번째 계명 :
모든 문제에 있어 거짓 선지자에게 권면을 부탁하는 자마다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은 결코 권면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권면되어야하고 인간의 필요를 구하는 영은 지상적이고 얕은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 . .
열두 번째 계명 :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을 멸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것들은 다른 사람의 아내나 남편을 바라는 것, 넘치는 부를 탐하는 것, 과식과 과음, 그리고 어리석은 사치를 자행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리석은 것이고 하잘 것 없는 것입니다. 악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저항하도록 무장할 때, 당신으로부터 멀리 갈 것이며 당신은 그것에 다시금 속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이 바라는 것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으로 무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민은 계속하여 일주일 내내 교수님이 번역하여 주신 『허마의 목자』의 비전들과 비유들까지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것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해 구입했던 책들을, 즉 초대교회사와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것들 가운데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묵시문학의 그림『허마의 목자』는 헬라어로 쓰여서 동방교회들에 잘 알려진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서방교회들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묵시문학으로 불리는 것으로 교회가 나이 든 여성으로, 다음은 젊은 여성으로 등장하며, 목자는 회개하는 천사로 묘사되며,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책임지는 천사장을 통해 계시들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성민은 ‘묵시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교회사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묵시란 많은 사람들에게 감춰진 것을 특정한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성격을 지닌 문학 작품을 묵시문학임을 알게 되었다. 묵시라는 말도 ‘계시’라는 말로 이해해도 무관함을 알게 되었다. 이 가운데 드는 것이 신약성경에 있는 ‘요한계시록’도 그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50-350년 사이에 묵시문학이 일어났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선지서들과 묵시문학의 차이점은 선지서들이 만일 국가가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회개와 의를 강조하는 반면, 묵시문학은 다가올 구원과 보상을 인내하고 신뢰하는 것에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도 묵시문학에 속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24-27장, 33장, 39-35장 등이고, 예레미야 33장 14-26절, 에스겔 2장 8절, 그리고 38장-39장, 요엘 3장 9-17절, 스가랴 12장-14장, 그리고 다니엘 등임도 알게 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마가복음 13장, 마태복음 24장, 누가복음 21장, 데살로니가후서 2장, 그리고 요한 계시록 등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완전하게 보존된 문서가 아니라 3개의 불완전한 헬라어 문서들과 조그만 파편들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자료들에 대한 것을 찾아보고 알게 되니 성민 스스로 역사학도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교회사 학교’를 기다린다.
4.1.3 익나티우스 서신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익나티우스다시금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다. 성민은 지난 밤 잠을 설쳤기 때문에 눈 주위가 퉁퉁 부었다. 아침으로 빵 한 조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로 향했다.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선잠을 자는데 자신이 역사학도로서 교수님과 일대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성민에게 묻는다.
“성민씨! 오늘 배울 『익나티우스 서신』이 모두 몇 개인지 기억나십니까?” “예, 모두 7개 서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 . ” “그렇다네, 그러면, 그 가운데 한 서신이라도 읽어주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마에 보내는 서신을 읽도록 . . .” 하다가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선잠에서 깼다. 깨고 나니 꿈이었다. 아무튼 꿈에서도 그릴 만큼 기대한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급히 내렸는데 알고 보니 내려야하는 정거장이 아니라 한 정거장 더 가야하는데 졸다가 한 정거장 미리 내렸던 것이다.
“아차! 또 실수하네. 실수해 . . . 할 수 없지 뭐? 같은 노선의 버스를 기다렸다가 가야겠지! . . . 아니면 한 정거장 정도니까 걸아가? . . .”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버스가 다가왔다. 그 버스를 타고 성민은 ‘교회사 학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수업은 시작된다.
교수님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학생들에게 눈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모두들을 한 번 훑어보신 후 강의를 시작하신다.
로마의 콜레세움“익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와 에보디우스를 이어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초기 생애가 어떠한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가 69세에 감독직을 맡았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얼마간 안디옥에 머무는 동안 그들과 친분을 가졌던 익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에 의해 감독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후에 익나티우스는 약 30세에 사도요한의 제자가 되었고 서머나 감독 폴리캅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107-116년에, 그러니까 로마제국 황제 트라얀의 핍박 시기에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죄목으로 검거되어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 시에 있는 ‘콜로세움’에서 사자들에게 희생되었습니다. 로마로 압송당하는 동안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거치게 되었는데 그 교회들에게 영적 아버지로서 서신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익나티우스가 쓴 7개 서신은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빌라델비아, 서머나, 그리고 폴리캅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 등입니다. 그 서신들의 주제는 성직자들의 권위, 이단과 분열을 증오, 그리고 위대한 순교정신 등입니다.”
“익나티우스가 사도들과 직접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서신들은 사도적 교회와 후기 사도적 교회의 신앙과 실천에 무한한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15세기에 이르러 15개 서신들이 익나티우스가 썼다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동정녀 마리아와 요한에게도 보내는 서신들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7개 서신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서신은 위조품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그럼 본문을 직접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 . . 누구든 . . . 앞에 있는 인쇄물들을 나눠주시겠습니까?”
