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와 음악 


글 / 엄원용 목사

1. 찬송의 뜻 


찬송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도들이 성삼위일체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면 그것은 찬송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찬송가는 예배 시에 부르는 노래로, 기도, 설교, 헌금 등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아니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찬송은 기도나 말씀보다 더 위에 선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찬양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윗이 축복 받은 것도 그의 행위에서라기보다 늘 하나님을 찬양한 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찬송만으로도 훌륭한 예배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찬양을 드려야 하는 이유


찬양은 은혜받은 자로서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찬송을 드리라고 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 (사 43 : 21), "저는 만물 위에 계셔서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이다" (롬 9 : 3),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하게 하시니라" (사 61: 11), "내가 교회 중에 찬송하리이다" (히 2 : 12),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어다" (약 5 : 13 ),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 시 33편 1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자녀된 자로서 찬송을 하라고 했다. 


이 찬송가에 대하여 루터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며, 신학 다음으로 가장 영예로운 음악이다"라고 했고, "찬송은 회중들에 의해 불리워질 때 영적인 깨달음에

도움을 준다"라고 했다. 바울은 "찬송은 신령한 것으로 영적 열정으로 부르는 노래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찬송의 대상이 되시고, 마땅히 찬송을 통해서

영화로움을 받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3. 찬양의 목적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과 회중이 인격적으로 만남을 가능케 해주는 울림으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4. 찬양의 중요성 


찬양은 사람의 가슴에 파고드는 하나의 설교가 된다. 회중들은 가사를 통해 설교를 듣는 이상으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감사와, 회개와, 죄를 빌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또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요, 헌신이요, 봉사와 충성을 다짐하고, 제자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요. 또 노래로 드리는 간구와 기도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찬송은 어느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크신 선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5. 찬양의 내용

1)내용
첫째, 찬송가는 일반적으로 찬미찬송, 기도찬송, 감사찬송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위대함과 주권 등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속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둘째, 죄와 사망을 이기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셋째,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것을 좀더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함(Adoration)
②구원의 은총을 고백함(Confession)
③하나님께 드리는 기원(Supplication)
④감사의 제물(Dedication)
⑤기타 : 구원, 천국, 교회, 성경, 성례, 절기와 행사, 봉사, 충성, 감사, 회개, 사죄, 인도, 다짐......


찬송가는 일반 복음송과는 달리 밝고, 장중하고, 엄숙하고, 위엄 있고, 경건해야 한다. 따라서 찬송가는 탈세속적이어야 하고, 영적 감동에 의해 된 것으로 신앙적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간증과 고백이어야 하며, 신앙적 공감에 의해 되어진 역사 이야기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찬송가 558장 중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직접적으로 찬양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노래 (135장 ,185장 등 )와, 복음송가에서 온 곡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쓰고 있는 558장은 모두 찬송가 집에 들어갈 만한 것들이어서 넣은 것이므로 찬송가 속에 포함시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2)찬송가가 되기 위한 조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60여 곡의 찬양가가 있고, 나머지는 거의 복음가에 속한다. 100년 전 미국에서 많이 불려지던 복음가가 선교사들을 통해 보급된 것이다.

오늘날의 복음가들은 속도가 빠르고 당김법이 많이 사용되고 장식음이 많아 회중들이 같이 부르기에는 어려운 곡조가 많은 것이다.

이 복음가들이 회중 찬송으로 편집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요건이 맞아야 할 것이다.


1) 신학적인 고려-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맞아야 하고, 복음적이어야 한다.
2) 문학적인 고려- 아름답고 품위 있는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3) 음악적인 고려- 가락과 리듬이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부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



6. 찬양의 종류

①찬양 : 성가대에 의하여 불리워지는 합창곡이라고도 볼 수 있다.
②찬송 : 찬송가에 실려 있는 곡으로 회중들에 의해 불리워지는 것을 말한다.
③송영 : 성가대에 의해 불리워지고, 오르간니스트에 의해 연주되는 것이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회중들이 함께, 주로 예배 처음 시작할 때 많이 불리어지게 된다.


그러나 찬양이든 찬송이든 예배 음악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으며 ,다만 찬양은 회중들 가운데 대표로 뽑아 보다 높은 수준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찬송보다 수준이 높으며, 찬송은 모든 회중이 부르는 것이므로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곡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낮은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굳이 나누어 본 것이요, 넓은 의미에서는 이들을 모두 찬송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된다. 



7. 찬송가의 특징

찬양의 내용이 들어 있다해서 모두 찬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찬송가가 되려면 우선 가사 자체가 찬송시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를 최고의 아름다운 곡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찬송시에 찬송곡을 합쳐 조화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찬송은 진.선.미를 동시에 나타내야 하는데, 곡만을 강조하여 아름다움의 표현에만 치우치거나, 가사만을 강조하여 진리의 표현에만 치우쳐도 안 되고, 또 찬송하는 자의 태도도 목소리의 아름다움에만 치우쳐도 안 된다. 가장 훌륭한 찬송은 바로 이 셋이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시, 곡, 목소리 (표현)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찬송이 된다. 따라서 이 셋은 서로 보완 관계로 곡은 시에 의하여 내용을 충실히 할 수 있고, 시는 곡에 의하여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찬송은 부르는

고운 목소리에 의하여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우리가 일반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구별하는 요건 중의 하나가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냐,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했느냐, 어떤 목소리로 부르느냐, 누구를 대상으로 부르느냐 등이 복음송과 일반 찬송가를 구별짓게 하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8.예배음악으로서의 찬양의 성적 

찬송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1)예배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성경은 예배학적으로 봤을 때 '부르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제일 먼저는 '아담아!' 하고 부르시고 그 다음엔 가인도 부르시고, 아브라함도 다윗도 솔로몬도 베드로도 부르셨다는 말씀이고 지금은 바로 우리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느냐?' 부르셨을 때 '예,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예배'란 설명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시에 의한 인간의 응답이 예배란 것이다. 

