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어디 있는가? 


전도할 때, “천국이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보통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천국은 마음에 있다.”라고 대답한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대답은 대답하는 사람 입장에서 만족해서는 안된다. 대답은 질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대답이 되어야한다. 보통 천국이 마음에 있다고 하면, “어떤 착각에 도취된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천국이 마음에 있다”라는 대답에 만족하는 질문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천체물리학자의 의견도 들어봤다. 강의도 들어보았고, 책도 찾아보았다. 목사님들의 설교에서도 찾아보았다. 성경에서도 관련된 구절을 살펴보았다. 그 모든 것들이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씩은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 작은 조각들을 모았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것을 글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길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지루하지 않고 쉽게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까?  길고 지루해서 자세히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고민이다.

 

천국은 어디 있는가?

 

(질문1)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런 반박을 한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제자들이 볼 수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의 로켓트 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걸어가는 속도로 올라 가셨더라면, 아직까지 태양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태양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5000년이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2000년 동안 걸었다 해도 태양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로켓트의 속도로 올라갔다고 해도, 북극성(800광년의 거리)에 도착하지 못했으며, 빛의 속도로 올라갔다고 해도 아직까지도 큰 개 자리의 Wezen(2100광년의 거리)이라는 별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그리고 빛의 속도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고 해도, 온 우주에서 우리의 은하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200만 광년의 거리)에 겨우 도착할 정도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천국에 있다고?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 있느냐?”

 

(질문2)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왜 안 죽었느냐?

(질문3) 휴거할 때, 우리가 벌거벗은 몸으로 천국에 가느냐? 아니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입고 가느냐고 묻는다. 옷에 붙은 벼룩도 천국에 가느냐?

(질문4) 휴거할 때에 우리 몸이 실내에서 천정을 뚫고 올라가는가?

(질문5) 부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옛날에 A라는 사람이 물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 그 물고기를 B라는 사람이 잡아먹었다. 그리고 B도 물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 그 물고기를 C라는 사람이 잡아먹었다. 그렇다면 C라는 사람의 몸은 A와 B의 몸이 섞여있다. 만일 뼈와 살이 살아난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뒤엉

           켜서 괴물로 부활할 것이 아닌가?

 

위의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을 준비해보았다. 대답을 준비하면서 천국은 “어떤 착각에 도취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인격적인 존재가 살고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1. 우리와 다른 차원은 존재할까?

 

선이 1차원, 면이 2차원, 공간이 3차원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또 다른 차원 속에 있으므로 우리는 4차원에 존재한다. 그러면 4차원보다 높은 5차원이 존재할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시리우스별을 향하여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광속으로 24시간을 달리다가, 다시 24시간 여행하여 지구로 돌아온다면, 지구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48시간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적어도 10억년이 지난 후라고 한다. 48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라면 5억년이 지난 후라는 뜻이 아니다. “영원의 시간이 흘러간 후”라는 뜻이다.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춘다는 뜻이다.

 

시간이 멈춘 곳, 시간을 초월한 곳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곳을 5차원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5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것은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6차원,7차원은 존재할까? 스티븐 호킹 박사는 11차원까지 발견했다고 한다.

 

 

2. 우리는 5차원을 상상할 수는 있다.

 

우리가 직접 5차원에 가볼 수는 없다. 그러나 2차원과 3,4차원을 비교해보면, 3,4차원과 5차원의 차이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5차원을 상상해보는 것일 뿐이다. 2차원과 3,4차원의 차이로 5차원을 단정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5차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우리가 만화책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만화책 속의 사람은 우리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만화책 속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차원이다. 만화책 속의 사람들은 면이라는 2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공간은 3차원이며, 우리는 시간이라는 4차원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5차원과 천국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5차원에는 우리의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5차원에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즉 시간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5차원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천국에도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알 수 있다.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태초라는 말은 영어로 “in the beginning” 즉 “처음에”라는 뜻이다. 즉 “시간이 시작되는 처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천지라는 것은 우리의 우주공간을 말한다. 즉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런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뜻이 된다.

