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지리학의 중요성

 

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 오늘날의 세계 지도상에서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들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성서연구는 성서의 지리적 배경 연구와 직결된다. 현대 지리학은 단순한 지형 및 자연 지리의 범위를 넘어서 민족들의 이동, 도시의 발달, 경제와 산업 등을 다루는 인문 및 사회지리, 그리고 시대별 주거 분포와 중요한 사건들, 특히 전쟁 등에 대한 지리적 배경을 다루는 역사지리까지도 포함한다.

 

구약성서의 맨 처음 사건인 천지창조와 에덴동산,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 등은 모두가 비슷한 지리적 문화적 여건을 지닌 메소포타미아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출애굽 사건과 구약성서의 시가문학, 지혜문학, 특별히 왕정 초기의 행정체제나 물질문명들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서의 역사는 고대 근동의 지리적인 관점에서 ‘바빌론에서 바빌론으로’와 ‘이집트에서 이집트로’라는 두 가지 지리적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서기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하류지역의 전통적인 바빌로니아 세력권의 중심도시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시리아의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오면서 구약의 역사가 시작됐다.

 

나아가 서기전 586년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면서 구약역사가 마감된다. 서기전 13세기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시작이었다면, 서기전 608년경 여호아하스 왕이 이집트로 잡혀가고(왕하 23:34),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대소 백성과 군대장관들이’ 이집트로 망명함으로써(왕하 25:26) 구약의 역사가 마무리된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소아시아(터키)의 다소(Tarsus) 출생의 바울은 기독교인 박해의 임무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중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시리아의 안디옥, 소아시아의 버가, 이고니온, 에베소, 밀레도, 키프로스의 살라미스, 파포스, 그리스의 네압볼리,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따라서 성서에 언급된 지역은 오늘날의 국가들 기준에서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키프로스,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등 모두 12개국에 달한다. 

 

계절, 강수(precipitation), 기온

 

이스라엘은 북위 30-33도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북반구의 온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일년 중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이스라엘의 계절 변화는 다른 지역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일반적인 사계절보다는 건기(dry season)와 우기(wet season)의 두 계절로 양분된다. 좀 더 정밀하게 분류한다면 이 두 계절 사이의 한 달 또는 한 달 반 정도는 그 성격상 환절기(transitional season)에 가깝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의 건기는 4-9월이고 우기는 11-2월인데 나머지 3월과 10월을 각각 건기와 우기 사이의 환절기로 볼 수 있다.

 

기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 겨울철 날씨를 보이고 있으며 북서풍에 실려 온 비구름들이 해안 평야와 쉐펠라, 그리고 중앙 산악 지대에까지 비 또는 눈을 뿌린다. 강수량은 북동에서 남서로 이어지는 경사 선을 중심으로 지중해에 가까울수록 비가 많이 내리며 남동쪽의 광야에 가까이 갈수록 비가 적어진다.

 

연중 강수량은 헤르몬 산에는 1600밀리미터이며 갈릴리 산악 지대는 800-900밀리미터, 사마리아 지역은 600-700밀리미터, 예루살렘과 헤브론 지역은 400-500밀리미터, 브엘세바 지역은 200-300밀리미터, 그리고 남쪽의 네게브 광야는 50-100밀리미터 정도이다. 중앙 산악 지대에는 해마다 겨울철에 한 두 차례씩 눈이 내리기도 한다. 
 

시리아-아프리카 단층(the Syro-African Rift)

 

단층은 지구 내부의 뜨거운 용암과 마그마의 상태가 지표면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골짜기를 형성하는 지속적인 작업에 의한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골짜기가 바로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인데 실제로는 터키의 남동부 아마누스(Amanus) 산맥에서부터 출발하며 시리아의 오론테스(Orontes) 강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3000미터 이상의 레바논 산지를 서쪽의 레바논 산맥과 동쪽의 안티 레바논 산맥으로 갈라놓았다.

이 둘 사이를 베카 골짜기, 또는 베카 평야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헤르몬 산(해발 2814미터)은 바로 안티 레바논 산맥의 남쪽 끝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베카 골짜기에는 남쪽으로 흐르는 리타니(Litani) 강이 있으며 이 강은 서쪽으로 꺾여서 지중해로 빠져 나간다.

또한 요단 강의 한 원류인 스니르 하천도 바로 이 베카 평원에서 발원하며 이스라엘 지역에서의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은 단에서 발원하는 요단 강을 따라 갈릴리 호수로 이어진다. 갈릴리 호수의 수면 높이는 해저 210미터이며 이곳에서부터 남쪽으로 흐르는 요단강은 해저 400미터의 사해까지 직선거리 105킬로미터를 흘러간다.

