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 교육과 교회성장  


새신자 교육의 목표설정

교육에 있어서 목표설정은 그 교육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 요건이다. 목표가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바른 교육이 행해지고 성공적인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다.

카네트 반 빅 박사는 그의 글 "그리스도인 교육이 당신의 성장을 방해 하는가?"에서 그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가를 반영해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그 교회가 설정한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고 적극 강조 하고 있다. 저명한 기독교 교육학자 와이코프는 교육의 목표설정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교육의 방향을 지시해 준다 : 커리큘럼을 작성하고 교재를 집필하고 교육행정을 수행하며 모든 교육과정을 진행해 나가는 데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지침을 준다.

둘째는 교육평가를 위한 표준을 제공한다 : 교육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육의 방향이 설정된 교육의 목표에 의해서 평가를 받고 목표를 향하여 궤도 수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전하고 성서적인 교육목표이다. 적어도 교회교육에 있어서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의 방법론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의 목표, 교육의 원리, 교육철학이 더 중요하다. 진실로 교회는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목적을 따를 때에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1. 새신자 교육목표의 고찰

필자는 이제 기독교 교육의 목적에 관한 역사적 논의를 간단히 거친 후 기독교 교육학과 교회성장학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비교해 보고 이상적인 새신자 교육목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기독교 교육학적 입장에서 본 새신자 교육목표

시대와 문화에 따라 기독교 교육에 대한 해석과 강조점은 다르게 변천되어 왔다. 초대교회에서는 기독교 교리와 생활양식을 가르치는 데 주목적을 두었는데,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에 대한 해석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내리는 것이었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해석과 그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초대교회의 또 하나의 교육목적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성경이 평신도에게 공개되면서 성경교육이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 되었다. 또한 지도자 훈련이 성직자 양성을 위한 직업 교육이 되었다. 특별히 주일학교 운동이 전 세계에 파급되면서 기독교 교육은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교육에 그 목적을 두었다.

현대에 와서 교회교육은 과거의 지식 함양이나 정신 훈련에서부터 전인교육으로 양상이 달라졌으며, 관념적인 국면에서부터 실용적인 국면으로 변천했다. 인간의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하여 이것을 과학적으로 측량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현대교회의 교육은 일반사회 교육의 발전과 함께 그 기술적인 면이나 방법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하였으나 복잡한 사회교육이론과 신학사상들의 영향을 받아 교육의 철학(목표)도 다양해졌다. 현대교회의 대표적인 교육목표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Paul H. Vieth의 교육목표

Paul H. Vieth는 1940년대 기독교 교육 국제협의회 책임자로 아래와 같은 기독교 교육목표를 마련하여 미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다음과 같은 8가지 기독교 교육목표를 설정하였다. 

①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인간 경험 중에서 싹트게 도와주며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각하도록 도우려고 한다.

②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성품, 생활 및 교훈을 이해하고 체득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이며 주님으로 경험하도록 인도하고 예수님과 그의 사명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하고 이것을 일상생활과 행동 중에 나타나게 하도록 발전시키고자 한다. 

③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계속 발전시켜 가도록 도우려고 한다. 

④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고 인간들이 형제라는 이상을 지닌 사회적 질서를 전 세계에 이룩하는 일에 건설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능력과 태도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⑤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조직된 사회, 즉 교회에 참여하는 능력과 태도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⑥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가정의 의의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사회집단 생활에 참여하며 건설적으로 기여할 능력과 태도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⑦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삶과 우주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을 갖게 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알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따른 인생관을 갖도록 인도하고자 한다. 

⑧ 기독교 교육은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바 뛰어난 인류가 가진 최고의 종교적 경험에 동화하고 이를 현재 경험에 있어 유효한 지침이 되도록 하려고 한다.

(2) 1958년 미국 N.C.C에서 제정한 교육목표

신학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커리큘럼 형태가 발전해 감에 따라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재연구의 필요성이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N.C.C는 교육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5년간의 연구 끝에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제정했는 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서 다음과 같은 5가지 일반적인 목표를 구성했다.

