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인연 담은 편지 

 

“두 아들 천리밖 있다던 다산, 죽으면 염습해달라 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과 그가 가장 아낀 제자로 알려진 치원 황상(치園 黃裳·1788∼1870)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굴됐다.

다산의 아들 정학연(丁學淵·1783∼1859)이 황상에게 보낸 친필 편지 22통과 다산의 손자 정대무가 쓴 편지 1통,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아들 김상무가 보낸 편지 2통 등을 묶은 서첩 ‘치원진장(치園珍藏)’, 황상의 산문집 ‘치원소고(치園小藁)’와 초서집(초書集·베껴 적은 책) ‘치원총서(치園叢書)’ 등이다.

이 자료는 황상의 사촌이자 함께 다산에게 배웠던 황지초(黃之楚)의 5대손 황수홍(73) 씨가 보관해온 것으로 최근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에게 연락해 그 존재를 알렸다.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다산과 황상의 인연을 다룬 책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을 펴낸 바 있다.

1802년 다산은 유배지인 전남 강진의 주막집에 서당을 차린 후 지방 아전의 아들인 15세 소년 황상을 만나 제자로 삼았다. 이후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의 ‘삼근계(三勤戒)’를 가슴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전념했다. 정학연과도 1805년 강진에서 처음 만난 후 학문과 마음을 나누는 벗으로 지냈다.

‘치원진장’에 실린 정학연의 편지에는 황상에 대한 그리움과 곤핍(困乏)한 살림에 지병으로 고생한 사연이 구구절절 담겨 있다. 정 교수는 “정학연의 문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친필 자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특히 책 중간에 수록한 정황계(丁黃契)의 계권(契卷) 원본은 정씨와 황씨 가문의 우의를 약속한 증서로, 1848년 정학연과 황상이 두 벌을 작성해 한 벌씩 나눠 가졌다. 정씨 집안이 보유한 증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다.

‘치원소고’에는 황상이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 ‘상유산선생서(上酉山先生書)’가 실려 있다. 여기엔 다산의 서당이 있던 주막집 앞에서 황상이 아이들과 공차기를 하다 다산을 처음 만난 과정과 두 사람이 사제로서 맺어온 인연이 생생히 나타난다.

“마치 (다산의 가르침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 같으니, 어찌 (제 마음이)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같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장가 들 때는 ‘네 예장(禮狀)은 나 아니면 누가 쓰겠니’ 하시고는 써주셨지요.

또 선생님은 ‘내가 능히 하늘 해를 보지 못한 채로 이 땅에서 늙어 죽게 된다면, 두 아들이 모두 천리 밖에 있으니 염습하는 절차는 너밖에 행할 사람이 없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다산이 칭찬한 황상의 글 ‘길기론(吉氣論)’과 정학연이 칭찬한 황상의 기행문 ‘유송악산기(遊松岳山記)’ 전문도 ‘치원소고’를 통해 처음 전모를 드러냈다. 또 다산의 또 다른 제자로 알려진 김세준(金世俊)의 전기도 실렸다.

초서집 ‘치원총서’ 두 책은 황상이 ‘장자(莊子)’와 ‘이아주(爾雅注)’를 베껴 쓴 것이다. 황상은 다산의 말에 따라 평생 책을 베껴 적는 초서 작업을 했다. 쌓아둔 초서집의 높이가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정 교수는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통해 다산과 황상 두 사람 및 두 집안의 인연은 물론이고 다산학단(茶山學團)의 모습과 황상 문학의 진면목도 새롭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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