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종류

 

1.역사적 믿음(historical faith)

역사적 믿음은 음성으로든 신탁으로든 이상으로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알려지는 계시의 방법을 통해서 신적으로 제시되고 계시되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그의 선포에 근거하여 알고 믿는 것이다. 이것을 역사적 믿음이라 부르는 것은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거나 혹은 지금 행하신다거나 혹은 장차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는 그것들에 대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2:19-

     “시몬도 믿고...”-8:13- *시몬 : 마술사 시몬

 

2.일시적 믿음(temporary faith)

일시적 믿음은 교회의 교리들에 동의하는 것으로, 고백과 기쁨이 수반되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이 대상이라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은 참된 영속적인 기쁨이 없으며, 가 다른 원인들에서 나오는 믿음이어서 그저 일시적으로만 지속되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다. 혹은 일시적 믿음이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에 동의하고,고백하고, 그것을 자랑하고,그것을 아는 데에서 일시적으로 기뻐하지만, 그 약속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지각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설명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13:20,21-

        이 일시적 믿음이 역사적 믿음과 다른 것은 거기에 기쁨이 수반된다는 점뿐이다. 이 기쁨의 원인들은 개인마다 다르나, 그 기쁨이 사라질 때(십자가로의 부름 등으로..)에 그 위에 세워진 믿음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3.이적을 행하는 믿음

       이적을 행하는 믿음은 뭔가 놀라운 일을 행하거나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 특정한 사건을 미리 예언하는 특별한 은사다. 혹은, 미래에 자신이 이루기를 바라며 또한 그럴 것으로 예언하는 바 어떤 이적적인 일의 성취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서 모종의 신적 계시나 특별한 약속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반적인 말씀에서 이끌어내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 말씀과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약속이나 계시가 있어야 하며, 오로지 특정한 일들과 놀라운 사건들과만 관련되는 것으로 믿음의 하나의 별개의 종류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도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13:2-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4.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본 요리문답에서 정당하게 정의되는 것인데, 이 정의에 따르면, 구원 얻는 믿음의 일반적인 본질은 지식과 확신 있는 신뢰에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시행하기에 앞서서 먼저 믿어야 할 내용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이 가르치는 맹목적인 믿음(implict faith)은 어리석은 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의 차이 혹은 형식적인 성격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 사함을 받는 사실을 신회하고 자신에게 적용시키는데 있다. 또한 구원 얻는 믿음의 속성 혹은 특유한 성격은 그리스도의 큰 은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데에 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 혹은 구원 얻는 믿음의 동력인(動力因)은 성령이시다. 수단은 복음이요, 거기에 성례의 시행도 포함된다. 이 믿음의 주체는 사람의 의지와 마음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다른 종류의 믿음과는 다른데, 오직 그것만이 우리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시키는 확신 있는 신뢰이며,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베풀어지고 전가되어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로운 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고히 믿을 때에 이 믿음이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 참된 믿음을 가진 자  

   1. 그는 성경에 포함된 모든 내용이 참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다.

   2. 그는 그 내용들을 확고히 믿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된다. 그 내용들이 참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한다면, 그것들에 동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3. 그는 은혜의 약속, 혹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값없는 죄 사함과 의와 영생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적용시킨다:“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3:36-

   4. 이런 확신을 갖고서 그는 현재의 하나님이 은혜를 신뢰하며 누리며 기뻐하며, 그리하여 미래의 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신뢰하게 된다.:“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사 그런 큰 축복들을 베푸시니, 영생에 이르도록  나를 끝까지 보존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그의 은혜 베푸심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5. 그런 은택들을 바라볼 때에, 마음속에서 기쁨이 일어나며, 또한 모든 지각에 뛰어난 양심의 평안이 이어진다.

   6. 그리고 그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사모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무슨 일을 당하게 하시든지 기꺼이 인내로 견디기를 원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을 소유한 자는 세상과 마귀의 반대에 전혀 굴하지 않고 자기에게 요구되는 일을 이행한다. 참되게 믿는 자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체험하며, 또한 이런 일들을 스스로 체험하는 자는 참되게 믿는 것이다.

.가롯유다의 믿음

  역사적 믿음, 일시적인 믿음, 이적을 행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 대해 마귀라고 말씀하셨다. -6:70-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 모든 택한 자들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심지어 유아들까지도 포함하여 오직 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6:44-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3:11-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8-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0-

 

.구원얻는 믿음 외에 그 밖의 믿음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일시적 믿음과 이적을 행하는 믿음은 가시적 교회의 일원들에게만, 즉 외식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초기교회에서는 이적을 행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교회에서 사라졌다. 복음의 교리가 이적을 통해서 이미 충족하게 확증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믿음은 교회 바깥에 있는 자들도, 또한 마귀도 소유할 수 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7:22-

 

참고.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1

1. 본성의 빛(light of nature)과 창조의 섭리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가 없다.(2:14-15, 1:19-20, 19:1-3, 1:32, 2:1)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는 데 있어서 불충분하다.(고전1:21, 2:13-14)  그래서 주님은 여러 시대에,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1:1), 자기의 교회에 자신의 뜻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으며, 그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해서 바로 그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 두시는 것을 기뻐하셨다(22:19-21, 1:3-4, 15:4, 4:4,7,10; 8:19-20).  이같은 이유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딤후3:15, 벧후1:19).  그리하여 하나님꼐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1:1-2). 



