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와 아람어와의 관계

 

글 / 이윤영

 

yrib][ii(ibri), !yrib][i(ibrim),pl. [그] NT @Ebraio", !r:a} Aram「고원」 

 

1) 히브리어(Hebrew)는 아람어(Aramaic)와 알파벳이 같고 문법 규칙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매우 가까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약 성경은 순수하게 히브리어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아람어로 쓰여 진 내용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부분은 아람어로 기록하였던 것을 나중에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을 정도로 두 개의 언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구약 성경 중에서 아람어로 쓰여 진 구절이나 본문이 있는 곳은 네 개의 책에서이다. 아람어 본문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곳은 다니엘서인데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 다섯 가지 이야기를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다음으로는 에스라 4:8-6:18에서 성전 건축의 방해 끝에 준공되는 과정까지와 7:12-26에서 에스라의 영도로 제이차 귀환하는 내용을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특히 에스라 4:7은 이후의 내용을 아람문자와 아람의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다고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예레미야 10:11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한 구절이 아람어로 되어있고, 마지막으로 창세기 31:47에서 야곱과 라반이 미스바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갈르엣'과 '여갈사하두다'라고 부른 말이 아람어이다.  

 

3) 아람어는 좁은 의미로는 다메섹을 수도로 하며 북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아람'이라는 나라에서 사용한 언어를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아람어라고 할 때는 셈어 계통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과 수리아(Syria) 지역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한 고대 근동의 대표적 언어를 뜻한다. 따라서 아람어는 지역에 따라 크게 갈대아 아람어와 수리아 아람어로 나누는데, 성경에 사용되고 히브리어에 영향을 많이 준 아람어는 그 중에서 갈대아어(Chaldee)로 불리는 아람어이다.

 

4)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영향을 끼친 역사를 살펴보려면 먼저 히브리어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최초의 히브리어는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 오는 시기인 BC 21-20 세기경에 사용된 셈어(Semitic)인데, 이때 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는 그들의 본향이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와 관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부터는 가나안어에 동화되어 발전한 것이 최초의 히브리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5) 그 후, 히브리어는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이거하면서 약 400년 동안 함어(Hamitic)인 애굽어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는데, 그것은 BC 15세기경 모세가 성경을 최초로 기록할 때의 히브리어 서체가 현재의 아람형 장방형 문자(Aramic Square Letter)가 아닌 애굽의 상형문자를 모방한 예리한 서체임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출애굽 후에 가나안에 다시 정착하면서 히브리어는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문에 히브리어는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문명을 교류하면서 셈어와 함어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6) 아람어는 고대 바벨론 문명의 언어인 악카드어의 언어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BC 14-13세기경 아람인들이 가나안 북방으로 이주해 오면서 가나안어에 영향을 줌으로써 히브리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고학을 통해 발견되는 증거로는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 시대인 BC 9세기경 아람어 기명(Inscription)들이 가장 오래된 것들이어서 이전 시대의 아람어 역사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BC 722년 북왕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살만 엣셀 왕이 앗수르를 비롯한 바벨론, 구다, 하맛 등지의 아람어를 사용하는 족속들을 북 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면서부터이다.

   

7) 북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여세를 몰아서 남 왕국 유다에게도 총공세를 퍼부었는데, 열왕기하 18:26에 보면 당시의 앗수르 장수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투항을 권유할 때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동시에 구사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유다 마져도 앗수르 후신국(後身國)인 바벨론에 의하여 BC 586년에 멸망당한 후 바벨론 포로와 팔레스타인의 이민족 이주정책이 계속됨에 따라 히브리어는 아람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8) 그 후, BC 538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여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세운 고레스는 아람어를 바사 제국의 공용어로 채용하였다. 그 이전의 아람어가 구어(口語)로서 발전하였다면 바사 왕국에서 아람어는 공식적 행정 언어로서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람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면서부터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까지 사용하게 되자 아람어는 구문법과 어휘에서 다른 언어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독특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9) 바사 시대 근동에서 계속 사용되어진 아람어는 BC 3세기경 헬라가 근동을 지배하게 되면서 표준어로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헬라어에게 제국 공용어의 위치를 내어주고 말게 되었다. 그 후 아람어는 제국 공용어가 아닌 각 지방의 방언으로 해체되어 나름대로 특성을 지닌 채 발전해가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아람어는 동부 아람어와 서부 아람어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동부 아람어는 수리아어, 바벨론어, 탈무드의 아람어, 만다어 등이 포함되며, 서부 아람어는 팔레스타인과 사마리아 지역의 아람어를 가리킨다.

