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 게리 토마스  

 

Scared Pathways

(Discover Your Soul's Path to God)

 

- Gary Thomas -

 

영성이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일컫는 말. 우리를 다양하게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사람마다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듯 하나님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자신만의 영성을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영성을 흉내내는 것으론 충분한 영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없다.

 

모든 병에 아스피린을 처방할 수 없듯 각 개인의 영적 활로를 모색하는 길도 다양하다는 것. 자신만의 영성을 찾아 개발함은 물론 자신 그리고 타인의 영성의 한계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형태의 영성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영의 양분을 제대로 찾아 먹기 위한 것이며, 영적으로 자랄수록 영의 양식의 신단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게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하고 나아가게 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아름답게 사랑한 사람, 최고의 영성을 보여준 다윗은 영적 복합성을 골고루 갖춘 사람. 군 장군, 정치적 지도자, 종교 지도자,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맞는 영적 전공분야를 갈고 닦음은 물론 부족한 부분도 보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신앙의 참된 표현에는 네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흠모)을 다하고 목숨(의지)를 다하고 뜻(신념)을 다하고 힘(몸)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막12:30). 온전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흠모, 신념, 헌신, 봉사가 나타나야 한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거나 특정한 한 가지 죄를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다면 하나님이 지어주신 모습에 맞게 영적 양분을 섭취할 줄 몰라 죄나 중독이나 기타 다른데서 영적 '불량식품'을 찾고 있는 것.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 자신의 영적 기질을 이해함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도구들을 개발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결혼 : 달콤한 데이트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성숙한 자는 평생 그분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삶의 계절 속에서 그분과의 사랑을 늘 새롭게 간직하고 그분을 향한 경배와 이해에 자라가기 위해선 자신만의 진실된 모습으로 그분과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가꿔가야 한다.

 

(저자의 분류는 그냥 하는 우리의 생각과는 좀 다르기도 합니다. 성경과 모든 영성의 모본이신 예수님이 모델이긴 하지만 분류 자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겠죠. 단 자신에게 최적의 영적 보양식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적 식단을 제공해 주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자신에게 없어보이는 기질은 아직 발현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영혼의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황폐해 지겠죠. 그 정원에 꼭 장미만을 심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가장 힘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에 주력하되 다른 것과의 조화도 고려한다면 아름답고 풍성한 정원이 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기본 양식이지만, 책은 그 외에 저마다 하나님과의 결혼생활의 권태감을 떨치고 날들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기쁨이 되는 활동들을 또 다른 '양식'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1. 자연주의 영성 :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2. 감각주의 영성 :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3. 전통주의 영성 :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4. 금욕주의 영성 :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5. 행동주의 영성 :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6. 박애주의 영성 :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7. 열정주의 영성 :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8. 묵상주의 영성 :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9. 지성주의 영성 :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1. 자연주의 영성 :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마스크' (루터).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자연 속에 있지 않지만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우리 추운 마음을 덮어주는 이불일 수 있다. 자연을 통해 영적 진리를 시각화하고, 하나님을 더 밝히 보고(하나님의 아름다움의 무궁함), 안식을 배울 수 있다. 진정 피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면 영적으로 깨어나야 한다. 피조 세계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믿어야 하고 - 자연을 감상적으로 대하거나 우상으로 삼지 않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으로의 온전한 회심이 필요. "자연에 널린 기적들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마르틴 루터).

지각해야 하고 - 피조세계의 광대함, 다양함, 아름다움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아름다움을 음미해 보라. 진정한 그리스도인 자연주의자에게 피조세계란 우리를 기도로 부르는 성소요 성지.

받아야 한다 - 하나님께 말씀하실 시간을 드리지 않는 한, 대화의 주도권을 맡기지 않는 한 우리는 받을 수 없다. 풀밭이 보이는 순간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하나님의 인도에 맡기는 산책을 하라. "숲에 가거든 받으러 가라. 걱정이랑 집에 두고 가라."

 

이 땅에는 천국이 가득하고

모든 떨기 나무는 하나님으로 불붙어 있다.

그러나 보는 자만이 신을 벗는다.