기독교 교육의 최상의 목적은 개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들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도와주며, 기독교 공동체를 향하여 생동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방법들 가운데 이 사랑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독교 교육은 성령의 지도아래서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노력한다.


첫째, 발달의 각 단계에서 개인들이 거룩하게 창조된 존재로서 자신의

최상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기독교인으로서의 성숙을 향해 성장하도록 돕는다.

둘째, 개인들로 하여금 사회 안에서의 책임있는 역할을 감당하고, 모든 인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보면서 그들의 가족과 교회와 다른 개인들과 집단들과의 기독교적 관계를 수립하고 유지하도록 돕는다.

세째, 개인들이 자연계를 하나님의 창조로 더 잘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봉사 가운데 자연계의 가치를 보존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돕는다.

네째, 개인들을 성경에 대한 점진적 이해와 인식에로 인도하고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도록 인도하며, 그들을 역사적인 기독교 유산의 다른 요소들을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인도한다.

다섯째, 개인들이 교회의 국내 선교와 세계 선교에 신실하게 참여함으로써 기독교적인 교제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발견하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같은 기간 동안에 그들의 또 다른 위원회가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목표를 세웠다. 그들에 의해 제시된 기독교 교육 목표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개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시는 사랑을 알게 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그 목표가 지향하는 바는 그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처해 있는 인간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하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 뿌리 박은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하며, 세상에서 그들의 공통적인 제자직(Discipleship)을 성취하고, 기독교적 소망 가운데서 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3) Herbart W. Byrne의 기독교 교육목표

허버트 번은 기독교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육이며 그러한 결과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위를 닮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반드시 예수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한 인격(One Person)이시며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시요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구속사역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구속받은 모든 사람의 원천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네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① 육체적 목표들(Physical Goals)

a. 육체는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깨달아야 한다(Body was considered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고전 3:17).
b. 성결(Purity)(고전 6:13,18,20).
c. 육체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Not considered mostimportant) (딤전 4:8). 

② 영적인 목표들(Spiritual Goals)

a. 영적인 생활은 가장 탁월해야 한다(Spiritual living is paramount)(고전 2:14, 갈 5:22-23).
b. 감정의 통제와 기쁨(Emotional control and enjoyment).
c. 기쁨(Joy)(살전 5:17, 요 15:11).
d. 평화(Peace)(빌 4:6-7).
e. 사랑(Love)(고전 13장).
f. 동정(Sympathy)(롬 12:15).
g. 유쾌함(Cheerfulness)(행 27:22).
h. 감사함(Thankfulness)(살전 5:18).
i. 소망(Hopefulness)(롬 15:13).
j. 확신(Confidence)(빌 1:16).
k. 존경(Reverence)(빌 2:12).
l. 의지의 단호성(Firmness of will)(살전 5:21).
m. 목적의 견고성(Stability of Purpose)(딤전 4:16).
n. 교육받은 의지들(Educated wills)(빌 3:16).
o. 신실함(Truthfulness)(엡 4:25).
p. 친절(Kindness)(살전 5:15).
q. 환대(Hospitality)(롬 12:13).
r. 성령충만(Spirit-Filled)(엡 5:18).
s. 인내(Patience)(살전 5:14).
t. 순종(Obedience)(골 3:20).
u. 그리스도를 닮아감(Christlikeness)(롬 13:14).
v. 겸손(Humility)(롬 12:10).
w. 절제(Temperance)(롬 12:21).
x. 거룩함(Holiness)(벧전 1:15-17). 