2)예배는 '하나님과의 대화(conversation)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giving)'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becoming)"이라고 말하고 있다.

음악 역시 예배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드림의 기능, 대화의 기능, 그리고 변화의 기능(닮아 가는 기능)'이 있다.


①드림의 기능
예배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예배자의 행위는 드림으로써 나타나야 한다. 예배에서 '드림'이 강조되지 않고, '받음'만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현대 교회의 큰 잘못이다. 이와 같은 때에 예배음악관을 정립하고, 수직 하향적인 하나님에 관한 (about God) 노래보다는 수직 상향적인 하나님을 향한(to God)노래를

더욱 많이 부를 때 예배에서 드림의 기능이 강조 될 수 있다. 


현재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책의 내용을 가사적, 주제적, 그리고 음악적으로 분류할 때, 좁은 의미의 찬송가(Hymn)와 복음 송가(Gospel-song)로 나눌 수 있으며, 또는 찬송가(Hymn), 복음찬미가(또는 복음찬송가 : Gospel Hymn), 복음송가(Gospel-song)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2가지 분류에 의한 좁은 의미의 찬송가나, 3가지 분류에 의한 찬송과 복음 찬송이 하나님께 드림의 기능이 강조된 찬송인 것이다. 예배음악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들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수직 상향적인 내용이 없는 수평적 개념의(즉, 인간이 인간을 위해 노래하는 종류의 찬송) '드림'의 기능이 없는 노래는 예배음악으로서 적절치 못하다. 물론, 예배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거나 성도들을 위해 격려, 권면, 훈계, 교육, 전도 등의 노래인 복음송가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예배음악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드림의 기능'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② 대화의 기능
말씀은 예배에서 쌍방통행(two way : 수직 하향적, 수직 상향적)의 원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예배가 일방적이지 않듯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나타난 음악의 기능은 찬양의 상호작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수직상향적인 선포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인간에게 말하는 수평적인 교제의 기능으로 나타난다. 예배에서 상호작용적인 대화의

기능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의 응답적 대화이다.


③ 변화의 기능 
찬양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예배자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는 무한한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예배 자는 끊임없이 변화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 예배가운데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변화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변화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으며. 찬양의 결과는 예배의 모든 과정을 통해 변화됨으로 나타나야 함을 의미한다. 



9. 예배음악의 기능

찬송이란 미(美)자체를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것이다. 


첫째, 찬양의 대상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적 고백의 표현이 찬양이다.

찬양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배음악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수단이다.


둘째, 예배에서 음악이란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이사야 6장)

즉,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분명히 드리는 행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음악을 선물로 주시고 느낄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드리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예배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계시를 받는데. 직접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예배는 단 두 가지의 예배적 형태(프로그램)로 되어 있다. 하나는 상위하달의

계시적 내용 (즉, 위로부터 내려오는 내용 : 성시 선언, 성경 봉독, 말씀, 선포, 축도 등)과 반대로 인간이 (예배자) 하나님께 드리는 하위상달의 내용(즉, 위로 드리는

내용 : 각 송영, 기도, 회중찬송, 찬양대의 찬양, 헌금 등)등 단 두 개의 예배형태가 결합된 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배인 것이다.

이는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들의 응답이기에 바로 예배음악이 이 아주 중요한 예배프로그램의 한 축임을 말하는 것이다. 



10. 예배음악의 역기능

적절치 못한 음악을 예배에 사용하는 가운데 심각한 상태의 음악적 역기능이 예배 안에서 나타나 오히려 음악으로 인해 예배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역기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음악은 다음과 같이 목적주의, 감상주의, 장식주의 등이다.

1) 목적주의로 인한 오용
음악이 예배의 본질을 떠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예배시간을 기다리며 부르는 준비찬송, 자리 정돈을 목적으로 하는 정리찬송, 통성기도를

돕기 위한 배경찬송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때에 음악(찬송)을 연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음악의 목적을 다른 것들과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찬송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그 대상이고, 찬송이 곧 예배인 것이다. 준비찬송, 정리찬송, 알림찬송, 배경 찬송 등의 개념은 찬송(예배음악)을 통한 직접적인 예배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예배의 대상과 목적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만드는 예배음악은

하나님만이 목적이고 대상이며 수단이 되어야 한다.