다른 이들은 둘러 앉아 야생열매를 딴다.

 

- 엘리자베스 베럿 브라우닝 -

 

2. 감각주의 영성 :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인식. 아름다운 예술작품(음악, 그림..)을 통해 진리를 시각화(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격조 높은 예술은 신앙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헨델..). 기도를 돕기 위해 향을 사용(성막에도 늘 향이 있었음), 고난 주간에 못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시시각각 일깨우는 도구로 사용, 하나님께 아름다움은 중요. 안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하늘로 향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지어진 성전은 우리의 예배를 도울 수 있다. 생명의 떡인 예수님, 소금으로서의 성도, 음식의 맛을 떠올리면 일상생활의 틀에 박힌 먹는 행위에도 영적 각성을 불어 넣을 수 있다.

 

감각은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것, 미를 하나님보다 더 우상화할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이 아닌 아름다운 예배 자체를 예배하는 우상숭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은 주의해야 할 사항. 하지만 교회사의 몇몇 감각적 활동들이 오염되거나 신앙의 본질에서 너무 떨어졌다는 이유로 거의 버려졌지만,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면 유익한 것들을 너무도 많이 잘라냈는지 모른다. 손가락 덧나는 것이 두려워 팔뚝까지 잘라낸 것일지도.......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기회의광활한 박물관 안에 살지 않고 방 한쪽 좁은 구석에 스스로를 가두었는지도.......

 

3. 전통주의 영성 : 의식과 상징은 하나님의 임재와 실체로 들어가는 확실한 문이 될 수 있다. 때로 자신의 전통을 벗어나 보는 것만으로도 신앙의 익숙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관계이지만 참된 신앙안에서 종교 행위와 의식은 강력한 긍정적 힘이 될 수 있다. 종교 행위란 인간이 영적 진리를 구체화 하는 것. 예배는 단지 감정의 표출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기독교 신앙의 전 역사는 의식, 상징, 성례, 희생으로 점철. 종교적 의무는 영적 성장의 잠재적 통로. 의식, 상징, 희생의 실천을 통해 진리의 받침을 받을 수 있고 강해질 수 있다.

 

의식(강화된 행동의 힘) - 축일과 절기, 교회력, 기도문(잡념이 많거나 초보자에게 유익).

상징(기억력 부족 보완) - 물고기 안의 다섯 글자(헬,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각 단어의 첫글자), 빈 십자가(기독교의 승리 상징), 흰색(부활절, 크리스마스, 기쁨), 빨간색(십자가의 찬미, 순교자 축일, 주님의 수난).... 미신과 종교의 차이는 정욕과 사랑의 차이와 같다. 실체의 힘이 제거된 공허한 대용품이 미신. 상징이 신앙을 일깨우는 장치가 아니라 신앙의 중심이 될 때 위험.

희생 - 기독교는 우리를 의지의 헌신으로 부른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지만(희생을 포함 모든 것이 이미 그분의 것이기에), 희생을 바친다는 개념은 우리가 그분의 종임을 일깨워 준다. 희생은 나 자신이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없도록 뭔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주의 : 종교 행위가 참된 신앙으로 대치될 수는 없다. 거룩함을 가꾸는 것만을 목표로 이웃 섬김의 본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다른 이들의 신앙을 신성하지 못하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뿐. 기계적인 반복(주기도문, 사도신경, 기도문), 의식의 신격화.

 

4. 금욕주의 영성 : 고독, 청빈, 단순성, 깊은 헌신, 훈련, 엄격함,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들을 대표하는 '수도원 영성'. 혼자 따로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과의 동행, 영적 회복을 위해 필수. 짧은 기도원 나들이, 오후 한때의 한적한 시간이 양식. 초라하고 조용한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서는 것 만으로도 예배 의식이 고취됨.