“먼저 ‘에베소 서신’을 권영철씨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데오포로스라 불리는 익나티우스는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성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충만하심이 함께 하시기 바라며 초기부터 성부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더욱이 인내하며 불변하는 영광이 늘 당신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성부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참된 수난을 당하면서도 연합하고 선택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놀라운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육신 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서언).
말하는 기독교인보다 침묵하는 기독교인이 훨씬 낫습니다. 말하는 것만큼 그가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으며, 그렇게 가르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한 선생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말하는 대로 행했던 분입니다. 침묵하며 행했던 모든 것들이 성부에게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유한 사람은 그분의 침묵이라도 참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의 침묵으로 인해 인정받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비밀들은 그분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분이 거하시는 것처럼 모든 것을 행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성전이 됩시다. 또 우리의 하나님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합시다.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앞에 그분을 항상 나타내고 그분을 사랑합시다(14장).
“감사합니다. 그 다음 신정희씨께서 ‘마그네시아 서신’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대신하는 감독들과 더불어, 사도들의 회의를 대신하는 장로들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업무를 맡은 나의 사랑하는 집사들과 더불어 모든 일에 조화를 이루며 행하시기 바랍니다(6장1절).
만일 고대의 관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소망을, 즉 주님의 날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살고 있는 소망을 갖게 된다면, 그분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9장1절).
“그리고 박주희씨께서 ‘트랄레스 서신’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독 없이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다는 실천을 꼭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에 대해 장로들에게 복종하시는 실천을 꼭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들을 분배하는 자들처럼 집사님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면에서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위해 집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교회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 . (2장2절).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듯이 집사님들을 존경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성부의 형태로 감독을 존경하듯이 그리고 하나님의 회의와 사도들의 모임처럼 장로들을 존경하듯이 말입니다. 이런 것이 없다면,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 . (3장1절).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음 서신, ‘로마서신’을 최요셉군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데오포루스라 불리는 익나티우스는 가장 지고하신 아버지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비를 발견하는 교회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사랑을 받고 조명을 받는 교회에, 우리 하나님, 곧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시는 로마인을 대신하는 지도권을 갖고 있는 교회에, . . .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모든 명령에 따라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나 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흠들을 말갛게 하실 그분의 모든 명령에 따라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나 된 사람들에게, 저는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서언).
모든 교회들에게 저는 서신을 씁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죽기를 원하는 저를 막지 않는데 뜻을 같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야수들의 먹이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이 길로 저는 하나님께 이르기를 원합니다(4장1절).
“정말 감동적이죠. 익나티우스는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에 자신이 죽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성민씨께서 다음 부분을, 즉 ‘빌라델비아 서신’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민은 손에 든 인쇄물들 중 ‘빌다델비아’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보며 읽어가기 시작한다.
하나의 성체를 사용하는데 관심을 가지십시오. 행하는 것마다 하나님을 따라 행하셔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육체가 있고 그분의 보혈의 연합 안에 한 잔이 있습니다. 장로와 함께 하는 감독이 있고 집사들, 즉 나의 동력자들인 종들과 함께 하는 한 감독이 있는 것처럼 한 제단이 있습니다(4장1절).
연합하는데 전심을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열과 분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은 거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연합으로 감독의 회의에 회개한다면, 주님은 회개하는 자들을 모두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으로부터 모든 사슬을 제거하실 것입니다(8장1절).
“교회의 연합을 위해 헌신한 익나티우스 감독은 마지막 순간에서도 성도들에게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연합된 모습을 유지해야한다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진정숙씨께서 다음 부분, ‘서머나 서신’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전한 것과 동일한 견해를 고수해야함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러한 교훈을 당신들에게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형태를 가진 금수들로부터 당신들을 미리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가능하다면, 만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란 심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회개한다면,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모든 것에 영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외적으로만 이런 것들을 행하신 것처럼 제가 외형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죽음, 불, 칼, 그리고 금수들에게 왜 제 자신을 맡기겠습니까? 칼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금수들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분입니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분과 함께 고통을 받기 원하기에 이 모든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소선희씨 다음 부분인 ‘폴리캅 서신’을 우리를 위해 읽어주시렵니까?”
