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1. 기독교의 종교적 권위는 필요합니다.


권위(power, authority)를 연구함에 있어서 그 목적은 사람을 다스리는 길의 법과 잘 잘못을 결정하는 표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길이에 대한 잘 잘못을 결정하기 위하여 최종적 권위로 자(ruler, measure)를 인정합니다. 이 물건이 얼마나 긴가? 에 대하여 김씨는 1.5인치라고 할 수 있고, 박씨는 2인치라고 할 수 있으며, 이씨는 2.25인치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대 자로 재어보니, 그 자가 2인치를 가리켰다면 김씨와 이씨는 모두 자신의 주장을 포기해야 만 합니다. 만일 이 막대 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결단코 그 크기에 대한 결정은 판가름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세 사람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막대자의 눈금이 그 길이를 결정하는 권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람들은 가끔 전혀 신앙적 양심이나 성서(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표준을 하나님의 것 인양 가르치고, 배우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표준을 만드는데, 그래서 기독교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만든 권위를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마15:9).

오늘날 많은 교파들이 제각기 기독교 신앙으로 자칭하고 모순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잘 잘못을 결정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종교적 권위가 분명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 최종적 종교의 권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부르짖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에 있어서 절대 권위자는 누구인가? 과연 누가 그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독교의 최종적 종교의 권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신 유일한 분이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 - 기독교 신앙의 권위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예수님은 기독교의 종교적 지침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셔서 예수의 권위를 증명하셨으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17:5).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을 하실 때,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경을 받았던 것입니다(요3:34, 요6:68). 때문에 자동적으로 기독교의 종교적 권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한 가지의 질문이 더 남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의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후 겨우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물다가 승천하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해 받으시기 전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16:13) 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나의 중인이 될 것이다"(행1:8). "가서....가르치라"(마28: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나타내셨으니 우리가 이것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도들은 입으로 가르치고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글로 써서도 가르쳤습니다.
이 신성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사도들은 그 기록을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기록하기를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요21:24)했습니다.

3. 사도들이 예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예수께서 모든 권위를 가지셨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모든 족속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족속들은 예수님의 사도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명령을 듣게된 것입니다.
또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령의 도움으로 정확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사도들이 실언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사도들을 인도하시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들이 주장한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살전2:13)는 사도들의 주장을 잊지 말아야할것입니다.

4. 사도들은 예수님의 뜻을 순종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7) 라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선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뜻을 사도들에게 나타내셨고, 사도들은 그분에게 순종하여 그의 계명을 말했고 또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그가 기록한 것에 대하여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14:37)고 엄명하였습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만을 기록하여 주님께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고전 4:2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라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써 바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을 고린도 교회의 분당에 대하여 제언하면서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우라" (고전4:6)고 충고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계속해서 머물 것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독교의 최종적 권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천사들까지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갈1:6-8).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기독교의 최종적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고전4:6).

5. 사도들은 그들의 교훈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살후2:15)
다행스럽게도 주님의 사도들이나 다른 영감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말로 가르친것 뿐만 아니라 글로도 기록하였습니다;
“이러므로 형제(兄弟)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 (便紙)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을 지키라 / Therefore, brethren, stand fast and hold the traditions which you were taught, whether by word or our epistle.” (살후 / II Thess 2:15)
그러므로 그 기록된 말씀들이 곧 그리스도의 권위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의 삶이 곧 지나 가버릴 것을 알고, 후세들에게도 똑 같은 말씀을 갖게 하기 위하여 그 말씀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의 경우에는 자기가 죽은 후에도 교회가 그 교훈을 영구적으로 갖게 하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벧후1:12-15).
누가는 자신이 받은 교육을 똑같이 다른 사람들도 알게 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눅1:3-4).


"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도 요한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영구히 교회가 보존할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6. 기록 된 사도들의 교훈들이 곧 신약성서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함이라(고전4:6)."


베드로의 가르침과 같이(벧후1:12-15), 사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따르는 표적으로 그 말씀들을 확증하셨으며(막16:20),


그들은 그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므로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기록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계시에 의하여 말하였고 또 자신의 기록으로 다른 사람들이 바울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인정할 수 있게 하셨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고 믿어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다른 세대에는 더 이상의 직접적인 말씀의 계시가 없음을 선언하였던 것입니다(엡3:1-7).
누가와 요한도 같은 원칙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눅1:1-4, 요20:30-31).


