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탐사선 60억㎞ 날아 내달 12일 혜성에 ‘터치다운’

유럽우주국 ‘로제타 미션’ 세기의 우주쇼

 

 


10년 8개월 10일을 기다렸다. 그동안 비행거리는 무려 60억㎞.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957일간 동면상태로 지내는 고통을 감수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12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67P)와 ‘역사적인 만남’ 을 이루는 유럽우주국(ESA)의 로제타 탐사선의 이야기이다.

전 세계 천문학자와 천문 애호가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13억 유로(약 1조7294억 원)짜리 ‘세기의 우주쇼’가 드디어 펼쳐진다.

ESA가 로제타 탐사선을 쏘아 올린 것이 지난 2004년 3월 2일. 나사(미항공우주국)가 혜성 템펠 1호를 충돌체(임팩터)로 부수는 화려한 이벤트(2005년 ‘딥임팩트’ 실험)를 펼치고, 탐사로봇 피닉스(2007년 발사)와 큐리오시티(2011년 발사)가 보내온 화성 사진들을 전 세계에 공개하며 뽐내는 동안 로제타는 묵묵히 성실하게 적막한 우주공간을 날아가 목표지점인 혜성 67P의 궤도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12일 뒤 로제타는 11년 가까이 품고 있던 탐사로봇 ‘파일리(Philae)’를 67P 표면에 내려놓을 예정이다. ‘엄마’ 로제타 품을 떠난 ‘아기’ 파일리의 임무는 드릴로 구멍을 파서 67P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이다. 태양계가 탄생했을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태양계의 타임캡슐’로 불리는 혜성이 사상 최초로 인류 앞에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로제타 미션’, 왜 특별한가 = ESA의 ‘로제타 미션’과 나사의 ‘딥임팩트’는 혜성을 탐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과정과 의미는 크게 다르다. ‘딥임팩트’는 세탁기만 한 크기의 충돌체를 우주공간으로 보내 혜성 템펠 1호를 부서뜨려 내부 핵과 결합상태, 성분 등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한 실험이었다.

‘로제타 미션’은 혜성의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탐사로봇을 착륙시켜 탐사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딥임팩트’ 프로젝트의 난이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67P는 태양으로부터 최대 8억㎞ 떨어진 지점에서 시속 약 13만5000㎞로 움직이는 혜성이다. 로제타가 67P를 만나기 위해 60억㎞나 날아가야 했던 이유는, 복잡한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67P 궤도를 따라잡기가 워낙 힘들기 때문이었다. 템펠 1을 맞히면 되는 ‘딥임팩트’의 비행시간과 거리는 약 6개월, 1억2800만㎞였다. 하지만 지표면에 탐사로봇을 내려놓아야 하는 로제타는 지난 약 11년 동안 67P 궤도에 들어가기 위해 수없이 주변을 날고 또 날아야만 했다.

▲  로제타 탐사선이 찍은 혜성 ‘67P’의 모습.
화성과 달리 지표면이 극도로 울퉁불퉁한 67P에 파일리가 제대로 내려앉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ESA는 최근 그나마 평평한 ‘J지점(J site)’을 착륙 장소로 지정했지만, 중력이 거의 없는 혜성에선 약 100㎏짜리 ‘파일리’가 그대로 튕겨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선 ‘파일리’가 혜성 표면에 닿는 순간 자동 드릴 장치를 가동해 자신의 발을 꽉 고정해야 한다. 일단 여기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면, 미션의 절반 이상은 이룬 셈이다.

 

◇왜 ‘로제타’ ‘파일리’인가 = ESA가 ‘로제타 미션’을 처음 수립한 것은 1993년이었다. 앞서 1986년 핼리 혜성이 지구에 근접하면서 혜성에 대한 학계와 일반의 관심이 많이 늘어났던 것이 계기가 됐다. 탐사선과 탐사로봇에 로제타와 파일리란 이름을 붙여줬다는 사실 자체에서 ESA가 이 미션에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로제타란 이름은 1799년 이집트 라쉬드(영어 지명은 로제타)에서 발견된 일명 ‘로제타석(로제타 스톤)’에서 따온 것이다. BC 19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화강암 비석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 등 세 가지 문자가 새겨져 있다.

 

 ‘로제타’는 인류 지성의 새 장을 열었던 로제타석처럼 미지의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ESA의 야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특히 탐사선 내부에는 전 세계 약 1500개 언어로 제작된 약 1만3000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담고 있는 ‘로제타 디스크’가 들어있다. 여기서 탐사선 이름이 로제타로 정해졌다는 설도 있다. 파일리 역시 이집트 나일강에 있는 섬에서 따온 이름이다. 1815년 이곳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문자는 로제타석과 함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로제타 탐사선은 11월 12일 오전 8시 35분(UTC 기준·한국시간 오후 5시 35분)부터 혜성 67P의 ‘J site’에 초속 1m의 속도로 탐사로봇 파일리를 내려놓는다. 파일리의 분리부터 착륙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7시간. 오는 2015년 12월까지 파일리는 67P에서 채취한 각종 성분을 분석해 얻은 자료와 영상을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유럽우주작전센터(ESOC)에 보내고, 상공에선 로제타 탐사선이 파일리와 ESOC를 연결하고 67P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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