악한 술책을 행하지 마시고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것에 대해 설교자들은 공적으로 설교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매에게 말씀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고, 마음과 영적으로 자신의 남편으로 만족하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같은 방법으로 사랑하는 형제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순결한 상태에서 모든 육체의 주님이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면서 거할 수 있다면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랑하기 시작하면, 그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자신을 감독보다 낫게 여긴다면, 그는 멸할 뿐입니다. 결혼한 남녀는 감독의 인준 하에서 연합을 이루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혼이 하나님에 따라 이행되고 자신들의 욕심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모든 것을 행합시다(5장).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는 위와 같이 교회의 연합을 매우 강조합니다. 어려운 핍박 시기에 요청되는 교회의 모습이지요. 마치 바울처럼 로마로 압송되는 가운데서도 교회들의 안녕을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7서신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와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4.1.4 폴리캅 서신
‘트로이’ 영화 포스터“교수님! 폴리캅이라는 분이 성경의 저자인 사도요한의 제자인가요? 그리고 몇 주 전에 교수님께서 로마제국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기에 장렬하게 순교하신 분인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 . . 그분의 유명한 말이 . . . ‘나는 86년 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한 번이라도 부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든 사악한 것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나를 구원하실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소선희씨!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잘 기억하시는 것도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잊어버리는 것도 교수들에게는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권사님은 목사님의 설교들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설교 일자까지 쓰시면서 적어두면 어떻게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두 번이나 세 번 하실 수 있겠어요? 허허허. 농담입니다. 아무튼 폴리캅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폴리캅은 약 168년에 순교하신 분으로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교회들 중 서머나의 감독이셨습니다. 서머나는 지금 터키이지요. 서머나라 함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그리스의 서사시의 작자 호머(Homer, 750-700 B.C.)가 태어난 곳이지요? 그가 쓴 서사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입니다. 최근에 방영된 ‘트로이’라는 영화의 배경이지요. ‘트로이의 목마’가 그 영화의 절정에 이르는 것이지요.”
폴리캅을 불태운 불길“서머나에서 화형을 당하신 분이시지요.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폴리캅이 사도요한의 제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지주의를 반대하여 방대한 책을 쓴 이레니우스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위에서 언급한 교부 익나티우스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폴리캅이 약 150년이나 160년 경 로마감독 아니케투스를 방문합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 일자에 관해 상이한 견해를 조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폴리캅은 성경에 나타난 유대의 절기대로 니산월, 즉 4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무슨 요일이 되든지 간에 말입니다. 그런데 로마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달 금요일에만 지켰습니다.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게 된 셈이죠. 앞으로도 부활절 일자에 관한 논쟁은 지속될 것입니다.”
“교수님! 방금 ‘앞으로도 . .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예를 들어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휘트비 회의가 개최되었던 사원“예? 좋은 질문입니다. 정말 놀랬습니다. 강의의 어떤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664년 영국에서 개최되었던 ‘휘트비’(Whitby) 회의였습니다. 영국 기독교 왕인 오스위는 부활절 일자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여기에서 영국 왕은 로마교회가 지키는 부활절 일자를 채택했습니다. 결정할 때 무슨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닙니다. 오스위가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가 믿는 바로는 베드로가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그를 대적할 수 없다. 나의 모든 지식과 능력을 그의 명령에 따라 행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에 그가 나를 부인할 것이기 때문에 열린 천국 문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아무튼 이 회의로 인해 영국은 로마교회의 전통을 따르게 된 유명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폴리캅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것은 ‘빌립보 서신’입니다. 신약성경의 이름과 유사하지요. 또 ‘폴리캅의 순교’라는 작품입니다. ‘폴리캅의 순교’라는 서신에 의하면 그가 2월 23일 토요일에 순교했다고 합니다. 폴리캅은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하신 분입니다. 정통신앙을 고수하신 분이시지요. 14장으로 구성된 ‘빌립보 서신’ 중 3장만 읽겠습니다. 1장, 5장, 그리고 12장입니다. 그러면 나눠드린 인쇄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1장을 정도전씨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과 더불어 저는 매우 즐겁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참된 사람의 모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고, 성도들에 걸맞은 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슬은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선택한 사람들의 왕관입니다. 또 우리 죄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한 열매를 낳게 하고, 지금까지 인내하며 신앙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있는 여러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너희들이 믿는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믿고 있으며 영광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느니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행위로 받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으로 구원받았음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5장 ‘집사, 젊은이, 그리고 처녀들의 임무들’에 대해 박사무엘군이 읽어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분의 계명과 영광에 합당하도록 살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집사님들은 사람의 종이 아닌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분의 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지내야만 합니다. 그들은 남을 헐뜯는 자가 되어서는 안도비니다. 두 가지 말을 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돈을 사랑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모든 것에서 참으며, 동정을 베풀며, 부지런하며, 그리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신 주님의 진실하심에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면, 우리는 미래의 세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이 죽음 자들 가운데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합당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의 조건은 그분을 믿는 것뿐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젊은이들도 모든 일에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합니다. 