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대표(구약성서-수메르역사-이집트역사-로마역사)

 

시대 및 국가

성서 인물

시기

구약성서 내용

지역

수메르

구분

이집트

로마

수메르문명

 

하나님

~약1만년전

b.c8000년경

*원역사 (창세기 1-11장):

우주적 차원의 세계사를 언급한다. 이스라엘 역사와 종교적 측면에서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하섹(Hassex), 사쿠라(Saqurra), 할라프(Halaf) 문화

농경시작

 

 

아담+이브

약b.c4500

 

 

금석병용시대

-왕조 이전 시대

BC 5000~4000년대

주민들은 손쉽게 지은 움막에서 살았고, 죽은 사람을 집 안에 묻었을지도 모른다. 서부 사막과 하르툼 북쪽에서도 신석기 유적이 확인되었다.

상(上)이집트에 존재한 타시안 문화바다리안 문화는 BC 4000년대 말기의 것이다.

카인과 아벨,

b.c4500-4000년경

 

수메르 문명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

-점토판 쐐기 문자 발견. 구약성경과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옴.

 

~ 4000

 

우바이드기(Ubaid period)

...

4000~ 3100

 

우루크기(Uruk period)

에블라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b.c2300년경

*

아카드왕조(셈족)

 

노아

b.c3058

 

 

~ 2900

셈족의 기원

옘뎃 나섹기(Jemdet Nasex Period)

 

초기 청

기 시

-초기 왕조시대(BC 2925경~2575경)

-제1왕조(BC 2925경~2775경) : 문자 보급. 인공적 필기 도구인 파피루스가 발명.

-제2왕조(BC 2775경~2650경): 초대 왕은 헤텝세켐위였는데, '두 세력에 평화로운'을 뜻하는 이 이름은 국내의 두 파벌이나 두 지역 사이의 분쟁이 끝난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제3왕조(BC 2650~2575년경) :이 왕조의 2번째 왕인 조세르는 이집트 왕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사카라에 있는 그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완전히 돌로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건축물로서, 그때까지 지어진 어떤 건축물보다 몇 배나 더 크다.

-고왕국시대(BC2575경~2130경)

-제4왕조(BC 2575경~2465경)는 왕의 죽음에 대비해 무덤을 만드는 데 지나치게 많은 국가 자원을 쏟아부은 시대였다. 이때문에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낮아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초대 왕은 스네프루였다. 그의 후계자인 쿠푸(케오프스)는 기자에 대(大)피라미드를 지었고, 쿠푸의 아들인 카프레의 2번째 피라미드와 멘카우레의 3번째 피라미드가 대피라미드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그 옆에 나란히 세워졌다(→ 기자의 피라미드).

-제5왕조(BC 2465경~2325경) : 왕들은 태양신을 예배하기 위한 개인 신전을 지어 태양신에 대한 헌신을 과시했다. 이 신전들은 신을 예배하는 장소 이외에 왕의 무덤으로도 쓰였을 것이다. 제5왕조에 속한 9명의 왕들 가운데 7명의 피라미드가 확인되었지만, 이 피라미드들은 제4왕조의 것보다 크기도 작고 튼튼하지도 않다.

-제6왕조(BC 2325경~2150경) : 나일 강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에서는 관리들의 활동을 적은 전기 3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페피 1세2세 때 교역을 위해 남쪽으로 원정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집트는 더이상 하누비아를 지배하지 못했다. 이 지역은 별개의 정치 단위를 이루었으며 그 규모도 차츰 커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이곳과 이집트의 관계도 점점 나빠져 페피 2세 때는 마침내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단명한 제7왕조(이 왕조에 속한 왕의 이름은 마네토의 책에 전혀 나와 있지 않음)와 제8왕조가 그 뒤를 이었다. 제8왕조가 끝나면서 고왕국은 널리 퍼진 기근과 폭력으로 무너졌다. (혼란)

 

아르박삿

 

 

 

살라

 

 

 

에벨(노아4대손)

b.c3000년경

에블라 문명의 시조

에블라문명

-시리아지역을 지배하던 도시왕국

-점토판 쐐기 문자 발견. 구약성경과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옴.

