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예화 모음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한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하다는 물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 하면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 물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늙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은 결국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온 몸이 언제나 그 물에 적셔 있으며 날마다 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인간이 날마다 호흡을 하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모를 때가 많음을 깨우치는 우화입니다.



어디서 삶의 참 평안을 찾기를 원 하십니까?
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에다 작가로 성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허지만 그에게는 삶의 참 평안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너무나 평화스러워 보이는 한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다가가 당신의 삶의 그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지요.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기쁘답니다. 그때부터 톨스토이는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에게 하늘의 기픔과 평강을 주십니다. 어려움 많고 사고, 질병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힘입는 사람들이 평강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복이 임합니다. 말씀의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복이 임합니다. - 아멘 -



톨스토이가 쓴 단편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이 있다. 처자식을 거느린 양화공이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아내의 새 외투를 만들 양가죽을 사기 위하여 시장에 갔다. 가는 길에 외상값도 받을 양으로 몇 곳을 들렸으나 돈도 받지 못하고 이미 깔려있는 외상 때문에 가죽도 구하지 못한채 술 한잔에 언 몸을 녹이며 집으로 몸을 돌이켰다.

주인공 세몬이 집으로 가는 길에 교회 벽에 기대어 앉은 알몸의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자기의 누더기를 벗어 젊은이에게 입힌 채 집으로 돌아 왔다. 아내는 사오라는 외투는 없이 낯모르는 손님을 데리고 온 남편을 질타하다가 남편 세몬이 데려온 이 젊은이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세몬의 온갖 질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이 젊은이가 싱끗 웃었다. 얼마 후 건장한 사람이 와서 가죽 한더미를 내 놓더니 멋진 장화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젊은이 미하일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장화대신 슬리퍼를 만들었다. 세몬은 몹시 노했으나 잠시 후 건장한 사람과 함께 왔던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이제 장화는 필요 없게 되었소 대신 죽은 자를 위한 슬리퍼를 만들어 주시오라고 부탁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세몬은 미하일에게 조용하게 물었다.
“자네는 별로 말이 없었다. 단지 몇 번 입가에 웃음을 보인 일이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미하일은 세몬에게 대답을 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명을 어겨 벌을 받은 천사입니다. 나를 인간세계에 보내신 하나님이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오라고 분부하셨지요. 저는 그 대답을 알게 되어 너무 기뻐서 웃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나를 불쌍히 여겨 빵을 줄 때 나는 인간의 마음 속에 사랑과 자비가 있음을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건장한 사람이 와서 1년 신어도 끄떡없는 장화를 만들라 했지만 죽음의 천사가 그의 뒤에 있어서 자신이 오늘 밤 안에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무럭 무럭 잘 자라는 것을 통해서 미하일은 인간이 사는 것은 '사랑'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세몬에게 고백하였다.
사랑은 인간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자비는 인간에게 평안을 준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작품 [부활]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카츄사라는 한 여성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츄사는 귀족 네흘류도프의 집에 하녀로 있으면서, 네흘류도프의 의하여 더럽혀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유형 수가되어 시베리아로 갔습니다. 눈으로 덮인 시베리아 들판에서 부활절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찾아온 네흘류도프와 함께 복음서가 말해 주는 진리의 부활의 길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 작품의 내용입니다.
"주는 실로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죄의 얽매였던 카츄사의 영혼이 부활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만족이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참회록에서 어리석은 인간에 대하여 이런 동양의 우화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광야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맹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맹수를 피하여 도망치던 그 나그네는 살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한 우물이 있어서 우물 구덩이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가 살려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우물 밑바닥을 보았을 때 큰 용이 나그네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그네는 질겁을 했습니다. 위를 쳐다보니 맹수가 자기를 집어삼킬 듯 노리고 있고 밑은 큰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나그네가 '이제 나는 죽었다.' 하고 체념하려는 순간 눈을 들어 옆을 보니까 마침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가지가 우물 있는 데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그네는 나무 가지를 든든히 붙들었습니다. 그는 나무 가지를 의지하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힘은 자꾸만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쥐가 나무 밑둥을 갉아먹는 소리였는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 가지가 끊어지면 용의 밥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쥐들이 나무 밑둥을 갉아먹는 날 나는 떨어져 죽는다.' 이런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눈을 들고 나뭇잎을 봤을 때 벌이 꿀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도 잊은채 꿀을 혀로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계속해서 나무 밑둥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나그네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단 꿀만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우화를 인용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어리석은 것, 나도 어리석었지 이 세상 향락에 취하고, 이 세상 욕심에 취하고, 죽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노라."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어느 날 한가하게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모름지기 문둥병 환자 같은 그런 분이 말입니다 마주 서서 적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뭘 좀 도와 달라고……. 그 때에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는데 공교롭게도 한 푼의 돈도 없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형제여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있으면 꼭 도와줄 마음이 있는데 사실로 제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미안하다고.
그 거지는 만족한 얼굴을 가지고 "아니올시다. 당신이 나에게 돈을 준 건 없지만은 당신이 나를 지금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습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저는 큰 것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서 갑니다.
이 사건은 톨스토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물질을 주고 물질을 받아서 그것이 선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깊은 충격을 받고 참 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고 또 마음을 주는 가운데서 그가 얻은 큰 감격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사랑은 그와 함께 하는 것이다 라고 깊이 깨닫고 억압받는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경건한 생활을 하게 되고 경건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말년에 불후의 명작 "부활"이라고 하는 소설을 쓰게 됩니다.