정결을 유지하고, 자신들을 모든 죄악의 고삐에 매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욕망에 따라 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은 영에 반대하여 전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음자들, 나약한자들, 학대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신실하지 못하고 되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 결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절제하는 자들은 장로들과 집사들에게 순종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녀들도 역시 부끄러움이 없고 순결한 양심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 . . 채송화씨가 마지막 12장, 즉 ‘다양한 은혜에 관한 권면’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성경말씀에 조예가 깊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것도 여러분들로부터 숨길 수 없다고 믿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를 내지 마십시오. 죄를 짓지 마십시오.” 또 “해가 지기 전에 화를 푸십시오.” 행복은 이것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며 하나님께서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들을 믿음과 진리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온유, 친절, 인내, 참음, 관용, 그리고 순결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 가운데 한 부분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아들을 일으키신 분이십니다.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왕들, 주권자들, 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십자가의 원수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열매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며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4.1.5 파피아스
“다음 우리가 살펴보게 될 교부는 파피아스(Papias, 약 60-130)를 말할 수 있습니다. 생소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파피아스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교부 이레니우스와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로부터 나옵니다. 그만큼 부족한 자료라는 말씀이지요. 파피아스는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 있는, 즉 에베소의 동쪽에 위치한 ‘거룩한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히에라폴리스 감독이었습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그분은 사도요한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또 사도요한에 의해 감독직에 수임되었다고 합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파피아스가 사도요한과 관련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후에 파피아스는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쓰신 유일한 작품이 현존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설명』입니다. 본래는 5권으로 구성되었지만 현재는 파편만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내용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피아스는 복음서에서, 특별히 구전과 우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말씀들과 비유들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들이나 우리 주님의 생애를 쓰려고 처음에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파피아스는 주님에게서 직접 들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으로 여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안드레, 베드로, 그리고 그외 사도들로부터 들어서 정리했다고 믿어집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로들’은 아마도 1세대 기독교인들을 지칭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파피아스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도 빌립과 그의 딸들이었는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자였습니다. 마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빌립과 유사하지요? 사실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또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파피아스는 빌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나눠드린 인쇄물을 참고하시면서 . . . 먼저 권정기씨가 ‘파편 1’을 읽어주시겠습니까?”
[모두 5권으로 구성된 파피아스 작품들은 주님의 말씀의 해석이라고 불립니다. 이레니우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그의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이레니우스의 말입니다. ‘지금의 이것은 고대인, 즉 요한의 말씀을 직접 들은 자이고 폴리캅의 친구인 파피아스의 작품입니다. 5권은 그가 쓴 것입니다.’ 그의 책 서문에서 파피아스는 자신이 거룩한 사도들로부터 직접 들었고 목격한 자는 아니지만 사도들과 친숙한 사람들로부터 우리 종교의 진리들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가 들은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장로들로부터 조심스럽게 들은 교훈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고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든지 간에 그들의 진실성을 당신들에게 확신시키면서 저의 해석들을 조심스럽게 나타내려고 합니다. 저는 대중들처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가르친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한 계명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즐기는 것보다 주님께서 신앙에 이르도록 하는 계명들을 실천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즐기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장로들에게서 온 사람들에게 저는 안드레 또는 베드로가 무엇을 말했고, 빌립, 도마, 야고보, 요한, 마태, 또는 주님의 다른 사도들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그리고 아리스티온과 주님의 사도 장로 요한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목소리를 통해 제게 들려준 것은 책들에게서 얻는 것과 다르다고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파편 4’를 구형숙씨가 읽어주시겠습니까?”
[주님의 사도 요한을 보았던 장로들이 당시에 주님께서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들은 것을 기억했습니다.] 포도들이 자라 수만의 가지를 낼 것입니다. 그 가지들은 수만의 잔가지들을 낼 것입니다. 그 잔가지들은 수만의 새싹들을 낼 것입니다. 그 새싹들은 수만의 송이들을 낼 것입니다. 그 송이들은 수만의 포도들을 맺을 것입니다. 그 포도들은 많은 포도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성도들은 송이를 붙잡을 것이고, 나머지 성도들은 ‘내가 더 좋은 송이를 갖고 있는데’하며 하나님께 큰 소리로 찬양을 올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밀의 이삭도 수만의 이삭을 산출할 것입니다. 모든 이삭은 수만의 낟알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낟알들은 수만은 곡류가 될 것입니다. 모든 곡류들은 맑고, 깨끗하고, 순결한 밀가루를 수없이 만들 것입니다. 사과들, 각종 씨앗들, 그리고 풀들은 비슷한 방법으로 열매들을 맺을 것입니다.
더욱이 모든 동물들은 세상의 산출들을 먹으면서 평화롭고 조화 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요한의 말씀을 들은 자며 4권에서 폴리캅의 친구인 고대인 파피아스가 쓴 작품임을 제가 증명합니다. ‘이런 것들은 신자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배반자 유다는 의심하면서 하는 말이 ‘어떻게 저런 일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언급했던 것들과 유사합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하더라.’(사 6:6-8)]
“이제는 1세기의 마지막 교부의 작품을 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클레멘트 2 서신’입니다.”