 

만화책 속의 심청이에게 시간의 시작은 우리에게는 만화책의 첫 페이지가 될 것이다. 만화책의 끝 페이지는 시간이 끝나는 시점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만화책 속의 공간이 없다. 만화책 속의 공간이란 우리에게는 종이의 한 면일 뿐이다. 만화책 속의 사람이 보기에는, 만화를 그린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창조했다.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마 22:31,32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하나님은 알파(시간의 시작)와 오메가(시간의 끝)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경험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심청전 만화책을 생각해 보자. 만화책 속의 사람에게 시간이란 만화책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즉 우리가 말하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개념의 시간은 없다. 우리의 손목시계의 초침이 채칵채칵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 없다. 만화책 속의 심청이가 태어나는 시각과 자라고 있는 시각과, 늙어서 죽는 시각이 만화책을 보는 우리에게는 같은 시각이다. 같은 시각에 첫 페이지를 보면 심청이가 태어나기 전이고,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심청이가 죽은 후이다. 심청이에게 영원이 우리에게는 순간이다. 심청이에게는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심청이에게 “알파와 오메가”이다.

 

만일 심청이가 만화책 밖으로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심청이를 반갑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심청이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우리를 보고 놀라겠지만, 컴퓨터를 보고, TV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러다가 하루를 우리와 함께 즐기다가, “나는 이제 아버지에게 가봐야해!”라고 하면서 만화책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동안에 만화책을 보던 사람이 책을 다 읽고나서 난로 속에 던져 넣어 태워버렸다고 생각해보자. 심청이에게는 영원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과 심청이의 시간은 다르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하루와 하나님의 하루가 다르며, 우리의 1년이 하나님의 1년과 다르다고 했다.

욥10: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우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즉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지금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살아있다.

 

“영원한 천국”이란 우리가 천년, 만년 영원히 사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정지된 차원 높은 곳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국을 영원한 천국이라고 한다. 천국은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그곳에서 한 순간(예를들면, 1초)이 우리에게는 영원이다. 성경에서 영생(eternal life)란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는 뜻도 있지만, “시간이 정지된 5차원에서의 생명”이라는 뜻이다.

 

 

4. 천국은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5차원인지, 6차원인지, 몇 차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고전15: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예수님은 3,4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만물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은 분명히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신다는 말이다. 우리가 심청전 만화책에 속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3,4차원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히1: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하나님이 만물을 붙들고 계시면, 만물에 속하지 않았다. 분명히 다른 차원에 계신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올라갔었다.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심청이에게 첫째 하늘은 만화책 속의 하늘이다. 둘째 하늘은 우리가 보는 하늘이다. 셋째 하늘은 5차원의 하늘이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갔었다는 말은 분명히 우리가 보는 저 하늘이 아닌 다른 하늘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5차원, 6차원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몇 차원인지는 모르지만, 천국은 분명히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공중”이라는 차원이 있고, 바울이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고 했으므로, 천국은 6차원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국을 편의상 5차원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5.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심청이를 볼 수 있지만, 심청이는 우리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그 곳에 계시지만, 우리는 한 번도 우리 눈으로 직접 예수님을 본 적이 없다. 마치 TV를 우리가 아무리 가까이서 보아도, TV 속의 사람들은 우리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천국과 하나님은 우리의 바로 옆에 있으나, 우리는 볼 수가 없고 만질 수가 없다.

 

 

6. 성경에서 3,4차원과 5차원 사이에 일어나는 실례.

 

단5: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의 아들, 벨사살왕이 잔치를 베풀고있을 때에,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씨를 쓰는 손가락이 나타난다. 이것은 5차원에서 3차원의 벽에 글씨를 쓴 것이다.

 

5차원과 우리의 3,4차원의 사이에 천사가 서있는 장면이 나온다.

대상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the angel of the LORD stand between the earth and the heaven”KJV

 

물론 이것을 3차원의 하늘과 땅 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땅위”라면, 천사가 서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할 리가 없다. “천국과 지상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한쪽 발은 5차원에, 한쪽 발은 3,4차원에 있어야한다.

 

스데반은 3,4차원에서 5차원을 보았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사도요한도 5차원을 보았다.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그 외에도 에녹,엘리야,예수님은 5차원으로 이동했다.

