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성(性)과 영성 
            
성적인 충동은 기본적이고 자연스런 생리적 욕구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에서의 성(sexuality)은 이원론적인 사고로 인해 부정적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타락하기 쉬운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래서 성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일 자체가 교회에서 금기시 되어왔으며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람은 부도덕하고 음란한 사람으로 여겨왔다. 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성문제로 인한 고민과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목회자 부부는 성적인 갈등을 크게 겪고 있는데, 이는 목사의 아내가 남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목사로만 여기면서 성관계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인 목사가 성적인 요구를 할 때 “어찌 목사가 저렇게 성적으로 밝히는지 모르겠다”며 거부하고, 기대 이하인 사람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이렇게 성적인 의식이 건강하지 못하여 문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기독교 신앙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기독교적 성 이해에 대한 문제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번 발제를 통해서는 성과 영성을 관련시켜 이해하여 봄으로 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며, 성이 더 이상 죄의식을 주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답고 귀한 것임을 깨닫고 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1. 성에 대한 이해 


 1) 정신분석학적 성 이해
프로이드(Freud)의 연구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것이 리비도 이론이다.1) 프로이드는 초기에 그의 환자들이 어린 시절 성적 유혹을 받았다는데 집중하여 치료에 임했으나 점차 그러한 경험들이 사실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면서 유혹가설(Seduction Theory)을 포기하고 리비도(Libido) 가설을 새롭게 발전시킨다. 즉 프로이드는 환자들의 신경증 증상들 밑에 있는 충동과 갈등, 환상들이 외적인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2) 프로이드는 성욕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성욕 이론의 기본이 되는 개념이 욕동이다. 프로이드는 마음이 자극들을 방출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내적 자극들은 방출되지 못하면 축적되어진다. 이런 내적 자극들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이 성적 본능들이다.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성적인 본능 즉 리비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인 본능들은 긴장을 효과적으로 배출할 방법을 찾는데, 프로이드는 아동기에 그들의 욕동이 신체부위에 따라서 이동한다고 보았고, 각각의 발달 단계들이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생식기로 이어지면서 성적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보았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아동기의 성적 충동들이 성인기에 위장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회화된 성인의 마음에 유아적인 성적 본능은 표현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승화되거나 아니면 억압되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프로이드는 우리가 마음이라고 경험하는 것은 단지 작은 것에 불과하며,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무의식이라고 보았다. 무의식 속에는 끊임없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방출되기 원하는 성적 본능들이 있는 것이다. 정신과 성격은 본능적 충동들과, 그 충동들을 변형시킨 것들, 그리고 충동들에 대항하는 방어들이 복잡하게 짜여진 곳이다.3)
프로이드에 의하면 리비도는 한 가지 원칙하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것은 오로지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하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일차원리(Primary Process)’라고 불렀다.  그러나 리비도가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하기에는 현실의 힘이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도덕과 규범, 관습과 문화에 의해서 현실의 원칙(Reality Principle)을 가지는데 이를 ‘제 이차 원리(Secondary Process)'라고 불렀다. 이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사이의 충돌과 갈등을 조절해 주는 힘이 바로 자아의 역할이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시각은 당시 후기 빅토리안 시대의 지나친 기독교 도덕적 억압의 시대 상황 속에서 억압의 기전과 자기처벌의 무의식적 힘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의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현실 생활에서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현실적 인간이해를 가지고 있다.4)