③ 정신적 교육(Mental Goals)

a. 계도된 정신(An informed mind), 각성된 오성(Awakened understanding), 고무된 이성(Stirred reason), 신속한 판단(Quickened Judgement)(행28:23, 20:1, 9:29,

    19:8-9, 21:19, 24:10).
b. 고양된 사고(Exalted thinking)(빌 4:7-9).
c. 사변적인 것을 배제(Avoid speculation)(딤전 6:20).
d. 사고의 정확성(Exactness of thought)(골 4:6).
e. 사상의 독립성(Independence of thought)(엡 5:6).
f. 연구의 활용(Application in study)(딤후 2:15).
g. 신앙(롬 1:17).
h. 기도(눅 6:12,18). 

④ 사회적 목표들(Social Goals)

a. 훌륭한 시민성(Good citizenship)(롬 13:1-7).
b. 건전한 사업(Sound business)(롬 13:8).
c. 훌륭한 윤리(Good ethics)(롬 13:9).
d. 타인의 권리존중(Respect of the right of others)(롬 14:13).
e. 애린(Neighborliness)(롬 15:1-2).
f. 숙고성(Thoughtfulness)(롬 16:19).
g. 파당이 없음(No partisanship)(고전 1:10).
h. 계급적 적대감을 극복함(No class rivalry)(고전 4:6).
i. 좋은 친구(Good company)(고전 5:13).
j. 송서(Lawsuits)(고전 6:1-7).
k. 근면(Industry)(살후 3:6,10).
l. 자비(Merciful)(롬 12:17).
m. 용서(Forgiving)(엡 4:26).
n. 청지기 정신(Stewardship)(마 6:19-21).
o. 빛(Lights)(마 5:14-16).
p. 소금(Salt)(마 5:13).
q. 행위(Conduct)(마 10:16).
r. 태도(Attitude)(요 2:15-17).

이상으로 Herbert W. Byrne은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위를 닮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교육으로 규정하되 이것을 4가지 측면, 즉 육체적, 영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에서 상술하고 있다.

(4) Lois E. Lebar의 기독교 교육목표

기독교 교육학자 로이스 르바는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로 중심주제(Jesus Christ the central theme)를 설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Christ centrality)을 기독교 교육의 두드러진 구별되는 요소로서의 목표로 삼고 있다.

결국 르바는 살아 있는 말씀인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 참된 기독교적 교과과정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교육의 목표의 전형을 제안하면서 효과적인 교육의 여부를 아래와 같은 목표에 따라 성장과 진보를 측정한다고 했다.

첫째, 학생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함(Guide to Christ).
둘째, 학생을 그리스도에게 세워줌(Build up to Christ).
세째, 학생을 그리스도를 전하게 함(Propagating to Christ).

이상과 같이 역사적으로 변천해 온 기독교 교육의 목적들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교육이 교회 안에 두 가지의 교육철학으로 발전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즉 인간중심의 교육철학(Human centric philosophy of education) 과 하나님 중심의 교육철학(The centric philosophy of education)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수행되는 교육이어야한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시며 통치자이시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인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다(잠 1:7).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의 계시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할 책임이 있다.

프랭크 게벌린은 기독교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있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 인간과 사회에 관여하지만 이들 목적의 창조적 근원은 인간과 사회 안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사회학적 정황에서도 아니고, 실용적 방법도 아니고 계시된 진리 속에 있다."

또한 반 케스터는 기독교교육의 목적을 한마디로 "기독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서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 오직 성경에 계시된 진리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형성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17).

2) 교회 성장학적 입장에.서 본 새신자 교육의 목표

이제까지 새신자 교육은 기독교교육 안에 포함되어 전체적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도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그대로 적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교회가 교회성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교회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신자를 성공적으로 교육하는 데 있다고 단정하고 새신자 교육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새신자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수다한 새신자 교육의 목표가 설정되고 있다. 몇가지 대표적인 교육의 목표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리로이 아임스의 새신자 양육의 목표

리로이 아임스는 그의 책 "제자삼는 사역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은 새신자 양육의 목표를 나열하고 있다. 