-사르곤 대왕의 아카드왕국에 의해 멸망

 

2900~ 2350

 

초기 왕조 도시기(Early Dynastic city states)

 

b.c2500년경

 

셈족 중 일부는 지중해 동쪽연안에 자리잡아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국가를 세웠다. 대표적인 곳이 비블로스, 티루스 등으로 이러한 도시국가들의 연맹을 '페니키아'라고 한다. 350여년간 해양무역을 독차지하였고, 배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리고 원활한 무역을 위해 알파벹 문자를 발명하였다.

 

B.C 235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

-최초의 통일 국가인 사르곤 대왕의 아카드왕국 건설

 

아브라함+하갈

 

아브라함+사라

BC 2166~2067

*족장 시대의 삶과 종교행위:

족장 시대의 인물(아브라함, 이삭, 야곱) , 한가정의 가장이 아닌 이스라엘 즉 히브리 민족을 대변한다.

 

*출애굽과 아브라함(하나님의 명칭): 출애굽시 야웨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으로 알려지고 "엘"과 관련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엘룐/창14:18-20)"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창21:33)" 그리고 "언약의 하나님(엘베리트/삿9:46)" 이와같은 명칭은 고대 근동의 샘족에게 알려진 "엘"신과 동일시 되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나타난 야웨,엘로힘,엘은 고대 근동의 샘족에게 알려진 "엘"과 "야웨"가 동일시 되었다.

 

2166아브라함의 출생 (창 11:27)

2166우르에서 하란까지(창 12:4)

2091아브라함의 우르에서 가나안 도착 (창 12:56)

2067 할례 제정(창 17:9-14)

히브리족이라는 명칭이 생김.

-b.c 2200년경 아카드제국 멸망

우르 제3 왕조

이스마엘

이삭

 

2119~ 2004

이삭의 출생 (창21:23)

우르 제3 왕조 ("수메르 르네쌍스" 또는 "신수메르기")

중기 청

기 시

-제1중간기(BC 2130경~1938)

-제9왕조 테베 왕조(BC 2130경~2080)와

-제10왕조 헤라클레오폴리스 왕조(BC 2080경~1970경)가 양립하여 싸운 광범위한 투쟁 시대가 열렸다. 테베 왕조는 안정되어 있었지만 헤라클레오폴리스에서는 왕이 자주 바뀌었다. (혼란)

-제11왕조(BC 2081경~1938경)테베를 도읍으로 삼았다. 이 왕조의 4번째 왕인 멘투호테프 1세(BC 2008~1957)는 이집트를 차츰 재통일하고 헤라클레오폴리스인들을 추방했다.

일찍이청동기시대(BC 2000~1500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인 거주가 이루어진 것은 BC 1000년경부터이다.

트로이 전쟁(Troy 戰爭) :기원전 12세기

초기 아시리아 왕국

 

야곱

2000~

1800

2006에서와 야곱의 출생 (창 25:26)

1991 아브라함의 사망 (창 25:8)

1929야곱의 하란도피 (창 28:10)

1918유다의 출생 (창 29:35)

1915 요셉의 출생 (창 30:24)

1898애굽으로 팔려감 (창 37:36)

1886이삭의 죽음 (창 35:29)

1885애굽의 총리가 됨(창 41:46)

1876야곱의 애굽 이주 (창 46:7)

1859야곱의 사망 (창 49:33)

1805요셉의 사망 (창 50:26)

이스라엘족이라는 명칭이 생김.

 

바빌로니아

(아무르시대)

 

 

1800~ 1700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왕이 건설

아무르 인들이 다시 이 지역을 통일하고 바빌론에 도읍지를 정하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함무라비(Hammurabi) 대왕은 B.C 18세기경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유다

 

유대족이라는 명칭이 생김.