 2) 기독교적 성인식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기독교가 출현한 이후의 서양 문화는 성에 부정적인 문화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부정적인 성에 대한 인식의 근원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를 들고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성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고방식은 구약이나 신약성서라기보다, 이교도인 고대 그리스-로마인의 신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5) 이점에서 기독교가 세상을 금욕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이 기독교를 금욕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폴 리꾀르(Paul Ricoeur)는 종교와 연관된 서구 사회의 성이해가 3가지 단계를 거쳐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단계에서의 성 이해는 신앙인들이 신화, 제의, 상징의 과정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결합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종교가 부흥하게 되면서 성이해가 이원화-땅에 있는 것이 아닌 천상의 것, 성스러운 것은 초월적이고, 만질 수 없는-되었다. 즉 성의 의미는 비신화화 되어졌고, 전체 질서에서 부분적인 것으로, 결혼의 조건 내에서 생식적인 것으로 국한되었다. 셋째는 오늘날에 출현하고 있는 사상으로, 성은 인간 경험의 통전적인 범위에 있는 것으로. 성스러운 것은 인간의 육체 속에서 경험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성은 인간화의 전체성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간화의 기본적인 차원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인식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3-430)에게서도 발견 된다.6) 그는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기독교의 원죄 해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마니교는 과학?철학?신학을 결합하여 새로운 통합체로 만든 이원론적 종교이다. 이들은 우주를 두 부분-‘빛의 왕국’과 ‘어둠의 왕국’으로 나누어서 물질적 육체 속에 갇혀 있는 빛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마니교도들은 출산행위를 통해서 악의 굴레를 쓰기 때문에 결혼은 죄악이고, 출산은 신성모독이며, 노골적인 성행위 뿐만 아니라 성충동에도 죄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성욕과 탐욕을 억제하고, 육식을 삼가고, 교접을 거부할 수 있었던 이들은 진정한 마니교의 추종자로서 ‘사부’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욕을 억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이는 개종으로 이어졌고 기독교 성직자가 되었다. 그러나 마니교의 성에 대한 사상은 버리지 않았다.”7)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성교 행위는 불결하다는 당시 교부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요약했는데, 자신의 성적 어려움에 대한 역정으로 잘못은 아담과 이브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이 창조한 남자와 여자는 처음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피조물로서 육신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의 섹스는 냉랭하고 순화된 것이었고, 쾌락도 없었으며, 성관계란 생식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단순한 기계적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억제할 수 없는 육욕적인 충동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은 성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적 충동으로 인한 섹스는 원죄 이론의 필수적인 부분이고, 성교 행위로 인한 출산을 통해서 원죄가 대물림된다는 것이 이론화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에서 출산이라는 관점에서만 성이 허용됨으로써, 중세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성은 더욱더 금욕적이 되었다. 그리고 17-18세기의 청교도들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서는 성적 억압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적 성 이해는 성서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초기 그리스의 헬레니즘적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서 상당 부분 왜곡되어졌다.


 3) 성 인식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영향
보통 성적인 갈등과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호소하는 경우는 두 가지 면에서 이다. 특히 미혼 남성일 경우가 더 그렇다. 첫째는 육체적인 부분에서 겪은 성 스트레스이다. 이것은 주로 성적인 욕구의 불만족스런 해소 때문이다. 둘째는 신앙적 요소를 포함한 정신적 차원에서의 스트레스이다. 결국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성에 대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인적 차원에서의 문제이다.8) 


  다음은 하워드 클라인 벨이 말하는 전인건강의 일곱 가지 차원이다. 첫째, 전인성을 가꾸어 주는 영성 둘째, 마음과 인격의 전인건강 셋째, 몸의 전인건강 넷째, 인간관계의 전인건강 다섯째, 일에서의 전인건강 여섯째, 놀이에서의 전인건강 일곱째, 자연환경과의 전인건강이다. 이렇게 일곱 가지 차원이 잘 어우러질 때 건강함을 누리며, 전인성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전인건강과 성적인 스트레스를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심리적이고 영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 문제는 심리적이고 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가 그동안 성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제공해 주지 못해 왔다는 사실이다.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라고 성장해온 많은 사람들은 ‘성(性)’이라는 말만 들어도 미리 죄의식부터 가진다. 그 동안의 성에 대한 기독교적 인식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설교자들은 그동안 성과 연관하여 너무 “음란하지 말라!” 혹은 “정욕을 피하라” “간음하지 말라” 라는 부정적인 언급만을 함으로 말미암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성도들에게 부정적인 성 인식을 심어 주었다. 많은 내담자들의 호소는 목회자들로부터 ‘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즐거운 것이다’라는 식의 설교를 들은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음란’, ‘정욕’ ‘간음’은 성적인 내용이고, 이 내용 모두가 죄의 개념에 해당하기 때문에 성은 곧 죄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와서 죄의식을 강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한 이원론적 사고가 육신으로부터 야기되는 성적 욕구나 충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은연중에 심겨져 성을 죄로 여기게 만들었다. 한 내담자의 사례를 들어 보겠다. 이 내담자는 기독교 신앙의 부정적 성 인식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된 경우이다.


