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송영목 목사(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들어가면서


신약 27권 중 21권이 서신으로 분류된다. 즉 신약의 3/4이 서신이다.

가장 이른 서신 (아마도 갈라디아서- 49년)은 가장 이른 복음서 (아마 마가복음- 59년) 보다 10년은 더 빠른 것으로 보인다.

서신서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각 지역 교회에 전파되었으며, 그 후 개체 교회는 어떻게 특별하면서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이다.

따라서 서신서는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그 핵심 주제로 한다.



1. 서신서의 장르

서신서는 바울이나 베드로, 요한 혹은 무명의 성도의 신학을 집대성한 논문(theological treatise-compendum)으로 우선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먼저 1세기 특정한 수신자에게 특정한 상황과 문제에 대한 설득, 경고, 책망, 권면, 영적인 목회적 가르침을 위한 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적 정황을 연구하는 것은 서신서 이해의 기초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쓰여진 상황문서들(occasional documents)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한된 자료와 정보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특정한 교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신약 서신 저자들의 신학적인 사상을 우리는 충분히 찾고 체계화 할 수 있고 해야만 하기에 바울 신학, 요한 신학, 베드로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별로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것에 대한 반대 견해는 오래 전에 아브라함 카이퍼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성경 저자들을 결코 신학자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신학은 신학보다 앞서 형성된 교리(dogmas)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며, 교리는(제도적인) 교회 생활이 낳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는 신학이 아니며 신학에 기초를 제공한다. 하지만 계시의 도구로서 바울의 신학적 사고의 틀이 사용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말은 성경의 인간적인 요소가 강조되는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반대로 인간이 계시 전달의 도구화되었음을 강조하기에 하나님의 활동은 더욱 주도적이고 특별해 진다(참고. 게핀, 1992:29, 31).

서신은 상황적이되 신학적이다. 서신서 연구는 과제신학적(task theology)이다. 즉 어떤 과제의 해결을 위해 저자의 신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바울이 현대의 신학박사보다 못한 영성과 지적인 능력을 가졌겠는가? 바울은 다른 성경 저자보다 더 조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확증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이라기보다는 구속 사역을 해석하는데 더 관심을 쏟은 것이다. 

 

환언하면 바울의 관심은 구속역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 절정을 이룬 것을 믿고 그 구속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었다. 하나님은 계시 전달에 있어서 바울의 교육적 배경과 성격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은 기독교 자료를 조직적으로 다룬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참고. 박형용, 1992:6. In 리차드 게핀. '부활과 구속' 추천문. 엠마오). 편지는 시간을 두고 문제를 파악한 후 세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논리를 전개해 갈 수 있는 좋은 매체였다. 따라서 저자의 논리와 신학을 우리는 체계화 할 수 있다.


1.1. 용어: 서신인가 아니면 편지인가?

"Light from the Ancient East"(1927, 1965)에서 Gustav Adolf Deissmann은 많은 파피루스를 연구한 후에 서신(epistle)과 편지(letter)를 철저히 구분하여 그 중 하나를 선호하나(물론 이 구분에 타당한 지적이 있다) 우리는 교차적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Deissmann에 의하면(참, 사적인) 편지(real letter)는 비문학적인 것으로 일반 회중이나 후대 사람들을 상대로 쓴 것이 아니라, 그 편지를 직접 받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을 위해 쓴 것이다.


반면에(공적) 서신(epistle)은 일반 회중을 대상으로 한 예술적인 문학형태, 또는 문학의 한 종류이다. Deissmann은 모든 바울 서신을 letter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바울 서신과 비교하면 벧후, 요일은 훨씬 더(회람용, encyclical) 서신에 가깝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epistle이란 용어 안에는 편지로서 갖추어야 할 정확한 형태나 요소가 없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1.2. 주후 1세기의 서신:

1세기에 학생들은 초등교육을(혹은 12-15살) 받을 때부터 편지를 쓰는 교육을 받았다. 전문 편지 작성자를 위한 지침서도 있었다. 1세기에는 상업, 법률, 군사, 행정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서신이 이용되었다. 따라서 시대의 아들인 바울-베드로-요한 역시 그 당시의 서신의 형태(특히 personal-private letter)와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신서 역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차원을 배제한 서신서 분석은 무의미하다.