4.1.6 클레멘트 2서신
“『클레멘트 1서신』과는 다른 저자에 의해서 쓰인 것인데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클레멘트 2서신』은 설교입니다. 무명의 설교문이라 불리기도 하죠. 그렇다고 요즘의 설교들처럼 특별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말해보라면,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언한 후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가치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4장에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계명들을 지켜야 하며, 세상에 속하지 않고 살아야만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죠. 5~7장에서 하늘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고요. 8~17장에서 기독교인들의 회개, 순결, 사랑, 하나님을 믿는 신뢰, 그리고 교회에 대한 헌신 등과 같은 실천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18~20장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미 알게 되었다시피 이 설교의 주제는 기독교인들의 삶과 그 결과 하늘나라에 들어감을 이야기 합니다. 설교의 구성은 그렇게 조직적이거나 순서적이지도 않고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1~2세기 작품인『허마의 목자』를 많은 점에서 닮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고린도에서 읽혀졌기에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클레멘트의 두 번째 서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나눠드린 인쇄물에서 8장 ‘지상에 있는 동안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 박주식씨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늘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조물주 손에 있는 진흙에 불과 하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는 화병을 만들기로 계획한다면 원치 않는 그릇으로 만들어진다면 언제든 깨뜨려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일 화로에 던지기 직전이라면 결코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마음을 다해 육체를 따라 행했고 사탄을 따라 행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주저하지 말고 주님께 우리의 허물을 아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떠난 후에 라면 고백하거나 회개할 기회를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성부의 뜻을 행하고, 거룩한 육체를 지키고,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면서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 16:10). 이 말씀의 의미는 거룩하고 더럽히지 않는 육체를 가지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19장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를 전옥녀씨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여! 쓰인 하나님 말씀에 마음을 집중하시기를 간절히 당신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읽게 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게 되면 이르게 되는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의지하고 열심히 행하는 모든 젊은 사람들이 됩시다.
불의에서 의로움으로 되돌아오도록 환난을 당할지라도 낙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범하는 사악한 행위들이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있고 불신앙 가운데 있으면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어두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를 행하십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런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불멸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기쁨을 맞이할 것입니다. 현재에 고난을 직면하는 사람들은 때가 이르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슬픔이 없는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1세기와 2세기 초에 살면서 귀한 작품들을 남긴 분들이 있지만 여기까지만이라도 우리가 접하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 그의 설교를 이해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쉬는 시간을 갖고 계속하여 2-3세기 교부들, 즉 변증가들에 관한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4.2 변증가들
“초대 교회에는 많은 변증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 가운데 6인물을 꼭 기억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스틴 마터(d. 약 165)
이레니우스(약 130-200)
클레멘트(d. 약 217)
터툴리안(약 155-230)
오리겐(약 182-251)
키프리안(d. 258)
“어때요? 낯익은 인물들이 있죠? . . . ‘핍박들’이란 주제를 통해 이미 이런 분들의 순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기억이 나지 않으시거나 생소하다면 ‘교수가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제 잘못이고 저의 부덕입니다.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도록 잘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한 바탕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억납니다. 교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또 한 바탕 웃음이 학생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아무튼 생소한 주제이거나 이름들이 아님에는 틀림없었다.
“이 6명의 사람들을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는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먼저 동방교회의 저스틴 마터와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그의 제자 오리겐, 그리고 카르타고의 터툴리안과 키프리안으로 짝을 이룹니다. 연대순은 아니지만 이렇게 짝을 지워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6인물 외에 어떤 변증가들이 2~3세기에 활동했는지, 아니면 어떤 지도자들이 있었는지 이름이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장권이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변증가들로 활동한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폴리투스(Hippolytus, 236), 코넬리우스(Cornelius, 253), 노바티안(Novatian, 257), 대 디오니시우스(Dionysius the Great, c. 264), 디오니시우스(Dionysius, 268), 피르밀리안(Firmillian, 268), 그레고리 타우마투르구스(Gregory Thaumaturgus, 268), 아르켈라우스(Archelaus, 282) 등입니다. 혹시 낯익은 인물들이 있는지요?” 그러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모두들 시선을 책상만 보고 있었다. “저 역시 이분들에 관해 자세히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생소하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소심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등장할 때 잠깐 살펴보아도 좋을 인물들입니다. 교회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허허허.”