“저는 성에 대한 죄책감을 교회에 와서 더욱 크게 느껴요. 아무래도 기독교 안에서는 성적인 부분이 닫혀 있고, 섹스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는 분위기 이고, 하여간 신앙적인 분위기는 성적인 것에 대한 자유함보다는 늘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요인이 된 것 같았어요”


또한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은 성경 속에 나타난 성에 대한 부정적 표현 때문이다.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니라”, “간음하지 말라”, “내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와 같은 성경 구절들, 그리고 성경 전반에 걸쳐 있는 비정상적이거나 부정적인 성적 사건들은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더욱 부정적인 성 개념을 지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2. 성과 상담 목회 


  1) 목회와 상담 상의 관계로서의 성9)
  성은 목회와 상담의 주요한 과제이면서 동시에 목회자와 상담자 자신들도 이 성에 대한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목회자와 교인 사이의 성적인 관계가 현실로 드러날 때에 우리는 그것의 윤리적 측면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지닌 보다 깊은 의미의 발견 및 치유와 개전과 변화를 위해서 함께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성적 관계는, 단순한 성적 관계가 아니라, 더욱 더 깊은 영혼의 문제의 드러남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더 심각성을 띄게 된다.
  예를 들어, Leadership Journal은 미국의 성직자들 중 12%가 부인이 아닌 사람들과 성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23%의 성직자들이 부인이 아닌 사람과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이 있음도 공표하였다. 그런가하면 버클리 소재의 한 연구소는 미 전역 단위의 개신교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10%의 성직자들이 교인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조사를 발표하였다. 그런가하면 보수적인 미국 남침례교단의 목회자 1,0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교인들과 합당하지 못한 성적 행동을 하였다고 보고한 목회자가 14.1%나 되었다. 이런 점은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도 다소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여성단체들이 연합하여 “교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모임에서 발표된 글을 보면, 목회자에 의한 교인 강간이 25건, 그 밖의 추행이 17건에 이른다. 그런가하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난 2000년도 성폭력상담 통계에 의하면 전체 상담 2,309 건 중 성직자가 가해자로 연루된 성 상담 건이 23건에 이르는 데, 그 중에 18건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이다.


 성은 목회와 상담에서 중요한 진맥의 대상이 된다. 한의사가 맥을 짚어 건강을 진단하듯이, 우리 삶의 건강과 진실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한 자원으로서 성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성이 친밀감의 신체적 표현이요 사랑과 헌신의 증언이라면,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중요한 삶의 척도요 인간관계상의 지표가 된다. 반대로 열이 몸의 이상을 나타내고, 불안이 마음의 이상을 알려주듯이, 만족하지 못한 성생활이나 조화되지 못하는 부부생활은 삶의 이상이나 가정생활의 어떤 역기능적인 모습을 지적해주는 중요한 계기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목회와 상담은 성을 전인적인 돌봄과 전인적인 건강의 필수적 요소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또한 중요한 과제로 삼을 이유가 있다. 신체의 비만도가 흔히 건강의 지표나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다이어트가 현대인의 최고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이에 못지않게 성생활 또한 건강한 삶과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과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듯,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성생활을 위하여 교육과 훈련을 장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목회와 상담 관계로서의 성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성이 금기요 혹은 죄악의 뿌리로 보는 의식의 전환을 이루어 내야 한다.


  조화로운 성생활의 여부는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목회 상담은 잘못된 성의식에 대한 긍정적인 전환뿐만 아니라 외도나 방종한 성생활 혹은 성 중독적인 생활에 대한 바른 진단이 필요하다. 성의 문제는 가정과 부부의 문제요, 곧 삶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회와 상담 관계로서의 성은 오늘 현실의 중요한 과제를 준다. 성은 그 누구도 예외일수 없으며, 긍정적인 영향과 혹은 부정적인 큰 파장을 불러 올 수 있기에 충분하다.