1세기의 교계에서는 사도 바울의 교훈은 곧 주님의 명령의 권위를 갖는다고 강력히 주장하였고 심지어는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무식한 사람이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고전14:37-38).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는데, 그것은 실로 그렇다고 사도 바울은 주장하였습니다(살전2:13).


또한 바울은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3:14)"고 경고하므로 어떤 기독교인들이 사도들의 기록 곧 신약 성서를 주님의 말씀의 최종적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순종치 아니하면 그 사람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신약성서(사도들의 기록)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대필이요, 인간의 마음대로 가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계22:18-19).

7. 신약 성서는 그리스도의 모든 뜻을 기록한 책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다음 세 가지의 이유가 성서는 그리스도의 모든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약속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둘째 ; 아버지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행2:1-4).
이것은 예루살렘 도시에서 오순절 날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뜻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행8:4, 20:7).

셋째 ; 사도들과 다른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든 뜻을 기록한 것이 신약성서입니다. 바울은 성서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딤후3:16-17).
유다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설명하였습니다(유:3).


베드로는 예수께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후1:3). 요한은 자기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한 목적은 우리로 믿음을 갖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20:30-31).

1) 성서는 권위의 완성입니다;
성서는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해 줍니다. 우리는 성서를 연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모든 일들을 알 수가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선한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을(엡2:10) 알아 낼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마5:16), 그의 나라를 높이고(잠13:34), 이생과 다가올 약속의 생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딤전4:8). 이같은 영광스런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성서에 있는 일들을 실천(연습)하는 노력에 전심 전력을 다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가 모든 선한 일을 알려주고 있는 한 성서 이외의 다른 근거로 어떤 다른 선한 일들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각종 신조와 전통 그리고 다른 이름의 교회들과 사람들의 엉터리 계시의 황폐한 바람이여!
비 없는 마른 구름이여! 영감의 펜을 들어 사도 바울은 성서에 의한 권위가 아닌 것들을 단번에 쓸어 버렸으니 곧 미사의 제사, 마리아 숭배 사상, 기계적 기악의 예배 음악, 감독의 성직 정치의 기능, 신부, 추기경, 교황, 묵주기도, 향을 피우는 것, 성수, 물 뿌림, 십자가상의 숭배 등등.... 수 만가지도 더 됩니다.
성서가 이런 것들에 권위를 주지 아니한 이상, 이런 것들은 성서가 규정한 "모든 선한 일"에 해당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성서적인 모든 선한 일을 도모하려면, 오직 성서가 인간의 유일한 종교적 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서는 모든 권위로 충분합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사람으로 "온전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바울은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완전함은 인간에 대한 종교적 달성을 의미합니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려"함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목적이었습니다 (골1:8). 성서가 인간을 온전케 만드는 한, 오직 성서만이 종교적으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특별한 것의 최고의 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완전케 된다고 설명 해 줍니다(골4:12).
확실히 사람을 완전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 이외는 없습니다.
사람이 성서의 지식 안에서 완전케 되는 것이라면  그 성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내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전통, 신조(신경), 현대 계시, 교황 무오 설 등을 종교적 권위로 받아들일 수 없고, 필요하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없는 어떤 것들을 더 가르치고 더 배울 필요도 없고, 성서에 있는 어떤 것을 빼놓고 가르쳐서도 안되는 것입니다(계22:18-19).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실히 믿는다면, 어떤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이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인지? 아니면 성서에 전혀 근거가 없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들인지? 를 점검 해 봄으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기뻐하시겠는가? 의 여부를 알아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명칭, 교리, 예배 행위, 특별한 종교행사 등은 하나님의 뜻의 일부가 아닌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뜻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행하고, 성서에 없는 것들은 배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8. 모든 사람이 성서를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성서는 모두가 읽고 순종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성서는 모든 사람이 읽고 순종하게 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기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고후1:1)에게 편지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모든 교회가 읽을 것을 교훈 하였습니다 -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에게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살전5:27).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 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4:16).
그리고 오직 절대적인 순종이 성서를 읽거나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3:14).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들의 기록이므로 아무나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들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단순한 추측일 뿐 성서적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입니다.
성서는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읽으라고 기록된 책입니다.
읽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을 왜 읽으라, 혹은 읽어 들리라고 하였겠습니까? 읽고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순종을 요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고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서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기록된 책은 말로만 하는 것보다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눅1:3-4).


