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성경이란 무엇인가 (1)
성경은 무엇인가라는 기초적인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성경은 무엇이며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계시를 이야기 할 때에 크게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하는데, 일반계시는 자연이나 사람의 양심과 같은 것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내시는 것을 말한다. 자연만물은 우리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계시의 방편이 된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이러한 일반계시를 통해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무지한 상태가 된다. 일반계시는 계속해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만 무지한 인간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도 없으며 깨달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인간의 무지와 우상숭배
이러한 무지 가운데서도 인간에게는 신인식 혹은 종교의 씨앗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계속해서 찾으려는 노력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빠진 인간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으며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자 했던 인간의 노력들은 그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자연만물을 보니 누군가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누구인지 바로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신의 존재를 그들의 생각 안에서 만들어가게 된다. 또한 그들은 현세의 비참함을 극복하기 위해 내세의 평안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기도 했으며 현세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갈구하기도 했다. 초기 인간이 가진 종교의 형태는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 토테미즘과 같은 자연만물에 대한 숭배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색을 통한 철학적 사고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고대에 철학이 모든 학문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인간이 가지는 종교성과 관계된다. 여하튼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찾고자 했던 인간의 이 같은 노력들은 그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더욱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특별계시로서 성경
이처럼 인간은 무지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으며 알 수도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반계시 외에 다른 방법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다. 이것은 일반계시와 달리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졌기에 우리는 특별계시라 부른다. 이러한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나타내시거나 역사 가운데 직접 개입하셔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시는 방법 등을 통해 나타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록하게 하시고 오랜 기간 동안 기록되어진 계시들을 어긋남 없이 보존하시고 주신 계시의 목적이 완성되었을 때에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게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특별계시를 성경이라 부른다. 특별 계시로서 성경이 주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에서 그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간을 통해 기록하게 하실 때에도, 그리고 그것을 보존하셔서 하나의 책으로 모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간섭하심을 통해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교회에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방법으로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성경이 인간에게 왜 유익한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심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비참함 가운데 놓여있는 인간을 건져내어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서 함께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은 우리에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계시는 일반계시와 달리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유효하게 나타난다.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읽어도 깨닫지 못한다. 특별계시라고 하여 성경 자체에 어떠한 신비적인 힘이 있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때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조명하심이라 말하는데 이러한 조명하심이 없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이 가지는 성격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첫째는 필요성이다.
특별계시로서 성경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되어진 말씀으로 그 목적은 인간 구원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발견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죄와 비참함 가운데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천하 만민이 구원을 얻을 만한 다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가 없으며 그 이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계시되고 알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이 구원 얻을 방법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타락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에 더 이상 하나님 편에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면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 수도 없으며 깨달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도록 하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특별계시를 보고 이해하는 것도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된다.
둘째는 무오성이다.
성경의 무오성이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나 교훈들이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오류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경의 무오성은 성경의 원본에 대한 것으로 사본이나 번역본에 있어서는 기록상의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본과 번역본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를 상쇄시킬 만큼 심각한 오류나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본들 간의 차이는 매우 미미한 것이나 이러한 것들도 사본들 간의 비교 연구를 통해 원문과 사본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 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무오성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만일 성경이 무오하지 않은 오류가 있는 글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오류투성이인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원리와 생활의 원리를 배우고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무오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적 가르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이다.
셋째는 명료성이다.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짓이 없으며 진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은 그 진리에 대하여 명료하게 교훈한다. 성경을 읽다보면 해석상의 어려움을 겪는 난제들이 있기도 하나 이는 성경의 교훈하는 바가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의 명료성을 이야기 할 때에 이는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목적과 관련하여 그것이 인간 구원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하여서 명료하고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말한다.
넷째는 충족성이다.