  2) 영적 체험, 구원의 ‘메타포’로서의 성
  성이 지닌 신앙적, 신학적, 영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은 결코 부끄러운 그 무엇이 아니며, 단순히 자녀생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은총으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성적 느낌과 존재방식은, 아메바 같은 무성적 존재는 가질 수 없는, 유성적 존재만이 가지는 기쁨이요 은총이다. 성적 구조의 차이와 성적 행동의 차이 및 그 성적 존재방식의 차이가 있기에 가능한 조화와 상합과 희열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로 볼 수 있다.
  성적 존재방식의 차이와 조화는 그 자체로 기쁨이요 의미이지만, 나아가 이는 모든 존재방식의 구조와 의미를 파악하는 놀라운 모델이요 메타포가 된다. 모든 존재와 행위를 음양으로 파악하였던 동양의 사고구조와 존재구조가 바로 이런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아내로 파악한다던가(호세아 등), 하나님을 신랑으로 믿는 백성을 신부로 표현하는 것 (아가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요한계시록) 것과 같이 하나님과 믿는 이들 사이,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이들 사이를 표현하는 근본적 유비의 원천이 된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이 맛보는 기쁨과 사랑은 성적인 극치감처럼 이해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 기도의 단계와 기쁨을 설명하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합일의 기도에 이르러 맛보는 마음의 기쁨과 고요를 ‘영적 결혼’으로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 . 영적 결혼의 은혜에 있어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영혼은 항상 그 핵심에 하느님과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합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두 자루의 촛불을 한 끝에다 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순간 불빛은 온통 하나뿐입니다. . . . 하늘에서 강이나 우물로 떨어지는 물과 같이 똑같은 물이 되어버려서, 강물과 떨어진 물로 나눌 수도 따라 갈라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 . 창문 둘을 거쳐서 방안에 들이비치는 햇살처럼 들어올 때는 따로따로라도 결국은 똑같은 빛살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 . 10)


  결국 성적 합일의 체험은 곧 구원의 합일이 체험의 원형이요 메타포가 될 수 있다. 또 실제로 성이 몸을 통한 것이라면 성적 합일은 몸의 존재의 완성태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나아가 몸과 영이 하나가 됨이 곧 이런 성적 합일의 형태로 이해될 수 있음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과 성적 존재 방식은 구원의 메타포요 구원에로의 체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11)


  3) 관계로서의 성, 상담, 목회
  성과 상담과 목회는 근본적으로 관계의 존재방식이요 관계의 행동양식이다. 이 셋의 근본적 속성 중의 하나는 모두가 사랑에 바탕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성은 육체의 몸부림에 불과할 것이며, 사랑이 없는 상담과 목회는 지혜의 만용이요 독단의 외식일 뿐이리라. 욕구의 충족이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건강과 행복을 이룩한다는 정신분석적 대상관계이론의 지혜를 빈다면, 친밀과 사랑과 헌신의 언어로서의 성은 이런 의미에서 상담과 목회의 관계적 질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상담과 목회가 성적 구조와 역동의 힘에 근거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3. 성적 욕구와 갈등


발제의 이 부분에서는 성적 문제의 갈등과 치유의 과정으로 나의 이야기와 내가 만났던 내담자의 진술을 중심으로 전개 해 보려 한다.


1) 성적 욕구 충동
인간은 당연히 성적인 욕구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성인식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성 충동을 느끼며 성적인 공상이나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것을 신앙과 연관시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 자신의 강렬한 성적 욕구를 이렇게 표현했다. “물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타는 성냥불 같아!” 참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남성에게 있어서 성적인 욕구와 충동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데,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남성들은 거의 매일 매순간 성적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들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성적 욕구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경험을 한다.