2) 감상주의로 인한 오용
감상주의로 인한 오용은 크게 노랫말과 곡조로부터 기인한다. 찬송가에 대해 가장 먼저 검토해야할 측면은 신학적 내용이다. 찬송(예배음악)의 내용은 신학적으로 건전해야 하며 너무 감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노랫말로 지어진 노래말로 지어진 찬송을 많이 부르면 기복적인 신앙형태를 초래하게 되고 검증되지 못한 음악적 리듬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음악을 사용하게되면 자신의 찬송에 자신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위험한 요소가 있을 수 있다. 노랫말의 내용이 심오하지 않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이해 정도가 떨어지고, 성경말씀과 연관성이 적고, 나를 중심으로 한 주관적 내용으로 구성되었을 때 가사와 음악으로 인한 감상주의로 빠질 수 있다. 특정한 감정이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강조할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계시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다른 것으로 주의를 끌게 될 우려가 있다. 예배음악에서 찬양의 본질을 잃어버릴 때 찬양의 목적과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3)장식주의로 인한 오용
현대교회에서 음악만큼 예배에 많이 쓰이는 것은 없다. 크리스천들은 음악으로 예배를 장식하기에 이르렀고 음악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개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래서 음악이 모든 순서 사이에 삽입되어 쓰여지기 때문에 '찬송가 샌드위치'라는 용어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음악으로 인한 습관적인 장식은 예배음악의 본질을 퇴색시킨다. 예배를 풍성하게 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식주의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장식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음악을 단순히 예배의 보조적 수단으로 보는데 있다. 음악을 순서에 의해 배치할 것이 아니라 예배 내용에 따라 배치함으로 음악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11. 찬양의 예배학적 고찰

1) 성경은 음악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4장 21절에「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음악이 공식적인 행사나 특별히 제사에 사용된 것은 출애굽 후 모세 때부터

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어 은으로 나팔 둘을 만들어 

1) 백성을 소집할 때, 
2) 백성을 진행시킬 때, 
3) 전생에 임할 때, 
4) 절기를 지킬 때,
5) 월삭(매월 첫째 날)에는 번제물, 화목제물 위에 제사장으로 하여금 나팔을 불게 하셨다.

    (민 10:1-10)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도 그 명령을 받들어 제사장으로 하여금 나팔을 담당케 하였다. (수 6:4-6)



12. 찬양 예배의 변천 과정

1) 족장시대의 예배(제사)
족장시대라 함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출애굽 이전의 시대를 말하는데 인류가 드린 처음 제사인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부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가정 제단이었다.


족장시대는 성막이나 제사장이 없었으며 산이나. 들, 상수리나무 밑 어디든 상관없이 다만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희생의 제물을 바쳤던 것이다.

물론 제사의 집전은 가정의 어른은 족장들이 한 것이다. 바쳐진 제물은 암소, 암염소,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들이었다.


족장시대의 제사는 피묻은 제물만을 요구하셨는데 이는 죄 값은 사망이라. 

〈창 2:17〉피흘림이 없인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표현인 것이었다.


2) 율법시대의 예배(제사)
율법시대라 함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여 광야생활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인 다윗 시대를 지나 솔로몬 시대까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규모 있고 아름다운 새로운 제사법을 모세에게 명하셨다.


(1) 성막에서 제사하라 하심(출 25:8-9)
(2) 제사장을 세워 집례케 하심(출 28:1-3)
(3) 제사드릴 때 찬양과 함께 드리도록 명하심


이 명령에 따라 모세는 나팔 담당하는 제사장을 따로 세워 제사 때 나팔을 담당케 했고 여호수아가 그 규례를 이어 받았다.


다윗은 성전 찬양대를 규모 있게 편성했는데(대상 25:1-7), 30세 이상 익숙하게 훈련된 레위 사람 288명을 선발하여 세 그룹으로 찬양을 담당케 한 바, 아삽은 찬양대장으로 혜만은 관악대장으로, 여두둔은 현악대장으로 삼아 관현악 반주로 여호와를 찬양케 한 것이다.
솔로몬 성전엔 찬양대가 4000 명으로 (대상 23:1-5),관현악단은 제사장 120 명(대하 5:12)으로 편성되었다. 


(4)회중 찬송을 명하심(신 31:19-2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명하시되 회중 찬송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입으로 부르세 하여 입술로 나를 증거케 하라 하셨다.

즉 신앙을 전수시키는 방법으로 회중 찬송을 명하신 것이다.


3) 초대교회 예배〈행 2:42-47〉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제물을 완성하셨고(요 19:30), 영적인 예배를 명하셨으며 (요 4:24),성찬예식을 제정하셨고(마 26:26-28), 세례를 베풀라 하셨으며 (마 28:19), 찬송의 본을 보이셨다.(마 26:30)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마음을 주께 그렸고 (골 3:16),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의 설교, 기도,

예물 봉헌, 신앙고백 등으로 이어졌으며 성만찬과 세례를 베풂으로써 특수한 공동체임을 재인식하며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전파에 힘썼던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예배는 바로 초대교회 예배 모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찬양하라”는 명령이 399회나 반복되고 있으며 찬양의 대상을 하나님께만 두고 있다. 



13. 찬송 중에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찬양의 대상이시고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함이 본분이다. 성경에는 "찬양하라”는 명령이 399회나 기록되어 있는데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인 것이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수단으로 음악을 주신 것이다. (사 43:21)


첫째: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


① 하늘 보좌 옆엔 찬양 담당 천사인 스랍(Seraphim)을 두고 계신다.
사 6:2-4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처음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을 때 성전에서 깊은 시도에 잠겨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영안을 열어 하늘 보좌를 보여 주셨다. "이때 스랍들이 여섯 날개를 각기 가졌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②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찬송 중에 거하신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나이다.” 〈시 22:3〉
즉 택한 백성이 깊은 회개 가운데 부르는 찬송 중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찬송과 찬양대의 찬양 중에 영광을 받으시고 계신다.