이 말씀은 말로 가르친 것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하여 글로 기록하여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말로 교회의 배교에 대하여 가르친 것을 확실히 하려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살후2:2-5).


살후2:5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라고 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바울은 베뢰아 사람들에게 말로 설교할 때에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말이 진리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으로 매일 시험하였습니다(행17:11).


열렬한 웅변가가 즐거운 담화나 심금을 울리는 말솜씨로 청중을 사로잡을 수는 있겠으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더욱 불변의 신앙을 소유하게 합니다.


가끔 목동이 신학 박사 보다 더 나은 성경 연구가 될 수 있으니 그것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영원 불변의 진리와 영생을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9. 성서 이외의 권위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며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119:101-102,104).


성서 이외의 다른 어떤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내증 즉 꿈을 꾸었다든지, 무슨 음성을 들은 것으로 가끔 성서의 권위를 흐리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으로 성서의 권위를 흐리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원하실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10:23)
나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거나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는 -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권위를 부여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통(사람의 계명)으로 성서의 권위를 흐리게 하기도 합니다.
이 전통들은 성서에 없는 어떤 교훈들을 성서의 권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올려놓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을 저주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기 때문이었습니다(마15:6-9)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히4:12)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새로운 계시를 원하여,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사도들이나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정죄 하였습니다(갈1:6-10). 성서가 인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할 수 있는 모든 필요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계시나 다른 어떤 새로운 증거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엡3:3-6, 고전15:1-4)

10. 성서와 감정.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오늘날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설교가들은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다고 들 말합니다.
이것은 양심이나 감정을 종교적 신앙으로 정당화시키려는 행위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선한 양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딤전1:5,19).
그러나 그 선한 양심이 기독교 신앙의 지침은 아닙니다.
양심이란?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선( good) 혹은 악(evil)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정신적 재능입니다. 이 양심은 지식(아는 것)을 근거로 하는데, 인간의 지식에 흠이 있는 한 양심에 따라서는 선으로 보이는 것이 악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잠14:12, 16:25).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늘 선한 양심으로 살았습니다(행23:1).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되기 전에는 그의 선한 양심으로 행했던 일들이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행26:9). 그것이 그 당시 바울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는 옳게 생각되었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 알았었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잘못된 길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딤전1:12-17).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뜻)으로 인도되지 않는 양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 것을 믿고"(살후2:11), 거짓으로 하나님을 섬기(롬10:2-4)도록 인도합니다.


사람의 양심을 기독교의 최종적 권위로 따르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권위를 강탈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종교의 지침으로 높이기도합니다(살후2:4).


이런 행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신뢰하지 말고(잠28:26), 자신으로 자신의 길을 인도하지 말라(렘10:23)는 선지자의 경고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진리를 세우는 지침이 될 수가 없고 다만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진리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11. 성서와 교회의 전통.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 도다"(막7:9).
인간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시를 파괴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고,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교회의 분열과 혼란의 원인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순종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출20:12).


그러나 고르반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 구약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예물에 대하여 사용되었음-레1:2, 22:27, 23:14, 민7:25, 겔20:28, 40:43-이같이 성별된 물건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 재산을 '고르반'으로 선언하기도 하였다. 즉 자기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르반'의 시기는 따로 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평생 동안 쓰다가 죽고 나서 바쳐도 되었었다.] 을 선포하기만 하면 그 의무를 면할 수 있었으니, 결국 사람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에 무엇을 더하는 것만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같은 많은 일들"을 행하였습니다(막7: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2000년 전에 사도들로 세우신 교회에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유전(전통)을 첨가하였고, 지금도 첨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전통을 성서보다 더 신뢰하였습니다. 지금도 어떤 전통들은 성서보다 더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저주하셨습니다(마7:8). 하여 일찌기 선지자 이사야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사29:13, 막7:6-7)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성서가 우리를 모든 선한 일들을 하게 하므로(딤후3:16-17), 어떤 선한 일을 위하여 사람의 전통이나 인간의 유전 혹은 교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찌기 졍고하였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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