 

 사해 남쪽은 아라바 광야로 불리는 낮은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해까지는 다시 해발 0-100미터 정도로 높아진다.

아라바가 원래는 사해와 마찬가지로 낮은 골짜기였지만 서쪽의 네게브 산지와 동쪽의 에돔 산지에서 우기에 가끔 흘러내려 오는 건천(wadi)들로 인해 덮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은 홍해를 따라 남하하여 동부 아프리카를 지나 모잠비크의 올두바이(Olduvai) 골짜기까지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러한 남북의 길이가 6000킬로미터나 되는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지형지리의 특징들이 이 단층에 의해 좌우된다.

 

 

이스라엘의 물 문제는 이 곳에 이용할 만한 큰 강이 없다는데서 비롯된다.

일년 내내 흐르는 상시천(perennial river)이 있는 나일 강의 이집트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비록 요단강, 야르묵 강, 야르콘 강 등이 있지만 수량도 적거니와 주변에 대규모 곡식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야가 없는 등 대부분 우기의 비에만 의존하는 실정이어서 소규모의 농사만 가능한 곳이다.

 

1년 동안 이스라엘에 내리는 약 100억 톤의 빗물 중에서 70퍼센트 정도는 증발되고 5퍼센트는 지중해나 사해로 흘러가며 나머지 25퍼센트의 물은 지하로 스며든다.

대부분 석회암 지대인 이스라엘에서는 석회암이 물에 녹아 생긴 지하의 동굴과 공간들이 많이 있는 편이어서 스며든 강수량은 지하수의 수맥(aquifer)을 이루며 흐르다가 샘으로 지상으로 표출된다. 

 

지리적 구분 및 경계 

 

이스라엘은 오늘날 골란고원과 요단강 서안(West Bank)을 합친 전체 국토의 넓이가 3만8천 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40퍼센트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이 곳에는 한대지방의 얼음으로 뒤덮인 툰드라 지역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류의 지리적 조건들이 존재하는 매우 독특한 나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알맞은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쉐펠라(Shephelah)의 농경지대, 일년 중 절반은 눈에 덮여 있는 헤르몬(Hermon) 고산지대, 삼림이 빽빽하게 들어찬 갈릴리(Galilee) 산악지대, 온통 모래뿐인 남서부의 사막지대, 그리고 전국토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유대 광야, 네게브(Negev) 광야, 아라바(Aravah) 광야 지대,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겨울철에는 비가 오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는 해안 평야지대 등의 다양한 지리적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인 특성으로는 산지와 평지로 양분되지만 기후 면에서는 광야가 별도의 지역으로 첨가될 수 있다. 

 

지역별 구분

 

1. 평야(Plains) 

 

평야는 물만 공급되면 대규모의 밀, 보리 등의 곡식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 지역의 문명의 발달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실제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보더라도 평야를 지배하는 세력이 가나안 전체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 해안 평야는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시리아, 나아가 힛타이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로가 통과하는 곳이어서, 예로부터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자주 발생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가나안에 정착할 때에도 평야를 차지한 가나안 민족, 특히 이 중에서도 블레셋 민족이 이 지역의 중심 세력이었다. 이스라엘의 평야는 그 위치상으로 악고 평야, 샤론 평야, 블레셋 평야 등의 해안 평야와 이즈르엘 평야, 요단 평야 등의 내륙 평야로 구분된다. 

 

2. 산지(Mountains)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산지와 골짜기가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서의 배경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산지는 북서쪽의 갈릴리 산지와 중앙 산지이며 요단 건너편도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의 산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례대로 갈릴리 산지, 헤르몬 산지, 바샨과 골란, 사마리아, 유다, 쉐펠라, 네게브 산지 등으로 구분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착한 가나안 땅은 대부분 산지에 속한다. 왜냐면 이미 가나안의 비옥한 평야지대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정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3. 광야(Deserts) 

 

이스라엘 전체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광야는 일년 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서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부적합한 땅이었다. 광야는 지형적으로는 산과 골짜기가 있고 평야도 있지만 비가 오지 않아서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땅이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요단 광야, 유대 광야, 아라바 광야, 그리고 남부의 네게브 광야 등으로 구분된다.

 

지역지리(Regional Geography) 

 

이스라엘의 각 지역은 지리학의 여러 분야의 관점에서 차례대로 분석될 수 있다.

우선 그 지역의 자연 조건들과 지형적 특징들을 알아보고, 인간의 거주 면에서의 인문 지리와 생업에 관계된 사회 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대별 그 지역의 역사적 배경들을 확인하는 역사 지리 등의 관점에서 비로소 특정 지역에 대한 지리적 분석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지역 지리는 특정한 지리적 한계와 특정한 시대적 범위 내에서 연구하게 된다.