신약 서신서와 그레코-로마(Greco-Roman)의 서신들 간의 유사점을 연구하며 설득의 기술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물론 신약 기자들이 그 형식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를 주며 서신의 주요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삼아 초대 교회에 전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형식과 틀을 빌려 사용했지만 그 내용은 기독론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2. 서신의 형식


일반적인 헬라의 서신은 인사말, 감사말, 본론, 마지막 인사말로 구성된다. 신약 서신에는 그 당시의 다양한 문학적인 전통들을 수용했는데, 예를 들면, 당시의 수사학 양식들, 설득 양식 등을 사용했다. 바울-베드로-요한 서신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서신이면서도 서신의 형태를 벗어나는 책도 있다. 히브리서, 특히 히 1-10장은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그리스도 신앙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설교 양식이다(히 13:22, '권면의 말'). 그리고 요한일서와 계시록도 다르다.


서론(Preamble)- 송신자, 수신자, 인사말(빌레몬서 1-3)
Formula valetudinis(수신자의 행복과 관련된 말): 건강을 기원하고 감사의 말을 함 (4-7)
주요 논의를 소개함(Body-opening) (8-11)
본론적 논의(Main argument or body) (12-20)
논의의 결론(Body-closing) (21-22)
결론: 인사, 때로는 특정한 말의 첨가, 결론적인 고별 인사(23-25)

신약 서신은 고전 수사학적 형식을 일부 따른다(참고. 정태현, 1996:124-127):


(1) 서론(exordium 혹은 prooemium): 청중의 주의를 끌어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연설의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짧은 말.


(2) 연설 가운데 부분은 목적 제안(propositio)과 이성적 추론(rationes)으로 이루어진다.
1. 목적 제안(propositio): 연설이 얻고자 하는 목적을 제시하는 기능. 목적 제안은 두 가지 요소로 세분화 될 수 있다:
1.1. 세부설명(partitio):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함.
1.2. 사건 개진(narratio): 목적 제안에 맞춰 사건의 흐름을 진행함.
2. 논증(argumentatio): 여러 가지 증명을 끌어내는 기능. 반증(refutatio)은 반 대자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한 논증.


(3) 귀결(peroratio): 결론(conclusio)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논증에서 제시된 증명들이 이제 분명히 옳다는 것을 천명하는 짧은 끝맺음이다. 연설자는 여기서 청중이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는 판단을 내려 주기를 요청한다. 귀결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가) 목적 제안과 결론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 논증의 요지를 간추려 반복(recapitulatio)한다.


갈라디아서의 경우 서론(1:6-10), 사건 개진(1:10-2:14), 목적 제안(2:15-21), 논증 혹은 증명(3:1-4:31), 그리고 마지막 부분(5:1-6:10)은 권고문(paraenesis)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인사말(1:1-5)과 추신(6:11-18)이 앞뒤를 장식한다. 물론 모든 서신에 이런 형태가 정확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서는 실로 서신의 형식이 거의 없고 히브리서도 진짜 편지 형식에 분류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 설교인지 논란이 된다.



3. 서신이 읽혀진 방식


빌레몬서 그리고 요 2-3서와 같은 몇몇 개인적인 서신을 제외하고는 서신들은 주로 예배 중에 크게 읽혀지도록 의도되었다. 그 이유는 사도의 부재 중 서신이 그 사도를 대신하여 말씀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며, 그 당시는 기록된 문서의 시대라기보다는 구전의 시대였기에 하나의 편지(책값은 비싸고 인쇄술이 발전되지 못함)로 여러 사람이 듣고 말로 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활동의 수단이 편지이다. 따라서 서신이 낭독될 때 청중이 잘 그리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수사학적인 기교를 사용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예. 헬라어 표현의 중복 등).