부활이라는 작품을 쓴 「톨스토이」는 ‘그대 영혼의 빈자리에’라는 작품에서 “사람이 외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극히 거칠고 확실하지 못한 오관에 의하는 인식이 있다. 그 인식의 방법에 의해 우리 내부에 형성되는 것은 우리들의 앎이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로 다른 감각을 주는 혼돈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자신을 알고 자기 이외의 것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그것을 아는 것, 즉 자기 이외의 삶들, 동물, 식물, 그리고 돌에 이르기까지 조차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인식의 방법에 의하면 온 세계의 내부로부터 알게 되고, 우리들의 앎에 의하여 세계는 아름답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파괴된 것의 재건이요, 모든 존재 결합의 부활이다. 즉 자기로부터 나와서 다른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신과 화합하고 만물과 화합될 수 있는 자이다.



1828년 러시아에 아주 못생긴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작은 회색 눈, 큰 팔과 다리를 보면서 몹시 비관하였습니다. 어느 부분을 보아도 남들과 비슷한 부분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너무 못 생겨서 도저히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자라면서 자신의 약점을 다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외모에 있지 않고 내면의 풍요로움에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믿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생활을 하며 인생을 아름답게 지냈습니다. 이 승화된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부활"이고 그가 바로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소서.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시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소년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장성하면서 문학에 대한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외모 컴플렉스'를 단숨에 해결하는 해답을 얻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깨끗한 인격이 모여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이 소년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다. 그를 `못생긴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그의 사상과 행복론을 요약하여 쓴 단편 소설 “세 가지의 의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현인의 대답은 첫째는 현재요, 둘째는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요, 셋째는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중한 ‘현재’를,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삶! 그것이 나의 삶, 그것이 마카리오스를 노래할 수 있는 성도의 삶입니다.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한번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물고기들은 그토록 중요하다는 물이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 하면서 늙은 물고기를 찾아가 물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늙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은 결국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온 몸이 언제나 그 물에 적셔 있으며 날마다 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인간이 날마다 호흡을 하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모를 때가 많음을 깨우치는 우화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레오 N. 톨스토이(1828~1910)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한다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이기심과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모든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 뉴욕 과학 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크레시 모리슨의 간증기 속엔 알래스카의 연어 한 마리가 등장한다.
바다에서 수년을 보낸 성숙한 연어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태어난 강물로 되돌아가는 귀향 여행이자, 산란 여행이며, 죽음의 여행인, 기적의 여행을 시작한다.
사실상 그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물의 지류를 도무지 기억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어들은 정확히 그 지류를 찾아 강물을 역류해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짓궂은 인간이 그 성숙한 연어를 다른 지류로 옮겨 놓는다 해도 그 연어는 즉시 자신이 길을 벗어났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리고는 강물 밑으로 부단히 헤엄쳐 다시금 본래의 지류로 되돌아온다.
비늘과 부레가 난폭한 물결의 압력을 받는 이 처절한 역류 여행을 통해 연어는 마침내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자신의 탄생지,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최후의 알을 낳고 그리고 숨을 거둔다.