 

 

 

 

...

1600~ 1200

*출애굽 사건과 이스라엘 종교의 형성:

출애굽 사건의 의의는 이스라엘 공동체 형성의 결정적 사건이다.(역사의 시작)

 

카사이트 왕조, 아시리아 중기

-히타이트가 바빌로니아 멸망

-1200년경 ‘바다민족’이 히타이트 멸망

후기 청

기 시

-중왕국시대(BC 1938~1600경)

-제12왕조(BC 1938~1756경)

제12왕조에서 제13왕조로 넘어가는 사이에 왕권에는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다. 약 1세기 동안 70여 명이 왕위를 차지했다. 많은 왕들은 몇 개월밖에 다스리지 못했고, 왕위를 요구하는 경쟁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제13왕조(BC 1756~1630경) 때는 아시아 이민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BC 18세기말부터 북동부 지역의 삼각주에는 팔레스타인인이 잇따라 들어와 정착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물질문명을 유지했다. '메리카레를 위한 가르침'을 비롯한 이집트 문헌들은 이런 종류의 유입이 가진 위험을 경고하고 있으며, 이 사건은 정부의 힘이 약해진 것을 보여준다. 이 시기말에 이집트는 하누비아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다.

-제2중간기(BC 1630~1540경)

이집트와 누비아의 세력 다툼은 점점 치열해졌고 이 경쟁으로 인해 새로운 두 왕조의 형성이 구체화되었다.

-힉소스 왕조(BC 1630~1523경)라고도 불리는 제15왕조는 나일 삼각주에 있는 아바리스를 도읍으로 삼았고,

-제17왕조(BC 1630~1540경)는 테베에 중심을 두었다. 힉소스라는 낱말의 기원은 '외국 땅의 통치자'를 뜻하는 이집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힉소스인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아시아인의 지배는 이집트에 많은 기술 혁신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악기와 음악 양식 따위의 문화적 혁신도 가져다주었다.

제17왕조가 끝날 무렵 테베 왕들이 힉소스의 지배에 도전했다.

* 고대 이집트왕조는 힉소스(히타이트.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민족)인들의 칩입을 제외하면 외부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제18왕조(BC 1539~1292경)

이집트 전설은 아모세(BC 1539~1514 재위)를 새로운 왕조의 시조로 본다. 그는 이집트를 재통일한 토착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출애굽시기

 

 

모세

약 BC

1527~1406

*야웨 종교의 과정:

광야 생활을 하던 중 모세에 의하여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는다.

 

1527 모세의 출생 (출 2:12), 모세의 시 (시 90)

1447모세와 바로의 1차 접견 (출 5:1)

1446이스라엘의 애굽 탈출,

라암셋 출발 (출 12:37)

홍해 도착 (출 14:11)

시내광야 도착 (출 19:1),

십계명 받음 (출 20:3-17)

1406모세의 유언 설교 (신 1장 - 신 33장), 모세의 죽음 (신 34:5), 아론의 죽음 (민 20:28)

 

약 BC 1500년(15C)경 전후에 기근이 들자, 그들 족속의 일부는 4이집트 나일강 유역으로 가서 살다가, BC 13C~15C경에 그들은 모세의 지도로 노예생활을 탈출하게 된다.(이시기는 역사학자마다 조금다르나, 크게봐서 13C~15C 범위로 본다) 이 5탈애굽기(팔레스티나) 때에,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여호와신을 체험하고, 십계명(율법)을 받게되는데, 이때부터 세계종교역사상 유별나게 특색있는 계약종교인 유대교 역사가 출발하게된다.

 

 

 

 

 

 

 

 

여호수아

1405

그후에 히브리족은 모세 후계자로 군인출신 여호수와의 인도로 정착해 살아가다가, BC 1100경에 다윗왕에 의해 흩어지고 분열된 자기민족을 통일하여, 7히브리(헤브라이)왕국을 건설한후에  약400여년간 왕국의 번영을 누리며 행복한 시대를 누린다.

