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과 교회의 차이점
에클레시아(ekklesia)-회중, 모임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회중'(congregation) 또는 '모임'(assembly)을 의미하는 단어로, 헬라 세계에서 이 단어를 '종교적인 집회(모임)'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입법기능을 담당하는 '시민들의 모임'(기구)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영어 성경에 다시 '교회'로 번역되어 있는데 흔히 교회를 건물이나 어떤 종교적인 단체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에클레시아'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공공 장소(건물)가 아니라 사람들의 '집회'(모임)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가 또한 70인역(BC 270 년경에 완성된 가장 오래된 헬라어 역 구약 성서) 성경에 사용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할 때 사용되었으며, 사사기 21장 8절과 역대상 29장 1절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 가로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치 아니하였으니"(삿 21:8)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대상 29:1)
1) 카할(qahal)
구약에서 '회중', 즉 '카할'은 '함께 모이다', '모이다' 등에서 유래한 단어로 거의 모든 집회에 사용되어진 단어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7)
"때에 그 땅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 말하여 가로되"(렘 26:17)
그러나 이 '카할'이 하나님과 관련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카할 여호와'라고 할 때 즉, '하나님의 카할'-'하나님께서 소유한 에클레시아'(회중, 모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였을 때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카할'('에클레시아')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신 5:22)
2) 에클레시아
신약성경 중에 가장 초기에 기록된 것 중의 하나인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전 1:1)
거의 같은 시기인 A.D 50년경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우리 주께서 베드로에게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셨던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위의 두 구절에서 우리는 '에클레시아'라는 이 헬라어 단어가 A.D 50년경에 분명히 제한되고 전문적인 의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자들 즉,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대해 사용되었음을 발견케 됩니다.
어떠한 건물을 지칭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카할'과 마찬가지로 '에클레시아'는 우주적인 교회(모임) 각 지역교회(모임)를 모두 나타내는 의미를 다 내포하고 있습니다.
- 우주적인 교회(모임)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 지역교회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
1. 사도 요한은 '에클레시아'(모임)에 대해 요한복음 3장에서 볼 수 있는대로 개인적인 거듭남(구원)으로 '에클레시아'(모임)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클레시아'(모임)는
1) "세상 안에 있으며"(요 17:15),
2)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요 17:16).
모임(교회)은 죄로 물든 인간들의 모임(사회)와는 구별되어야 하며,
3)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이긴"(요 16:33) 것이 '에클레시아'(모임)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에클레시아'(모임)는 '하나되는 공동체'이며(요 8:42, 6:56, 17:11, 21-23), '성별된 공동체'(요 17:11, 10:36)이며,
'사랑의 공동체'(요 15:9, 14:15, 21, 23; 15:10)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에클레시아'(모임, 교회)에 많은 빛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창세 전에 택하였으며'(엡 1: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며"(엡 1:5), 구약에는 비밀로 두셨다가 "그 뜻의 비밀을 때가 차매 나타내신" 것으로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또 바울은 이 '에클레시아'(모임)에 대한 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가정의 비유(갈 6:10, 엡 2:19; 딤전 5:8 외),
2) 몸의 비유(고전 10:14-22, 고전 12:12-31, 롬 12:3-8, 엡 1,2,4장, 골 1,2,3장) ... 등으로 많은 비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전 서신서에 '교회'에 대한 말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사도 베드로도 그의 전후서에서 '에클레시아'(회중, 모임)의 구성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성원들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는 자들이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는 자"(벧전 1:2-4)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 2:4-5)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벧전 2:9)기 위해서 불러낸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살펴본 대로 '에클레시아'(모임)는 건물이나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무리들의 모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쉬나고게-회당
1. 에다(edah)
히브리어의 '카할'이 헬라어 '에클레시아'와 '쉬나고게'로 번역되어 사용되어졌습니다.
'쉬나고게'도 종종 '유대인의 집회'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는 했으며,
신약성경에도 두 차례 이 '쉬나고게'가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 사용되기는 했습니다(약 2:2, 히 10:25).
그러나 '카할'은 '에클레시아'(집회, 모임)를 나타낼 때,
그리고 '회당'(모임의 장소로서의 건물)을 나타낼 때는 '에다'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에다'는 항상 '쉬나고게'(회당)로 번역을 했습니다.
'쉬나고게'는 유대인들이 회당의 뜻과 혹은 유대인들의 모임만을 지칭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가 이 '에다'(쉬나고게)입니다.
교회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언제나 존재합니다.
건물은 '모임'을 위한 것일 뿐 '모임(에클레시아)' 그 자체는 아닙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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