 

심야기도, 새벽기도, 침묵, 금식(무익한 습관의 지배를 박으려면 단기간 그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순종, 일(일은 예배의 일부, 일의 도구 제단의 기명보듯), 기도원, 단순한 삶, 고난을 견딤, '음식을 탐하듯 금식을 탐하고, 사람들이 미친 듯 금을 파내듯 가난에 뛰어들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주의 : 영적 회복을 위한 고독과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본분은 균형을 이루어야. 기독교의 참된 금욕은 고난과 자기 부인이 목표가 아닌 수단.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다른 것을 택하는 것. 고통을 위해 고통을 구하거나 하나님께 무언가 얻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 개인적 경건의 지나친 강조와 다른 이들에 대한 비판.

 

5. 행동주의 영성 :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 사회 일선에서 구조 악에 대항해 전국적 행동을 시작하는 자들, 푼돈과 기도만으로 비영리 기관을 창설한 자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들을 성취하는 자들,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를 보고 싶어하는 거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보이는 자들. 도시의 한 블록을 빙 돌면서 중보기도 하는 전도자, 정부 청사를 돌며 정의를 위해 기도, 낙태클리닉을 기도하며 도는 그리스도인, 지도를 펼쳐놓고 기도하는 자들..

 

대결에는 두려움이 수반되기에 주님을 평소보다 더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시련을 헤쳐가며 교제가 더 돈독해진다.

 

사역 사이에 회복의 시간을 갖지 않고 영적으로 지치고 고갈되면 악에 대한 증오가 사람에 대한 증오로 변질될 수 있다. 믿음이 성숙할 수록 죄에 대한 거룩한 증오와 함께 사랑도 자라야 한다. 싸움을 위한 싸움을 지향하게 될 때는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분영의 영을 부추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 초점을 잃지 않고 악에 오염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필요하기에 행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개인의 성화 없는 사회 참여는 득보다 해.

 

6. 박애주의 영성 : 테레사 수녀. 남을 돌보는 일이 잡일이 아닌 일종의 예배. "일이 기쁨을 주느냐?"는 질문에 긍적적 답변을 하는 자들. 긍휼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증인.

 

박애주의 영성의 형태를 복지 단체에서의 자원봉사만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죄수와 자매결연을 맺는 것, 개인적 위기를 만난 친구를 도와 주는 것, 약물 중독과 싸우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문맹에게 글을 깨쳐 주는 것, 남의 차를 고쳐 주는 것, 집을 수리해 주는 것, 컴퓨터 시스템 재구성을 도와 주는 것, 피곤한 부모들의 자녀를 봐 주는 것.

 

스티브 소그렌 [친절의 모략], 봉사와 전도의 배합 - 차가 막히는 출퇴근 시간에 음료수를 나눠 주고, 대학 캠퍼스에서 핫초콜릿과 커피와 쿠키를 돌리고, 공원에 나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돌리고, 노인 단지에서 낙엽을 긁어 모으거나 잔디를 깎고, 집 앞길과 인도의 눈을 치우고.......

 

주의 : 마르다와 같은 사람은 마리아같은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인정해줘야 한다. 이기적 동기로 남을 섬기는 것은 탈취와 기만 행위. 편협한 정의, 측근 사람들을 무시(주부는 아이들 돌보는 것을 예배의 중심부로 여겨라, 젊은 아버지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자기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7. 열정주의 영성 : 신비와 축제.

 

신앙의 신비 : 초자연적 하나님은 초자연적 방법으로 당신을 나타내심. 성경에 제시된 정당한 신비 체험을 인정하고 가르치고 감독해야 성도들이 이단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기독교적 묵상을 가르쳐야 뉴에이지 명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경청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경고나 가르침을 놓칠 수 있다. 오용 가능성을 이유로 유용한 것을 완전 거부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

신비가 반지성주의에 뿌리를 두면 위험. 꿈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뒤엎는 쪽으로 사용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성경으로 가야 한다. 꿈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용된다. 꿈의 출처는 인간 영혼의 자연스런 작용(98%), 귀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분별해야.

 

존 웨슬리, "믿는 자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고 당신의 일을 더 분명히 드러내시고자 하나님은 그들 중 일부에게는 신성한 꿈을 주셨고 다른 일부에게는 황홀경과 환상을 주셨다."