 

 

7.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5차원을 조금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직접 5차원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성령을 통하면 약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영생(영원한 세계, 즉 시간이 없는 세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서로 통할 수 있다. 즉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이야기할 수가 있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실 수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을 경험한다. 성경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믿는 사람들이 서로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면, 뭔가 통한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감동적인 메시지를 들을 때에 우리 마음에 감동이 온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아멘!”이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지른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5차원 즉 천국으로 자라나간 지체가 영적인 몸(그리스도의 몸,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로 연결된다. 그 몸에서 다른 지체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연결되어 있다. 5차원의 몸이 감동하면, 그 감동이 각 지체로 전해진다. 그 지체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감동을 받고, “아멘!”이라고 화답한다. 그러나 영이 다르면 아무 감동이 없다. 우리가 이단의 주장을 들으면 아무 감동이 없고, 물과 기름처럼 맹숭맹숭하다.

 

이것은 숲에서 나무줄기 하나를 붙잡고 흔든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나무줄기를 흔들면, 그 줄기에 속한 나뭇가지들은 모두 진동하지만, 그 줄기에 속하지 않고 다른 나무의 줄기에 속한 가지들은 전혀 진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의 마음에서 자라난 영적인 몸이, 5차원으로 뻗어나가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지체를 이룬다. 보이지 않지만,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8. 공간의 차원 이동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하늘의 대기권을 벗어나기 전에, 차원 이동을 하여 천국으로 가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예를 들면, 그림이라는 2차원의 세계에서 입체라는 우리의 공간 세계로의 이동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러한 차원 이동은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8:39,40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K.J.V “And when they came up out of the water, the Spirit of the Lord caught away Philip, and the eunuch never saw him again, but went on his way rejoicing. Meanwhile Philip discovered himself at Azotus.”

 

흠정역을 번역하면, “그들이 물에서 올라올 때, 주의 영이 빌립을 데려 가버려서, 그 내시는 다시는 그 빌립을 보지 못했지만, 기뻐하면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그동안에 빌립은 아소도에서 자신이 와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빌립은 주님의 영으로 광야에서 아소도로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내시와 빌립이 함께 물에서 올라오는 중에, 빌립이 갑자기 없어졌다. 그래서 내시는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자신이 어느새 아소도에 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빌립이 광야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아소도라는 지역으로 차원이동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 지도를 펴놓고 미국의 뉴욕과 한국의 서울이 합쳐지도록 지도를 접어서, 뉴욕의 어떤 사람을 한국의 서울로 공간이동을 시킨다면, 뉴욕에 있는 사람이 지도라는 2차원을 벗어나서, 공간이라는 3차원으로 왔다가, 다시 서울이라는 2차원의 지도 속으로 들어간다면 이것은 공간이동이 되는 것이다.

 

눅24: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And their eyes were opened, and they knew him; and he vanished out of their sight.”KJV

예수님이 제자들과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다른 차원으로 차원 이동을 한 것이다.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문이 닫혔는데 갑자기 방 안에 나타나셨다. 이것도 역시 공간의 차원 이동이다.

 

 

9. 시간의 차원 이동

 

우리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을까? 2000광년이 떨어진 별에 지금 도착해서, 초초초고고고성능성 만원경으로 지구의 이스라엘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과학적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을 볼 수는 없을까? 이것은 현재 모든 이론을 동원해도 불가능하다. 미래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Your father, Abraham rejoiced to see my day: and he saw it, and was glad.” KJV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보았다.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라는 차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심청이 만화책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경험하신다. 앞서 공간의 차원이동에서 지도를 접듯이, 만화책의 중간에 수십 페이지를 접어보자. 예를 들어 11p에서 100p까지를 접고, 10p와 101p를 합치면, 시간의 차원 이동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여주었다. 흠정역에서도 “he saw it”라고 했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은 “보았다”고 하셨다.

 

또 한 군데를 살펴보자.

계시록 1:9,10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서 “주의 날”“the Lord's day (KJV)”이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 “주의 날”은 일요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주의 날”이라고 언급된 곳이 5번 나온다. 그 외에 “여호와의 날”“주 예수의 날”“하나님의 날”“그리스도의 날”이 언급된 곳을 합치면, 32번 나온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일요일을 의미하는 곳은 없다. 모두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또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 AD321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렇게 정한 것이다.