 

10)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일상 언어로서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히브리어는 종교적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따라서 바사가 망하고 헬라 시대에 비록 헬라어가 표준어가 되었어도 완전히 다른 체계의 언어인 헬라어보다는 친숙한 아람어를 버리지 않았다. 두 언어 간에 적어도 문자는 완전히 일치하는데, 그것은 BC 3-2세기경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고안할 때 아람어의 각 문자(角文字)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운 현상이 비슷하고 단어 또한 서로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한 마디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가장 가까운 형제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대한 이해  

 

가. 히브리어

 

1. 히브리어의 위치

 

셈어는 크게 동 셈어군과 서 셈어군으로 나누어지는데 히브리어는 아람어와 함께 서 셈어군 가운데 북서 셈어군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가나안어에 속한다. 이에 속하는 다른 언어로는 우가릿어, 페니키아어, 모압어, 에돔어가 있다. 따라서 이 언어들은 히브리어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가나안어는 다시 동부 가나안 어족, 북부 가나안 어족, 남부 가나안 어족으로 분류되는데 모압어, 에돔어, 암몬어, 히브리어는 남부 가나안 어족에 속하며, 아모리어는 동부 가난안 어족에 속한다.

   

2. 히브리어의 명칭

 

구약의 언어를 가리켜 직접 '히브리어'라고 언급한 곳은 구약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나안 방언' (사 19'18) 또는 '유다 방언' (왕하 18 : 26-28 ? 대하 32 : 18 ; 느 13 : 24 ; 사 36'1郭이 라고 표현한 곳은 여펀 있다. 다만 아람어가 아람인이 쓰는 말을 가리키듯, 히브리인들이 쓰는 말을 히브리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인 '히브리인'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인 고대 수메르-아카드(Sumerian-Akkadian) 지역에서부터 팔레스틴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건너온 자'란 뜻의 '이브리'가 그 어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성경에서 최초로 '히브리 사람'이라고 표현한 곳은 창39'14이며, 그것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표현한 말이다. 그후 이스라엘 백성들도 스스로 이 명칭을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출1 . 19). 이런 이유로 해서 B.C. 1訓년 경부터 유대 랍비들이 공식 적으로 '히브리 어 '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히브리어 와 아람어를 통칭 하여 '히브리 인의 언어 '라고 했다. 그리 고 신약 성 경에도 '히브리 말' (요 5:2;19'13) 또는 '히 브리 방언' (행21 :朝)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3. 히브리어의 역사

 

히브리어는 그 역사적 변천에 따라 성서 히브리어. 미쉬나 히브리어, 중세 히브리어, 근세 히브리어로 구분될 수 있다.

 

1) 성서 히브리어

성서 히브리어는 고대 히브리어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이주해 온 후 초기 가나안어를 배워 사용한 것이다. 1929년 가나안 지역과 그 근방에서 발견된 수많은 우가릿(Ugarit) 문서들이 대부분 히브리어의 고어체인 베니게 방언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을 입증해 준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이러한 성서 히브리어는 모국어로서 계속 사용되어 구약 정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가 기록된 이후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구약 외경인 집회서와 같은 경우 B.C. 2C 경의 작품인데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쿰란에서 발견된 많은 문서들 역시 성서 히브리어와 근본적으로 같은 언어로 사용되었다. 이로 볼 때 성서 히브리어는 로마 통치하에서 기독교가 성립되기 직전까지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미쉬나 히브리어

이는 주로 탈무드와 같은 유대 랍비들의 문헌에 사용된 히브리어로서 B.C. 220-70년 경에 주로 사용되었다. 이 미쉬나 히브리어는 구약 시대 팔레스틴의 구어(口語)가 발전한 것으로서 고대에는 주로 평민들이 쓰는 언어였으나 이때에 이르러 랍비들과 같은 엘리트의 언어가 된 듯하다. 따라서 고대 히브리어에서 갈라져 나온 한 방언으로 볼 수 있는 미쉬나 히브리어는 성경의 고대 히브리어에 비해 다양한 시제(時制)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진행형 시제도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바르 코크바(A.D. 132-135년 사이에 로마에 저항하여 폭동을 일으킨 자)의 편지도 미쉬나 히브리어로 적혀 있었다.

