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장로교 예배의 특징은? 

 

1. 기독교 예배란 무엇인가?

 

1) 일반적으로 예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배란? “신을 신앙하고 숭배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경배하는 행위 및 제반양식”

언제나 신이 존재하며, 그리고 그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교류나 관계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가 지향하는 예배 혹은 제사의 목적이다.


2)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제사(예배)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예배와 관련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구약이 전해주는 첫 번째 제사에 대한 교훈은 무엇일까?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이야기9창4:3~7)을 통하여 성서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제사를 받으실 수도 있고 거부하실 수도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3) 레위기 1~7장에 나오는 내용은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요구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제사는 무엇일까? 구약성서는 크게 두 가지 해답을 제시.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원하시는 제사의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으므로 그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면 된다는것. 레위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의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시는데, 이 제사는 정해진 시간(절기)에 정해진 사람(제사장, 레위인)이 구별된 장소(성전)에서 정해진 방식(의식, 예전)을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서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제사장의 중재적 역할을 강조하며 신비한 예식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러한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4) 이사야 1장 10~17절과 예레미야 7장 1~10절을 읽고 성서의 말씀이 예배와 관련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제사에 대한 구약의 두 번째 대답은 위의 거룩한 의식으로서의 제사를 비판하는 여러 구약의 본문들 속에서 발견된다. 이사야 1장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의 마당만 밝을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제대로 드리는 제사는 그러한 형식이 아니라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며 억압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러한 예배관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행위를 감찰하시므로 올바른 삶과 행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하해하고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해주었다. 많은 예언자들이 성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외친 내용들은 바로 이러한 예배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5) 히브리서 10장 1~22절을 읽고 신약의 예배관은 구약의 예배관과 무엇이 다른가?

히브리서 10장은 구약의 제사에 대하여 제사는 원래부터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없었고 도리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생각나도록 하는 효과만 있었다고 설명한다(히10:1~4) 더 나아가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묘사한다 (히10:7,9) 히브리서는 오직 예수그리도만이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분이시며 진정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분이라고 증언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증언한다. (히10:18)


6) 로마서 12~1~3절을 읽고 바울이 말하는 올바른 예배는 무엇인지 말해보자

하나님과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제사는 어떤것일까? 신약의 대답은 이렇다. 더 이상 거룩한 의식도 아니고 흠이 없는 삶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케 하셨으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이러한 축복된 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성도들을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과 격려로 인도한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으므로 서로 마음을 써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합시다.“(히10:22~24)


초대교회의 예배는 이러한 구원에 대한 감격과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즉 성령의 강림 후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고 구원의 감격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선행과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7) 지금까지의 성서 연구를 통하여 기독교 예배란 무엇인지를 말해보자

기독교의 예배는 더 이상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 무엇을 드리는 행위나 의식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화해사건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 기억하고 회상하며 감사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삶을 통해 선행과 나눔으로 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는 인간이나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 감사를 표현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배학자인 버크하르트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 하고 계신 것, 그리고 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에 대한 인간의 흥겨운 응답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드리는 예배는 첫째, 하나님께 대하여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인정, 감사 혹은 숭모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념하고 재현하며, 셋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고 알리는 것을 그 예배의 내용으로 담아 왔다고 말한다. 이렇듯 기독교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행위에 대한 감사와 선포이어야 한다.


2. 장로교 예배의 독특성 

 

1) 기독교의 예배의 유형을 분류하여 본다면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1)재연으로서의 예배 

구약의 제사를 기독교 예배에 그대로 적용하여 거룩한 순서와 방식을 재연하고 극대화하는 것으로 천주교회와 동방정교회등에서 행함.

 

(2)이해로서의 예배 

올바른 예배는 예배자의 이해를 돕고 그의 교화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

 

(3)경험을 추구하는 예배 

예배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예배자의 감정적 경험, 혹은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배관으로 오순절 교회 등에서 발전. 이러한 예배신학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이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성령의 체험으로 연결되었으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장 왕성하게 발전하여온 예배관임.

 

(4)만족을 추구하는 예배 

소비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설득적이고 가장 왕성한 예배 유형이다. 예배에서의 회중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도자예배나 열린 예배)

장로교는 철저하게 예배의 이해적 차원을 강조하는 예배이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뱅은 예배자들이 예배를 통하여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찬양과 기도를 포함한 모든 예배 순서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 장로교 예배는 다른 교단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예배자들의 지적인 발달단계에 따라 나누어 예배를 드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게됨. 간세대간의 신앙 전수를 어렵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발달단계에 따른 다양한 종교적 필요성을 바탕으로 예배를 드리게 됨으로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3) 장로교 예배의 장단점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해를 추구하는 장로교회의 예배는 지금까지 설교를 중심의 예배로 이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설교가 예배순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이고 찬양과 기도 등의 모든 다른 순서들은 설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장로교 예배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증언하도록 구조가 잡혀 있다. 우선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됨으로 예배가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도 축도로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민수기 6:24~26)을 선포함으로 새로운 삶으로의 예배로 파송된다. 그리고 예배 순서 중에서도 말씀의 낭독, 설교가 이어진다. 이러한 다양한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장로교 예배의 독특한 구조이다.