이 연어의 여행이야말로 완전한 귀향, 완전한 안식, 숙명적 귀향, 숙명적 안식인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곧 신의 뜻과 방랑하는 인간 속의 역사이다. 18세 때 동전을 버리듯 주님을 버린 톨스토이는 주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35년의 세월을 탕진해야만 했다.
50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연어처럼 주님을 찾아 귀한 참회 여행을 시작한다.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세속적 명예를 가로질러 그는 고독과 참회의 비늘을 단 채 주님을 향해 역류해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ꡐ바보 이반ꡑ이 있다.이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생활의 거울과도 같다.

옛날 부유한 농부가 살았는데 그에겐 아들 셋이 있었다.그들의 이름은 세미욘, 타라스 그리고 이반이었다.그 외에 마리니야라는 청각장애인 딸이 하나 있었다.세미욘은 군인으로 성공을 했고 타라스도 돈을 벌어 출세를 했는데 이반은 장애인인 누이와 함께 집에 남아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후 세미욘은 귀족의 딸과 결혼을 했고 타라스 역시 그 부유함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그러나 이반은 형들처럼 돈도 명예도 없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순박하게 살았다.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이반을 바보라고 불렀다.그래서 톨스토이는 그 소설의 제목을 ꡐ바보 이반ꡑ이라 붙인 것이다.

이 소설은 오늘의 세태를 그대로 말해준다.모두가 다 지배하고 주장하려고 한다.또 남을 짓밟고 돈에만 눈이 어둡다.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ꡐ이반식ꡑ의 삶.비록 바보 같지만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그리워진다.



** 불행한 가정 생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와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불행한 가정 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허물을 깨닫고 자기가 남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그 자식들 앞에서 자인하고 자기의 행한 일들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통하게 고백하였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난폭하고 무례한 자기 부인에게 어쩔 수가 없어서 가정을 점점 멀리하고 여관에서 외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 톨스토이와 거지

우리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잘 안다. 톨스토이는 어느 날 정거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그 거지는 톨스토이에게 무엇 얻기를 바라서 구걸하나 때마침 톨스토이에겐 돈 한 푼 없어서 주지 못하게 되자 너무 민망하여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거지는 돈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랑의 힘이다.

** 자의식

육체에 대한 자의식은, 발열이나 신경과민, 피로, 권태감 등을 느끼지 않을 때에 느끼는 것처럼,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시대 전체의 정신적인 건강상태도 지나치게 관능적이거나 그 밖에 흥분성이 있는 것, 기이한 것을 혐오할 때에 찾아볼 수 있다.
다눈치오, 프로벨, 메텔링, 그리고 톨스토이도, 아니 그 밖에 「친화력」이나 「빌헬름 마이너터」를 쓴 괴에테까지도 장시간 접촉하고 있으면 온전히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유익하다고 볼 수는 없다.(법률가, 의사, 칼 힐티)



** 게으름이란 죄악

6세기 말에 그레고리 교황은 사람이 범하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교만,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탐욕 그리고 게으름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부지런함을 가장 좋은 덕목으로 꼽았으며, 독일의 문호 괴테는 부지런함만이 인생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게으름과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리 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했으며, 영국의 종교가 테일러는 “게으른 자는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게으른 사람을 꾸짖었다.