 

학원 세계 대 백과사전. 29권 147p(학원 출판 공사) : “미트라스교(폐르샤의 태양신)는 기독교의 강적이었다. 콘스탄틴 대제는 이보다 앞서 유사점이 많은 미트라스교와의 습합(習合)을 고려, 321년에는 매주의 휴일을 [태양의 날(dies solis=sunday=일요일)]이라고 부르도록 정하였다.”

할레이의 성서 핸드북(기독교문사. 박 양조 역)824p: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일로 일요일을 정하고 쉬게 하였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AD321년에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도록 정하였다면, 그 전에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것이 AD90년경이라고 생각한다면, 계시록의 “주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주의 날”은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이, “재림의 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로 데려가신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을 미리 보았다. 바로 시간의 차원 이동을 한 것이다.

 

 

10. 그곳에는 공간이나 물질이 없는 곳이다.

 

영은 무게를 달 수도 없고, 화학분석을 할 수도 없고, 부피를 잴 수도 없다.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영은 3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요4:24)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곳은 이 세상의 물질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즉 만화책 속의 어떠한 물질(산, 집, 사람, 자동차 등등)도 면적이라는 차원에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부피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3,4차원으로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

 

고린도 전서 15:49,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11. 우리가 어떻게 5차원으로 갈 수 있을까?

 

만화책 속의 심청이는 우리의 3차원으로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부피가 없기 때문이다. 나오면 없어진다.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가 그대로 천국에 갈 수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만화책 속의 심청이는 부피가 있는 그림이 되면 된다. 입체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평면의 그림에다 물에 녹인 종이 같은 것을 붙여서, 입체로 표현하는 것이 있다. 그런 입체그림은 3차원으로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원래 만화책에 그려진 2차원의 그림은 나올 수가 없다. 3차원으로 나온 입체만 나올 수가 있다.

우리의 몸은 5차원으로 갈 수가 없다. 입체그림처럼 5차원으로 자라는 몸이 있어야한다. 그 5차원으로 자라가려면, 5차원의 생명이 있어야한다. 그것이 영생이다. 영원한(시간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 즉 영생이 필요한 것이다.

 

3차원의 육체가 살 수 있는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5차원의 영적인 생명은 영원한 생명, 즉 영원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영생이다. 그래서 그 영원의 세계, 즉 5차원에 속한 존재가 성경에 언급되어있다.

 

영적인 선물(롬1:11은사, spiritual gift), 신령한 식물(고전 10:3 spiritual meat), 신령한 음료(고전 10:4 spiritual drink), 신령한 몸(고전 15:44 spiritual body),신령한 복(엡1:3 spiritual blessings), 신령한 노래(엡5:19 spiritual songs), 신령한 지혜(골1:9 spiritual understanding), 신령한 집(벧전 2:5 spiritual house), 신령한 제사(벧전2:5 spiritual sacrifices)-KJV

 

아담은 3,4,5차원에 걸쳐있는 존재였다. 그는 5차원의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죄를 짓고 5차원의 존재로는 죽었다.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아담은 그날 죽었다. 즉 5차원의 생명(영원한 생명)이 끊어진 것이다. 3,4차원에 얽매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즉 5차원에 필요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4차원에 오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왜 안죽었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아담은 그날 영생이 끊어졌다. 5차원의 생명이 끊어진 것이다.

 

 

12. 우리가 천국에 간다면, 어떤 모습으로 갈까?