성적 욕구와 충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잘 조절되고 통제 되어야 한다. 앞에 소개한 대로 어느 목회자 부부가 성적 갈등을 겪으면서 상담하게 되었는데, 남편인 목사는 필요에 의해 성적인 요구를 하나 아내는 목사가 너무 성을 밝힌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변질된 사람, 타락한 목사 취급을 하는 것이다. 부부의 아름다운 성생활마저 왜곡된 인식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부의 사례를 보았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어느 남성의 고백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어 인용해 본다.


“집에 있을 때, 아내에게 성적인 요구를 했는데, 거절당했을 때 매우 속이 상했지요. 그래서 이쁜 여자를 보며 성적 공상을 할 때가 있는데, 사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머리를 흔들지만 해결되지 않은 욕구를 이렇게나마 해서 조금은 해결 한답니다. 그렇지만 뒤 끝은 시원치 않아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다른 여자도 아닌 아내로부터 성적인 거절을 당하고, 공상하며 성적 즐거움을 대체하고 그것도 죄책감에 시달려 뒤 끝이 시원치 않은 경우를 보면서 성인식에 대한 왜곡이 즐거움과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2) 성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갈등 
 

 (1) 성적 욕구 불만
인간은 성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스트레스가 발생하며 여러 가지 불만적 요소가 나타난다. 특히 남성들은 섹스 문제가 큰 관심사요, 거절당함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만이 매우 크다. 일반적인 남성들은 청년기 시절에 첫 번째 성관계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발달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런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남성들에게 있어서 성관계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신앙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따라서 왕성한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들은 신앙적 죄의식의 견제로 인해서 그들의 엄청난 성적 욕구가 좌절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 개방화 추세는 이들로 하여금 더 강한 성적 자극과 성적 소외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젊은 내담자들을 통해서 느끼는 성욕구에 관한 것을 보면 가장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는 것이 성관계를 하지 못한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2) 심리 정서적 부담
많은 남성들은 성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 정서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됨을 말한다. 단지 성적 욕구의 좌절이 육체적인 욕구 불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리 정서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욕구가 해소되지 못할 때 경험하는 허무함이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성적 스트레스는 심한 자위행위로 이어지고 이 후에 심리적 허무함과 불안감이 더욱 스트레스를 가중 시킨다고 말한다.
한 내담자는 “성에 관한 대화를 마음껏 할 수 없고 억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되며, 자위행위로밖에 풀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어떤 내담자 M씨의 경우는 “자위행위가 죄책감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때 우습고 초라해 보인다”고 말한다.


  (3) 신앙적 갈등(죄의식)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성문제를 들여다보면 실체가 있는 죄라기보다는 죄의식의 문제이다. 성은 곧 죄라는 인식의 내면화는 죄의 개념을 흐려놓았고 죄의식 혹은 죄책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처음에는 성적 욕구나 충동으로부터 성적인 고민을 시작했었는데, 나중에는 죄의식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방황했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청년시절과 결혼 초기에는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보다는 오히려 죄의식의 문제를 다루는데 에너지를 낭비했던 것 같다.


  스티브 비덜프는 성숙한 남성으로 발전하는 7단계 중 2번째 단계에서 자신의 성욕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성욕 속에서 편안한 기분을 맛볼 뿐 아니라 변화되고 충만해지는 법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적 에너지를 여자들에게 무작정 쏟아내지 말고 자기 내면에 잠복시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안에서 행복하고 성스러운 원천을 찾을 때 성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성적 욕구에 민감해서 오히려 그것들을 잘 다스리고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난 내담자들 중에는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성적 공상, 자위행위 등 성에 관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죄’ 와 ‘죄책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내담자들이 그만큼 성적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받는 부분이 바로 신앙적인 죄책감이다. 육체적인 욕구 불만과 더불어 영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내담자들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청년 시절 초반까지 극심한 신앙적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고백을 한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내담자는 나름대로의 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통해서 영적인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육체적인 노동보다는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일이 많은 나에게는 성적인 욕구를 성관계를 통해서 해소해야 할 일들이 많다. 특히 목회자들 중에는 주일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특히 여성 신자들을 많이 대하기 때문에 전날인 토요일에 아내와 성적인 해소를 통해 성적 충동과 유혹들을 더욱 잘 이길 수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을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쉼을 가지게 되었다. 이 주일 새벽에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다. 오늘 주일인데...거룩한...자꾸만 이러한 단어가 나를 짓눌렀다. 아직도 복음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왜곡되었던 성인식에 대한 결과가 마음을 자꾸만 편치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 앞에 불경의 죄를 범한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것은 아내와 작은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 갈등은 그야말로 죄의식에 관한 무거운 짐 때문이었다.