둘째: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재하신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재하실 때마다 천군 천사의 찬양이나 성도들의 찬양 가운데 영광스럽게 임재하신다.


① 시내산에 임재하심(출 19:16-19)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친히 강림하셨는데,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사 말씀하셨다.


② 솔로몬 성전 봉헌식에 임재하심(대하 5:12-14)
“노래하는 레위 사람들과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③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천군 천사의 찬양과 함께 임재하심(눅 2:10-14)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마리아의 몸을 빌어 세상에 오시던 날 밤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다윗성까지 도열하여 찬양하는 가운데 오셨다.

그때 부른 찬양의 가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3-14절)였다.


세째: 하나님은 찬송 중에 능력을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찌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민 10:9)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약속인 바 "너희가 최대의 위기를 만나거든 나를 높이로 의지하라. 그리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1) 여호수아와 여리고성 함락(수 6:4-5, 20)
2)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 나팔(삿 7:16-23
3) 다윗의 수금과 사울 왕의 악신 떠남(삼상 16:14-23)
4) 바울의 옥중 찬양(행 16:19-35)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찬양 중에 거하시며 찬양 중에 임재하시고 찬양 중에 능력과 기적을 나타내 보이심으로써 전쟁을 승리케 하시며 질병을 치유하시고 복음을 증거케 하시며 교회를 하여금 성령 충만케 하사 부흥케 하신다.



14. 다양한 악기 소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교회음악이라 하는데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Organ과 기악음악이요, 회중 찬송이요 성가대 찬양인 것이다.

제사 때 음악이 사용된 것은 율법시대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부터인데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도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을 불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어떤 악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통기타로 연주하는 것과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는 것은 다르다. 악기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몇 개 안 되는 악기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화음이 되게 연주해야 한다. 불협화음으로 된 시끄러운 음악은 하나님께서도 싫어하실 것이다. 



15. 회중 찬송을 명하신 하나님 

1) 회중 찬송(Hymm Of Praise)의 의의
회중 찬송이란 온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적 표현인바 예배하는 자들이 모두 함께 동참하는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순서이다.

이 회중 찬송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9)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증거로 삼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시킬 때도 찬송을 통해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 중에서도 찬송의 본을 보이셨고(마 26:26-30),

바울도 골 3:16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 하며

사도는 성도들의 생활이 찬송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6. 찬양가와 복음가(Hymm And Gospel Hymm) 

1) 회중 찬송의 구분
회중 찬송은 그 내용에 따라 〈찬양가〉와 〈복음가〉로 구분된다.
찬양가는 대상이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영광을 돌리는 감사., 영광, 찬양, 존귀, 기원 등의 내용이며,

복음가는 대상이 사람들 자신인데 간접 영과 돌리는 내용이다. 즉, 신앙생활의 위로와 격려와 소망 등이 담긴 찬송들이다. 


예를 들면 찬양가는 9장 (거룩 거룩), 11장(거룩한 주님께), 13장 (기뻐하며), 21장 (다 찬양하여라), 25장 (면류관 가지고)등 예배 찬송들이다.

복음가는 317장 (어서 돌아오오), 258장 (물건너 생명줄), 260장 (새벽부터 우리), 273장(저 북방 얼음산과),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등이다. 
설교 전에는 찬양가를 주로 부를 것이고 설교 후에는 설교 내용에 따라 찬양가나 복음가를 다 부를 수 있다. 


2)찬양할 때 주의할 점


(1) 회중들
예배는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면 그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예배의 일부인 찬양도 진정과 신령으로 불러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주의 할 점이 요구된다.


① 너무 느리지 않게 부를 것(Tempo)- 느리면 슬퍼지기 때문이다.


② 구절법(Phrasing)에 주의할 것- 찬송가 우측 상단에 숫자가 바로 음절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 21장 〈다 찬양하여라〉-14.14.4.7.8


③ 기쁨으로 불러야 한다
찬송은 "즐거이 노래하자"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과 신령의 마음이 없이 그저 즐거이 가곡이 나가요 부르듯이 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기 위로가 된다. 가요나 일반 가곡은 자기 위로를 위해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찬송은 이들 곡과는 다르다. 어떤 이는 교회에서 다같이 부를 때 콧노래로 흥얼흥얼대는 사람도 있는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④모든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원적으로 일어서서 불러야 한다.


⑤성가대가 찬양을 할 때도 모든 회중은 비록 입으로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성가대와 함께 부르고 있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따라서 성가대가 회중의 대표로 찬양할 때는 회중들도 일어나 함께 부르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⑥찬양대의 찬양이 회중을 즐겁게 해주는 목적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회중들도 잘못하면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곡을 감상하는 태도를 갖기 쉬운데 이렇게 되면 그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일반 음악감상과 같이 되어 버린다.