4. 서신서의 수사학적인 기교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고전적인 의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가 거짓에 의해 가리지 않도록 말을 잘해야 한다는 동기에서 정의하기를 "화자가 청자를 위해 설득을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

고전수사학자들은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청중에게 보여주는 신뢰도(ethos), 그리고 청중의 감정에 대한 호소 (pathos), 또한 논리 정연한 주장 (logos)을 잘 조화시켜서 전하려는 진리를 잘 배열하고, 완전히 외운 다음에, 적절한 언어를 구사해서, 잘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사용한 고전 수사학이 1세기에 유행했는데 주로 4가지 요소들을 포함한다: 서론(exordium)→ 사실 진술(narratio)→ 논증(probatio)→결론(peroratio) (참고. H.D. 베츠의 '갈라디아서 주석'. 한국신학연구소의 국제성서주석 시리즈 중).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고전 수사학의 3가지 종류:(Kennedy, G.A. 1984.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through rhetorical criticism.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72. The art of rhetoric. Princeton University Press; Vernon K. Robbins. 1996. Exploring the texture of texts. Trinity Press International; Burton Mack. 수사학과 신약성서- 나단출판사 한국 저자의 책으로는 수사학적 성경해석의 이론과 실제- 현경식/이성호 공저- 성서연구사를 참고하라).



a. 법률적이고 변증적인 수사학- judicial-forensic: 법정에서 과거의 사건에 대한 변론과 판단을 청중에게 설득하는 것.


b. 정치적이고 심의적-의도적인 수사학-deliberative: 공공집회나 정치적인 변론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청중들로 하여금 어떤 행동들을 미래에 취하도록 설득함.


c. 의식적-제의적 수사학-ceremonial-epideictic: 공공예배나 의식에서 어떤 인물 (덕)이나 사건을 칭송하거나 책망하여 청중들에게 현재의 어떤 견해와 전망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

서신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함이 균형잡힌 해석을 위해 중요하나 먼저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서신, 하나님의 설득으로서의 서신(NT epistles as Go


d's divine persuasion)으로 보아야 한다.


참고로 현대 수사학(modern rhetoric)은 이런 법정적, 정치적, 의식적인 범주를 너머 모든 인간의 언어적 및 비언어적 행동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소설, 시, 연극, 영화, 광고, 신문 기사, 음악, 사회 현상 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인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 주장하는 바의 이념적인 동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야기에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화자의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기에. 또한 화자가 청자를 설득하는 기술로 보지 않고 더 나아가 화자와 청자가 불확실한 그 무엇에서 확실한 것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청중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의 참여자이다.


따라서 수사학은 인간의 의사소통에 사용된 모든 수단들을 묘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말한다. 화자의 의도, 내용의 분석, 본문의 구조와 문학적 기교를 분석, 화자와 청자의 사회-역사적 배경, 그리고 설득을 통한 화자의 결정과 실행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사회수사학은 개혁주의 서신 해석에 유용한 기여를 한다.

수사학적 해석을 문학적인 해석 혹은 자유주의적 해석 방법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종들이 인간의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한 것이기에 인간의 언어를 분석하는 수사학적 비평은 적절하고 유용하다. 이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1세기 서신서의 수신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와 그 영향력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수사학을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의 서신서의 해석 경향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것이기 때문이다. 즉 역사 비평 방법만으로 연구하던 전성기는 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비평의 주요 관심은, 예를 들어, 이것이 바울의 것인가? 이 편지는 이전에 어떤 자료들을(기독교의 찬송, 케리그마, 교리문답 등) 모집한 것인가? 구전자료 혹은 주변의 다른 나라의 서신과의 종교사학파적 비교 등.