 


4. 성적인 문제 해결 방안


1) 신앙적 대처
성적인 많은 갈등 속에서 우리 부부는 성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가정 사역 일환으로 3개월 간에 걸친 과정이었는데 여기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사실 성과 영성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해보면서도 어떤 영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실제적인 부부생활의 개선과 발전도 이루어짐을 깊이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 치유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부부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적인 관계 역시 영적인 친밀감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 허깅을 비롯해서 칭찬과 축복의 언어 그리고 애무의 과정까지 더욱 적극적이고 서로에게 만족을 주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과거에는 이러한 것은 신앙적으로도 저해되는 것으로 인식했었고, 포르노 배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치부했었다.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한 성 생활 속에서도 더러움과 추함을 분명하게 선을 긋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제 이런 면에서 매우 자유로워졌다. 깊은 사랑과 더불어 영적인 친밀감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이런 변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성치료 과정과 더불어 성생활에 관한 독서와 진솔한 대화가 더불어 진행되었다. 또한 Q.T나 영적으로 깊은 기도생활은 더욱 서로 부부의 친밀감을 도왔으며, 신앙적 정화 의식을 갖게 되어 심리적이고, 영적인 죄책감을 완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2) 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 변화
많은 성적인 부부 갈등을 겪었던 나에게는 성치료 프로그램과 여러 차례의 가정사역 훈련 그리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성을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가 왔다. 이것이 가장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 상담 사역을 하면서 성폭행을 당하고, 성적인 갈등을 겪는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성적인 문제로 부부갈등을 하는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과거에 성에 대한 무지, 그리고 왜곡된 인지 등을 탈피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 번은 청소년 상담실에서 성적인 갈등과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한 후에 구비된 자료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이는 한 여성이 강간당하는 장면과 포르노에 해당되는 내용물이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얼굴이 붉어지고, 또한 강간하는 치한의 모습을 보면서 분개하기도 하고, 그동안 잘 접해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그 영상물을 보았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비슷한 것을 계속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몇 차례 더 보는 기회를 가졌다. 문제는 그것이 부부생활이나 성적인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때로는 영상처럼 떠오를 때가 있어 그것을 지우느라 힘써 노력한 적이 있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되 그것이 오용되고 더 나아가 중독 증세까지 나가게 된다면 건강한 정신을 소유하기 어려우며, 특히 영성에 큰 유익이 되지 못함을 실감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발제를 하면서 영성과 성은 깊은 관련이 되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성에 대해 무지하고 호기심이 있지만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억누르고 살아왔던 억압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과 자유함을 맛본 것도 사실이다. 그 후로는 의도적으로 성에 대한 적극성을 가지게 되었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서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가 왔다. 그 결과는 매우 달라졌는데, 성에 대한 자연스러움과 더불어 부부생활에 큰 유익을 가져 온 것이다.


3) 성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
  (1) 교회나 목회자의 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성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나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기독교인 부부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목회자의 성적 가치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밝게 부부생활하며 살아갈 수도 있으며, 반대로 성에대한 왜곡된 인지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유함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2) 교회의 적극적인 성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성에 대한 관심이 한참 많은 청년 시절에 성에 대한 고민을 숨겨 두고 고민하게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금기시 하고 성 그러면 터부시하고 은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오픈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성(性)뿐만 아니라 이성(異性)의 성(性)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기회가 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3) 부부 각자의 긍정적인 성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으로서 성에대한 긍정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목회자와 교회의 적극적인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부부 각자의 성의식의 전환이 결국 성적 갈등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을 누리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 기독교적 성과 영성


기독교 신앙은 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육신 사건은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인간의 몸속에서 일어났음을 말한다.14)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 자신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혈과 육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온전한 성적 관계를 통해서 육신 속에 성육화하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에 관한 성경적 의미에 관하여 볼스윅(Balswick) 부부는 그의 책에서 6가지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15)

첫째 차별성과 연합의 원리이다.