 

심청전 만화책 속의 심청이는 2차원의 면이다. 3차원에서는 부피만이 존재한다. 면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심청이는 앞서 말한 입체그림이 되어야한다. 입체만 3차원으로 나올 수가 있다. 면이 3차원으로 나올 수가 없지만, 면의 모습이 입체에 인쇄될 수가 있다. 사진을 생각해보자. 사진의 2차원 모습을 우리는 3차원에서 확인하고, “이 사진은 누구누구의 사진이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3차원의 얼굴을 2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면이 3차원에는 존재할 수가 없지만, 사진과 사진의 주인공을 연결시킬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3차원적인 부피가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서는 우리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5차원에 속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해도, 천국에서 이 사람은 누구이며 저 사람은 누구인지를 당장 알 수가 있다. 마치 2차원의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3차원에서 만났을 때, 당장 그 사진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

 

 

13. 도장 예화

 

도장을 종이 위에 찍으면, 2차원의 도장 모습(글씨)이 찍힌다. 그런데 도장은 부피가 있는 3차원의 존재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아 영적으로 자라게 되면, 종이 위에 도장이 찍혀있고(글씨), 그 도장의 자국(글씨) 위에 도장이 놓여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2차원의 도장 자국(글씨)을 3차원의 우리 몸이라고 생각하면, 종이 위의 3차원의 도장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5차원의 몸이다. 영적으로 더욱 자라게 되면, 도장은 더욱 큰 도장이 되고, 도장의 모습도 온갖 멋진 모양이 새겨지게 된다. 도장에는 옥도장이 있고, 나무 도장이 있고, 수정 도장이 있고, 상아 도장이 있다. 재료도 여러 가지지만, 모양도 여러 가지이다. 온갖 문양이 새겨진 여러 가지의 도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크기도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종이에 찍힌 자국(글씨)은 그 도장의 모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2차원인 종이에 도장만 찍힌 사람은 영생이 없는 사람이고, 그 위에 도장이 있는 사람은 영생이 있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생이 없는 사람은 4차원에 속한 사람이지만, 영생이 있는 사람은 4차원뿐만 아니라, 5차원에서도 몸이 자라고 있다.

 

3차원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5차원의 우리 몸은 우리자신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식이 3차원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3차원인 몸에 머물러있다. 3차원에 속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나의 몸인데 불구하고 나에게 연결된 5차원의 몸을 내가 볼 수 없다.

 

우리 마음으로 연결되는 5차원의 몸은 그냥 성장하기만 한다. 가끔 영적인 감동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의식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글씨 위에 놓인 도장이다. 등산을 할 때, 더워서 입지 않고 허리에 두르고 있는 옷과 마찬가지이다. 곧 추우면 입을 옷처럼 5차원의 몸은 연결만 되어있다.

 

이제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그 몸으로 우리의 인식이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3차원의 몸은 벗어버린다. 즉 육체가 죽는다. 5차원의 몸으로 의식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5차원의 존재가 된다.

 

 

14. 부활

 

부활할 때, 우리 몸의 살과 뼈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이 5차원의 형체로 부활한다. 즉 우리의 3차원의 모습이 5차원의 몸에 인쇄된다. 도장을 생각해보자. 종이 위에는 도장이 찍혀있고(글씨), 그 위에 도장이 있다. 종이에 찍힌 2차원의 글씨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고, 도장은 우리의 영적인 몸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의 육체가 썩는다. 즉 도장 밑의 글씨가 상하거나 지워진다고 하자. 그러나 도장은 그대로 존재한다. 우리가 부활하면, 우리의 형체가 도장에 새겨진다. 이 때 글씨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글씨의 형태가 도장에 새겨진다. 음각으로 새겨진 도장도 있고, 양각으로 새겨진 도장도 있다. 글씨도 추사체가 있고, 구양순체가 있고, 왕희지체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모습으로 5차원의 신령한 몸에 새겨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형체가 영원하고 신령한 몸을 입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고전15:42“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그러나 우리의 얼굴만 새겨지는지, 온 몸이 새겨지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대로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변한다. 거룩한 모습으로 새겨진다. 욕된 것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벌거벗은 몸으로 천국에 가느냐? 아니면 우리가 입고있는 옷을 그대로 입고 가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몸도 우리의 옷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 오직 우리 얼굴의 어떤 특징이 5차원의 몸에 인쇄된다.

