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령과의 관계

 

Ⅰ. 시작하는 글

지금 지구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토질오염, 수질오염, 공기오염 등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지구가 병든 것은 순전히 인간들의 양심이 부패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그리스도의 영성이 오염이 되어 사회와 공동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유익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영적 환경도 이미 세속적으로 오염이 되어 우리의 신앙이 죽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와 신앙이 건강해 보이지만 교회의 탈과 믿음의 탈만 벗으면 우리의 영성이 심히 병들어 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가 제도권 안에서 전통과 교리와 권위 그리고 외형적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성이 건강한 사람은 법이나 전통, 제도, 교리 등과 외형적 성장에 보다는
예수의 영/정신(spirit)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다.

 

바울은 율법에 의한 종교적 구조 의식(rite)의 거부를 위해 영성을 강조했으며, 인간의 계획과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강조했다.
영적인 사람(pnematikos)은 자신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결정적인 원리로서 성령을 의지하며,
그에 따라 경건하고도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는 냉정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잘못과 허물에 대해서 흥미 있어 하고 험담을 늘어놓기에 분주하다.


그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시기와 미움, 투쟁과 분열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사회적인 욕심으로 교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일들이 육신의 열매로서 영성이 상실된 사람들의 모습이다.(갈5:19-21,딤후3:1-5)


이제는 영성 회복을 위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잃어버린 신뢰와 사랑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Ⅱ.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창조될 때에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창1:27)을 말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아담이 아들 셋을 낳았을 때에 그 생긴 모습이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 것처럼(창5:3)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26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두 단어가 나오는데
'형상'은 안에 속한 것을 말하며, '모양'은 밖에 속한 것을 말한다.

모두 안에 속한 것-생각, 의지, 감정을 갖고 있고, 밖으로는 모양, 즉 몸을 갖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안(In)의 형상이라 함은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의 형상'을 말하며, 하나님의 밖(Out)의 모양이란

성육신을 통해 실천적인 공생애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영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영성이란, 하나님의 인격이며, 정신이며, 삶 그 자체를 말하는 "사랑의 영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성이 구체화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며 그 분의 공생애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실체이시다.(고후4:4,골1:15,히1: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므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성을 따라서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격과 그 분의 삶을 따르는 것(마5:3-10,고전13:4-7,갈5:22-23,골3:12-14,약3:13-18)이 곧 기독교의 영성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예수님의 영성인 사랑의 영성과 더불어
예수님의 정서를 갖고 살 때에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의 형상이 회복되어

영성인(靈性人)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성결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롬12:2)


"프란시스 쉐퍼"는 영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신앙 영성'과 '생활 영성'이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즉 교리의 영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생활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으로 묘사된다.

 

교리의 영성은 '바로'(right)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며, 공동체의 영성은 '아름다움'(beautiful)으로 나타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신앙의 영성을 강조하여 왔다.

 

그러나 쉐퍼의 영성인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과 조화가 있는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쉐퍼의 영성은 첫째는 바른 교리의 영성이며, 둘째는 아름다운 삶의 영성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 주는 말이 '사랑'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쉐퍼의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다.


그는 영성이 예배당 안에 갇혀 버린 영성을 '추한(Ugly)영성'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공동체 의식으로 확대시켜 나아가는 '아름다운(Beauty)영성' 즉 생활 영성을 추구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폴 스티븐스가 말하는 '영성'이란, 우리가 '종교성'이나 '기도회'등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고 주장한다.

 

그 응답의 방법은 일상적인 업무, 인간관계, 사회적 활동 등 자신의 모든 영역에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규적인 예배나 기도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전체가 영적인 하나님의 시간으로 재인식하고
말씀이 생활화되어 건강한 영성을 보전해야 한다.


마틴 루터는 주일 저녁에 교회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 주일까지는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6일 동안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사랑하는 장(場)이 바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요일부터 한 주간의 교회는 예배당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터, 가정 등 세상 속에 자리한 모든 삶의 현장이 곧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결코 예배당 건물에 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영성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께 교회당에서의 종교적 의식으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전체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노동은 하나님께 응답하는 영성의 표현이요, 저자거리는 영성 훈련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Ⅲ. 영성에 대한 오해

한국 교회가 10년 전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아직 진정한 의미의 영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영성은 성령 운동 즉 은사 운동이 아니다.

 

영성도 물론 성령과의 관계가 매우 깊지만 은사 충만이나 질병 치유 등 신비의 운동은 아니다.

부흥 집회 등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결국엔 신비한 은사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영성에 대한 무지일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의 율법적 신앙을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율법적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데
성경 말씀을 많이 읽거나 많이 암송을 하거나 또는 교리나 성경을 많이 공부하여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그것이 곧 좋은 믿음으로 인식을 하는데 이것 또한 영성은 아니다.


특히 현세적 삶인 가족 관계, 대인 관계, 직장과 사업 등 일상 생활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고 소홀히 여기며,
교회와 기도와 예배 그리고 전도 활동 등에만 열심히 충성하는 것이 곧 영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결코 그런 것이 영성은 아니다.