 

후계자 여호수아 임명 (민 27:23), 요단 동편정복 (민 32:1)

1405요단강을 건넘 (수 3:17),

이스라엘의 가나안 도착,

두번째 유월절 (수 5:10)

1390 여호수아 사망 (수 24:29)

 

 

 

 

 

 

 

 

-람세스 왕조(제19·20왕조)

람세스 1세(BC 1292~1290 재위)는 나일 삼각주 동부 출신으로, 이집트의 정치 중심지는 제19왕조가 시작되면서 나일 삼각주로 이동했다.

 

신히타이트

 

삼손

사무엘

1100~ 700

 

 

 

기 시

-제3중간기(BC 1075~656)

신왕국 말기에 이집트는 분열되었다. 북부는 타니스 왕조인 제-21왕조(BC 1075~950경)가 물려받았고 나일 강 유역은 대부분 테베 성직자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현지에서 왕의 칭호를 채택했다.

로마지역에서는 BC 900년경부터는 그리스-동양의 큰 영향하에 아르노 강과 테베레 강 사이에서 에트루리아 문명이 꽃피었다.

 

 

 

히브리왕국

 

다윗

BC1020 ~970

*통일 왕국 시대의 야웨신앙:

200년동안 사사시대에 왕 제도를 거부 하면서 평등 사회를 구축 했으나 실패하고 종치적으로는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 되었다. (므낫세, 에브라임,베냐민,지파 중심으로 편중된 엘리와 사무엘과 사무엘 아들들의 직권남용으로 일체감 위기도래),블래셋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백성들은 정치적 불안과 야웨신앙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사무엘을 통하여 왕정을 요구한다. 이것은 사사중심 부족사회에서 왕권 중심으로 강력한 왕권제도를 요구하며 당시 철제로 무장한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었다.

 

1040다윗의출생 (시편)

1025 기름부음 받은 다윗 (삼상 16:13)

1020 다윗과 골리앗 (삼상 19:1-15)

1017 사무엘의 죽음 (삼상 25:1)

1010사울의 전사 (삼상 31:6, 대상 10:6), 다윗의 등극 < 헤브론 > (삼하 2:4, 대상 11:3), 왕정초기 (시편)

1003 다윗의 통일왕국 (삼하 5:5), 예루살렘 천도 (삼하 5:9, 대상 11:7)

법궤의 예루살렘 안치(삼하 6:16, 대상 15:29)

신아시리아

 

 

1000~ 700

*영원한 왕국 약속:

하나님은 다윗과 계약을 맺고 영원한 왕국을 약속한다.(삼상7) 그후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고 정치적 환경은 주변국들과의 화해를 우선하여 태평 성대를 누렸다.

 

*솔로몬의 실정:

종교적 혼탁과 하나님의 진노로 타도의 대상이 된다. 결정적인 주도는 르호보암에 의해 이루어진다. 솔로몬의 말년은 초기 해동과 달리 그의 말년은 지혜롭지 못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남과 북 지파의 골은 깊었다.

 

신아시리아 제국

후대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킴.

BC745-727

티글랏필레셀 3세-구약성경에 불(Pul)로 불리우는 앗시리아 최대의 왕 가운데 하나로 전성기를 이룩함.

-제22왕조는 초기에는 성공적이어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의 영향력을 되살렸다. 솔로몬이 죽은 뒤(BC 936경) 셰숑크 1세는 팔레스타인에 들어가 예루살렘을 유린했다.