 

축제의 행위 : 열정적 예배(음악과 축제 형식의 예배 - 다윗 시대의 특징. 열정적 축제를 꺼리는 엄숙한 태도는 성숙의 증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부분. 축하의 예배에 경외의 마음이 병행되어야함(웃사). 축제의 행위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축제의 예배는 기쁨을 가져다 주며, 기쁨은 영혼에 힘을 주는 기본 덕목.), 어린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 창조작업(하나님이 주신 삶으로 다른 것들을 창조함으로 그분을 찬미. 사업, 글쓰기, 그림 그리기, 정원 가꾸기.. 창조는 거룩한 체험이며 취미를 넘어선 강력한 예배의 표현. 중독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것. 중독자들을 자아로부터 벗어나게 해 긍정적, 건설적 창조 행위에 가담케 하는 것.)

 

8. 묵상주의 영성 :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신33:12). 묵상주의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과 손잡고 지내는 관계. 하나님을 누리길 원하며, 갈수록 더 깊은 방식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원한다. 천상의 연인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분께 자신을 송두리째 드릴 수 있는 프라이버시와 고요한 심령 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을 뿐.. 묵상을 통한 천국의 기쁨 맛보기.

 

예수님 기도(숨기도), 춤추는 기도(기도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집중 기도(예수님, 하나님, 사랑, 기쁨, 평안.. 등의 단어를 마음으로 조용히 반복(20분 정도?), 단어가 호흡처럼 무의식중에 되풀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묵상 행위. 단순히 하나님의 복된 임재를 누리며 그 안에서 쉬는 것이 목표. 존 클리마커스 "당신의 기도의 말에 박식한 미사여구가 없게 하라... 장황한 연설로 들어가지 말라. 달변을 애쓰다 마음만 기진할 뿐이다. 세리의 한 마디 말이 하나님의 자비에 가 닿았다." 마음의 기도 (생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활용해 마음에 집중하게 해주는 것. 하나님에 대한 정서적 애착에 집중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시도록 우리 마음을 넓히는 것,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그분을 의식하는 것). 묵상 기도(성경 본문, 특정 주제를 놓고 묵상, 기도는 겸손히 하나님께의지를 굴복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진정한 인격적 만남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

 

풍성한 인간관계도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잊으면 균형을 상실하게 된다. 자신을 비워 진공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묵상 조심, 기독교적 묵상의 목표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 하나님 대신 감종을 구하는 영적 탐식도 경계. 악을 줄이지 않고는 신앙의 진보란 있을 수 없다. 미숙한 심취 상태를 벗어나 자기 훈련과 절제를 통합하는 쪽으로 자라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과 애정을 드리는 것. 하나님은 온갖 좋은 일로 정신 없이 바쁜 우리를 보시며 이렇게 혼잣말 하시지 않을까.. "제발 잠깐만 멈추고 저들 자신을 내게 준다면!" (M. 바질 페닝턴).

 

9. 지성주의 영성 : 생각의 자극을 통해 주님께 강력히 끌리는 사람들,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 경배의 마음이 솟는다. 묵상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몇 시간이고 머물 수 있는 것처럼 지성주의자들은 도전적인 구절이나 개념에 골몰하여 몇 달도 보낼 수 있다. 초대 교회가 이교도 세계에 성공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에서도 세상을 앞섰기 때문(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 스콜라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 지성주의자들은 정식 신학 교육에서 큰 유익을 얻는다. 신학 기초 분야를 훈련 목표로(교회사, 성경 연구, 조직 신학, 윤리학, 변증학..).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옹호할 각오가 없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도덕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하등 부질없는 일이다. 교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교의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하나의 감정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기독교란 무엇보다도 우주에 대한 합리적 설명임을 주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독교를 순진하게 위안이나 주는 애매한 이상주의적 동경으로 제시하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다. 반대로 기독교는 타협 없는 철저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견고하고 강하고 엄격하고 복합적인 교리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 누구나 웬만큼 알고 있으므로 조금씩 실천만 권해 주면 된다는 생각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 냉엄한 사실은...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사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교회가 가르치는 바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백 명 중 하나도 안 된다는 것이다. (도로시 세이어즈)

 

주의 : 변론을 좋아함, 행동 없는 지식, 교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