⑦찬양은 일반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라, 회중이 찬양에 동참할 수 있을 때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찬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찬양이 끝난 후 박수를 친다든가, 잘 불렀다고 한다면 이는 곧 자기가 평가하는 입장이 되고, 자기가 감상한 입장이 되고, 자기가 부르고 나서 참 잘 불렀다고 자화자찬한 입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찬송은 찬송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 누가 더 잘 불렀느냐를 평가하는 일은 진정한 의미로 찬송을 드렸다고는 볼 수 없다


(2)찬양대
① 통성기도를 돕기 위한 배경찬송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찬양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입회송이나 기도송, 폐회송과는 다르다.


② 기존 찬송가를 째즈나 팜 형식으로 편곡해 부르는 것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찬송의 본디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③지휘자는 다음과 같은 말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찬송이나 한 장 부릅시다”
심심하니 찬송이나 부르자는 느낌을 준다.


-“준비 찬송하겠습니다.”
인도자가 범하기 쉬운 용어로는 "준비 찬송합시다"이다 이는 자칫 예배를 드리기 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고, 시간을 때우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예배를 드리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기 위해 적합한 것이 찬송이라는 데는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준비 찬송합시다."는 마치 "준비기도 합시다."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준비 찬송합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예배드리기 전에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습니다." "다같이 찬송하시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용어라고 보겠다. 이런 것은 "예배보러 간다." 보다 :"예배드리러 간다"로 해야 옳은 것과 같다 하겠다.


-“찬송을 부르며 앞자리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 특송을 준비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1절과 4절만 부르겠습니다.”


④성가대 ---> 찬양대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세이카다이--성가대(聖歌隊)'가 그대로 직수입되면서 성경에도 없는 '성가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⑤다음으로, 찬송을 아무 의미 없이 반복해서 부르는 행위이다.

예를 들면 기도 순서 맡은 자가 도착하지 않아 그를 기다리기 위해 찬송 몇 절을 더 부른다든가, 찬송을 부르면서 좌석을 정리한다든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17. 찬양대의 사명과 효과적인 발전책

1)사명과 책임
찬양대는 말씀과 성례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대원은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는 자인 바 음악적인 지식과 연주 능력 행상을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경건한 생활이 성도의 본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사명의식, 책임감, 협동정신, 시간 관련이 철저해야 한다.


2)발전책
①장기적인 계획의 중요성
장기적 계획이란 유년부, 소년부, 중, 고등부, 찬양대를 육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단기적 계획이란 이미 편성된 본 성가대 육성을 의미한다. 위 학생 찬양대의 발전 없이는 본 성가대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음악은 모방 예술이기 때문이다. 모방심과 수용성이 높은 아동기 즉 조기 교육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서의 찬양대를 육성하는데 주요한 것은 지휘자를 전무가 특히 성악 전공의 여성 지휘자를 기용함이 필수적이다. 변성되기 전의 소년들은 모두 여성의 음성이므로 발성지도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②찬양대 발전의 저해 요소
㉠신앙심 부족(사명감 결여)
㉡음악적 수준(훈련된 단원이 부족)
㉢친교가 잘 안 되는 것


위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교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합창은 팀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찬양대가 교사들에 비해 친교가 잘 안 되는 것은 대화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교를 위한 Program이 잘 개발되어야 한다.


3) 발전적 선곡 문제
①찬양대의 곡은 반드시 찬양곡이어야 한다. (대상이 하나님)
②되도록 대위법적인 곡을 택하라(예술적 경건성이 더 높다.)
③변화성이 있는 곡을 택하라.리듬과 속도(Tempo), 조성(Key), 형식(Form)이 변해야 한다.
   (Unison, Solo, Descant, Hummingm Duetm Tutti...)
④단원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곡을 택하라. 연습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성취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4) 찬양대 발전에 고려되어야 할 10가지 요소
①충분한 연습시간 확보 ②파트별 독창자 확보 ③균형잡힌 단원 ④경건 훈련 ⑤따 뜻한 성도의 교제 ⑥음악적 지식 및 기능의 발전 ⑦좋은 Organ과 관현악단 ⑧찬양 대

전용 연습실 ⑨ 자료실 ⑩예산의 확보



18. 찬양대원이 갖춰야 할 자세

1) 소명 받은 신앙(제사장 직분: 민 10:8. 대상 25:1-7, 대하 5:12. 대상 23:1-5)
2) 교회음악의 전문가 의식을 지녀야(대상 25:1-7)
3) 책임감, 협동심, 시간 관념이 철저해야
4) 주인의식(대표자 의식)을 가져야
5) 앉아있는 자세 : 지루하고 피곤한 자세 -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임
6) 기타 :졸거나 잡담하지 말 것. 하품. 화장 



19. 복음송과 CCM
 
1)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우리 나라 대중음악계에서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 있다면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을 들 수 있다.

줄여서 CCM으로 불리는 이 음악은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CCM 대신 '가스펠송(Gospel-song)'이란 말과 이를 번역한 복음송가란 말로 쓰여왔다. 


CCM이란 말은 미국에서 들어왔다.

복음송은 무디와 생키가 부흥운동 중 1873년에 뉴캐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가스펠 송'이라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가스펠 음악(Gospel Music)'으로 통칭해 왔다. 


