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는가?
사울⇒바울 ‘유감’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는가?”
기독교 신자들 중에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데 가장 앞장을 선 유대인 사울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과거의 신분과 삶을 청산하는 의미에서 이름까지도 사울을 버리고 바울로 바꾸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학교나 교회에서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가르쳤거나,
혹은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처럼 사울로부터 바울에로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설교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는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극심한 기독교인 박해자였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기독교 복음을 널리 전파한
위대한 복음전도자로 바뀌어졌다는 것은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전혀 근거가 없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이 아니고,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바울과 사울이라는 두 이름 아래 살아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울은 본래 팔레스틴 유대 본토 출신이 아니고 주후 1세기 로마제국의 관할 하에 있었던 다소(지금의 터기 남부)에서 다소와 로마시민권자로
출생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이민자 출신 유대인이었다(행 21:39; 22:3,27-29).
그래서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 이름인 사울과 로마 이름인 바울의 두 이름을 가졌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미국에 이민간 교포 자녀들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 이민간 우리 교포들이 미국에서 자녀를 낳게 될 경우 그 자녀는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 때문에 부모는 반드시 아이에게 미국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포들은 아이에게 법적으로 붙여져야 하는 미국이름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한국이름도 동시에 붙여준다.
그래서 미국의 교포 자녀들은 학교에서는 미국이름으로 불리어지고 가정에서는 한국이름으로 불리어진다.
따라서 미국 교포자녀들이 미국이름과 한국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바울이 유대인이름과 로마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다메섹 사건 이후에도 오랫동안(적어도 10년 이상) 여전히 사울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사도행전 9:10-30절에 따르면 바울은 다메섹 사건 후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게 될 때도,
예루살렘교회를 방문 할 때도, 그리고 자신의 고향 땅인 다소에 복음 전도자로 보냄을 받을 때도 여전히 유대인인 사울로 불리어졌다.
사도행전 11:25-26절에 따르면 바울이 다소에서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교회의 동사 목회자로 초청을 받을 때도 여전히 사울로 불리어졌고,
사도행전 11:30절과, 12:25절에 따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할 때도 여전히 사울로 불리어졌다.
사도행전 13:1-9절에 따르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첫 번째 이방인 선교사역을 시작할 때도 여전히 사울로 불리어졌다.
유대인 이름이 아닌 로마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은, 사도행전 13:13절 이하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서 였다.
아마도 바울은 로마의 행정지역인 이방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대인이름인 사울보다 로마이름인 바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유감스러운 것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잘못된 가르침과 주장이 사울-바울의 경우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 날 교회와 학교에서 종종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를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가르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는가? (행 13:9)
글 / 최갑종(기독신학대학원장)
이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Then Saul, (who also is called Paul,) filled with the Holy Ghost, set his eyes on him.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고(창 17:5), 사래는 사라가 되었고(창 17:15),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창 32:28).
예수님께서 시몬을 만나시고는 그가 게바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2).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지요.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교회 내에서 거의 일반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된 것 같이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라고
주장합니다. 얼마 전 조카가 다니는 교회 학교에서 나눠줬다는 부산 지역 성경고사 예상문제에도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정말 성경에는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일까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잠시 접어두고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라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사울이 회개한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돌이킨 것은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 즉시로 회당들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거늘
[22] 그러나 사울은 점점 더 힘을 얻어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입증하며 다마스커스에 거하던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니라(행 9:20,22).
그는 주님께로 돌이킨 후에 담대하게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22에서 우리는 그가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바나바도 그를 사울로 불렀으며(행 11:25),
사도행전 12장에서도 그는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행 12:25).
그때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떠나서(행 11:25)
바나바와 사울은 자기들의 사역을 마치고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25).
물론 성령님께서도 그를 사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시킬 일을 위해 그들을 내게로 구별하라, 하시니(행 13:2)
만약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과 같이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면,
그가 회개한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울은 회개한 후에도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사울이라는 이름과 바울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으므로 이런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나오다가 사도행전 후반부에 가서는 바울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고 무엇이건 연결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울에서 바울로의 변화"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울이라는 이름은 회개하기 전의 부정적인 뜻을 가진 이름이고,
바울이라는 이름은 회개한 후의 좋은 이름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울에게 바울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으며(빌 3:5), 동시에 로마 사람이었기에(행 16:37),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과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둘 다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9을 보면, 사울이 "바울이라고도"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Then Saul, (who also is called Paul,) filled with the Holy Ghost, set his eyes on him.
"사울은 바울이라고도 한다." 라는 표현은 그가 회개하고 나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부터 그는 두 가지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사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바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사울의 또 다른 이름이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로마 시민권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여기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울에게는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사도행전 후반부로 가면 자신이 로마 사람인 것을 내세우며 바울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성령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선교 여행을 떠난 후부터입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의 이름은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로 소개되었습니다(행 13:9).
그리고 사도행전 13:13에서는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에 바울이라는 이름이 단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울 일행을 핍박하고 대적하자, 그는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 사역에 나설 것을 선포합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되어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영존하는 생명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판단하므로, 보라,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그가 이방인 선교사가 되어 활동하는 데는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보다는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했을 겁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 중에도 한국 이름 외에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더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 목사님이 회개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 후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이 몇 번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총독 앞에서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간증할 때 과거를 회상하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행 22:7,13, 행 26:14).
그러므로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이 된 것이 아니라, 본래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과 바울이라는 이름을 둘 다 갖고 있었는데,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과연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 라는 뜻일까요?
그래서 큰 자, 교만한 자가 회개하고 낮은 자, 작은 자가 되었을까요?
이것 역시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바울(파울로스)이라는 이름에는 '파울루스'(작은 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사울은 '큰 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 이름인 사울은 "묻다, 요청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솨알에서 파생된 '샤울'에서 나온 것으로,
"간구한 바 된"이라는 뜻이지 큰 자나 교만한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가 주께 묻고 간구해서 얻은 아들이라고 하여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따라서 "스스로 큰 자라고 하는 교만한 사울이 회개한 후에 사람이 변하여 겸손하고 작은 자 바울이 되었다"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일반상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반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믿음과 지식의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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