충족성이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에 있어 성경 외에 더 이상 다른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어진 약속으로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하여는 이미 성경을 통해 모두 계시되었기에 이에 대한 더 이상의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론
이처럼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음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기를 힘써야 하며 또한 그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위해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움에 있어 두 가지를 기본 전제로 시작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이며 둘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전제되지 않는 사람에게 성경은 그저 허구이며 신화와 같은 것들을 정리해 놓은 하나의 책일 뿐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구원 받은 자들에게 유용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심으로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무지함 가운데서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는 죄이며, 또한 죄의 결과로 처해진 상태로서 인간의 비참함이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가 되시는 것은 그가 우리를 이러한 무지 가운데서 건져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이끄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을 알고 그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2)
사람들은 서로 간에 생각이나 느낌 혹은 기타 정보를 주고받는 의사소통을 위해 말이나 글, 소리나 몸짓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한다. 소위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소리와 소리로 전달되는 대화의 방법만을 말하지 않으며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대화는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며 일반적인 수단이지 절대적인 수단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소통하기 위하여 인간의 언어와 의사전달 방법을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언어적인 기능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교회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교회는 예배적 삶을 통해 그 말씀에 화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할 때에 이 말씀은 음성으로 들리어지는 말씀이 아닌 읽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이야기 한다. 과거 성경이 기록될 당시, 즉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거나 기적과 같은 방법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이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살았던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성경을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에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몇몇 특별한 사람들,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와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필요가 있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성경이 완성되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교회에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성경은 더해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신적인 개입을 통한 음성이나 기적과 같은 의사전달의 수단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의사전달의 방편이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이 아닌 성경을 읽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교회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적과 직접적인 음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성경에 대한 불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견해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은 중지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성경 외에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는 것은 바른 교회의 가르침이 아닐뿐더러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단적 가르침으로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
신비주의나 은사주의와 같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적과 환상의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직도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다고 말한다.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는 교육을 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며 예언과 같이 전달하기도 한다. 과거 한국교회에 기도원이 유행처럼 크게 확산된 적이 있었는데 많은 기도원들이 이 같은 환상을 통한 예언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혹은 인본주의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들은 소위 말하는 직통계시를 성경계시보다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기복신앙의 잔재일 뿐이며 결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바른 방법이 아니다.
인간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방편으로서 주어졌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할 때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듯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말씀되어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관해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것을 주신 목적에 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방법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작업들을 필요로 한다. 주어진 텍스트를 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해석학이라 말한다. 이러한 해석학은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를 찾는 작업부터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찾는 문학이나 예술 분야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방편으로 성경을 교회에 주셨다. 교회는 성경을 텍스트로 하여 그것의 의미를 찾는 연구들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성경해석학이다. 즉, 성경해석학은 성경을 텍스트로 사용하여 그것의 의미를 찾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해석학은 거창한 학문의 영역만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지는 문학성과 역사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읽는 안목도 해당된다.
성경에는 다양한 문학적 기술 방법들이 사용되어 있다. 이는 성경이 기계적으로 영감되어진 말씀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영감되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유기적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 인간 저자의 문체와 성격들까지도 사용하셔서 기록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운문과 산문의 문학형식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그렇기에 시는 시로 비유는 비유로 역사적 기술은 역사적 기술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학성을 배제한 체 모든 것을 상징이나 비유로 풀거나 또한 상징과 비유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른 읽기가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특수성을 가지나 그것이 인간의 표현방법을 사용한 인간의 글로 쓰였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이처럼 성경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성을 가진다. 성경이 역사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안에 기록되어진 사건들이 설화나 신화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많은 사건들도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사건이었음을 믿어야 한다. 성경이 구전되어 오는 설화나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짜깁기된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이는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성경을 읽는 바른 방법이 아니다.
결론
우리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이다. 성경 외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그렇기에 교회된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있어 매우 중하다. 우리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는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소양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지녀야할 소양이다. 우리는 이러한 소양을 갖추기 위해 배우는 것에 힘써야 한다. 물론 성경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해되어지거나 믿어지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이 있을 때에라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읽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성경을 바로 읽을 수 없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로 우리 안에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성경을 교회에게 주셨다. 커뮤니케이션은 상호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행위로 나타난다. 성경이 택하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기록하고 있으나 유기된 자들에 대해 때가 차기까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심은 그들에 대한 무관심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관심이란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이지 주권에 대한 포기나 죄에 대한 영원한 방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66권을 한 벌로 엮은 장서이다. 약 1600여 년에 걸쳐 40여 명의 손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처럼 장구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기록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역사 속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을 가리켜 저자(著者)라 부르지 않고, 기자(記者)라 부른다. 저자란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의도를 글로 표현해 내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여러 기자가 다양한 주제로 쓴 것이면서, 이들 배후에서 오직 한 분 저자이신 하나님이 단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썼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 주제가 무엇인지는 성경 자체가 선언하고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성경의 기원은 하나님의 감동이요, 그 목적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유익함이 무엇인가? 이에 대해 바울이 사용한 세 단어인 ‘구원’, ‘그리스도’, ‘믿음’을 들어 설명하겠다.