그런데 흑인들이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보통 '가스펠'이라 부르는 '블랙 가스펠(Black Gospel)'을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흑인들의 가스펠은 그 창법이나 음악 스타일이 다른 장르와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한편, 백인들은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컨츄리 풍의 '서던 가스펠(Southern Gospel)'을 오랫동안 발전시켜왔는데, 이 음악도 다른 장르와는 구분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흑인음악(Black Gospel)과 백인음악(Southern Gospel)이 섞여 만들어진 로큰롤(Rock'n Roll)이 등장하면서 기독교 관련 음악도 블랙 가스펠이나 서던 가스펠의 맥과는 다른 음악이 등장하였다. 이 음악은 외양적으로는 일반 팝 음악과 구별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을 다루고 있었다. 이 음악이 바로 CCM인 것이다. 처음엔 이 음악을 예수 음악(Jesus Music), 또는 지저스 록(Jesus Rock)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이 음악을 1970년대 말부터 CCM이라는 용어로 부르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차트 전문지인 <빌 보드>는 팝/록 게열의 음악을 CCM으로, 흑인전통 음악인 가스펠과 소울(Soul), 리듬 앤블루스(R & B) 스타일의 음악을 가스펠로 분류하여 차트에 반영하고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0년 -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가스펠', '가스펠 뮤직'을 들여오면서 이들을 '복음송가(복음성가)'란 말로 정착시켰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이나 성가와 대비되는 대중적인 기독교 음악'이라는 뜻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사실 '복음송가'란 말보다는 CCM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지면서 1980년대 말부터는 CCM이란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포괄적 개념으로의 CCM이란 미국에서 흑인음악인 가스펠과 대비되는 크리스천 음악, 즉 팝, 록 계열을 포함한 현대 대중음악 스타일을 띤 크리스천 음악으로 좁게 지칭할 수 있고, 요즘 시대에 육적인 음악의 형태화 하여 따라 가는 음악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2)복음송(Gospel Song)
복음송이란 복음(Gospel)과 노래(Song)가 합쳐진 말이다. 복음송은 주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찬송가(Hymn)나 부흥가(Revial song)와도 구별된다. 
이 복음송이 찬송가와 다른 점은 가사보다 음악성에 강조를 둔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화성음을 사용한다든지 불규칙적인 강한 비트를 사용하거나 멜로디가 없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복음송과 CCM의 차이는 별로 없다. 복음송의 가사 내지 찬송가에도 대중 음악의 곡을 붙이면 CCM이 되는 것이다. 이를 굳이 구분한다면 복음성가가 매우 제한된 그리고 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좀 건전하고 은혜로운 찬양이 복음송이라면 감각적인 음악성에 의해 연주를 강조한 것이 CCM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CCM 음반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에는 CCM은 록 밴드인 스트라퍼(Stryper)와 샌디 페티(Sandi Patti)가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기독교 방송(CBS)으로 독보적인 전문 CCM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CCM전문 잡지가 등장하였고, PC 통신을 통한 애호가 집단이 늘어가고 있으며, 국내의 젊은 가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CCM을 시도하고 있다.


이 CCM은 기존의 찬송가에만 매달렸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어 쉽게 받아들이고 영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기존의 찬송가를 고집하는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부 기성인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찬송이 필요하다는 주장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무엇이 크리스천 음악을 크리스천 음악답게 만드는가? 간단히 대답하자면 크리스천 음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거나 그와 관계되는 내용을 나타내려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진 음악'을 말한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있다. 분명 CCM은 대중적인 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CCM은 대중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등장한 CCM은 기존의 기독교음악이 갖고 있던 기능보다는 선교와 오락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의 음악과 CCM의 공연 같은 음악은 음악적 분류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즉 예배음악과 CCM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기능을 발휘한다. CCM의 분명한 목적은 예배를 위한 것은 분명 아니라는 사실이다.


3)찬반론

이렇게 의견들이 찬.반으로 갈리고 있는데, 각각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에서는 찬송과 복음송이라는 2분법에 의해 복음송과 CCM 이 두 가지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복음송이라는 이름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1) 찬성론


①교회는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맞은 문화를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CCM은 신세대 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독교 음악이다. 특히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건전한 대용(代用) 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 


②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 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③음악은 본래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에 선한 메시지를 결합하면 선한 음악, 악한 메시지를 담으면 악한 음악이 된다.

영성은 평온함(serenity)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구약의 예배에는 매우 왕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록 음악 등 비트가 강한 음악에도 기독교 메시지를 접목시켜 사용할 수 있다.


④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교역자와 기성세대 교인들은 현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경험, 안목이 극히 빈약한 사람들이거나 보수주의자들이다.



(2)반대론


① 복음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CCM이 세속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오락적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 태도에 머무르게 하거나 말씀과 기도로 양육된 젊은이들이 CCM을 접함으로써 다시 세속적 오락 문화에 빠지게 되는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어 아름다운 찬송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②성경 어디에도 음악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한 예가 없다.

비기독교인들은 세속적 음악을 흉내낸 교회음악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모습의 크리스천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③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분리할 수 없다.

즉 록, 헤비메탈 등은 가치 중립적인 음악이 아니라 이미 반항성, 성적인 방종 등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는 악한 음악이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악기에 의한 찬양이 언급되는 것은 악기 사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④CCM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와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CCM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한 문화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CCM 가수들이 표리부동한 신앙과 문란한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4)CCM의 문제점


(1)문제점


첫째는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선별력의 빈약성과 남용에 있다.