5. 로마제국 안에서 서신을 통한 복음의 전파의 용이성


통일된 로마제국은 발달된 교통망(예. 리챠드 보컴 등: holy internet)을 갖추어서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서신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언어적으로는 코이네 헬라어가(비교: 고전 헬라어는 좀 더 학적이고 고급)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서 언어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다. 그 어느 시대보다 1세기 로마 제국은 복음이 효율적으로 증거되는 기반이 조성된 시기였다. 여기서 1세기의 여행에 대해 살펴보자. 로마 제국 시대에 하루 도보 여행길은 보통 32km 정도였고 급사(急使)들은 80km까지 여행 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현대인과 똑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여행했다. 사업과 정부의 공무, 제의적인 순례, 순전히 관광적인 차원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육상여행은 고대에서 가장 자연스럽지만 안락하지 못한 여행의 형태였다. 하지만 1세기의 육로 여행은 어느 시대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으로 평가된다. 네로 시대에 런던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가는데 28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군대가 효과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도로가 건설되었다. 로마의 도로망은 2차 세계대전 후 주간(州間) 간선도로가 발전되기 전까지는 견줄만한 것이 없었던 독보적인 것이었다. 빗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가운데 부분이 약간 더 높았으며, 도로 양끝에는 도랑과 연석을 놓았다. 로마의 도로는 폭이 최소 8피트였고 평지에는 대개 10-12피트의 폭이 일반적이었고, 대도시로 진입하는 도로의 폭은 30-40피트였다.


여행을 위해 통행증이 발급되었는데, 특히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제한되었다. 여행을 위한 숙박시설로 여관이 잘 발달되었지만, 대개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 집을 숙박 장소로 이용했다. 여행 날씨는 5-10월 사이가 선호되었다. 그리스인과는 달리 로마인과 유대인은 해상여행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배로 여행하는데 9-27일이 소요되었는데, 바람과 일기에 따라 결정되었다(참고. 앨버트 벨, 2001:469-481).


참고로 holy internet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복음서를 특정 공동체로 한정하는 것을 반대한다. 헬라어가 사용되는 모든 지역에로 전달되는 그 범위가 수신자의 범위로 본다. 하지만 특정 수신자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 주장이 설득력 없이 보인다.



6. 서신의 특성


a. 성격상 인격적(personal)이나 사적(private)인 것이 아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아주 사적인 것도 있기는 하다. 공적인 헬라시대의 사업서신(business letters)은 아니지만 교회에 주어 보내어진 것이기에 공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의 경우 그의 동역자들을 공동 송신자로 언급함으로 공적인 특성을 더욱 강조한다(고전 1:2; 고후 1:1; 갈 1:1; 참고. 크리스챤 베커, 1998:43).


b. 대화와 현존 (먼저 편지로 만나고 조속한 시기에 실제적 방문-현존- 롬 15:22; 빌레몬서 21절): 마치 송신자가 독자 가운데 있는 것처럼 말하는 방식을 택한다. Koskenniemi가 주후 400년까지의 헬라 편지를 연구하여 이 두 요소를 강조했다. 대화적 특성이 있지만 더 나아가 문학적인 기교와 세련됨으로 정제된 대화이기에 일상 대화 보다 더 문학적이다.


c. 설교체: 강한 감정과 애정, 목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d. 계획적이지만 형식주의적이지 않다: 보통 헬라편지의 중요한 한 가지 특성은 전형적이고 비인격체적인 특성이다. 심지어 가장 친근한 가족과 친구간의 서신에서도 의식적이고 상투적인 틀을 유지했다. 반대로, 신약 서신에서는 건조하고 의미 없는 형식을 제거해 버린 것을 새로운(기독론적인) 내용으로 본다.



7. 서신서 해석의 원칙


(1) 사회-문화-정치-종교-역사적 상황을 본문과 보조 자료를 사용하여 재구축하라. 주로 저자와 수신자(유대인인지 헬라인인지)와의 친분관계, 그리고 수신자가 처한 사회문화적-교회적 형편에 주목하라. 이때 성경 사전이나 주석, 그리고 신약 서론 책을 참조할 수 있다(특히 유용한 것은 Martin, R.P. 1997.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IVP와 Hawthorne, G.F. 1993. Dictionary of the later New Testament and its developments. IVP).


