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 능력의 비밀

 

하나님의 용서는 일회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날들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행하여가는 하나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죄 용서함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9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만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죄 용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들입니다.
1. 그분은 우리가 시인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2. 그분은 우리의 죄를 잊으시고 다시는 기억치 않으십니다.

 

시인과 회개는 우리가 죄를 용서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조건들입니다.

우리가 이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에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심이 감응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잊으시며, 우리도 역시 용서하고 잊기를 원하십니다.

아마도 당신과 나는“난 용서할 수 있어. 하지만 잊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용서와 잊음은 마치 시암 쌍둥이(Siamese twins - 몸이 붙어있는 쌍둥이)와 같습니다.

용서와 잊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용서한 후에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매우 단순합니다.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황 설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이 강력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다른 형제들로부터 제자들이 해를 입게 되었을 때, 그 형제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7:3-5절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 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은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하는 말씀을 드려야 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감정 또는 가시적인 주위 상황들에 따라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더 많이 용서하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당신의 믿음은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증가한 믿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증가하게 할 것입니다.

 

구약속의 요셉은 용서와 잊음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요셉은 그의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으므로 형들의 비열한 행위를 용서하고 잊었습니다.

므낫세라는 이름은 “잊게 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셉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지었는데, 이는 “두 배의 과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잊을 때에 모든 영역 즉 영적,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영역에서 두 배의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생애에서 두 배의 결실을 맺지 못한 영역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용서하고 난 후에 또한 믿음으로 신령한 잊음의 능력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신령합니다.

잊음도 역시 신령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며, 우리의 감정을 의지하도록 속임수를 쓰기를 좋아합니다.

이제 당신이 이러한 죄악과 사탄의 계획 적인 덫에서 자유케 된 것에 대해 감사하세요.

 

용서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풀 수도 있고 묶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고통에서 놓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용서하지 않음으로 우리 자신을 고통의 자리에 둘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23-25에 등장하는 한 사람을 기억하시나요?

그 사람은 왕에게 금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였습니다. (이 금액은 290,850,000 달러 가치가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시중가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빚을 갚기 시작하려고만 해도 아내와 자녀를 노예로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하여 풀어주었습니다.

그 종이 얼마나 큰 자유를 맛보았을까요? 왕의 긍휼과 선함으로 인해 얼마나 놀라워했을까요?

 

그 후에 장면이 전환되었습니다.

탕감 받은 그 종에게도 17달러어치를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빚진 금액과 그 종이 빚졌던 금액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비로운 왕에 비하자면 그 종이 빚진 자에게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릅니다.

왕은 그 종의 행위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왕은 마음이 쓰릴 정도로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그 무자비한 종이 빚을 다 값을 때까지 옥졸들에게 넘겨줘서 고통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정말로 비극적입니다.

한 사람이 감옥에 갇힌 이유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않은 종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심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도 역시 고통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 인생의 왕께서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다시는 절대 죄짓지 않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더 이상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18절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에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풀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풀때 천국은 그 사람 위에 역사하기 시작할 것이며, 우리의 기도의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비관용을 통해서 사람들을 멸망케 하든지 아니면,

용서를 통해서 그들을 함양하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준 높은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러한 수준 높은 결심을 했습니다.

만일 그가 그의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양식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유대인들을 진멸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형들을 용서하였으며, 그들이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던 것을 줌으로써 그들을 함양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형제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저주를 받더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많이 때리고 참혹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괴멸 시키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들을 함양하고자 하는 마음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고 우리를 진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대신에 주님의 열정은 우리를 함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알려 하면,

우리는 그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당한 그 느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그 사랑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죽을 각오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행해야 할 강력한 진리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이것은 용서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용서는 믿음에게 있어서 쌍둥이 형제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행하여가는 하나의 신령한 길입니다!

 

메릴린 히키의 "용서의 능력" 중에서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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