“자 그러면, 먼저 저스틴 마터라는 분에 대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4.2.1 저스틴 마터
저스틴 마터“‘저스틴 마터’라는 이름은 ‘저스틴 순교자’라는 말입니다. ‘마터’란 영어로 ‘martyr’, 즉 순교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라틴어로 읽게 되면, ‘유스티누스’라고도 합니다. ‘저스틴’이란 말은 영어식 이름이지요. 혼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저스틴은 순교하신 분이심이 틀림없음을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저스틴은 철학자, 순교자,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입니다. 지난 번 ‘핍박들’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로마제국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순교하신 분이심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그분에 대해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철학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저스틴은 약 110년경에 태어나 165년경에 순교하신 인물입니다. 야곱의 우물 근교이며 현재 나블로우스, 즉 사마리아의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난 이방인이었습니다. 부친과 조부는 로마인으로 여겨집니다. 분명히 교육을 잘 받은 인물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한 편으로는 경쟁을 즐겼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영혼의 갈망을 채울 수 있는 지식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토아 철학과 플라톤주의에 심취했다고 할 수 있죠. 플라톤 철학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나이 많은 분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저스틴과 함께 철학적 주제들을 논의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스틴에게 철학자들이 있기 전에 있었던 히브리인 선지자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들은 저스틴은 진리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스틴이 가르친 당시의 에베소내 영혼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선지들에 대한 열망, 그리스도 친구들에 대한 열망으로 저는 사로잡혔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분이야말로 참된 철학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저스틴은 이러한 분, 즉 구세주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보다 알기 위해 기독교인들의 삶에 관심을 보다 깊게 갖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철학자로서 옷을 입고 여전히 다녔습니다. 에베소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쳤고 후에 로마에서도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담대하게 죽음을 기도로 맞이하는 순교자들“그런데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서고 두려워하지 않는 초월적인 용감함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놀랍게도 견고히 고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스틴은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죠. 당시 기독교인들의 순교는 그야말로 이방인들, 즉 비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적인 사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순결한 삶은 이방인들에게 큰 도전과 아울러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전파가 이러한 것으로 인해 널리 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저스틴이었습니다.”
“개종한 저스틴은 복음전도자로서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철학임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알렸습니다. 여러 곳으로 여행을 하던 중 에베소에 거하기도 했고, 상당한 기간 동안 로마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에 거하면서 아마도 기독교 교사직을 감당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곳에 거하면서 견유학파(Cynics)가 그에 대해 음모를 꾸며 검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스틴은 순교로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했습니다. 165년 그는 참수형을 당해 순교를 하게 이릅니다.”
4.2.1.1 스토아 철학
“저스틴의 삶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그가 쓴 작품들에서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 자신의 작품들을 썼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기에 살면서 작품을 썼다고 믿어집니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순교를 당했다고 믿어집니다.” “저 . . . 교수님!” 정현숙씨가 질문을 한다. “죄송하지만 저스틴이 로마에 거하면서 ‘견유학파’를 만났고, 그들이 그에 대해 음모를 꾸몄다고 하셨는데 그 학파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예, 그렇군요. 제가 보다 잘 설명하지 못했네요. 질문을 잘 하셨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추종자였던 안티스테네스(약 445-365 B.C.)가 세운 학파입니다. 견유학파는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곧 덕스러운 삶이라고 보며 덕행을 행하게 되면 행복을 얻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가치관, 즉 부귀영화와 사회적 신분과 같은 가치관을 포기했습니다. 그런 가치관은 자연과 위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견유학파는 그렇게 잘 조직적인 철학학파는 아니었습니다. 철학 체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한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은 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많은 사상들은 스토아 철학(Stoicism), 즉 금욕주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질문이 있으시나요?” “예, 교수님! 또 질문이 있는데요. ‘스토아 철학’이 무엇인가?”하고 정현숙씨가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물었다.
제노“‘스토아 철학’이란 우주처럼 사람들의 정치적이고 개인적 삶을 질서 있기를 바라는 헬라 철학을 말합니다. 모든 스토아 철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 명령이 자연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초기 스토아 철학자는 에베소의 헤라클리투스입니다. 그는 스토아 철학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개인이 자연법이나 로고스에 복종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했던 견유학파들처럼 덕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300년B.C.경 제노라는 사람이 아테네에서 강의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헬라인들에게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를 규명했습니다. 그런 후 A.D. 1-2세기에 이르러 이미 보았던 세네카와 황제 아우렐리우스에 오면서 스토아 철학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세네카(약 4년 B.C.-A.D. 65)는 황제 네로의 스승이기도 했죠.”
“이들이 말하는 윤리는 나무의 열매처럼 표현했습니다. 삶은 우주의 은택과 질서를 따라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삶의 결과는 영적 평안과 부귀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영혼의 행복은 신성을 닮아 가는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처럼 자선적이고, 자발적이고, 그리고 한결같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언제든 덕행을 쌓아야한다고 믿었죠. 최고의 덕행은 행위가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성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어떻게 나눠줄 것을 아는 공의이며, 자제심입니다.”
4.2.1.2 작품들
저스틴의 전집 안표지“저스틴의 작품들은 2세기에 쓰인 것으로 기독교인들을 위한 『변증서』로 유명합니다.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변증서 1』과 『변증서 2』로 나눠집니다. 『변증서 1』은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에게, 그의 아들들 루키우스와 마르쿠스 아렐리우스, 그리고 로마 원로원들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작품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인 『변증서 2』는 로마 원로원들에게 보낸 작품입니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로마인들의 핍박에 대한 변증서란 말이죠. 이 작품은 당시의 이교도들과 기독교인들 간에 있었던 관계들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우리들에게 전해 줍니다.”