이집트의 제 22왕조를 창건한시삭( 935-914)

926 애굽왕 시삭의 이스라엘 침입 (왕상 14: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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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시삭의 이스라엘 침공]

BC 8세기에 철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인도유럽어족이 처음에는 팔라티노 구릉과 아벤티노 구릉에, 그 이후에는 에스퀼리노 구릉과 퀴리날레 구릉에 외떨어진 마을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 마을에서 발견된 유물과 장례 관습으로 미루어보아 처음부터 다양한 문화집단(라틴족과 사비니족)이 장래의 로마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철기를 가져온 인도유럽어족-->인도유럽어족에 범어(인도 브라만어)가 포함되어있다.-->로마의 최고신과 범어(인도 브라만어)의 신이 어원학적으로 같다. 로마인이 숭배한 상당수의 신은 원시인도-유럽 신에서 나왔다. -범어를 사용한 브라만은 우리민족-->우리 민족이 로마 쪽으로 이동· 정착하여 그 지역을 발전시켰다.

 

 

 

669-627

 

아수르바니팔-앗시리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최후의 위대한 왕으로 이집트를 재차 정복하여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테베를 노략하는등 외정(外征)에 대성했다. 특히 고대 세계 최대의 왕립도서관을 세워 고대의 각종 문헌을 수집하여 소장한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 1853년 12월 22일밤 영국 사람 랏삼(Hormuzd Rassam)등에 의해 니느웨가 확인되고 이 도서관이 발굴되었다. 이곳에 소장된 고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문서 가운데 성경 창세기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와 흡사한 점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제24·25왕조 때 이집트 국내 정치는 아시리아 제국의 성장에 영향을 받았다. BC 671년에 아시리아 왕 에사르하돈이 이집트에 들어와 타하르카 왕(BC 690~664 재위)을 상이집트로 쫓아냈다. 2년 뒤 타하르카는 멤피스로 돌아왔지만 BC 667년에 에사르하돈의 후계자인 아슈르바니팔은 타하르카를 쿠시인이 확고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테베로 쫓아냈다. 타하르카의 후계자인 타누타몬은 아시리아를 지지하는 삼각주 군주들의 동맹군을 멤피스에서 무찔렀지만, 이에 대해 아슈르바니팔은 테베를 약탈하는 것으로 보복을 했다.

 

히브리왕국

 

솔로몬

BC990~931

990 솔로몬의 출생 (삼하 12:24)

970 다윗의 죽음(왕상 2:10, 대상 28:11-21),

솔로몬의 등극 (왕상 2:12),

966 성전 기공 (왕상 6:1, 대하 3장, 4장)

965 아가서 기록

959 성전 완공 < 7년 > (왕상 6:38), 왕궁기공(왕상7:1)

솔로몬의 잠언(잠 1장 - 잠 9장, 잠 10:1-22, 16:25-29,31장), 아론의 잠언 (잠 30장)

935 솔로몬의 전도서 기록

931솔로몬의 죽음 (왕상 11:43, 대하 9:31),

왕국 분열 (왕상 11:43-12:20)

 

 

 

약 1세기 후에 유대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기원전 586년)된 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제국의 보호 하에 유대왕국이 다시 수립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에 저항했기 때문에 탄압받고 서기 70년 유대인의 세계유랑이 시작되었다. 특히 유럽의 유대인은 끊임없는 박해를 받았다.

 

 

르호보암

 

*북왕국 이스라엘(초대왕 여로보암):일차적으로 벧엘과 단에 신당을 세우고 그곳에 금 송아지를 안치했다. 여로보암은 이것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라 한다.

*엘리야 선지자의 등장:

아합왕에게 3년의 가뭄을 선포한다. 아합에게 엘리야는 바알보다 하나님의 우월성을 입증해 보였다. 후계자인 엘리사는 정치에도 개입해서 야웨신앙의 회복을 꾀하지만 바알 신앙을 완전히 추방 하는데는 성공하지 못한다.

*남왕국 유다:

북방의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노출, 바알종교와 이방종교가 곳곳에 스며 들었다.