 

1. 헤르몬(ןומרח) 산지 

 

헤르몬은 성서에 모두 13회 등장하며 ‘거룩한 장소’를 의미하는 ‘헤렘(םרח)’에서 유래되었다.

‘바알 헤르몬(ןומרח לעב)’ (삿 3:3). 서기전 2세기 말에 편집된 구약성서의 위경 중의 하나인 에녹 1서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은 헤르몬 산으로 내려와서 다시는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어기는 자를 저주하기로 결정한 데서 헤르몬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구약성서에서 헤르몬은 시돈 사람들에 의해 ‘씨르욘(ןꖼרꙶ)’(신 3:9)이라 불렸고 또는 씨온(ןꔠישׂ)(신 4:48)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모리 사람들은 헤르몬을 ‘스니르(רינשׂ)’(신 3:9)라 불렀으며 안티-레바논 산지 전체를 의미했다.

 

타르굼과 탈무드에서 헤르몬은 아람어로 ‘투르 탈르가(אגלת רוט)’로 기록됐는데 이는 ‘눈덮힌 산’이라는 뜻이다. 아랍어로 헤르몬은 ‘제벨 에탈르지(雪山)’, 또는 ‘제벨 에쉐이크(노인의 산)’로 불린다.

 

헤르몬은 안티-레바논 산맥의 남쪽 끝에 위치하며, 폭 17-23 킬로미터, 길이 50 킬로미터의 산지로 전체 면적은 약 1,0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1967년 6일 전쟁의 결과 헤르몬 산지의 7 퍼센트 지역이 이스라엘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시리아와 레바논에 반반씩 분포되어 있다.

 

헤르몬 산지의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2814 미터로 단 북동쪽 20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발 2000 미터 이상 지역은 남북으로 모두 22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헤르몬이 고산지대인 만큼 사방의 경계는 매우 분명하다. 북쪽 베카 평원, 남쪽 싸아르 하천, 동쪽 다메섹 고원, 서쪽의 스니르 하천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헤르몬 산지의 남북으로 뻗은 능선은 오늘날 서쪽의 레바논과 동쪽의 시리아와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헤르몬 산지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골란 고원과는 달리 석회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무가 거의 없는 바위산이다. 이스라엘 쪽의 헤르몬 산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들에 의해 서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씨온 산지(도브 산), 씨리온 산지, 그리고 헤르몬 산지 등으로 구분된다. 헤르몬 산지는 쥬라기(Jurassic period: 1억9천5백-1억3천5백 만년전)에 시리아-아프리카 협곡의 단층 작용에 의해 4000 미터 높이의 산지로 형성되었다가 풍화작용에 의해 차츰 깎여져 오늘날의 높이에 이르게 되었다.

석회암 지대인 헤르몬 산지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의 동굴을 이루면서 지표면이 형성되는 전형적인 ‘카르스트(Karst)’ 지형을 이루고 있다.

 

카르스트(Karst) 지형 

 

카르스트 지형은 빗물의 이산화탄소에 의해 석회암이 녹으면서 화학적인 부식작용을 일으켜 형성되는 지형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유래한 카르스트 지대는 대부분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카르스트는 초창기에는 지표수가 흐르면서 골짜기를 이루는 ‘라삐예(Lapiés)’ 지형을 이루다가, 차츰 발전하여 지하의 동굴과 물이 지하로 빠지는 소규모의 호수(Uvala) 등이 형성된다.

초창기에는 움푹 패인 구덩이인 돌리나(Doline)가 형성되어 차츰 규모가 큰 호수인 폴리예(Polje)로 발전된다.

 

강수량

 

헤르몬 지역에는 연중 강수량이 해발 1200미터 지점의 마즈달 샴스에는 1,350 밀리미터, 그리고 미쯔페 호란에는 1600 밀리미터에 달한다.

헤르몬 산지의 우기는 9월부터 5월까지로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보다 약 3 개월이 더 길다. 대부분은 눈으로 내리며 4월부터는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하지만 헤르몬의 정상 부분의 계곡에는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거역사

 

1. 헤르몬 산지의 주거는 서기전 4세기 그리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해발 1500 미터 지점까지 올리브 틀의 유적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대략 이 높이까지 올리브나 포도 재배가 가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이 곳에는 마즈달 샴스를 중심으로 호두, 사과, 앵두 등도 재배한다. 성서 시대에는 눈 화장품인 콜(Kolh)이 헤르몬 산지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오늘날 이스라엘 쪽의 헤르몬 70 제곱킬로미터는 모두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스라엘 유일의 스키장은 해발 2080 미터 지점에서 1600미터 지점까지의 경사면에 개발되었다. 헤르몬 유일의 이스라엘 정착촌인 모샤브 느베 아티브는 해발 960 미터 높이에 위치하며, 1969년에 건설되었고 헤르몬 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 원주민인 두루즈 마을은 해발 1100-1200 지점에 위치한 마즈달 샴스와 아인 키느아 등이 있다.

