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姓氏 ‘뿌리와 역사


우리의 성씨는 누구로부터 비롯됐을까. 천제(天帝·하느님)와 중국 고대 전설 속 제왕(帝王), 서해 용왕(龍王), 베트남 왕족, 일본 장수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국적의 귀화인까지…. 각종 사서와 족보에 나타나는 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가면, 유서 깊은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얘기를 만날 수 있다. 13만여 개의 성씨를 가진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 성씨의 개수는 몇 백 개 안 되지만, 성씨의 조상에 관한 한 풍부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신라의 시조이자 박(朴)씨의 시조인 박혁거세와 금관가야 및 김해 김(金)씨의 시조인 김수로는 믿기 어렵지만 알에서 태어났다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은 천제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데 경주 김씨의 출자(出自)와 관련해서 최근 12세기 편찬된 ‘삼국사기’보다 무려 5세기나 앞선 7세기에 조성된 ‘문무왕릉비’를 비롯, 신라 김씨 관련 각종 비문(묘지명)들에서 이와 다른 내용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시조가 중국 고대 전설 속 제왕인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이며 먼 조상이 김일제(기원전 134∼86)라는 것. 그는 흉노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해 무제(武帝·재위 기원전 141∼87) 때 시중(侍中)에 임명되고 투정후(투후)에 책봉됐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씨의 조상을 중국 전설 속 인물과 흉노와 연결시키고 있어 흥미롭다.

한편,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 김씨 왕족들 사이에서 내물왕 4세손(이사부) 또는 5세손(거칠부), 7세손(사다함)이란 식으로 씨족(氏族·clan)의 조상인 김알지보다 씨족에서 분화한 가계(家系·lineage)인 내물왕계에 속한 혈족집단임을 강조하는 의식도 나타난다.

본관은 많아도 김씨와 박씨의 계통이 비교적 단순한 반면, 우리나라 3대 성씨 중 규모 면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는 이(李)씨의 유래는 다소 복잡하다. ‘사로6촌’ 중 하나로 이알평을 시조로 하는 경주 이씨, 중국에서 시조가 건너왔다는 전주 이씨·연안 이씨·고성 이씨 등 그 기원이 다양하다.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은 베트남 왕족이었으며, 청해 이씨는 만주족에서 유래했다. 이씨 외에 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씨 등이 ‘사로6촌’과 연결된다.

고려를 건국한 개성 왕(王)씨의 시조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은 아버지가 당나라 황제 숙종이라고 전한다. 또 작제건과 서해 용왕의 딸 용녀 사이에서 왕건의 아버지 용건이 태어났다고 ‘고려사’ 첫머리의 ‘고려세계’에 기록돼 있다.

 

이른바 중국 등 외국에서 유래한 성씨가 많은 것도 주목된다. 현재 가(賈)씨와 강(强)씨, 오(吳)씨, 염(廉)씨, 구(具)씨, 유(劉)씨 등 약 120개 성씨가 시조 유래를 중국에서 찾고 있다. 신라 말·고려 초 문사들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고승들의 탑비문에서 주인공의 부계 성씨가 최(崔)·이(李)·장(張)씨일 경우 모두 중국에서 동쪽으로 온 것처럼 적고 있다. 이 경우 예외도 있겠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모화사상의 산물로 간주한다.

연안 인(印)씨는 시조가 원 간섭기에 고려에 온 몽골인이며 경주 설(?G)씨의 시조 설장수는 위구르인이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 장수로 왔다가 투항한 왜장 사야가(沙也可)는 김해 김씨 성과 충선(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김충선(1571~1642)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정착해 산 탓에 원래 김해 김씨와 구별해 우록 김씨로도 불린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한국의 성씨제도도 변화하고 있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2000년대 들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인들이 늘어나면서 희귀 성씨가 급증하고 있다. 강전(岡田)·장곡(長谷)·저(邸)·루(樓)·뢰(賴)·소봉(小峰)씨는 물론 독일 이씨(이참)와 부산 하씨(로버트 할리), 구리 신씨(신의손), 몽골 김씨, 영등포 이씨 등 다양한 성씨와 본관이 생겨났다.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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