다윗왕, 솔로몬왕으로 이어지던 통일된 왕국은 다시 남북으로 8이스라엘왕국과 유다(유대)왕국으로 분열된다. 이스라엘은 209년간(BC 931~BC 722년)존속하고, 마지막엔 9앗시리아(시리아인의 뿌리)제국에 의해 망하고, 유다(유대)왕국은345년간(BC 931~BC 586년) 존속해서, 마지막엔 신흥강국인 10바빌로니아(바빌론도시중심의 제국)에게 멸망당한다.

926애굽왕 시삭의 침입 (왕상 14:15-28)

910아사의 유다왕 즉위 (왕상 15:8, 대하 14:1)

586 남왕국 유다의 함락 < 3차 포로 >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포로가 됨(왕하 25:8, 대하 36:17),

 

 

 

 

바빌로니아왕국

 

오바댜

700~ 600

이때, 바빌로니아왕은 솔로몬궁전과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고관, 유력자,기술자등 엘리트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서 바빌론으로 끌고간다. 이때를 바빌론 유수기라  하는데, 거기서 포로 노예생활을 할때, 그들 유대민족들은 “우리가 왕국을 이루고 400년간 잘살다가, 왜 이꼴이 되어 고통을 받는가? ” 하며 자괴감에 빠지면서, 민족정신이 분열되자 위기를 느낀 유대족의 선지자(=지도자)들이, 고통의 원인으로 여성을 희생양 삼는 사상을 만들어내게 된다.(즉 여자가 원죄를 짓게 만들어서 우리가 이고통을 겪고있는것이다라는식의...) 당시는 유대백성들의 고통과 절망,분노를 해소시켜야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들이 후대에, 중세에는 마녀사냥과 여성악마화, 서구 제국주의들의 흑인악마화(실은 황인종도 포함한것임)의 기치를 들고,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한 죄악을 저질렀던 것이다.

신 바빌로니아 제국

유대왕국을 멸망시킴.

바빌론 유수기

 

*포로기 종교생활:

유다인들은 회당중심으로 야웨신앙과 전통을 유지한다. 에스겔은 포로민들이 유다의 전통문화와 의식법을 따르도록 촉구했다. 고레스는 칙령을 반포하여 모든 포로는 백성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유다인들의 귀향은 매력적이지 못했다.

 

*포로 후기의 야웨주의:

스룹바벨에 의해 완성 되었고 포로이전의 전통을 회복 하고자 했다. 느헤미야의 새 유대주의는 민족차별주의로 이어지고 배타적 유대주의로 발전한다.

 

*에스라의 강경책:

더욱 강경한정책을 폈고 이미 이방여인과 살고있는 경우라도 그 여인을 쫒아내고 유다공동체로 돌아올것을 요구했다. 그렇지않으면 유다사회에서 내쫒김을 당했다.

 

로마왕정

:기원전 753년 – 기원전 509년

에트루리아 왕조(소아시아인)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753년에 로마라는 이름의 도시가 로물루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로마의 기원 전설은 거의 완전히 비역사적인 허구이므로, 지리적 혹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검증이 필요하다.

기원전 750년경에는 팔라티누스 언덕을 비롯한 로마의 여러 언덕에 농촌 촌락들이 들어섰는데, 이들 산지 촌락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언과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신상(神像) 없이 예배가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제의적(祭儀的) 신상이 도입되었고, 에트루리아 양식의 신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가령 주피터 신전).

-10개월로 된 원시 로마인의 종교력(음력)은 12개월로 된 에트루리아력(양력)으로 바뀌었다.

페르시아

 

 

스룹바벨

에스더

느헤미야

b.c

576

1차 포로 귀환

솔로몬 성전 재건

2차 포로 귀환

3차 포로 귀환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다.