 

정확한 것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그러므로 찬송가에 “주 예수님, 공중에 임하실 때, 나 일어나 맞이하리.”라는 가사가 있다. 그 찬송가를 작사한 제니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주만에 실명하여 평생 장님으로 지내며 한 번도 눈을 떠 본적이 없고, 평생 앉은뱅이로 지내면서 두 다리로 일어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 가사에는 “주 예수님이 공중에 임하실 때, 나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을 맞이한다”고 했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서로서로를 분별할 수 있다. 사진만 보다가 그 사진의 주인공을 만나면, 사진과 그 사람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릴 때 추하게 생긴 계집애가 자라서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 하자. 아무리 아름다운 숙녀가 되어도 어릴 때의 특징은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숙녀를 보고 당장 그 어린애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캐리커쳐라는 종류의 그림이 있다. 어떤 사람의 특징을 살려 매우 우스꽝스럽게 그린 그림이다. 결코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니지만, 그 특징 때문에 그 그림을 보고,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당장 알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5차원에서는 3차원의 모습이 그대로 인쇄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거룩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특징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누구인지를 당장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완전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한다.

 

우리의 육신은 분명히 썩는다. 부활할 때, 뼈와 살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나사로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부활하는 것을 예시한 것이다. 나사로가 부활한 것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하지 않았다. 나사로의 부활은 뼈와 살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다시 죽었다. 나사로의 부활은 우리가 나중에 부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지, 우리의 뼈와 살이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3차원의 몸은 5차원으로 이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체가 5차원의 몸을 입고, 5차원의 몸에 우리의 형체가 새겨진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5차원으로 이동한다.

 

만일 우리의 뼈와 살이 살아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옛날에 A라는 사람이 물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 그 물고기를 B라는 사람이 잡아먹었다. 그리고 B도 물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 그 물고기를 C라는 사람이 잡아먹었다. 그렇다면 C라는 사람의 몸은 A와 B의 몸이 섞여있다. 만일 뼈와 살이 살아난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뒤엉켜서 괴물이 부활할 것이다.

마22:31,32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지금도 아브라함이 살아있고, 이삭도 살아있고, 야곱도 살아있다. 그러므로 지금 죽은지 1000년이 넘는 사람도 그 당시로 돌아가서 부활한다. 우리로 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부활하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이 죽으면서 3차원의 육신은 썩고, 그 형체가 5차원의 몸에 인쇄된다. 아브라함이 과거에 부활한 것은 아니다. 아직 부활하지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으로 볼 때에는 항상 현재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죽자마자 부활하지만, 우리의 시간으로는 아직 부활하지않았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할 것이다.

 

우리의 시간으로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재림하시는 날에 죽은 자들이 동시에 부활하지만, 아브라함은 죽는 날 부활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간으로는 아브라함이 죽은 날 부활하지않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면 아브라함이 죽은 날(과거) 부활할 것이다(미래)(*깊이 생각하면서 읽어보세요!?)!!!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아브라함이 죽는 날 부활했다가 아니고, 부활한다. 아브라함이 부활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우리 시간으로는 미래가 되고,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현재이다.(*이해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장에 2차원의 자국이 반대로 새겨있듯이, 우리의 모습이 5차원의 몸에 새겨진다. 그리고 의식이 5차원의 몸으로 이동한다. 3차원의 옷을 벗고, 5차원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공중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공중이라고 해서 하늘 높이 비행기가 다니는 공중이 아니다. 휴거할 때에 우리 몸이 실내에서 천정을 뚫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동을 한다. 사람들은 “네가 휴거할 때 내가 너를 꼭 붙들고 있으면, 나도 휴거될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볼 때에는 그냥 없어진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않고, 차원이동을 하면서 우리의 육체가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과 형체가 5차원의 몸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3차원의 몸이 5차원의 몸으로 흡수된다. 흡수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을 시간적으로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3차원의 도장을 2차원의 종이에 찍으면, 종이 위에 도장이 찍힌다. 이 과정을 거꾸로 생각하면, 종이에 찍힌 자국위에 도장을 놓았다가 도장을 들면, 그 자국이 도장으로 흡수된다. 동영상을 반대로 돌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은 5차원의 몸으로 흡수된다.

 

 

15. 성경에서 언급한 천국을 5차원으로 설명해보자.

 

고린도 전서

15: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예수님은 3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더 높은 차원에 계신다.

 

15: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부활하기 전에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차가 있다. 3차원의 옷을 벗어야 5차원의 옷을 입을 수 있다.