이 원리의 출발점은 창세기 1:26-28, 31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는데, 남자와 여자라는 두 종류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존재와 성은 남녀의 연합과 조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가 없이는 남자를 규정 지울 수 없고, 남자가 없이는 여자를 특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독특한 속성 안에서 서로 구별되고 연합되어 질 때, 즉 성적 존재로서 이해할 때 하나님의 설계 원리를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깊은 차원의 앎의 원리이다.

루이스(Lewis,1963)는 육체적 쾌락은 마귀가 착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라고 일깨워 준다. 인간은 성적 욕구를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성이라는 좋은 선물을 통하여 각자는 그들 자신에 대해서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은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정서적, 성적 하나 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두 성적 존재인 남자와 여자가 구별성으로부터 성적 극치에 도달함으로써 온전함과 한몸 된 교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셋째는 성적쾌락을 즐길 역량과 가정환경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쾌락을 즐길 수 있는 놀라운 역량을 지닌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데, 만일 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면 수치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개인의 성적 건강은 가정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정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넷째 성과 영성의 원리이다.

성경은 성을 긍정하지만, 우리 문명은 성적인 것을 혐오하여 성을 억압하거나 아니면 쾌락주의적인 성에 탐닉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주장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의 이원론적 성의식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성적 충족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완전히 주는 경험의 절정인 것과 비슷하게 기독교 영성의 개념도 하나님의 영에 자신을 내어 주고 그 영으로 충만케 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구속되어야 할 성의 원리이다.

창세기의 첫 두 장은 성을 하나님의 좋은 선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3장의 타락으로 인하여 성은 손상되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왜곡된 성적 본성은 여타의 다른 문제들(돈, 소유, 가정)처럼 비정상적인 우주의 한 면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얼마든지 균형을 잡고 서로 지원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이 왜곡된 것이지 성 자체가 왜곡된 것은 아니다. 단지 성 자체가 왜곡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적 상호 관계를 가질 때 성숙한 책임감으로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회복의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우리 각자는 비록 성적인 상처와 고민, 실망과 혼란을 안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빛을 비춰 주셔서 영적인 여정에 있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성적 관계는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게 하며, 그 속에 내재하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예수그리스도는 항상 우리를 변화시키고 치유케 하는 능력을 베풀어주신다고 한다.


이제 기독교적 성 이해는 하나님의 선물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성(sexuality)은 인간의 죄에 의해서 손상되고 훼손되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성이 결혼의 목적과 출산을 위해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신실한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성(性)의 문제는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예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성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그 성은 여러 가지 죄악 된 모습으로 훼손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性) 자체가 죄악은 아니다. 성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성적인 갈등을 겪는 부부들, 가족들이 참으로 많다. 먼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기독교적 성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만드신 아름다운 성의 진정한 원리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성적 갈등 치유와 영성이란 발제를 마무리 하면서 몇 가지 깨닫고 마음에 정리한 것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첫째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은 성서의 성(性)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 좀 더 주의 깊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설교나 강의 중에 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아름다운 성, 진정한 성의 원리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둘째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세상의 관심 언어는 성과 관련 되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좀 강하게 표현하면 세상은 온통 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현장은 성에 관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오늘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 침묵한다. 말을 해도 항상 똑같다.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어주지 못했다. 이제 적극적으로 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가치관을 이야기 해주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 해 나가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셋째 교회 내에도 성(性) 문제를 포함한 심리적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문 상담사역의 필요성이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성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부부들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을 각자의 책임 하에서 누려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영성 속에서 성적 갈등을 치유하는 부부와 가족 안에는 더욱 밝게 성장과 기쁨이 가득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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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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