 

3) 중세(中世) 히브리어

이 때에 이미 성서 히브리어는 완전히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몇몇 유대인들에 의해 단지 문어체(文語體)로만 사용되기도 했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야살의 책'(Book of jashar)을 들 수 있다. 특히 스페인의 황금시대에는 유능한 문필가들에 의해 산문과 시에 사용되기도 했었다.

 

4) 근세(近世) 히브리어

이스라엘 국가의 공식적인 언어인 근세 히브리어는 19, 20세기 서구의 문학적, 과학적 영향을 받아 현대 생활에 적합한 새로운 언어로 개혁된 언어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많은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이 언어는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언어는 성서 히브리어와는 거의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4. 히브리어의 언어학적 특징

 

북방 셈어 가운데서도 중부 계열에 속하는 히브리어는 고대 셈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대부분 가진 전형적 셈어이다. 히브리어의 특징은 대략 2,000개에 해당하는 기본 어근이 있고 그 어근의 변화로 다양한 단어가 파생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기본 어근의 뜻만 파악하고 있으면 어느 한 단어의 뜻을 대략 짐작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단어에 담긴 히브리인의 사고방식도 엿볼 수 있다. 히브리어의 파생적 특징과 연관된 것으로 그 전체 어휘가 매우 적다는 사실도 들 수 있다. 성경을 예로 들자면 고유 명사를 제외하고 성경에는 5,000여 단어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도 자주 사용되는 것은 500단어도 채 안 된다.

 

한편 히브리어의 문자 기록은 22개의 자음(字音)만으로 오른쪽에서 왼 쪽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많은 어휘로 구성된 히브리어의 구성상 자음만을 표기하다 보면 서로 다른 단어가 동일하게 표시될 수 있다. 그러나 각 단어는 동일하게 표기되어 있더라도 당연히 각 경우마다 발음이 다르며 그 문맥과 위치와 배열에 따라 뜻이 구별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자에게는 매우 난해하다. 그리하여 히브리어가 사어가 된 후에는 이처럼 자음만으로 표기된 히브리어의 정확한 독법과 문장 구분의 파악을 위해 원래의 히브리 문자에는 없는 모음을 만들어 붙였는데, 이것이 소위 맛소라 모음 부호이다.

 

이상 두 사실의 실례로 똑같이 '정돈하다'는 뜻의 동사 '다바르'(171)에서 파생한 세 명사 '도베르'( ㄱ31), '다바르'(131), '데베르'(13ㄱ)를 들 수 있다. 즉 동사 '다바르'의 '정돈하다'는 측면에서 초장(草場)이란 뜻의 '도베르' (미 2 : 12)가,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 (창 11. 1)가, '파괴하다'란 뜻의 '데 베 르' (시 78 : 訓) 가 각각 파생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세 단어는 그 뜻과 발음은 서로 다르나 어근만 표시하면 '다바르' ( 131)가 된다.

 

그리고 히브리 자음 문자 기록에는 모두 다 '다바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 모음 부호를 단 것이 맛소라 모음 부호이다. 또한 동사에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이 세분된 시제는 없으나, 다만 동작의 종료와 미종료를 나타내는 완료형과 미완료형의 구분은 매우 정확하다. 히브리어는 이를 적절히 사용하여 문맥 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타내며 강의적인 행위, 사역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그리고 약간의 변화 어미를 첨가하여 가정, 회구, 명령, 의문 등도 나타낸다. 또한 문장 구조 내에서의 인칭대명사는 주어를 제외하고는 독립 표기되지 않고 접미어의 형태로 동사나 명사 뒤에 붙는다. 그리고 명사나 동사의 합성어가 거의 없다는 것도 히브리어의 큰 특징이라 하겠다.