 

15: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현재의 우리 몸은 씨앗이다. 씨앗을 뿌리면 씨앗은 죽고, 씨앗과는 다른 형체의 나무나 꽃이 자라나듯이, 현재의 우리 몸과는 다른 형체의 몸으로 부활한다. 우리가 2차원의 도장찍힌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형체는 3차원의 도장이다.

 

15:39-41.“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가지는 형체가 각각 다르다. 즉 영적인 성장에 따라 도장의 모습이 각각 다르다.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부활할 때 거룩한 5차원의 몸으로 갈아입는다. 썩을 수밖에 없는 3차원의 몸을 벗고, 영원하고 거룩한 5차원의 몸을 입게 된다.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아담은 산 영이었으나, 죄를 지어 죽은 영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우리를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시간적으로는 아담이 먼저이고, 예수님이 그 다음이다).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아담)는 저 흙에 속한 자들(우리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예수님)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하나님,성령,천사)과 같으니,”

---아담과 예수님의 비교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아담을 따라서 3차원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따라서 5차원의 모습으로 또한 변하리라.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을) 것은 썩지 아니한(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3차원의 몸이 그대로 5차원에 갈 수가 없다. 부활할 때,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뼈와 살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5차원의 형체로 부활한다. 물질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사로나,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우리의 부활을 상징할 뿐이다. 우리의 5차원의 형체가 부활하는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천국에 가셨지만, 나사로는 그 몸으로 살다가 다시 죽었다. 나사로는 3차원의 몸이 3차원의 몸으로 다시 살아났을 뿐이다. 예수님도 구름위에서 천국이라는 차원으로 가실 때에, 그 몸은 5차원의 몸으로 흡수되셨다. 그 외에 에녹과 엘리아도 차원이동을 할 때, 5차원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고후12:2에서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 갔다 왔으면서도 몸을 갖고 갔는지를 모른다고 했다. 아마도 5차원의 형체로 변형되어 갔을 것이다. 바울은 다시 왔으니까 다시 3차원의 모양으로 변화된 것이다. 도장을 다시 종이에 찍듯이. 그러므로 성경은 현재의 썩을 몸이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는 없다고 했다.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변화한다. 즉 현재의 몸이 그대로 천국가는 것은 아니다. 5차원에 속한 형체로 변화한다.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죽은 자들이 5차원의 형체로 변화되고, 몸이라는 물질은 벗어던진 옷과 같다. “2차원의 도장 자국이 도장에 새겨지고.” (A라는 사람이 죽어서, 물고기 밥이 되고, 그 물고기를 B라는 사람이 먹고, 그 사람은 또 물에 빠져죽고, 물고기가 먹고, 다시 C라는 사람이 잡아먹고-----수천년을 내려와서, 내 몸이 네 몸이고, 네 몸이 내 몸이고-----이런 몸이 중복되고, 뒤엉켜 괴물로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뼈와 살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남자가 따로 있고, 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연극이나 영화촬영이 끝나면, 배우로 돌아오듯이, 극중의 역할은 끝난다. 그러므로 천사처럼 된다. 단지 거룩한 모습으로 변한다. 극중에서는 임금이 입는 용포를 입은 배우도 있고, 거지 옷을 입은 배우도 있지만, 촬영이 끝나면 모두 벗어버리고 자기 옷을 입듯이, 여자, 남자, 키다리, 난자이, 흑인, 백인이라는 3차원의 몸을 모두 벗어버리고, 5차원의 거룩한 몸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여자와 남자가 따로 없다.

 

22:31.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에게는 항상 현재이다. 알파와 오메가이다. 5차원에서 우리를 보는 것은 우리가 심청전을 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지금 살아있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지구와 그 안에서 인간이 행한 모든 일들은(works) 완전히 불에 타버린다. 즉 인간들이 행하는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KJV "Bu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as a thief in the night; in the which the heavens shall pass away with a great noise, and the elements shall melt with fervent heat, the earth also and the works that are therein shall be burned up."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elements)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어떻게 하늘과 공간이 불에 타고, 땅과 모든 물질이 녹을 수 있을까? 우리가 심청전 만화책을 불에 던져보면, 알 수가 있다. 만화책 속의 하늘이 불타고, 공간이 불타는 것을 볼 수 있다. 태우는 불은 만화책 속에 속한 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5차원의 불은 우리의 공간을 불태울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의가 없는 5차원의 세상을 바라본다. 만약 천국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16. 영적 성장, 즉 5차원적 성장의 필요성