성경적인 믿음과 비성경적인 믿음 


스데반 황 목사(그리스도보혈교회 담임)

필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단 한 가지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신 것을 발견한다. 칭찬과 꾸지람을 하실 때도 어떠한 행동 및 결과보다는 제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제자들의 믿음이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 가셨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또는 백부장의 믿음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하시며 칭찬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믿은 자이다. 믿음은 믿음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에 의하여 그 믿음이 죽은 믿음이 되기도 하고 산 믿음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여 신(神)이 아닌 것을 신으로 ‘진실하게’ 믿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믿음의 대상이 허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믿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많이 달라진다. 믿을만한 사람을 믿었을 경우 그 사람은 안전하다. 그러나 사기꾼을 믿었을 경우, 그 사람의 삶은 언제나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성경은 성경적 믿음과 비성경적 믿음을 구별하여 놓았다.

이러한 구별을 하기까지는 많은 연단과 말씀에 대한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비성경적 믿음은 세뇌가 있다.

세뇌란 자신의 이성을 강제로 어떤 틀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외부적으로 또는 스스로 어떤 사람의 생각을 자신에게 세뇌 시킬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세뇌에 잘 걸린다. 악한 무리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들은 서로 세뇌한다. 비진리를 진리로 믿도록 서로 부추긴다. 그러한 세뇌를 통하여 함께 집단 행동을 한다.

나아가 종교에서 세뇌의 요소는 다분하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 세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어리석고 불쌍한 교인들이 옳지 않은 목사들에 의하여 세뇌 당하기도 한다. 모든 이단들이 세뇌에 의해 유지된다. 세뇌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 및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역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의 사상, 어떤 주의, 종교 등이 세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교리도 세뇌에 속한다.


둘째, 적극적인 사고 방식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무관하다.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잠재력을 스스로 일으켜 보겠다는 사상과 같다. 일종의 세뇌일 수 있으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이 땅의 형통을 바라본다는 데서 뚜렷한 특성을 갖게 된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내 혀를 다스릴 수 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그 사람의 의지를 강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목표와 믿음에 있어서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는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개념이요, 양의 탈을 쓴 인본주의적 사상일 뿐이다.


셋째, 하나님을 강요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기도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강요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세워놓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단지 대상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점이 다르다.

종종 "이렇게 안하시면 가만 두지 않습니다"라는 식의 강요를 믿음으로 오해하는 자들도 있다. 강청이라는 말을 악용하는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강청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넷째, 지적 동의가 믿음은 아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면 마귀들도 진리에 대하여 지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적 동의가 참된 믿음의 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하여 그가 가진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 및 복음에 지적인 동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자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러한 믿음은 전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다섯째, 하나님에 대한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들이 믿음은 아니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 복잡한 논리들을 배운 적이 있다. 사색할만한 내용들이지만, 이러한 이론들을 믿는다고 하여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말이 바른 교훈, 바른 교리를 거부하자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참된 성경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바른 교훈, 바른 교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깊게 따질 수 있다고 하여 성경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섯째, 세상의 형통, 건강, 일들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믿음이 있으면 건강하여지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교회를 타락시키는지 모른다. 믿음이 강하여지면 이 세상에서 소위 잘산다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요 비성경적인 믿음이다.


일곱째, 도박이 믿음이 아니다.

해보고 되면 좋고 안 되도 상관없는 그러한 종류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믿지는 셈 치고 예수 한번 믿어 보세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또 다른 목적을 세워두고 그 목적을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려는 심보가 다분하다. 그래서 요행스럽게 믿어 잘되면 예수를 믿고, 믿었는데 일이 안되면 욕을 하고 떠난다. 이러한 도박성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도박성이란 뜻은 자신의 목적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은 어떠한 것인가? 바른 믿음의 내용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많은 내용을 다룰 수 있겠으나 요약만 하겠다.

부족한 종에게 주께서 성령과 성경을 통하여 깨닫게 한 내용들이다.


첫째, 믿음의 대상에 언제나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 삼위일체 주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적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인격적인 믿음은 우리의 삶에 순종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내가 어떤 법칙 조항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운데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의해 나타나는 행위들이다. 특별히 주 하나님의 최고의 약속이신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 성령의 역사를 언제나 의지하게 된다.


둘째, 성경적인 믿음은 주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신뢰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여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가운데 악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마음 속에 시험과 투쟁이 강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결국 믿음이 이기고 주님께 나아간다. 환경을 초월하며, 인간적 생각을 초월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이유들을 찾게 된다. 그 이유들은 이 세상에서 내게 아직 남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비교를 통한 감사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볼 수 있는 차원에서 감사할 이유를 얻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근거로 하여 반드시 내게 영원토록 유익한 것들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세째,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과 연결된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고,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은혜의 언약이 언제나 성경적인 믿음의 바탕에 있다.


넷째, 성경적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믿음을 잃을 때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하나님 보다 앞서게 되지만,

성경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평안과 함께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주께서 시키시는 데로 할 뿐이다.


다섯째, 성경적인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주 예수님과 하나되는 체험을 할 수가 없다.

주님과 하나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게 할 수 없는데, 오직 "믿음"만으로 주님과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가 된다.


여섯째, 성경적인 믿음의 가장 큰 특성은 인내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항상 인내한다.

그러나 그 인내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시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도 모르는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


일곱째, 성경적인 믿음은 언제나 영원한 가치를 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추구하며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가장 추구한다.

결론은,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 분의 약속을 믿고 그 분이 시키는 데로 따르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 안에서는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계속 가지게 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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