곡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그 양식에 대한 이해가 안 되어 있어 마구잡이로 선곡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내에는 수천 곡의 복음송가와 CCM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들 모두가 적합성과 작품성이 검증이 안 된 채 불리워지고 있다. 어떤 곡은 시상(詩想)을 서툴게 작곡해 부르는 교인들이나 가수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곡들이 많다.


두 번째는 성서 내용이나 기독교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고 모두 성가(聖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국내 교회들은 이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순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크고 작은 교회당에서 얼마든지 확인 할 수가 있다. 세속 가요나 유행가 같은 CCM을 분명한 검증도 없이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세속화를 부채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라는 가면을 쓴 CCM이나 복음송가가 교회당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직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예배음악은 정통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성가(聖歌)는 일반 세속 곡과는 달리 모양새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 란 곡에 기독교적인 가사로 바꾸었다고 성가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성가나 CCM, 그리고 찬송가 등은 처음 작곡될 때부터 교회음악으로 태어났다. 반대로 '동백아가씨' 는 처음부터 세속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음악의 모습과 내용은 세속 음악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고 달라야 한다. 


세번째는 CCM이나 복음성가 연주가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점이다.

30여 년 전, 캬바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드럼 세트(Drum Kit(SET)의 반주 음형을 그대로 교회에서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세속화를 초래하는 짓이다. 복음성가 가수들의 창법도 유행가 수들의 방법을 그대로 흉내내는 일도 없어야겠다. 성가- CCM과 복음성가 - 창법에 맞는 발성법 개발이 필요하다. 크래식을 부르는 성악가와 대중가요를 브르는 창법은 다른 것이다.


유행가 가수들의 창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CCM 가수나 복음성가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거북스럽고 역겹게만 들맇 수 있다..

교회음악이 종교적인 특성을 갖고 있듯이 성가 연주도 그에 걸맞는 창법이나 연주법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성가 창법에 더 적합하고 더 기도교적인 연주인가란 물음이 있을 수가 있다.

그것은 감각적이거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세속적인 표현성보다 거룩한 표현성 접근이나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표현성 접근 연주가 더 합리적일 것 같다. 
CCM이 찬송가가 될 수 없다는 이들은 곡에서뿐만 아니라 가사도 찬송으로 부르기에는 내용이나 형태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CCM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성삼위 일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설픈 신앙을 고백한 신앙고백서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②내용이 비성서적인 것이 많다.
③내용이 위엄 있고, 경건하고, 은혜스럽고, 탈세속적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의 신앙 고백처럼 미숙하고 좀 유치하다.
④가사 내용이 청소년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마치 유치한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용어 자체도 저속하다. 

⑤오락성이 강한 가사로 되어 있다.

   감탄사를 많이 사용했고 빠른 템포로 키타나 탬버린 등으로나 신나게 연주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⑥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작사되고 작곡된 것이어야 하는데.

   감정적인 흥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진정한 영적 자극에 의해서 된 것인지 아니면 머리로 짜낸 글인지 알 수가 없는 가사들이 많다. 

⑦개인적인 체험이나 신앙고백이 많아 회중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가사들이 많다.

   또 진짜 자신의 신앙고백인지도 의심스럽다.

⑧문학성이 결여되어 있다.

   가사가 단순하고 짧다. 짧은 시구의 반복으로 예술성이 없다. 내용의 깊이도 없다.

   문학에 있어서의 시로 말하면 청소년들의 사랑 타령의 넉두리를 쓴 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잘 쓴 가사 같지만 잘 분석해 보면 유치해서 찬송가사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 
⑨회중이 공감하여 다같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적다.
   가사의 내용 반복적이고 곡이 빠른 템포로 되어 있어서 젊은이들에게나 부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나이 많은 회중이 합창으로 부르기는 더욱 어렵다. 
⑩대부분의 작품이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다.
   타 종교인이 돈을 벌기위해 작사 작곡해서 전파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재주가 좋아 상업적으로 얼마든지 복음송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특히 복음송을 이용하여 세속화 상업화하려 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비록 기독교인이 작사 작곡했다

   하드라도 그것이 돈을 벌 목적으로 아티스트들에 의해 작사 작곡해서 테이프로 냈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다분히 오락성이 강한 음악이 나오게 된다.

   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계층인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CCM 속에 팝음악이 가진 오락적 자극적 상업적 요소가 강화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과 순수성이 왜곡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 CCM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⑪ CCM이 예배음악으로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들의 주장 중의 하나는 예배가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을 드리는 태도도 참되고 진실되어야 한

   다고 말한다. 곧 영적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찬양이란 성령께서 내 몸을 주관하시고 내 영이 내 혼과 몸을 주관하여 드리는 찬양을 말한다.