3. 예배를 통한 교육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행위나 의식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화해 사건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 기억하고 회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특별히 장로교 예배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을 교인들에게 이해시키고 알리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기독교 예배가 어떠한 신앙적 내용을 예배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예배의 시간(교회력)

사도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날을 안식일과 구별하여 지켜왔다.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초대교회는 주님의 날이 휴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당시에 유대교가 지키고 있었던 가장 강력한 예배일인 안식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날인 주일을 예배일로 바꾸어 드렸다. 그러므로 주일은 언제나 작은 부활절로서 기독교인은 주일에 모일 때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며 감사하는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교회는 또한 일 년을 단위로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구속사적 관점의 년 주기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 그리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 등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전 과정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교육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림절 (advent)

교회력이 시작되는 절기인 대림절은 11월 30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되어 성탄절까지 4주간 계속된다. 대림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림절의 빛깔은 보라색이고 대림절 첫 주부터 준비된 네 개의 촛대에 한 주씩 불을 밝히는 관습이 있다


성탄절 (christmas)

부활절보다 훨씬 늦게 형성된 성탄절은 원래 주현절에 포함된 절기였는데, 4세기 전반(336년경) 로마에서부터 나뉘어져 그 때부터 12월 25일에 지키게 되었다.

12월 25일은 본래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로 지키던 날이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태양으로 여겼기 때문에 주님의 탄생이 늦가을이나 겨울이었다는 사적 증거와 아울러 주님의 탄생을 통해 온 세상에 빛이 비추었다는 의미에서 이날을 지키게 된 것이다. 1월 6일 주현절 전까지 계속되는 성탄절의 예전 빛깔은 주님의 부활 때와 마찬가지로 승리와 청결을 나타내는 흰색을 사용한다.


주현절 (epiphany)

교회력에서 부활절 다음으로 오래된 절기인 주현절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현현하신 성육신의 사건을 축하하며 그분께서 이 땅에서 시작하신 첫 번째 사역들을 기억하는 절기이다. 주현절은 축일인 1월 6일부터 대체로 6주일 동안 지켜진다. 역사적으로 동방 교회는 주현절을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해서 축하하였고 서방 교회는 동방박사의 방문과 관련지었다. 주현절기의 예전 빛깔은 주현절(1월 6일), 주님의 세례주일 (1월 6일 후 첫주일)과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전 주일인 주님의 산상변화주일에 흰색이 사용되며 그 밖의 주일에는 성장의 색깔인 녹색이 사용된다.


부활절 (easter)

부활절은 기독교 축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다른 축일의 근원이 된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주로 유월절을 뜻하는 히브리말 “파스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 이는 부활절이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된 부활절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의 첫 주일, 또는 만월인 주일에 지켜진다. 부활절은 부활주일부터 오순절까지 50일간의 절기로 되어 있으며, 부활주일은 우리 주님이 죽음을 정복하시고 살아나신 초자연적인 승리의 주인 되심을 축하하는 영광의 주일이다. 이 절기에는 세례를 베푸는 일을 비롯하여 교회가 부활의 기쁨을 만긱하는 기간으로 보내게 된다. 부활절의 빛깔은 축하, 승리, 기쁨을 표시하는 흰색이다.


오순절 (pentecost)

오순절은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오순절 날인 성령강림주일은 교회가 생긴 날로 생각할 정도로 의미 있는 날이다. 이날에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부활, 그리고 그의 승천을 거쳐서 성령님께서 보혜사로 오시는 것으로 예수님의 약속이 완성 된 것을 기억하고 축하하게 된다. 오순절의 예전 빛깔은 성령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2) 예배 장소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유대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배의 장소에 있어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더 이상 성전의 예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였고, 주님을 모신 자들이 성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받았기에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신앙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가정집이나 어디서든지 모여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점차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특별한 교회의 신앙을 선포하고 유지하는데 적절한 곳을 이용하게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장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고, 성례전을 거행하는데 필요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배 중심부에 성찬대를 두고 그 좌우에 설교대와 성경 낭독대를 두는 형태의 오늘날의 개신교 예배당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배의 장소와 기구의 배치는 예배를 적절히 수행하며, 신앙의 내용을 전달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교회는 예배의 장소와 기구의 배치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3) 말씀의 선포

말씀의 선포는 주일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 중 하나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봉독되고 선포되면, 거기에는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말씀으로 현존하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설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들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부흥사들의 영향을 받아 설교할 성경의 본문만을 읽는 경향이 많이 있지만 오늘날의 세계 많은 개혁교회들은 성경을 낭독하는 순서를 예배 안에 포함하고 있다.

 

봉독된 성경 본문 중 하나, 혹은 전부를 토대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이어진다. 장로교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 온 이 설교는 언제나 설교자들의 겸손함과 성령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설교는 전통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인 교역자들이 하여 왔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선포하기 위해서는 성서원어 및 신학, 성서지리 등 폭넓은 지식과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4) 성찬성례전

교회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교육하고 선포하는 또 다른 도구는 성찬성례전이다. 성찬성례전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에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것에서 유래하지만 단순히 성 목요일의 한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찬성례전은 성경전체를 통하여 유유히 흘러내려오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식탁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즉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식탁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다. (광야의 만나와 메추라기, 누룩 없는 빵, 오천명을 먹이심, 사천명을 먹이심, 죄인들과의 식탁,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과의 식사,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식사)

 

5) 세례성례전

세례성례전은 물과 관련이 있다. 과도한 양의 물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물의 부족도 그러하다. 성서는 여러 곳에서 물의 과도한 공급과 혹은 부족(기근 등)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심판과 죽음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물은 동시에 인간에세 생명을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물은 생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독교 세례성례전은 이러한 물이 가진 이중적 의미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우리는 세례성례전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전수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예배의 교육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해를 추구하는 장로교회의 예배는 어느 다른 전통의 예배보다 훨씬 더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의 순서와 장소, 그리고 예배의 행위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신앙의 전수와 그들이 믿고 있는 소망과 믿음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예배가 어떠한 신학을 바탕으로 어떠한 신념들을 말하고 증거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옮겨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