캐나다의 영성 신학자인 "폴 스티븐스" 박사는 우리의 삶 전체가 영성 현장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이미 설계해 놓은 틀 안에서 우리의 생애를 마감하는 날까지 영성 훈련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과 의식(rituals)과 교리 등을 통해 종교성(piety)을 부각시키며 종교화시키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이 종교성을 영성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성을 통해 자기 의(self-righteousness)를 키워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결국 현대판 바리새인적 신앙을 양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직도 한국 교회가 소속된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서의 열심과 충성이 강조되어지면서 신앙이 종교화 되어가고 있다.

영성이 왜곡되었거나 남용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Ⅳ. 영성 회복의 필요성

한국 교회는 세계가 부러워 할 만한 교회 성장을 가져왔다.

교단별로 규모가 큰 교회들이 많이 있고, 교회의 신자 수, 충성심, 헌금, 많은 예배와 기도회 등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성장해 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증거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목회자들의 노력한 결과와 평신도들의 열심 있는 충성심 위에서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다.

 

그 큰 이유는 교회가 맛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그 능력과 신뢰를 상실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는 이면에 숨겨졌다가 이제 슬며시 그 정체를 드러내는 몇 가지 허상(虛像)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량주의(物量主義), 기복신앙(祈福信仰), 기독교적 샤마니즘(Shamanism),
세속주의(世俗主義), 교회의 기업화(企業化) 그리고 성직자의 권위 의식 등이다.

그 결과 외적으로는 교회와 교단의 분열이 많아졌고, 형식적인 의식이 배인 종교적 전통과 제도만이 남았고, 내적으로는 종교적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면 차라리 교회의 문을 닫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18:6-10)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 건물은 많으나 에클레시아적 교회는 심히 적고, 진리를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행함으로 말하는 사람도 심히 적고, 믿음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사랑과 능력은 약하고, 항상 '나'는 보이나 '이웃'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영성으로 살아야 할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일 것이다.(롬8:8-9)
영성 생활은 종교적 신앙이기보다는 참된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영성 회복은 단순히 착한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 믿고, 성령으로 바로 살자는 '바로 운동'인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삶이었듯이
우리의 삶은 영성인(靈性人)이 되어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Ⅴ. 영성의 세 가지 방향

주재용 교수는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형성된 "복음"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기독교 영성의 바람직한 방향을 언급함에 있어서 '정통적 행동 없이는 정통 교리와 신학은 없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영성 운동의 방향을 논할 때에 무엇보다도 기독교인들의 실천적 삶이
영성적으로 강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종호 교수는 영성의 회복과 그 실천성을 말하려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아가페)'의 낱말을 아래와 같은 세 가지의 의미로 설명을 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사랑(영성의 기원) - 이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아시고 선택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선한 것이 있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이 '사랑(아가페)'은 하나님 본래의 모습이며,(요일4:7-8) 이 사랑으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화목제로 삼으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요일4:10)
하나님의 인격은 사랑의 인격이며 그 분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공의도 깊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하나님의 삶은 모두가 '사랑'이시다.

그 사랑으로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선하게 창조 하셨고, 후에 타락한 인간을 죄인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시고 대속의 자리로 보내 주신 것이다.


여기서 영성의 기원을 찾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다.

2. 하나님께 대한 사랑(영성의 회복) -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적 사랑이다.

 

그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감사와 찬양, 예배와 기도 등의 신령한 삶으로 표현되어진다.
나는 피조물 됨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며,
나는 종 됨을 깨닫고 주인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 하고, 나는 자녀 됨을 깨닫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순종을 다 한다.


그래서 내 삶의 주역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영(靈)이 되시게 하여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인생이 되도록 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진리를 깊이 묵상해 보면 또 다른 감격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와 찬양과 사랑을 드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선택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하며, 예수님의 대속이 내 가슴을 울리고, 성령의 내주로 내 인생이 아닌 주님의 인생으로 사는 사람이 진정 좋은 믿음의 사람이다.
이것이 곧 영성 회복의 길일 것이다.

3. 이웃에 대한 사랑(영성의 실천) -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발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감격으로 인하여 이웃 사람들에 선(*service)을 베풀고 싶은 것이 자연적인 이치이다.(마10:42,행2:42-46,요일3:17)

이것은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쁨이요 환희일 것이다.


하나님은 영(靈)으로 존재하는 분이시기에 그 분을 직접적으로 섬길 수는 없다.

다만 예배로 그 분을 섬길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웃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섬기며 봉사하며 사랑하는 일은 영성의 열매로서 그 사람의 신앙을 측량할 수 있는 것이다.(약2:14-26,요일3:14,18,23,24)

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영성이 회복이 되면 '사랑의 사람', '사랑의 교회'가 되어
사회로부터 사랑과 신뢰가 회복되어 선교의 문은 활짝 열려져 하나님 나라는 더욱 확장 될 것이다.(행2:47)

 

 


(웹사이트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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