 

그러면 바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고, 순교를 한 사람과 일평생 살인,강도짓을 하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과 똑같이 변할까?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분명히 상이 있다고 하셨다.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와 주지않는 자는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을 얻도록 노력해야한다. 그것을 영적 성장이라고 한다. 즉 입체그림의 입체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만화책의 그림은 2차원의 존재이지만, 3차원의 입체를 더 크게 만들면, 그림에서 분리되어 3차원으로 나올 때, 더 큰 존재가 된다. 우리가 3,4차원의 존재이지만, 5차원의 생명 즉 영생을 가졌으면, 그 생명이 잘 자라도록 가꾸어야한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성장하면, 이 세상에서는 미미한 존재일지라도 5차원에서는 큰 존재가 된다.

 

젖먹이 아기를 데리고 알프스의 멋진 산에 올라갔다고 생각하자. 이 아기는 알프스 융프라우나 필라투스의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을까? 춥기만 할 것이다. 산해진미를 대접한들 즐길 수 있을까? 맛없는 엄마 젖만 찾을 것이다. 온갖 보석을 준들 필요가 있을까? 강바닥의 돌맹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알프스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을까? 골프를 즐길 수 있을까? 행글라이더를 즐길 수 있을까?

성장해야한다. 천국의 영광을 제대로 누리려면, 5차원적으로 자라야한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해야한다. 5차원의 생명이 잘 성장하려면, 마음 밭을 잘 가꾸어야한다.

 

 

17. 우리의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신다.(계3:20) 그러므로 성령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마음도 존재해야한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마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플 수가 없다. 그런데 마음은 볼 수가 없고, 무게를 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이나, 하나님처럼 5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4차원과 5차원이 연결되는 문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마음)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마음)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마음)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기서보면, 분명히 우리의 마음도 존재하며, 하나님의 영도 존재한다. 만일 천국이나, 하나님이나, 성령이나, 우리의 마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상상 속에서 만든 존재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18. 5차원 즉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는 문은 우리의 마음이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영원한 생명(영생) 즉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5차원 세계의 생명은 우리의 마음에 뿌려지고, 마음에서 자란다. 영원한 세계와 연결통로가 우리의 마음이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천국은 3차원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임한다. 즉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있다.

 

 

19. 영적 성장의 방법

 

마음에 5차원의 씨앗이 뿌려지고, 마음에서 5차원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5차원의 씨앗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5차원에 알맞은 환경으로 맞추면, 5차원의 생명은 자란다. 즉 우리가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천국의 생명인 영생을 얻는다. 영원한 나라의 생명, 시간이 멈춘 차원, 5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을 얻는다. 그 영생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란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하며, 순결하고, 정직하며, 믿음을 굳게 잡고, 선행을 하면, 영원한 생명은 더 풍성하게 되고, 5차원인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복음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진다고 하셨다.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믿는다. 5차원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자라서 영적으로 자라가면, 우리의 마음은 청결해진다. 그러면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

마음 밭을 잘 가꾸어야 5차원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20. 마음 밭에 관한 구절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눅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사도행전 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행 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1. 추상명사가 5차원에서는 실존할 수 있다.

 

2차원인 심청전 만화책에서는, 3차원의 어떤 물건을 추상명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3차원의 물건은 부피로 존재하기 때문에, 2차원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3차원에는 2차원의 존재가 하나도 없다. 면적만 존재하고 부피가 없기 때문에 실존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3차원의 어떤 물질도 5차원으로 갈 수가 없다.

 

고린도 전서 15:49,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차원인 천국에 존재하는 것을 3차원에서는 추상명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성령의 열매는 3,4 차원에서는 추상명사이다. 그러나 5차원인 천국에서는 추상명사가 아닐 것이다.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존할 것이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015.10.4. 이 월석

 

*쉽게 표현하기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쉬우나,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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