메디아(성경에선 메데, 지금의 터키)를 병합한 키루스(성경에선 고레스) 대왕은 ‘아케메네스 왕조’로 불리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

 

 

 

 

로마 공화정:기원전 508년 – 기원전 27년

-로마인이 숭배한 상당수의 신은 원시인도-유럽 신에서 나온 것이며, 나머지는 그리스 신에 기반한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아에스쿠라피우스)는 역병(疫病)에 맞서 싸우기 위해 BC 293년 로마에 받아들여졌다.

-로마에서 인정된 최초의 동방 종교는 BC 204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의 결정적인 시기에 받아들인 대모(大母 Cybele) 숭배였다.

1.호민관인 그라쿠스형제의 농지법 강행

-유력자들의 과도한 토지점령을 부분적으로 재분배 되어져 원로원도 두파로 갈리어져 분열이 일어남.

2.제1삼두정치(b.c59)

-폼페이우스,카이사르,크라수스 세 사람이 제1차 삼두정치를 체결하였다. 황제가 군림하게 되는 로마제국의 서두기를 맞이함.

3.제2차 삼두정치(b.c43)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결성하여 정치, 군사적 협약을 맺는다.

-옥타비아누스가 훗날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

-유대의 헤로대왕이 로마의 힘에 의해 유대의 초대왕이 됨. 헤로대왕의 유아학살로 마리아와 요셉이 피난을 감.

마케도니아

 

 

b.c 336

 

 

알렉산드로스는 BC 336~330년 사이에 아케메네스 제국의 정복을 완료했다. 에게 해부터 인더스 강에 이르는 지역이 이 거대한 왕국에 흡수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중근동의 토착민과 그리스인 간의 혼인을 권장하여 그리스 문화를 심었지만, 행정구조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파르티아

 

 

BC 3세기경

*유일신 야웨주의는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37 헤롯의 유다왕 즉위

 

또 이란계 유목부족이었던 파르니족은 BC 250년경에 파르티아 제국을 세워 500년간 존속했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팽창한 로마 제국과 우열을 다투었다.

파르티아는 고원지대의 농산물이 빈약한 곳이었으나 동서간의 무역로인 비단길에 위치하여 대상으로부터 통행세를 받아 재정을 메웠다. 이 나라는 본래 셀레우코스 왕국에 속했으나 그 굴레를 맨 처음 벗어났다.

 

 

 

 

 

 

 

 

 

 

요셉+마리아

 

 

5 세례 요한의 탄생

 

 

로마 제국:기원전 27년 – 기원후 476년

동·서로마제국

1대 아우구스투스~9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로마 황제 1대 시기에 예수가 탄생하였고, 2대 시기에 예수가 처형되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힘이 막강해지면서 기존의 속국인 유대인들이 더욱더 속국화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유대집단은 로마제국 내에서 ‘산헤드린’이라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자치활동집단을 형성하여 사회를 다스렸다.

예수가 많은 서민들에게 추앙의 대상이 되자 유대교의 산헤드린과 로마제국이 예수를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탈무드》 〈산헤드린〉에는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 사후 유대인들의 박해는 더욱더 심화되었고,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인 신으로 믿는 유대집단과 예수를 단지 선지자로 보는 유대집단으로 분파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기독교와 유대교가 나눠지는 계기가 되었다.

 

1.로마제국과 유대인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한 전쟁이 수차례 일어났다.

*로마 -유대전쟁사

제1차 유대-로마 전쟁-->키토스 전쟁-->제2차 유대-로마 전쟁=바르 코크바의 반란(132년 – 135년)-->반 갈루스 전쟁-->포카스 반란

10대 티투스 황제시기에 로마로 부터의 유대인들의 독립을 위한 전쟁을 진압하였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폼페이·헤르쿨라네움·스타비아이가 멸망하자 캄파니아에 지원을 보내기도 했으며, 80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난 뒤 로마를 재건하는 데도 힘썼다.

13대 트라이아누스 때 로마는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16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출간하여 철인(哲人)으로 불리어진 황제였다.중국의 역사서 《후한서》에 기술된 ‘대진국왕(大秦國王) 안돈(安敦)’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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