** 최후의 날의 경고

러시아 최후의 날이 어떠한지 아는가?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보면 문학이나 언어나 의식이나 러시아의 토기나 건물이나 교육 가운데 기독교인의 것이 아닌 게 없었다. 그런데 코카사스의 기병대가 모스크바를 향해서 쳐들어 오고 있을 때에 사제들은 모여서, 축도를 할 때 손가락을 어떻게 펼 것이며, 성직자의 가운의 색깔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싸움을 했다.
어느 대장이 인솔을 하여 후퇴를 하게 되었다. 금은 보화를 마차에다 싣고 처녀들과 사제들과 부녀들과 귀족들과 부자들과 예술가 등 125만 명이 후퇴를 했다. 날씨는 영하 3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였다. 먹을 것이 없고 춥고 병들어 거의 다 죽었다. 어느 부인이 만삭이 되어 아기를 낳게 되었다. 한참 있다가 소리가 없어 보니까 아기가 반쯤 나오다가 산모도 죽고 아기도 죽었다. 어느 사제 한사람이 ‘오 하나님이여,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라고 하면서 죽어갔다고 한다. 이 비참한 러시아 최후의 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경고를 했는가? 우리 한국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다. 우리는 6.25를 잘 알고 있다. 묶여 끌려가다가 죽고 애절 단장(哀絶斷腸)의 눈물을 흘렸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잊어서는 안된다.



** 아버지의 마음

「그리스도와 반(反)그리스도」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의해 기독교적인 신비주의의 입장에서 현대 정신의 위상에 의문을 던진 러시아의 작가 메레제고프스키(1865-1941)가 아직 소년 시절에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유명한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81) 앞에서 자작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끝까지 참고 들은 그는 가엾은 듯이 소년을 향해 말했다. “미숙하구나.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많이 쓰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단다”라고 말했다. 소년의 옆에서 함께 이 말을 들은 메레제고프스키의 아버지는 기가 죽은 아들에게 “얘야. 말도 안된다. 좋은 작품을 쓰지 않아도 좋으니 고생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교수, 김성호)


** 톨스토이의 규칙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날마다의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손수 만들어 위반했을 경우에는 그 날의 일기에 그것을 정직하게 기입하여 반성했다. 그 규칙 속에는 점을 쳐서는 안된다거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는 것 등이 있었는데 그가 그 규칙 중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웠던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 규칙 위반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브로비스키 케이트(모스크바에 있는)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문 앞에 한 늙고 지친 거지가 머리를 누더기 조각으로 감싼 채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돈을 좀 주려고 지갑을 꺼냈다. 그러나 그 순간 명주로 된 제복을 입은 깔끔하고 붉으레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크렘린쪽으로부터 뛰어 내려왔다. 거지는 그를 보자 놀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절룩거리며 알렉산더 공원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청년은 그를 쫓았으나 끝내 잡지 못하고 멈춰 서서 문 앞에 앉는 것은 규칙 위반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기다렸고 그가 오자 글을 읽을 줄 아느냐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럼 성경을 읽어 보셨습니까?” “예.” “그렇다면 이와 같은 내용을 읽어 보셨습니까? ‘그리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 …. ” 나는 이 말을 인용하였다. 그는 이 말을 알고 있었고, 나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당황해하는 것을 알았다.
길가던 두 행인이 멈춰 서서 나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확실히 그 젊은이는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했을 때보다도 오히려 내 말을 듣는 것을 어렵게 느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하기 시작했으며 분명 어떤 변명을 찾고 있었다. 젊은이의 영리한 검은 눈동자에서 빛이 나고, 그는 돌아갈 듯이 나에게서 돌아서며 물었다. “그럼, 당신은 군법을 읽어 보셨습니까?” 나는 읽어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렇다면 당신은 입을 다무시오”라고 대답하고는 승리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모피 코트를 두르고 자랑스럽게 성큼성큼 걸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내가 여지껏 만나본 사람 중에, 냉철한 논리로써 우리 앞에 놓인, 그리고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부르는 모든 사람들 앞에 놓인 영원한 의문을 해결한 유일한 사람이었다.(작가, 톨스토이)


** 어리석은 자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헙수룩한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의 원고를 책으로 내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출판사 주인은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런 원고는 얼마든지 굴러 다니고 있고 비록 그 사람이 출판 비용을 다 부담한다 해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 헙수룩한 사람은 원고 뭉치를 품에 넣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대중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썼는데요. "

이상스러운 말에 놀란 출판사 주인이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요?"라고 묻자 그는 "내 이름은 톨스토이 입니다. "라고 했다. 이 말에 기절할 듯이 의자에서 뛰어 일어 난 주인은 급히 사과를 하며 원고를 부탁했으나 톨스토이는 그냥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볼품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 세 가지 의문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에 “세 가지 의문“이라는 단편이 있다.