“그 외 그의 작품은 『트리포와의 대화』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유대인 트리포에게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아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외 저스틴의 작품들은 소실되었지만 ‘헬라인들에게 주는 글’ ‘헬라인들에게 주는 권면’ ‘하나님의 유일한 통치에 대해’ ‘디오그네투스 서신’ ‘부활에 관한 여러 말씀들’ ‘여러 파편들’ ‘참된 신앙 해설’ ‘정통을 위한 답변’ ‘이방인들에게 묻는 기독교 질문들’ ‘기독교인들에게 묻는 이방인들의 질문들’ ‘제나스와 세레누스 서신’ ‘아리스토텔레스 어떤 교리들에 대한 논박’ 등이다. 어때요? 상당한 많은 작품들을 썼죠?”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지금 저스틴의 귀한 작품들을 저희들에게 소개해 주셨는데요. 그런 내용을 저희들이 접할 수 있나요?”하고 뒷자리에 앉아있는 한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하지만 한글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영어로는 번역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선상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 그 사이트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http://www.iclnet.org/pub/resources/christian-history.html 에 들어가시면 저스틴의 작품들만 아니라 초대교회, 즉 우리가 배우는 모든 교부들의 작품들을 영어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스틴의 작품들 중 『변증서 1』의 구성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는 것이 불공정한 것임을 철학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변증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참된 철학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1-12장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증거들을 제시한 후, 13장부터 긍정적인 증거들을 설명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즉 모든 만물의 창조자를 경배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올바른 도덕성을 가지도록 했고,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61-67장에서 기독교인들의 매일의 삶들을, 즉 세례, 성찬, 그리고 주일예배 등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변증서 2』는 부록으로서 핍박 아래 살았던 기독교인들의 삶을 강조하면서 인내할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트리포와의 대화』는 서론에 이어 10-30장에서 기독교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법임을 설명합니다. 31-108장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인 부분인 109-142장에서 기독교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제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이러한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죠? 그러면 . . .”
잔잔한 미소를 띠시면서 학생들을 한 번 훑어본 후 조용히 “그러면 . . . 영어를 잘해야죠?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영어 잘한다고 잘난 체하네’라고 하시는 분들이 혹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허허허.” 웃으시면서 그동안 강의를 하시면서 쓰셨던 내용들을 지우셨다.
4.2.2 이레니우스
흑판 중앙에 교수님은 아래와 같이 쓰셨다.
이레니우스 ― 성경중심
사도적 계승
이단들에 대하여
우리를 향하시면서 말을 시작하셨다.
“이레니우스는 ‘성경중심’, ‘사도적 계승’, 그리고 ‘이단들에 대하여’라는 말과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성경, 사도적 계승, 그리고 이단들’을 기억하시면서 이레니우스의 생애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4.2.2.1 생애
이레니우스“이레니우스의 출생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이는 약 120년, 또는 130년이라고도 합니다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자로서 소아시아 출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기독교인들로 그를 위대한 교회 지도자이며 속사도인 폴리캅, 즉 서머나 감독 폴리캅에게로 보내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에게서 앞으로의 사역을 위한 위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되었던 것이죠. 폴리캅 역시 이레니우스의 현명함과 성실함을 보고 그에게 경건과 학자의 자세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대체적으로 나온다고 봅니다. . . .”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조금 후에 모든 학생들이 그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모두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맞습니다. 교수님! 존경합니다. 맞습니다”라고 하며 반복한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미소를 머금은 채로 교수님은 이레니우스에 관한 생애를 계속하신다. “폴리캅의 인도 속에 이레니우스는 훌륭한 성도, 학자,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마치 폴리캅의 복사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훌륭한 분을 만나면 그의 목소리까지 닮고 싶고 그분의 옷차림까지도 아니 걸음걸이까지도 닮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것처럼 이레니우스는 폴리캅을 닮아갔습니다. 당시에 이단들을 직면하기 위해 이레니우스는 이교 철학자들을 탐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터툴리안을 비롯한 여러 변증가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철학의 오류들, 영지주의자들과의 전투들을 수년 간 경험한 이레니우스는 스승 폴리캅의 권면에 따라 고올 지방, 즉 지금의 프랑스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그 이유는 동방교회, 즉 소아시아의 이단자들이 서방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4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론 강을 건너 리용이라는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리용 감독 포티누스를 도왔습니다. 나이가 많은 포티누스는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이탈적인 삶들을 직면하고 대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의 도움이 요구되었던 것이지요.”
