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종교인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글 / 안점식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선교학)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종교다원 사회다. 다원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다양성을 더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주의’의 사고방식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다. 사람들은 마치 다양한 치약 중에 자기가 선호하는 치약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종교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원 사회에서 기독교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설득하고 전도하는 것은 예전보다 확실히 더 어려워졌다.

타 종교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큰 확신이 필요하다. 신학적 차원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신학적 배타성과 사회적 배타성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타 종교인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동료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공식 종교와 민간 종교 차원에 따른 전략적 차이

그렇다면 우리는 타 종교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 우선 타 종교인들이 모두 그들 종교의 정통 교리나 정통 실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종교들은 공식 종교(Formal Religion) 차원과 민간 종교(Fork Religion)의 차원을 갖고 있다.

공식 종교는 어떤 종교에서 표방하는 공식적인 신념(belief)과 실천(practice)으로 경전이나 교리, 종교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것들이다. 반면에 민간 종교는 어떤 종교의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개인적이고 비공식적인 신념과 실천으로 대개가 현세 기복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대다수의 타 종교인들은 민간 종교 차원의 신앙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명목 신자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복음 자체를 분명히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타 종교인도 잘 모르고 전도자도 잘 모르는 타 종교 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민간 신앙 차원에 있는 대다수의 타 종교인들에게 교리 논쟁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그들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더욱 증진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도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들의 종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공식 종교의 차원에서 타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타 종교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변증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믿는 복음에 대한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벧전 3:15).

초대 교회에서도 전도자와 변증가가 있었다. 복음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제기된 질문에 대해서 적절한 기독교적 변증을 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도는 성령으로 하고 변증은 논리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도든 변증이든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해져야 한다.

종교들에는 일반 계시에 대한 반응, 인간의 죄성과 반역성, 사탄의 역사와 영향력이라는 세 가지 면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일반 계시에 대한 반응으로서 타 종교 안에도 부분적으로 진리가 있고 타 종교 경전 안에도 좋은 말들이 있다. 타 종교를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가 아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옳으면 옳은 만큼 옳다고 하고, 그르면 그릇된 만큼 그르다고 하신다. 우리는 타 종교에 대해서 인정해줄 수 있는 만큼 인정해줘야 한다. 복음은 타 종교를 깎아내려서 복음 되는 것이 아니다. 타 종교를 최대한 인정해줘도 타 종교가 갖지 못한 게 복음이기 때문이다.

변증에 임하는 태도

타 종교인을 상대로 변증을 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온유와 존중함이다(벧전 3:15). 타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단편적인 지식으로 무조건 타 종교를 매도하거나 단순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목회자들은 설교 강단에서 타 종교에 대한 무분별한 언급을 자제해야 한다. 청중 중에, 그리고 인터넷 웹사이트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타 종교인이거나 타 종교로부터 개종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타 종교에 대한 목회자의 부정확하고 천박한 지식과 무례한 태도는 오히려 복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할 수 있다.

타 종교인들은 우리의 논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더 많이 보고 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무례함으로 나타나서는 안 되며, 전도의 담대함과 무례함을 혼돈해서도 안 된다. 타 종교의 창시자와 타 종교의 교리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전도를 논쟁으로 만들어버리고 감정싸움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영혼을 얻는 것이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대조적 공동체(contrast community)로서의 교회, 삶에 묻어나는 영성, 듣는 자의 상황에 관련된 방식으로 제시되는 복음,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타 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적 공동체로서 거룩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공동체 전도이며, 개인 전도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인프라와 같은 것이다.

종교 다원 사회에서의 복음 전도는 어떤 면에서 영성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영성이 타 종교인의 영성보다 탁월하지 않다면 타 종교인들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가족 중에 타 종교인이 있다면 그것은 더군다나 삶의 문제, 영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차원의 전도가 선행될 때 말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더욱 효력을 갖게 될 것이다.

 ‘목회와 신학’ 2012년 11월호에서

 

'기독교 이야기 > 선교.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 전도의 기본 원리  (0) 2014.03.21
전도시 반대 질문 100가지  (0) 2014.02.24
예수를 왜 믿어야하는가?  (0) 2014.02.04
베드로와 바울의 선교  (0) 2014.02.02
왜 그리스도敎 인가?  (0) 2013.12.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