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하나의 유행이다?

 

김진 목사 / 크리스챤아카데미 상임연구원


영성에 대한 높은 관심...인류가 직면한 시대변화의 징표

영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현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영성을 북돋우고 세련된 문화양식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을 자극하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인간이 지닌 영성을 종교적 형식과 의례로 고양하고 승화시켜 왔지만 오늘날처럼 세속적·문화적 삶 속에서조차 영성의 기운을 흡입하고 발현하지는 못했다. 이제 더 이상 영성이라는 단어는 종교 용어로 제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인간의 내면과 정신 영역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전이되고 있다.

요즈음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뚜렷해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 사람들도 영적인 차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성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동양적 사유를 근간으로 기(氣)에 대한 관심과 훈련, 단전호흡과 좌선(坐禪), 행선(行禪), 마음공부 등 동양 종교의 전통적 수련 방법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교정하려는 수련처도 곳곳에 늘어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상업성과 연결되어 하나의 새로운 사업형태로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우리 문화에 면면히 내려오는 샤머니즘 전통이 다시 부활하여 무속문화의 신(新)르네상스가 구현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 곳곳에는 천막을 치고 길흉화복을 논하는 영성가(?)들이 즐비하고, 전화를 통해 상담하는 점술 사업이나 사주 카페 등이 성업중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대중매체들도 이 유사(類似) 영성문화를 부추기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영화나 텔레비전은 이제까지 무시하고 살아왔던 영(靈)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다루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영상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실적인 영상표현들도 관객과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의 실재를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한다. 또한 음악에서도 다양한 종교적 색채를 지닌 명상음반이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그동안 이성과 합리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의 자연 신비주의적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 그동안 우리의 무의식에 묻혀 있던 종교적 세계관이 다원화된 문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현상은 또한 현대 인류 문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서구적 과학사상과 기계론적 사고에 기초한 인간의 삶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는 문명비판론과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적인 새로운 문명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은 우리 인류가 잃어버린 영성의 세계를 통해 참 행복을 찾아가려 한다. 인간과 우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과 인간의 행복은 물질의 풍요에 비례하지 않는 신념으로 현대 문명에 회의를 느끼며 자연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또한 이런 영성적 기류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이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시대 변화의 징표로 이해해야 한다. 영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하는 현상이 어느 특정 종교나 국가에서만 번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인간이 지닌 영성에 대한 관심이든 아니면 시대의 징표로서 좀더 근본적인 변화로서의 영성시대의 도래이든 이 모든 현상은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한다. 이런 영성문화 현상을 전통 그리스도교의 교리나 이해의 기준을 가지고 거짓 영의 활동, 사탄문화 확산 등으로 평가하며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나 가름보다는 오히려 이처럼 다양화되고 있는 영성문화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영성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꽃피울 수 있는가에 대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가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며, 또한 진리로 이끄시는 거룩한 영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성에 대한 올바른 사색과 실천은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임을 새롭고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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