(2) 기초적인 역사적 배경을 숙지한 후 편지를 전체로 읽는 것 즉 쉬지 말고 두 번 정도 완독하여 전체의 감과 맥을 잡아야 한다. indicative(예. 롬 1-11장 상황 진술, 권면, 책망 등)→ imperative(예. 롬 12장)→ promise(롬 16:25-26)를 고려하라.


(3) 논리의 흐름을 따라 사고의 시작과 마감이 분명한 좀 더 세부적인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라.


(4) 문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즉 핵심단어와 반복되는 용어, 그리고 수사학적 표현을 중심으로 연구하라.


(5)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구약의 인용을 통한 계시사의 전진, 그리고 기독론적인 은유 혹은 그레코-로마의 문화에 반하는 기독교적 강조 등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6) 유비를 통한 적용을 해석(hermeneutics가 아니라 interpretation)의 마지막 단계로 해야 한다. 서신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된 영감된 말씀이기에 모든 시대의 교회에 그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


(7) 단계와 연관하여 서신서 메시지의 현대로의 적용의 원칙을 살펴보자- what it meant에서 what it means로 넘어오는 다리: 실제로 학자들이 1세기의 의미를 연구하는데서 그치고 그 현대적 적용에 대해서 소홀히 했기에 교회 안에서 서신서를 통해서 제기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모호함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적용은 더 어렵고 기도를 요하는 작업일 수 있다.


이 작업을 윤리학자들의 몫으로만 남겨 둘 수 있는가? 오히려 적용이 성경적 원리에 대한 정확한 통찰에서 나오지 않고, 교회-교단의(신학적) 색깔-전통 혹은 한국적인 유교적 관습 등에 지배받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 진리와 규범이지만 문화적 상대성(cultural relativity)으로 인해서 1세기 서신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21세기에 적용할 때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아래의 두 예를 보아도 적용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안다:


(1) 딤전 5:23: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이것을 음주를 허용하는 본문으로 볼 수 있는가?
(2) 고전 14:34-35/ 딤전 2:9-15: 지금도 여성이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 혹은 여성 안수를 금지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적용을 위한 몇 원칙들을 살펴보자:


(1) 1세기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 속에 우리가 산다면 그 본문의 신학적 내용과 윤리적인 명령들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다(예. 고난 중에서도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서신서에서 일관되게 죄로 규정하는 것(음란, 동성애, 방탕…)은 여전히 늘 죄이다. 하지만 지나친 확대 적용은 금물이다. 고전 6:1-11에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는 것을 두 크리스천의 사업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적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2) 유사성이 아주 약하거나 없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갈 5:2-6에서처럼 성도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일이 한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 이 말씀은 21세기 한국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때는 what it meant에 근거하여 적용의 구체적인 유비가 아니라 성도의 삶에 주는 원리를 도출해야 한다.

이 원리는 지역, 시간, 상황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무차별적으로 이 원리를 아무 상황에 적용할 수 없고, 그래도 유사한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면, 바울이 이방 신전의 축제에 참여하거나 거기에 바쳐진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할 때, 이것은 귀신과 사귀는 것이기에, 21세기에는 한국 교인들의 삶 중에서 점성술, 사술, 사주팔자, 심령술 등에 적용할 수 있다.

사실은 여기서도 유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와 장소에 규범적인 문화를 주시지 않아서 이런 적용은 아주 애매할 때가 많다.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낙태나 인터넷 범죄를 위해 우리가 어떤 성경 구절을 인용할 수 있나? 이때 우리는 창조-타락-구속-재창조의 완성이라는 성경적인 세계관 혹은 교리의 도움을 받아서 전체적인 성경에서 먼저 보고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더 참고할 책

Du Toit, A.B. 1985. Guide to the New Testament V. Pretoria : NGKB.
Malherbe, A.J. 1988 Ancient epistolary theorists. Th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Malina, B.J. & Pilch, J.J. 2006.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letters of Paul. Minneapolis : Fortress Press.
골든 피 & 드글라스 스튜어트. 2001.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J. 크리스챤 베커. 1998. 사도바울. 한국신학연구소.
앨버트 벨. 2001. 신약 시대의 사회와 문화. 생명의 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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