줄거리는 한 임금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의문의 답을 구하는 것이다.

첫째 의문은 모든 일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둘째 의문은 어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일까? 세째 의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왕은 국사를 행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일로 결정을 내리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신하들이 별의별 해답을 제시하였으나 임금의 마음을 흡족케 할 대답은 없었다. 급기야 임금은 성인으로 잘 알려진 산골의 은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 대답없이 밭만 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한 청년이 피투성이의 몸으로 달려 나왔다. 임금은 자기의 옷을 찢어서 청년의 상처를 싸매주고 정성껏 간호를 해주었다. 알고보니 그 청년은 임금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젊은 신하였다. 비로소 그 청년은 임금의 간호에 감격하여 원한의 감정을 풀고 더 충성스런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임금은 은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은자는 해답은 이미 나왔다고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될 죄(罪)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인 ‘돌과 두 여인’이란 책을 보면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 깊은 죄악의 자리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두 여인이 노인인 스승 앞에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나왔다. 이때에 노인은 두 연이게 말하기를 현재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죄의 문제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더니, 한 여인은 대답하기를 자기가 젊었을 때 남편을 한 번 바꾼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도 큰 죄로 생각되어 지금도 마음이 괴로와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또 한 여자는 대답하기를 자기는 지금가지 도덕적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아무 죄도 벌한 일이 없다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노인은 처음 여인에게 말했다. “신의 뜻을 따라 지시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당장 밖에 나가 큰 돌 하나를 가져오되 가능한 한 네가 들 수 있는 큰 것으로 가져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번 여자에게는 “너는 가능한 한 작은 돌들을 가져오되 네가 들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오라.”고 하고는 자루 하나를 주었다. 두 여인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즉시 밖으로 나가서는 큰 돌과 작은 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에 노인은 다시 말하기를 이번에는 그 돌들을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돌을 갖고 온 여인은 있던 자리를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그 돌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었으나 작은 돌을 한 자루 담아온 여인은 그대로 그 돌들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가 없어 그대로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노인은 말했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란다. 큰 죄는 언제나 기억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가 있지만 작은 죄는 속히 잊어 버리기에 자기는 죄가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기 때문에 더 큰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교훈하는 내용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진정한 행복
세계의 많은 명화 중 우리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은 19세기 작품인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이라 하겠다. 한 젊은 부부가 하루 종일 밭에서 땀흘려 일하다가 황혼이 될 무렵 하던 일을 멈추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은 인간의 숭고한 사랑과, 노동과 종교가 혼연일체가 된 성스러운 면은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가정도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의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인간이 노동을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 보존할 수 없고 사랑이 없는 노동은 고역스러울 뿐인데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식민 정치가였던 ‘쎄실 존 로즈’는 건강 관계로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였다가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고 큰 거부가 되었던 사람인데 그의 재산은 600만 파운두의 다이아몬드를 옥스포드 대학의 장학기금으로 기증할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잠시 영국으로 귀환하였을 때에 구세군의 2대 대장이었던 부드 장군과 기차로 여행할 기회가 있어 담화하던 중, 부드 대장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하다고 생각되십니까?”하고 묻자 로즈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행복이라니요?