1. 구원의 책
성경의 최대 목적은 독자가 구원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목적을 더욱 확고히 포착하기 위하여 몇 가지 부정적인 점을 대조시켜 생각해보자.
첫째, 성경은 과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성경의 교훈과 과학의 진리가 서로 어긋난다는 뜻이 아니다. 비록 성경이 과학에 관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과 귀납이라는 방법을 통해 얻은 지식체계다. 그러나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모른 채 발견되지 못했을 진리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속에서 물어야 할 것은 ‘역사적 사실’ 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진실)’이다.
둘째, 성경은 문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인생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간결함, 통찰력, 상상력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곳은 문학적 세련이나 심지어 문법적 정확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성경의 목적은 그 메시지에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성경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론적인 책이 아니고 실제적인 책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해결하기 위해 붙잡고 씨름한 주제들 중에 다루지 않는 것들도 있다.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고통을 참고 악을 이기느냐를 가르칠 뿐, 죄와 고통의 기원이나 목적에 대하여 철학적인 해명을 하지 않는다.
구원은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고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를 의미한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 계획을 보여준다. 성경은 우주와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은 것과 우리가 어떠한 의무를 저버렸으며,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인간)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 사랑의 정점이 바로 ‘구원’이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포괄적인 구원은 이러한 것이다. “지나간 영원 속에서 계획되었고, 시간의 한 시점에서 성취되어 인간의 경험 가운데 역사적으로 이루어졌고, 미래의 영원 속에서 완성에 이를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같이 큰 구원’(히 2:23)을 성경만이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2. 그리스도의 책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 성경은 구원을 이야기하고, 구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로 가득한 책이다. 예수께서도 성경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하여 이와 같이 이해하셨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 5:39).
또한 부활 후에 두 제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걸어가시면서 성경을 모르는 미련함과 불신을 책망하신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그 후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그리스도에 의하면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인 관계는 약속과 성취의 관계다. 그러므로 구약의 세 부분을 보고 신약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약속과 성취의 의미로) 성경의 통일된 주제가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1) 율법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고, 구속하고, 그들과 언약을 세우고, 희생을 통하여 그들의 죄를 속죄하시고, 그들로 가나안 땅을 밟게 하신 모든 일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모든 사람이 얻을 축복을 국가적인 형태(이스라엘)로 제한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새 언약을 맺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죄를 위한 영원한 희생으로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드리셨고, 모든 제사직과 희생이 그 안에서 성취되었다. 나아가서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서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율법이 내리는 정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필요했다. 율법은 우리를 죄에 매어 두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비로소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우리는 율법으로 정죄를 받으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2) 선지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하나님은 다윗 왕과 언약을 맺어 그를 위하여 집을 세우고 그의 씨를 통하여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겠다고 하셨다.(삼하 7:8-17) 그러한 맥락에서 선지자들은 ‘다윗의 자손’이 어떤 왕인지 묘사했다. 그의 나라에서는 압제가 공의에게 자리를 내주며, 전쟁은 물러가고 평화가 올 것이다. 그 나라의 영토나 연대에는 제한이 없다.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미치며, 땅 끝까지 이르며,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메시아 나라의 이 네 가지 특징(평화, 공의, 보편성, 영원성)은 이사야의 유명한 예언에 집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선지자들은 메시아의 영광을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권한도 예언하였다. 그러한 예언으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3) 시편(성문집)에 나타난 그리스도
구약의 셋째 부분은 성문집으로 그 중 시편이 속해있다. 여러 시편이 신약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란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와 변화산상에서 직접 말씀하시는 부분에 사용되었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친히 시편 22:1을 인용하셨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a)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무서운 버리심”을 그가 친히 경험하고 이루셨다는 뜻이다.