   

5. 히브리어의 문학적 특징

 

히브리어는 본질적으로 간결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구상적(具象的)이다. 이것이 히브리어의 일차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라틴어나 헬라어는 복문(複文)을 사용하여 복잡한 사상도 표현할 수 있지만 히브리어는 다른 문장을 종속(從屬)시키지 않고 대체로 접속사를 사용하여 문장을 등위(等位)시켜 나열하는 간결한 표현법을 쓰고 있다.

 

예컨대 창25 : 33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해 보면 '그러나 야곱은 당장 내게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에서는 맹세했다. 그리고 장자의 상속권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이렇게 에서는 자기의 상속권을 경홀히 여겼다'가 된다. 이처럼 분사나 형용사, 부사의 사용이 없이 동사와 명사만을 사용하는 문장의 간결성은 히브리적 사고방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헬라적 사고의 특징이 논리적이라면 히브리적 사고의 특징은 직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히브리어는 장엄하고 숭고하며 운율적 (韻律的)인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활력과 정열이 넘치는 언어이기 때문에 열렬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언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히브리어 자체의 시적인 특성 때문에 산문으로 기록된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도 운율을 느낄 수 있다.

 

 

나. 아람어

 

1. 아람어의 특징

 

성경에서 아람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곳은 창31 : 47인데, 라반이 야곱과 맺은 언약의 기념으로 쌓은 돌무더기에 붙인 이름 '여갈사하두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아람어'라고 하는 명칭은 왕하 18: 26에 처음 나타난다. 그리고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B.C. 1000년경의 애굽비문에 아람어 흔적이 나타난다. 그리고 학자들은 약 천 년 간에 걸쳐 있는 비문들에 근거해서 아람어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즉 북수리아 비문에 나타난 고아람어(B.C. 10-8C), 앗수르 비문에 나타난 공식 아람어(B.C. 8-7C), 바벨론 서판의 신바벨론어(B.C. 脚5-類9년), 페르시아 아람어(B.C. S39-333 년), 수리아와 팔레스틴의 레반트 아람어(B.C. 721년 이후), 중간사 후기와 신약 시대의 팔레스틴 유대교 아람어 이다.

 

성경의 아람어가 히브리어와 다른 점은 주로 치찰음(齒擦音)보다 치음(齒音)을 사용하고 있고, 많은 외래어를 수용하여 그 어휘가 풍부하며, 접속사의 종류가 많다는 것 등이다. 아람어는 히브리어 만큼 시적(詩的)인 데는 없지만, 법률가의 언어처럼 정확하고 명료하여서 정확한 표현을 하는 데는 적합한 언어이다.

   

2. 아람어의 영향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포로 시대 전후로 보고 있다. 왕하18 : 26에 의하면 B.C. 701년 경 아람어가 외교 용어로 사용된 사실이 있지만 일반 평민들은 아람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람어는 B.C. 7세기에 이르러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일상어가 되었고, 바벨론 포로 시대(B.C. 6C) 이후 팔레스틴 지역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시대에도 아람어는 공용어(公用語)로서 히브리어와 함께 병용되었다. 그러나 B.C. 2세기경부터 히브리어는 랍비들이 미쉬나를 기록할 때 사용하는 문필용(文筆用)이 되어 버렸고 구어(口語)로는 거의 아람어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로마 시대 헬라어로 대치되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람어는 미쉬나 히브리어 이후 지속적으로 히브리어에 영향을 미친 사실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즉 미쉬나 히브리어에 나타난 시제의 발전은 결국 아람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자 각각에 고유한 수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엇다. 이는 수리적 의미보다 점술적 의미가 강한 듯하다. 본래 고대 히브리 문자에는 모음부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A.D.6세기 경의 맛소라 학자들이 각 단어의 발음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고안한 것이다

 

히브리어(Hebrew)는 아람어(Aramaic)와 알파벳이 같고 문법 규칙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매우 가까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구약성경은 순수하게 히브리어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아람어로 쓰여 진 내용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부분은 아람어로 기록하였던 것을 나중에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을 정도로 두 개의 언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 중에서 아람어로 쓰여 진 구절이나 본문이 있는 곳은 네 개의 책에서이다. 아람어 본문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곳은 다니엘서인데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 다섯 가지 이야기를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다음으로는 에스라 4:8-6:18에서 성전 건축의 방해 끝에 준공되는 과정까지와 7:12-26에서 에스라의 영도로 제이차 귀환하는 내용을 아람어로 기록하였다. 특히 에스라 4:7은 이후의 내용을 아람문자와 아람의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다고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예레미야 10:11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저주하는 내용의 한 구절이 아람어로 되어있고, 마지막으로 창세기 31:47에서 야곱과 라반이 미스바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갈르엣'과 '여갈사하두다'라고 부른 말이 아람어이다.