   그런데 TV에 나와서 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신들린 사람과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10대 20 대의 젊은이 악기를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두드리며 마치 신접한 사람처럼 눈을 감고 몸을 흔들고 손을 내저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우성 비슷하게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도취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복음송은 일반적으로 찬송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송을 기독교의 대중음악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중음악처럼 찬송가의 생명은 기나 복음송의 생명은 짧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찬송가는 같은 찬송을 반복해 불러도 권태롭지 않고 은혜로우나 복음송은 쉽게 싫증나고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헤비메탈. 록 등 심지어 대중가요의 곡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인데 세속적인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받아주실 리 없다. 록음악은 섹스와 마약과 범죄를 유발하는 음악이다. 록음악의 많은 내용들이 섹스와 폭력과, 마약, 살인 등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불규칙적인 리듬과 감각에 호소하는 음색 비화성음이 강한 비트음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사람을 폭력과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가져오게 하여 영혼과 몸을 타락시켜 나중에는 자멸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5) 복음송의 허용 범위
그러면 모든 복음송이 이런 문제점만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복음성가의 특징은 찬송가와는 달리 신앙간증을 강조하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결단을 자극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복음송가는 대중지향적이요, 초신자들에게 잘 호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노래를 들음으로써 감정의 자극을 받아 복음적 결정을 내리도록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 적합하다.



20. 맺는말

세상에는 클래식도 있고, 아름다운 가곡들도 있고, 또 가요나 팝송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음악들은 모두 인간의 노래들이다. 따라서 진정한 음악은 그리고 최고의 음악은 찬송가이다. 우리가 찬송 이외의 음악들을 찬송가보다 한 차원 낮추는 것은 이들의 노래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지성과 감성, 의지 등에서 나온 모두 인본주의에 의해서 된 것이요, 타락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클래식하는 사람은 그것이 지닌 예술성 전통성의 고상함에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 질 수 있고, 클래식을 우상화함으로 영적인 타락 속으로 빠져들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그 영향력이 크다. 미술이나 문학은 그 작품을 돈을 주고 사야만 감상할 수 있어 그 향유 계층이 넓지 못한데 음악은 스위치만 틀면 누구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악은 그 영향력이 몹시 크다. 미술이나 문학은 음악만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미술로는 병을 못 고쳐도 음악으로는 고칠 수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지만, 괴상한 음악, 불협화음의 음악은 사람을 흥분 허무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한다. 우선 가사만 보아도 저속한 것들로 이루어 졌다. 가요의 대부분 내용은 그리움-만남-이별- 슬픔- 허무 등의 공식으로 되어 있다. 특히 락음악은 완전히 사탄의 음악이다.


락 음악은 1950년대 초,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 공통점은 성관계할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한다. 락 뮤직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달 후에, 캐나다 어느 신령한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짐. 설교도 중 어느 아가씨가 뱀같이 몸을 조이면서 개 짖는 소리 "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다. 내가 내 천사들과 이 땅에 내려와 모든 청소년들을 타락시켜버리겠다." 정말로 그 뒤 이 년 후 영국의 4인조 락 그룹이 전 미국을 초토화 시켰는데, 이 그룹이 유명한 비틀즈즈다. 락 음악의 내용은 주로 인생찬미, 살인, 쎅스 마약, 폭력, 자살 찬미. 사탄 숭배, 십자가 모독 등으로 되어 있다.


락 음악의 리듬은 뒤틀리는 음과 환각적인 고조임, 메탈록의 힘은 단 30분만에 사람의 몸에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환각상태에 빠지게 한다. 괴상한 몸짓 현란한 조명. 전자악기의 요란한 금속성, 광기어린 마귀 같은 얼굴화장. 미친 사람 같은 복장, 찢어지는 괴상한 목소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적이고 발작적이고 집단적인 히스테리, 저돌적인 춤. 노래가 끝나면 찾아오는 것은 허무감-자살충동, 술, 마약복용 생활 자체가 정리되지 않고 불안 초조로. 들떠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찬송가다. 다시 말하면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요, 제물이요, 기도요, 신앙고백이요, 헌신이다. 그러므로 찬송가의 바른 이해를 통해 바르게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성도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드려야 한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찬송을 잘못 불러서 찬송의 가치를 격감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어 졌다고 해서 예배의 본질이 바뀌어져서는 안 되듯이 시대를 핑계삼아 찬송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이 참되시니 찬송도 참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찬송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하나님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참뜻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이 진정과 신령이라면 거기에 드리는 찬송도 거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수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거짓 찬양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 향하는 예배가 사람에게 향하는 복음성가를 가지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는 볼 수 없다.


사탄은 교묘한 방법으로 온전한 찬양을 드리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다. 교회 음악을 세속화시키는 것은 사탄을 도와주는 행위이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청년 종합예술이니 시대의 흐름이니 하는 명목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할 교회음악을 세속음악으로 조작시키는 일은 세상과 영합하는 일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복음송의 난립은 좋은 찬송가를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는 찬송가는 잘 부를 줄 몰라도 복음송은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찬송은 고리타분하고 복음송은 활기가 넘치고 신나는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아직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르게 가르쳐 바르게 인도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참고 도서>


1.찬송신학 : 염행수 ( 도서출판 생수, 1993 )
2.음악예배론: 이택희 ( 도서출판 질그릇, 1991 ) 
3. 讚頌歌學 : 박태준 (세종문화사, 1989 )
4.김의작 : 敎會音樂史 (세종문화사, 1992 )
5.이선우 : 예배음악과 CCM 「기독교 새물결 5호」
6.박명섭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와 음악. 「기독교 새물결 6호」
7.강인중 : 볼륨을 낮춰라(낮은 울타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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