구약의 증거를 요약한다면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 큰 선지자요, 아론보다 더 큰 제사장이요, 다윗보다 더 위대한 왕이다. 다시 말해 그분은 하나님을 사람에게 완전히 나타내고, 사람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을 다스리실 것이다.
4)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
신약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 특별히 복음서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서술한 예수의 출생, 생애,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그의 말씀과 하신 일들의 예와 함께 보게 된다. 또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의 편지를 데오빌로에게(사도행전은 그에게 보낸 책이다) 소개하면서 자기의 처음 책(누가복음)에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모든 것”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뜻은,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계속하신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
이와 함께 서신서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의 광채를 드러내고, 신자와 교회의 생활을 그분께 연결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의 증거를 확대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높여 이르기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도 ‘충만’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골 1:19; 2:9-10). 결국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에서 극치에 달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을 알기 원한다면 성경으로 가야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그리스도의 초상화다.
3. 믿음의 책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얻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의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고,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이 목적은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광범위하고 완전한 의미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된 도구로서 성경을 정하셨다. 성경 전체가 구원의 복음이며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 1:16)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성경 → 그리스도 → 믿음 → 구원(생명)의 연관성이 같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고, 믿는 자에게 생명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보고 믿을 때까지 계속 그를 찾아야 한다. 오직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그리스도의 부요를 믿음을 통해 계속 취할 때에만 영적으로 성숙하게 자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7)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기계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이다
신약에 나타난 말씀(로고스)이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잇다
1)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나타내신 복음(메세지)의 내용, 곧 사도들의 전도로 증거된 것
2) 복음 선언에서 나타난 생명, 행동, 믿음을 위한 진리의 전체, 곧 복음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전부를 받아들여야 할 진리
3) 세상의 창조와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적인 능력
4) 신자들의 믿음의 생각과 교회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
5) 요한의 독특한 사상인 영원히 활동하시는 창조적 이성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 곧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생명과 이해력을 주시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신 이 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의 창조로써 나타난 활동과 인간에게 보이는 묵시 특히 복음애 나타나시고 활동하시는 이를 뜻한다
여기서 복음이란 말은
1) 복음의 내용, 곧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주시고 자기를 나타내시는 구원의 활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것
2) 처음 간증자들의 전도와 교훈으로 선언된 복음
3) 신자들의 마음오가 생활에서 복음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
등과 같이 객관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의미에서 말씀이란 말보다 더 좋은 상징이 없을것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는 데도 기독교 진리의 가장 깊은 근거와 높은 표준이 단지 글로 씌어져 문헌에 보존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말씀인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한 것은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상당히 후인 종교개혁 이후부터 더욱 현저해졌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자기의 살아계신 말씀에 조화시켜 그 구원의 활동에 있어서 같은 효과를 내게 하시는 바성경의 말씀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합일된다"-파머-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66권이며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나누인다.
성경은 구약의 율법서 5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 12권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 5권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 17권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4복음서 4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역사서 1권 (사도행전) 바울서신 13권 (로마서,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세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빌레몬서) 사도서신 8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 예언서 1권 (요한계시록)
이렇게 하여 성경 66권 중, 구약 39권 신약 27권이며, 총 장수 구약 929장, 23,214절, 신약. 27권, 260장, 7959절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 인류사의 시작과 함께 히브리 민족사로 구약이 이루어져 있는데, 그 핵심은 구주, “메시야의 언약”이 그 중심내용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언약(言約)의 책이며, 그 중에 구약은 ‘구원 주’로 초림 하실 언약, 신약은 언약의 성취와 그 성취의 완성과 주 재림의 언약이다.
그 언약이 그리스도의 성육 하심으로 (구약의 역사)는 이루어졌고 다시 오실 언약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성경 기록역사의 연대로는 약1,600년 (구약1500년 신약100년)이며 기록한 사람 수는 43명이며 기록한 인물들의 신분은, 제사장 왕 학자 농부 어부 등이 총망라 되어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서 어떻게 기록했던지 그 의미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예언되어 있고 또 그 예언대로 성취된 증거로 가득차 있으며 생명과
은혜가 넘쳐 흐르며 믿는 각자들에게 그 말씀이 실현된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받은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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