- 구원의 확신(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가진 개인의 믿음과 말씀에 바탕을 둔 한가지 이상의 약속에 근거하여 자신의 구원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분명히 말하도록 함). 
- 경건한 시간(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함). 
- 죄로부터의 승리(성령을 의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유혹으로부터 승리를 어떻게 맛보는가를 알게 함). 
- 죄에서 떠남(죄를 피하고 죄로부터 분리되는 단계를 밟도록 함). 
- 그리스도인의 교제(교회에 출석하고 성경공부 모임이나 기도 모임에 참석하도록 함). 
- 성경(성경에 포함된 여러 책들을 배우고 성경의 영감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숨김없이 나눔). 
- 말씀듣기(말씀에 대한 설교와 가르침을 경험하도록 하며 한 주일에 한 가지 정도의 메시지를 필기하도록 함). 
- 성경읽기(조직적으로 성경을 읽게 함). 
- 성경공부(개인 성경공부를 계획에 따라 정규적으로 달성하도록 함).
- 성경암송(정규적으로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적당한 양의 복습을 유지하도록 함).
- 말씀묵상(묵상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게 하고 최근에 암송한 성경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받은 축복들을 나눌 수 있게 함).
- 말씀적용(한가지 혹은 그 이상의 적용내용을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자라는 의욕을 나타내도록 함).
- 기도(최소한 하루에 10분 이상은 매일 기도함으로써 지속적인 기도생활을 보여주며 단체 기도에도 확신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함).
- 개인간증(3분 정도에 걸쳐서 나눌 수 있는 간증들을 작성하되 최소한 한 구절의 성경말씀을 사용하도록 함).
- 그리스도의 주재권(그의 생애 중에서 아직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은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영역을 주님께 드려 주재권을 행하시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드러

   냄).
- 믿음(구체적인 필요 등에 의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는 열매가 나타나도록 함).
- 사랑(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랑의 태도를 행동으로 나타내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게

   함)
- 혀(혀를 다스리는 것이 나타나게 함).
- 시간사용(계획표를 만들고 실천함으로써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면에 발전이 나타나게 함).
-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 대한 성서적인 원리들을 사용해서 한 가지 큰 결정을 어떻게 내렸는가를 나누도록 함).
- 순종(구체적인 성경공부 적용을 실천하는 증거를 통해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배움).
- 성령(성령이 누구신가 그가 우리의 매일의 삶을 어떻게 돕는가를 성경말씀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함).
- 사단-당신의 적을 알라(기도와 성경말씀을 사용해서 사단을 이기고 승리한 개인의 체험을 말하게 함).
- 죄를 다룸(자신의 삶에서 죄가 있는 주요 영역들을 인정하고 승리를 얻기 위한 계획을 나누도록 함).
- 사죄의 확신(말씀에 대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약속에 의지하여 자신의 사죄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함).
- 그리스도의 재림(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깨달은 것을 늘 발표하며 관련 성구들을 나눔).
- 증거(주도권을 잡고 말씀을 사용하며 복음을 명확하게 전함).
- 양육(하나님께서 그에게 양육할 사람을 주시도록 늘 기도함).
- 헌금(주님의 일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헌금함).
- 세계비젼(선교사들과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주 기도함으로써 세계비젼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나타내 보임).

이같이 리로이 아임스가 설정한 목표는 아주 지당하고 필요한 목표들이다. 그리고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성경적이다. 그러나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목표가 너무 많이 나열되어서 산만한 감이 있다. 이렇게 많은 목표 아래서는 커리큘럼을 작성하는 자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가 자주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기 쉽다.

둘째는 목표가 중복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면 목표 2번에 경건의 시간(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말씀을 읽고 기도함)이 있는데 그러한 경건의 시간이 8번, 11번, 13번에도 중복되어 있다.