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하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드 대장은 다시 말하기를, “천하에 진실로 행복한 곳은 오직 한곳뿐인데 그 곳은 주님의 십자가 슬하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만이 우리의 죄가 사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인생일기’란 책에도 보면 프랑스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의 말을 인용,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람들은 흔히 속세적인 행복을 찾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기진맥진 한 두 팔을 그리스도 앞에 내놓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했고,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으로 이전에 바라고 따르던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흐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샅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맏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약속은 지킴으로 고귀하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하룻밤 숙박 예정으로 말을 타고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시골길을 지나다가 7-8세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 아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 아이는 톨스토이가 가지고 있는 백합꽃 수가 놓인 린넬 가방을 보자, 그것이 부러워 어머니에게 졸라대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는 그 아이가 졸라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그대로 지나텨 버렸다가 되돌아와서는 소녀에게 약속을 했다. “내일만 지나면 이 가방이 필요없게 되므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틀림없이 너에게 줄 터이니 울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린넬 가방은 친지의 유품인 소중한 기념품이었으나 툴스토이는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약속을 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저녁 어김없이 그 시골길로 돌아와 소녀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 소녀는 불행하게도 톨스토이와 헤어진 후 급한 병으로 죽게 되어 조금 전에 장례식을 끝낸 뒤였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모친에게 부탁하여 소녀의 묘지까지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린넬 가방을 무덤 앞에 놓고 엄숙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소녀의 모친은 눌물을 닦으면서 톨스토이게게 말하기를 “이제 아이는 죽었으니 이 가방은 가지고 가라.”고 미안한 듯이 말하자, 톨스토이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따님은 죽었으나 소녀와의 약속은 나의 망음에 아직 죽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하고는 머리를 숙였다는 것이다. “하잘 것 없는 약속이라도 정확하게 지키면 신용은 물론이고 인기가 올라갈 것이니 힘에 미치지 못하는 약속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빈 병 이야기(희생,사랑)
영국의 대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의 설교집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스펄젼 목사 일행은 어느 날 전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마차를 타고 ‘바라로’에서 ‘리버’로 가는 길이었다. 날씨는 쾌청하였으나 몹시 더웠으므로 마실 것으로는 라무네 쥬스를 몇 병 가지고 떠났는데 스펄젼 목사는 마차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쥬스를 마셨다. 빈 병은 필요없었으므로 창가에 앉은 친구에게 버리도록 건네주었는데, 이 친구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 빈 병을 그냥 버리도록 건네주었는데, 이 친구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 빈 병을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침 큰 광주리를 등에 지고 마차 옆을 지나는 두 시골 부인에게 던졌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병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 병은 광주리에 떨어지지 않고 불행하게도 부인의 이마에 맞았다. 순간 그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길가에 넘어졌고 당황한 스펄젼 목사 일행은 마차를 세우고 부인을 병원으로 데려가서는 응급 치료를 시키고 치료비조로 많은 돈까지 주었다. 그랬더니 정신을 차린 부인은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렇게 많은 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머리가 10번이라도 상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란 책을 보면 “남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일 외에 참된 사랑은 없는 것이며, 사랑을 사랑답게 하는 것은 오직 자아희생 뿐인데 이런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유지되어 나가는 것이다.”고 말했고, 로미오와 쥴리엣의 작가인 세익스피어는 “참 사랑의 길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32:39)
죽음을 부른 소유의 욕심
톨스토이가 즐겨하던 이야기 중에 어떤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니는 땅은 모두 다 네 것으로 주겠다.” 이 농부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좀더 많은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땅을 차지하고 나서 자신이 시작했던 출발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어리석거나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 9


