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대성전

 


 
예루살렘 대성전 터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예루살렘 구 시가지의 1/6을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터. 지금은 이슬람의 바위돔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지 약 3000년의 역사가 흘렀다. 그 역사의 중심에 있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3000년의 역사에서 그 주인공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이 지배하던 시대는 약 550년, 그리스도교는 약 400년 그리고 그 둘보다 훨씬 많은 약 1200년 기간 동안 이슬람이 통치했고, 나머지는 기타 외세에 의해 다스려졌다. 아브라함 시대에 예루살렘은 멜키체덱(멜키세덱) 왕이 다스렸다(창14:18).

 

예루살렘의 본래 이름은 ‘살렘’ 이었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만큼 평화가 간절한 곳은 없을 것이다. 세계 3대 종교의 각축장이었고, 세계열강들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목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 대성전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삶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기도의 중심지였고 강력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현존 하시는 곳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 제사로 하나님께 다가가며 만나며, 하나님은 용서와 계시로써 기도에 응답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출25:22; 대하6). 그러나 그  삶의 중심을 한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지금은 이슬람이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 대성전 터 (Temple of Jerusalem)

가나안과 이집트 땅 온 지방에 기근이 심하게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가족들은 이집트로 가서 살았다(창41:53-50). 그 후 기원전 1230년경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야곱의 후손들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주한다(출33:1).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속된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민32:13, 신29:4). 그리고 모세는 ‘약속된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사해 근처 모압 땅 ‘느보 산’에서 죽게 된다(신34:1-8). 모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임명하였고(신34:9)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통수권을 맡기셨다(수1:1-9). 그는 요르단 강을 지나서(수3:1-4) 길갈에 진을 치고 가나안에서 첫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수5:10-12).

 

여호수아는 여리고(수5:13-6)와 가나안을 점령(수11:16) 한 후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수12:7-19,51) 스켐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모아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들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웠다(수24:1―27). 그 후 여호수아가 죽고 가나안 땅은 판관들의 시대가 시작된다(기원전 1200-1000년).

 

사무엘이 예언자이자 판관으로 다스릴 때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지자 이스라엘 원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가 다른 민족들처럼 임금을 세워주기를 간청한다(삼상8:5). 그리고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1030-1010년)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삼상10:1)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운다. 사울은 그의 세 아들들과 함께 길보아 산에서 필리스티아인과 싸우다가 모두 전사(삼상31:1-6)하였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기원전 1000-961년/1004-965년 재위)이 헤브론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삼하2:3-4). 다윗이 헤브론에서 일곱 해를 다스린 후(대상29:27, 삼하5:5)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합하면서 남쪽에 치우쳐 있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삼은 것이(삼하5:4-5)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이다.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은 이민족인 여부스족이 사는 견고한 성곽도시였으나(삼하5:6) 다윗의 병사들은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샘과 연결된 지하 수로를 타고 올라가 여부스족의 성읍을 점령하고 ‘다윗 도성’(The City of David)라 불렀다(삼하5:7-9).

 

그리고 정치적인 수도인 예루살렘은 키르얏 여아림에 있던 계약의 궤를 다윗 도성에 옮겨 놓음으로써(삼하 6장 참조) 다윗 도성은 명실상부한 다윗 왕국의 중심이 되었다. 계약의 궤는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합할 수 있는 최고의 상징물이었으며 왕권과 직결 된 것이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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