“177년 경, 즉 그러니까 로마제국 황제 아우렐리우스 시기에 포티누스의 사명을 받들어 이레니우스는 로마로 간 사이에 그 지역에 핍박이 있었고 감독 포티누스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되돌아온 이레니우스는 그를 이어 리용 감독이 되었습니다. 감독이 된 이레니우스는 리용을 기독교의 모범지역으로 인도해갔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제국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가 10년째 치리하던 시기, 즉 202년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순교를 당했습니다. 어떤 형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4.2.2.2 작품들
집필하는 이레니우스“그도 저스틴 마터처럼 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5권으로 된 『소위 영지주의라 불리는 자들을 발견하고 이기기 위해』라는 책을 180-189년에 썼습니다. 참으로 긴 제목이지요. 그래서 이 책을 흔히들 『이단들에 대하여』라고 부릅니다. 원본은 그리스어였지만 지금은 상실된 상태고 현존하는 것은 라틴어판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양한 영지주의 단체들의 가르침을 논박하는 것입니다.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 . . ‘낙 함마디’라는 영지주의 문서가 1945년에 발견된 것을 . . .” 학생들 가운데 어느 분이 대답하기를 “혹시 교수님, 그 문서가 ‘다빈치 코드’에 나오지 않나요?” “예, 맞습니다. 읽어보셨네요. 그렇습니다. 이 문서가 발견되지 전, 즉 1945년까지는 ‘영지주의’에 관한 책으로서 이레니우스의 이 작품이 최고였습니다. 이 작품은 1885년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교수님, ‘영지주의’에 관해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나요?” 질문했던 학생이 또 한 번 질문했다.
“그렇구먼요. 죄송하지만 지금 말씀드릴 수도 있는데요. 아마도 초대교회사의 네 가지 주제들 중 마지막이 ‘이단들’에 관한 것인데 그때 제가 자세하게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예, 좋습니다. 교수님, 저의 이름은 ‘인내’입니다. 기다릴 수 있어요”하며 눈을 아래로 깔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그러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디까지 했나요? . . . 그렇지요. 이레니우스의 작품인 『이단들에 대하여』는 5권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친구의 부탁을 받아쓰게 되었는데 분명한 것은 이단자들의 오류들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감독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1권은 다양한 영지주의 종파들의 오류들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발렌티니아니즘(Valentinianism)에 관한 것입니다.
영지주의를 가장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바로 발레티니안이죠. 그리고 2-5권은 영지주의자들의 오류들을 논박하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2권에서 이레니우스는 철학적으로 접근해 가서 논박한 후, 3권에서 ‘전통’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규율’을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지요. 그 전통을 통해 교회의 순결성을 알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교회와 사도들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정반대가 된다고 합니다. 4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는 구약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특별히 마르키온에 반대하여 신ㆍ구약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5권에서 어떤 강조를 하지 않지만 이레니우스는 종말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갖습니다.”
“정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레니우스는 앞으로의 영지주의 사상이 수많은 이단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고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를 설명함에 있어 그는 자세하지만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인용한 문서들의 정확한 연대와 핵심을 지적하고 논리적으로 논박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의 책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논증 한다』는 『이단들에 대하여』를 쓴 후에 쓰였습니다. 마르키안이라 불리는 친구에게 보낸 것이죠. 이 작품에서 이레니우스는 먼저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고 선지자들로부터 이런 교리들을 찾아내었다고 강조하면서 교리의 진실성을 나타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용상 『이단들에 대하여』와 유사한 논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의 작품 가운데 몇 가지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단들에 대하여』에서 발췌한 부분들을 나눠드렸는데 혹시 받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나요? 그러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 책의 1권 10장 1절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상 끝까지 어디든지 교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한 분이신 하나님, 성부, 전능자, 그리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를 믿는 신앙을 사도들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신앙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섭리와 재림, 그리고 동정녀 탄생, 그분의 고통,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심, 성부의 영광을 받으시면서 모든 다시 세우시기 위해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알리시는 성령을 믿는 신앙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불가시적 성부에 따라 우리의 주님이시고 하나님과 구세주와 왕이 되시는 예수ㅗ 그리스도에게 모든 무릎을 꿇을 것이고 모든 입들이 그분에게 고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배교자들이 되고 범죄한 사악한 자들과 천사들, 또 불법을 자행하고 사람들 가운데 신성모독적인 행사를 범한 자들을 영원한 불 못으로 던질 것입니다. 하지만 의롭고 거룩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으로 가득 찬 복과 영생을 베풀 것입니다. 또 그분의 계명, 즉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며 회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베푸십니다.
“다음은 3권 3장 1절의 내용입니다. 강경희씨가 읽어주시겠습니까?”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쉽게 얻게 되는 진리를 다른 분들 가운데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들은 은행에 많은 돈을 가진 한 부유한 사람과 같습니다.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삶의 물을 그들로부터 길어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생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도둑이며 강도들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진리의 전통을 열심히 고수하게 되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우 감동적이죠. 약 1900년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를 향해 주는 메시지들입니다. 이렇게 고전들을 읽다보면 마치 명상록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저는 받곤 합니다. 이런 감동이 모든 분들에게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수업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주 토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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