세째는 목표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 목표가 너무 구체적이어서 새신자 들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두는 답답한 감을 준다. 예를 들면 13번의 기도는 최소한 하루에 10분 이상 매일 기도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목표는 될 수 없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간결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많은 교육내용을 포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네째는 공동체에 대한 참여와 봉사가 결여되어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 인이라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듯이 자기가 처한 공동체 즉 가정, 교회, 사회와 바른 관계를 갖고 참여하고 친교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육목표가 미흡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하나님의 형상화, 그리스도를 닮는 삶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 있지 않다.이런 점들로 리로이아임스의 새신자 교육목표는 좀더 정리 보완되어야 한다고 본다.

(2) 게리 쿠네의 새신자 양육의 목표

게리 쿠네는 그의 책 "개인적 새신자 양육의 원동력"에서 다음과 같은 새신자 양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1)구원의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섬
새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그의 구원의 확신과 몇 가지 기본적인 교훈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2)기본적인 원리에 굳건히 섬
새신자의 생활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대한 많은 근

본적인 진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즉 기도생활의 향상과 친교에 적극적인 참여와 전도방법에 대한 기본적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3)기본적인 교리로 안전함을 얻음
성경적인 견고한 기반 위에 서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교리에 견고한 기초를 세우는 일은 집단적으로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4)그리스도를 닮아감
새신자의 생활에서 점진적으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같은 일은 성령충만한 생활의 기본 요소에 대하여 교육시키고 상담을 한 결과인 것이다.

5)하나님의 말씀에서 자립적으로 응용하고 은혜를 받게 함
새신자의 영적 생활이 자립적으로 성장하도록 키우는 것이다. 이 양육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경말씀으로 문제해결을 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6)다른 사람의 생활에서 처음 목표들이 재생산되도록 함
모든 개인적 새신자양육의 기본 목표는 증가하며 생산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새신자를 양육할 때 생산하는 전도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게리 쿠네의 목표는 철저하게 성경적 지식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싶다. 그리고 목표의 명확성과 간결성에도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역시 리로이 아임스의 목표에서 지적했듯이 공동체 생활에 대한 목표가 설정되지 않았다. 즉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사회에서 어떻게 바른 관계를 가지고 참여하며 사귀며 봉사하며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제 시가 없다.

(3) 최원진의 새신자 육성 목표
최원진목사는 그의 박사논문 "한국교회의 새신자 육성연구"에서 새신자 육성목표를 세 가지로 밝혔다.

첫째, 확신이다.
새신자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게 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데 있다. 이렇게 될 때 삶 속에서 불안감을 제거하고 온갖 미신과 그릇된 이방종교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장이다.
새신자를 계속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유치하거나 나약한 신앙에 넘어지기 쉬울 것이다. 새신자를 성장케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계속적으로 그를 모시고 그의 말씀 안에 거하며 살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세째, 재생산이다.
새신자 양육에 있어서 확신시킨 후에는 계속해서 성장시켜야 하고 더 나아가 제자가 되도록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즉 새신자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상 최원진의 확신, 성장, 재생산이라는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간결 명확할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성 목표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첫째는 과연 이 세 가지 목표가 우리가 신자들을 교육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다 포함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공동체 생활에 대한 지도는 어떤 목표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물론 선교적인 차원이나 교회 성장의 차원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차원에서도 재생산이 교육의 최종 목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신자 양육의 최종적인 목표가 선교적인 차원이나 교회성장의 차원에서 재생산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교육학적인 차원에서는 성화
(Sanctification)와 바르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들어야 할 것이다.

2. 이상적인 새신자 교육의 목표

기독교 교육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목표와 교회 성장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목표가 지금까지 소개한 새신자 교육목표의 두 가지 입장이다.

