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자경문

 

글 / 신봉승 극작가 

 

율곡 이이는 열여섯 살 되던 해 하늘과도 같았던 스승이자 삶의 귀감이었던 어머님 사임당과 사별한다.

어린 율곡은 세상의 허무를 통탄하며 눈물로 3년 상(喪)을 마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에 심취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회의를 풀고자 하였던 큰 방황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몸에 밴 율곡은 1년 만에 방황을 끝내고 강릉 죽헌리 외가로 돌아온다.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의 선비가 잠시나마 불교에 심취하였던 자신의 과오를 달래고 경계하기 위해 스스로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좌우명으로 삼았다면,

하나의 반성문이자 자신의 행동강령을 세우는 결단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을 경계하고 채찍질 하는 다짐이라고 하더라도 스무살 남짓한 젊은이의 결단이라는 점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 내용은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겠기에 여러 항목을 모두 거론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큰 뜻을 세우고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야 하되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한다면 나의 일은 끝나지 않음이요.

 

둘째, 마음이 안정된 자는 말이 적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말을 줄이는 일이다.

 

셋째, 마음이란 살아있는 사물과 같다. 

잡념과 헛된 망상을 없애기 전에는 마음의 동요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넷째, 항상 경계하며 두려워하며 혼자 있을 때는 삼가는 마음을 가슴에 담으며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도 생각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글을 읽는 것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니, 만약 이를 살피지 아니하고 오롯이 앉아서 글을 읽는다면 쓸모없는 배움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째, 재물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과 영화로움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을 비록 쓸어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만일 일을 처리할 때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처리하려

한다면 이 또한 이로움을 탐하는 마음이 된다.

 

일곱째, 만약 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하여 해야 하고, 만약 해서 안 될 일이라면 일체 끊어버려서 가슴속에서 옳으니 그르니 다투게 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치에 어긋나는 악행을 저지른다면 나는 스스로 돌아서서 반성을 하면서 그를 감화시켜야 한다.

 

열째, 밤에 잠을 자거나 몸에 질병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누워서는 안 되고, 공부는 급하게 해서는 안되며, 늦추어서도 안되는 것은 죽은 뒤에야 끝이 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읽어도 버릴 곳이 없다.

옛 성현들은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지 말아야하고, 책속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어야 바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로부터 45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율곡 이이의 가르침을 실천요강으로 삼아서 실행해 간다면 온전한 삶을 누릴 것이 분명하다.

 

선조는 율곡 이이와 같이 학덕이 높고, 성품이 올곧은 신하를 가까이 두기를 원하였다.

때로는 동료 신료들의 무책임을 통박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바로 알려서 치도를 확립하게 하려 하였기에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바른 말하는 신료들을 탄핵하는 세력들이 공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율곡 이이는 조선의 사회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율곡 이이의 상소문은 언제나 국가의 일을 우선으로 하였고, 말만을 앞세우는 자들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국가의 정체성보다 정당의 이익에 매달리는 이 땅의 사이비 지식인들에게 율곡 이이의 <자경문>을 읽으면서 반성하는 계기를 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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