 

아람어는 좁은 의미로는 다메섹을 수도로 하며 북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아람'이라는 나라에서 사용한 언어를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아람어라고 할 때는 셈어 계통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과 수리아(Syria) 지역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한 고대 근동의 대표적 언어를 뜻한다. 따라서 아람어는 지역에 따라 크게 갈대아 아람어와 수리아 아람어로 나누는데, 성경에 사용되고 히브리어에 영향을 많이 준 아람어는 그 중에서 갈대아어(Chaldee)로 불리는 아람어이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영향을 끼친 역사를 살펴보려면 먼저 히브리어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최초의 히브리어는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 오는 시기인 BC 21-20 세기경에 사용된 셈어(Semitic)인데, 이때 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는 그들의 본향이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와 관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거주하면서부터는 가나안어에 동화되어 발전한 것이 최초의 히브리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 후, 히브리어는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이거하면서 약 400 동안 함어(Hamitic)인 애굽어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는데, 그것은 BC 15세기경 모세가 성경을 최초로 기록할 때의 히브리어 서체가 현재의 아람형 장방형 문자(Aramic Square Letter)가 아닌 애굽의 상형문자를 모방한 예리한 서체임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출애굽 후에 가나안에 다시 정착하면서 히브리어는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문에 히브리어는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문명을 교류하면서 셈어와 함어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람어는 고대 바벨론 문명의 언어인 악카드어의 언어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BC 14-13세기경 아람인들이 가나안 북방으로 이주해 오면서 가나안어에 영향을 줌으로써 히브리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고학을 통해 발견되는 증거로는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 시대인 BC 9세기경 아람어 기명(Inscription)들이 가장 오래된 것들이어서 이전 시대의 아람어 역사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BC 722년 북왕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살만 엣셀 왕이 앗수르를 비롯한 바벨론, 구다, 하맛 등지의 아람어를 사용하는 족속들을 북 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면서부터이다.

 

북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여세를 몰아서 남 왕국 유다에게도 총공세를 퍼부었는데, 열왕기하 18:26에 보면 당시의 앗수르 장수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투항을 권유할 때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동시에 구사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유다 마저도 앗수르 후신국(後身國)인 바벨론에 의하여 BC 586년에 멸망당한 후 바벨론 포로와 팔레스타인의 이민족 이주정책이 계속됨에 따라 히브리어는 아람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후, BC 538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여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를 세운 고레스는 아람어를 바사 제국의 공용어로 채용하였다. 그 이전의 아람어가 구어(口語)로서 발전하였다면 바사 왕국에서 아람어는 공식적 행정 언어로서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람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면서부터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까지 사용하게 되자 아람어는 구문법과 어휘에서 다른 언어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독특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바사 시대 근동에서 계속 사용되어진 아람어는 BC 3세기경 헬라가 근동을 지배하게 되면서 표준어로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결국 헬라어에게 제국 공용어의 위치를 내어주고 말게 되었다. 그 후 아람어는 제국 공용어가 아닌 각 지방의 방언으로 해체되어 나름대로 특성을 지닌 채 발전해가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아람어는 동부 아람어와 서부 아람어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동부 아람어는 수리아어, 바벨론어, 탈무드의 아람어, 만다어 등이 포함되며, 서부 아람어는 팔레스타인과 사마리아 지역의 아람어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일상 언어로서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히브리어는 종교적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따라서 바사가 망하고 헬라 시대에 비록 헬라어가 표준어가 되었어도 완전히 다른 체계의 언어인 헬라어보다는 친숙한 아람어를 버리지 않았다. 두 언어간에 적어도 문자는 완전히 일치하는데, 그것은 BC 3-2세기경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고안할 때 아람어의 각문자(角文字)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운 현상이 비슷하고 단어 또한 서로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한 마디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가장 가까운 형제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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