위의 소개한 기독교 교육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목표들은 구원이라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명중치 못한, 지나치게 인간중심적(Human centric)이고 사회중심적(Socio-centric)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언급한 프랭크 게벌린(F. Gaebelein)의 말 "기독교 교육이 인간과 사회에 관여는 하지만 이들 목적의 창조적 근원은 인간과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학적 정황도 아니고 실용적 방법도 아닌 계시된 진리에 있다."는 데 동감한다. 진정한 교회교육의 관심사는 복음을 통하여 중생한 사람은 결코 죽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것을 믿도록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간의 모든 가치는 하나님의 계시의 빛 안에서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 생애에서만 부여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 교육은 이상의 관계를 잘 보존하고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경원하거나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가 기독교 교육의 중심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인간과 사회는 기독교 교육의 결과요, 또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교육을 통해서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면 바른 인간으로 살 수도 있고 사회에서도 바르게 적응하고 봉사하고 공헌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교회 성장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목표들은 지나치게 선교적인 차원과 교회성장의 차원에 집중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교회성장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들은 절대 다수가 그리스도의 제자화를 통한 재생산에 두고 있다.

물론 새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또 다른 제자를 낳으므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은 교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일은 새신자들을 잘 교육시켜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냄으로 얻어지는 바람직한 결과이고 수단일지언정 새신자교육의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신자 교육의 근본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데 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은 바울 서신에 나타난 지상목표였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9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했다.

그는 또한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서 말하기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르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노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성장학적 입장에서의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성경적으로 문제를 삼아야 한다.

위에 언급한 목표들은 목표와 결과를 혼돈하고 있다. 그러면 이상적인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논문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종래 기독교 교육학적 입장에서 수립한 인간중심적이고 사회중심적인 새신자 교육목표도 지양하고 또한 최근에 교회성장학적 입장에서 수립한 그리스도의 제자 양성을 통한 재생산적인 새신자 교육목표도 지양한, 성경에 나타난 구원론적 입장에서 새신자 교육목표를 마련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 즉 영생이다. 신약 전체를 대표하고 작은 복음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구원이기 때문에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도 구원에 두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서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를 발견한다. 즉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종말적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옛날 펠라기우스파나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내세우고 인간의 능력과 공로를 내세우는 어리석은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력주의 구원관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원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복된 생명을 동경할 때 완성된다는 뜻이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우리 편에서는 다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동하도록 예비해 주실 때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구원을 이루라"고 한 말은 "구원을 끝까지 간수하라" "구원을 완성하라"는 말로서, 이 말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아무 할 일도 없이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밀한 자극을 통해서 우리가 충동을 받아 기쁨으로 일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성령의 사역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을 거저 받으라는 의미일 뿐이다. 물론 인간편에서 순종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주석가 알포드(Alford)는, 인간의 구원이란 믿음으로 의인됨에서 시작되나 성령으로 성결케 되는 과정, 즉 거룩한 복종과 그리스도의 완전에로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성경주석가 벴겔은 그리스도의 구속사

역은 십자가의 사역이며 끝이났다. 그리고 그 사역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위대한 성화의 사역을 행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자리에 이르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사역에 순종함으로 오는 성화(Sanctification)를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그러나 아무런 동작없이 가만히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여 주심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유효하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무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절대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사역에 순종하므로 이루어지는 성화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롬 8:29),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엡 4:15),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골 1:28),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엡 4:15), 그리스도를 닮는 것(엡 5:1)을 뜻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존 칼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교회를 통하여 어떻게 양육하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교회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품 안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 교회의 성무로서 어린 신자를 양육하시며 또한 그들이 성숙한 신자가 되어 천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성애와 같은 배려로 그들을 기꺼이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육적 사명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고 아직 유아상태에 있는 새신자들을 신앙의 목표인, 즉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목표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은 무엇인가? 이같은 새신자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면 새신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복음에 접촉하여 회개와 죄사함을 받게 하고 철저한 성경적 사상과 신앙을 형성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경적 사상과 신앙이 단순히 지식과 관념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고 그 신앙 생활이 자신의 내적 상태로만 그치지 아니하고 자기가 처해 있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교회 안에서 바른 이해와 관계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교회생활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고 세속 사회에서도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모든 불의와 악의 세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의롭고 선한 일에 봉사를 솔선수범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특히 새신자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제자의식과 소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므로 자신 혼자만 그리스도의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 동참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리하여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지상에는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눅 2:14)

이상의 새신자 교육의 목표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술해 보고자 한다.