톨스토이의 ꡐ인생론ꡑ은 삶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제정 러시아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번민과 죄의 절망에 깊이 빠졌다.그래서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주위 사람들을 찾아 의논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귀족들이 멸시하는 투박스럽고 빈궁한 농노들을 찾아갔다.그들은 가진 것 없지만 소탈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에 찬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본 것이다.톨스토이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냈다.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서 왔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운명에 붙들려 꼼짝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허다하다.연초엔 더욱 그러하고 어수선할 때일수록 그렇다.어떤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꿈

톨스토이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제화공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는 늘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했다. 어느 날 꿈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일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한번은 거지가 오고 또 한번은 청소부 영감이 오고 저녁 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구두방 할아버지는 불쌍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다. 그 날 밤 꿈 속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가서 세 번 다 잘 대접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 러시아의 작가
인간은 좋은 생활을 할 수록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 연탄 도둑의 회개

어느 집사님의 간증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 연탄을 피 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추워 나가 보았더니 그토록 잘 피던 연탄이 없어졌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분명 세든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 했지만 교회 다니는 집사가 싸울 수도 없고 하여 참았다. 다음날 저녁 잠을 자는 척하고 나가보니 건넌방 부인이 연탄을 빼가는 것이 보였다. 뛰어나가 잡을까 했으나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간신히 참았다. 이런 일이 두 주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어느 날 부인 이 찾아와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 하며 사실 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점쟁이 한테 물었더니 누구와 실 컷 싸우면 액운
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하여 싸움을 하려 고 연탄을 가져 갔는데도 도저히 싸움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그녀에게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의 가정이 모두 구
원을 받았단다.
콘란트: 젊은 시절에 인생에 대한 희망. 사랑. 그리고 믿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저주받을 것이다.
조지 맥도날드: 사랑받는 것보다 신뢰받는 것이 더 위대한 일이다
레오 톨스토이: 믿음 있는 곳에 사랑이.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평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부족함이 없다.

여권은 예수님의 피로 날인된 여권이다.



화장은 지워진다
화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여인들이었다고 한다. 자기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천연두가 유행하던 중세에는 마마 자국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진하게 했다. 서커스단의 도화사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피에로 화장을 한다. 아프리카나 뉴기니 원주민들은 전쟁을 할 때 무섭게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 마치 카멜레온이 상대방과 싸울 때 붉은 색을 진하게 내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을 하는 경우들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다져보면 남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집약된다. 화장을 잘 하면 얼굴의 결점도 감춰지고 더 아름답게 보인다.
화장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만 그 형태가 다를 뿐이다. 남자 여자 가리 것 없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화장을 한다. 학벌, 가문, 지역, 돈 명예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화장 도구들을 사용한다. 그것으로 자기의 본성을 가리고 남 앞에서 멋진 사람으로 내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얼굴에서 화장이 지워질 때 추한 모습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지워진 자국에서 차츰 드러나는 본래의 얼굴이 곱기는 어렵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든지 화장을 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화장은 언젠가 지워지게 마련이고 이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해도 하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지워질 것이다. 위조 화폐가 통용되지 않듯 하늘 나라에서는 거짓이나 위선이 통하지 않는다. 교회에서나마 참 모습으로 살 수 없을까!
-톨스토이 얼굴이 빨개진 이유/ 양참삼




** 톨스토이와 거지

우리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잘 안다. 톨스토이는 어느 날 정거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그 거지는 톨스토이에게 무엇 얻기를 바라서 구걸하나 때마침 톨스토이에겐 돈 한 푼 없어서 주지 못하게 되자 너무 민망하여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거지는 돈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사랑의 힘이다.


게으름이란 죄악

6세기 말에 그레고리 교황은 사람이 범하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교만,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탐욕 그리고 게으름이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부지런함을 가장 좋은 덕목으로 꼽았으며, 독일의 문호 괴테는 부지런함만이 인생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게으름과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리 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했으며, 영국의 종교가 테일러는 “게으른 자는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게으른 사람을 꾸짖었다.



세계이해의 두 방법

사람이 외부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극히 거칠고 피할수 없는, 오관에 의하는 인식이 있다. 그 인식의 방법에 의해 우리 내부에 형성되는 것은 우리들의 앎이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여러가지로 다른 감각을 주는 혼돈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자신을 알고 자기 이외의 것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그것을 아는 것, 즉 자기 이외의 삶들, 동물, 식물, 그리고 돌에 이르기까지 조차도 사색을 옮겨 놓는 일이다. 이 인식의 방법에 의하면 온 세계의 내부로부터 아는 것이고, 우리들의 앎에 의하여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파괴된 것의 재건이요, 모든 존재 결합의 부활이다. 자기로부터 나와서 다른 것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만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신과 화합하고 만물과 화합될 수 있는 자이다.
-- 톨스토이,그대 영혼의 빈자리에


성공적인 삶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으나 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으로 늘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적한 시골길을 가던 중 농부를 만났는데, 그 얼굴에는 유난히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농부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내 마음은 기쁠 뿐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 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사는 길이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오직 뉘우친 행동을 완전히 고쳤을 때 회개는 비로소 실천되는 것이다. - 톨스토이


이 세상에서 서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용서이다.- 톨스토이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