1.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와 생명의 갱신

유감스럽게도 종래에 수립된 새신자 교육의 목표에는 회개가 빠져 있다. 그러나 회개함과 죄사함과 거듭남이 없이는 새신자 교육이 가능할 수 없다. 회개는 기독교 교육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새신자들로 하여금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과 거듭남을 체험하도록 하여 생명의 갱신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도록 교육해야 한다. 복음을 요약하면 "회개"와 "죄사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눅 24:47). 그러므로 신앙을 논할 때 이 두 가지 요점을 빼놓는다면 불모와 불구가 되고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은 당연하다.

회개함과 죄사함은 생명의 갱신이요, 하나님과의 값없는 회개로서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요,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에 천국 복음을 외치신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는 것이었고 또한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고 외쳤다(행 2:38).

진실로 죄인이 사단의 전제, 죄의 멍에, 죄악의 비참한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한 죄사함이 아니고 서는 복음이 주는 은총을 누릴 수가 없다.

회개에는 자신을 죽이는 것과 새로 사는 것(Mortificatio et Vivificatio)의 양면이 있는데 이것은 중생으로부터 일어나는 거룩하고 경건히 살고자 하는 욕구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죽는 것으로 지극히 성화된 삶으로 들어가는 원동력이다.

또한 회개의 열매는 첫째, 하나님께 대한 경건의 의무요. 둘째, 사람에게 대한 사랑의 의무요. 세째, 자신에 대한 중생, 성결, 순결 등으로 회개의 과정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도 가질 수 없고 모든 사물과의 바른 관계도 가질 수 없다.

물론 회개는 성령께서 시키시는 일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을 회개시키는 데 성령의 도구가 되어 회개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회개의 동기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2. 성경을 통한 철저한 기독교 사상과 신앙형성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스도의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 또한 모든 선과 악의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이외에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마 22:29). 그러므로 먼저 성경을 철저히 가르침으로써 새신자들로 하여금 온전한 기독교 사상과 신앙을 형성시켜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철저하게 성경적 사상과 신앙을 형성한 개인이나 민족은 어떠한 위기와 역경 중에서도 망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 민족들에게는 성경공부가 공동체의 관심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성경공부를 통하여 철저하게 야웨신앙과 사상을 형성시켜 위기와 절망과 와해의 와중에 있는 민족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켰던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를 성장시키고 퍼져 나가게 한 것도 역시 성경공부의 힘이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성경을 가르쳤고 교회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견고해져 갔다.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특징있는 모습은 성경공부를 통하여 신자훈련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부흥과 발전을 대대적으로 초래하게 되었 다.

확실히 사경회는 내적으로는 교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는 데 기여하였고 외적으로는 전도운동을 통하여 교회의 양적 증가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경회는 교회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진실로 새신자 양육이란 전도의 열매를 보존하게 하고 번식시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성경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안에 있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신앙은 뿌리없는 나무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최근에 한국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성경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떤 방언이나 입신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무속적 신앙으로 잘못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극히 다행스러운 것은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베델성경공부나 엠마오성경공부, 네비게이토성경공부, 두란노성경공부, 트리니티성경공부 등 수다한 성경공부 교재와 방법이 도입되어 각 교회마다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3. 그리스도의 생활훈련(계속적 회개훈련)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이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지식을 그 환경의 생활에서 착실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새신자 양육의 목표는 모든 신자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며 또한 모든 비 성경적인 생활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새신자들은 구원의 확신, 죄에 대한 승리, 내세의 소망 등의 교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교리를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가도 훈련받아야 한다.

또한 기쁨과 감사와 평안, 기도, 사랑, 용서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아 름다운 윤리들도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에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교리와 생활, 지식과 행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이 아닌 것으로 잘못 교육된 것이다.

야고보는 이런 신자들을 향하여 죽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14,17,26).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육을 좀더 구체적으로 열거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 죄를 멀리하는 생활, 불의와 거짓을 미워하는 생활,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활, 경건하고 성실한 생활, 규칙적인 기도생활과 성경연구의 생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생활, 예배와 찬송생활, 봉헌생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 절망 중에 소망을 잃지 않는 생활, 기쁨과 감사의 생활 등등 성경에서 요구되는 삶을 뜻한다.

4.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훈련

그리스도인은 두 세계의 시민이다. 한편은 천국시민이고 또 한편은 그가 처한 사회의 시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세계의 시민으로서 주어진 사회생활을 바르게 적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면서(마 5:13-16) 세상에서 너희의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라고 권면하셨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로서 세상에서 너희의 생활의 향기를 나타내라고 권면했다.

이와 같이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로서 바르게 적응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인간육성이 또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교육의 또 하나의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인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에 바르게 적용하며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즉 가정에서는 어떠한 태도로 생활할 것인가? 친구와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와 사회와 세계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Paul H. Vieth는 기독교 교육의 여섯번째 목표를 "성장하는 개인들에게 인생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석을 내리도록 지도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이러한 해석 위에 수립된 삶의 철학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사회를 무관심하게 보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회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거나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생활에 건설적으로 적응하며 사회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공헌해야 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훈련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새신자들로 하여금 세계와 현실사회에 대한 올바른 신앙적 자세를 확립시켜 주어야 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나라와 사회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부패하고 타락해 있는 범죄한 백성들이요, 허물진 나라와 사회인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에언한 대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밑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서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4-6)고 한 그 세대와 나라와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임을 직시하고 이러한 배도적이고 불신앙적인 사회에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자세를 가지고 살아 나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5.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훈련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며(엡 1:22-23)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엡 5:30) 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해야 생명이 있고 성장이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참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5:1-8). 이렇게 볼 때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바른 관계를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고, 믿음의 성장을 도모하는 곳이며,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어 참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엠버슨(Talmadge R. Amberson)은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곳이며 거기서 의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양육받고 제자가 되고 보내심을 받는 곳이라"고 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고 그의 몸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은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듯이 교회가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지체일 때 각 지체가 서로 연합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몸은 자라게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새신자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바르게 성장하도록 교회생활을 훈련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의 큰 병폐 중의 하나로서 교회생활을 무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같은 교육의 목표는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신자들이 기도원에서, 가정제단에서, 연합부흥회 장소에서 은혜받고 즉시 교회로 돌아가서 바른 교회생활로 신앙생활을 연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도원이나 가정제단 같은 곳을 배회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것은 바른 신앙의 성장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신앙생활이 아니다.

바른 신앙의 성장이란 새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바르게 교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다. 즉 바른 예배생활, 바른 기도생활, 바른 봉사생활, 바른 성도의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교회는 그들의 교회생활을 훈련해야 한다.

6. 그리스도인의 제자훈련

새신자 양육의 변할 수 없는 목표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이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 믿음의 자녀들을 재생산하는 데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즉 새신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양육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느니라."(딤후 2:2)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새신자 양육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 복음의 재생산에까지 도달해야 함을 확실히 알게 된다.

리벧(Rolard Q. Leavell)박사는 오늘날 신자 중 95%의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전도할 줄 모르고 단지 극소수의 신자만이 그리스도의 제자된 지각과 소명을 가지고 전도하고 있다고 말하며, 바로 여기에 이제까지의 새신자 양육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쿠네는 교회가 1년에 한 사람씩만 제자훈련을 바로 시킨다면 6년 이면 64명의 제자를 얻게 되고 매년 1600명에게 전도할 수 있다는 계산을 산출하고 있다. 이것은 제자훈련과 재생산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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