 

2. 바샨(ןשׁב) 

 

오늘날 골란 고원이라고도 불리는 바샨(ןשׁב)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 지대로서 아람어로 ‘비트난(ןנתב)’ 그리스어로는 ‘바타네아(Βαταναια: Batanaea)’라고 불렸다. 아랍어 지명 ‘바타네’는 고원보다는 평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라틴어로 현무암을 바사니타스(basanitas)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샨 지방의(תינשׁב)’라는 형용사에서 유래되었다. 영어로는 현무암을 바살트(basalt)라 부른다. 바샨의 지리적 경계는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 기슭, 남쪽으로는 야르묵 강, 동쪽으로는 하우란 산, 서쪽으로는 갈릴리 호수 등이다.

 

바샨의 면적은 3,500 제곱킬로미터이며 이중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 고원은 1,120 평방킬로미터이다. 바샨은 동쪽의 하우란 산지와 트라코니티스(Traconitis), 중앙의 바샨 평원, 그리고 서쪽의 골란 고원 등으로 구분된다. 바샨은 신약시대에는 헤롯 빌립의 왕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3. 갈릴리 산지
갈릴리 산지는 이스라엘에서 숲이 가장 많이 우거진 지역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 작은 상수리 나무와 소나무 숲이 우거졌으며, 평균 해발 600-800 미터의 고지에다 연간 강수량도 800-1000 밀리미터로 넉넉한 편이어서 목축을 주로 하고 산 사이의 골짜기 평야에는 대규모의 밀, 보리 농사도 가능한 지역이다. 갈릴리의 지리적인 북쪽 경계는 리타니(Litani) 강, 남쪽은 이즈르엘 평야, 동쪽으로는 요단 골짜기의 평지, 서쪽은 지중해변의 평야 지대이다.

 

리타니(Litani)강은 그리스어로는 레온티스(Leontes)로 불렸으며 베카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갈릴리는 위치에 따라 북쪽의 비교적 높은 지대인 상 갈릴리(Upper Galilee)와 남부의 하 갈릴리(Lower Galilee)로 구분되며 이 둘 사이의 경계는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아무드 하천에서 지중해변의 악고 평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베잇트 케렘 골짜기이다.

 

지역명으로서의 갈릴리는 서기전 15세기 이집트의 툿트모세 3세의 가나안 원정 명단에 ‘Krr(케레르)’로 처음으로 등장한다 (Aharoni 1979: 162; Ahituv 1984: 94). 갈릴리 전체의 면적은 약 2260 제곱킬로미터이다.

 

가. 상 갈릴리(Upper Galilee)  

상 갈릴리는 이 지역 최고봉인 해발 1206 미터의 메론 산(Mt. Meron)을 비롯해서 800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이다.

이사야 9:1의 ‘이방의 갈릴리(םיוגה לילג)’가 상 갈릴리를 의미한다는 학설도 있다. 상 갈릴리는 갈릴리 전체 면적의 2/3인 1500 제곱킬로미터이며 이 중에서 오늘날 레바논에 810 제곱킬로미터,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에 속한 상 갈릴리 지역은 690 제곱킬로미터이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경계는 제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영국과 시리아-레바논을 차지한 프랑스 사이의 협정(싸익스-삐꼬: Sykes- Picot)을 계기로 1920년대 초에 확정된 것이다.

 
나. 하 갈릴리(Lower Galilee) 
 

하 갈릴리는 해발 400-600 미터 정도의 야산 지대로서 면적은 전체 갈릴리의 1/3인 760 제곱킬로미터이다.

갈릴리 산악 지대의 남부에는 지중해에서부터 요단 계곡에 이르는 이즈르엘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곳이야말로 샘과 하천의 물이 풍부하고 연간 기온도 온화해서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이다. 

 

4. 샤론(ןורשׁ) 

 

가. 지리적 배경  

샤론은 이스라엘의 서쪽 지중해안과 동쪽 산악지대 사이에 위치한 해안 평야 중의 한 부분이다.

샤론 평야의 남쪽으로는 블레셋 평야가 이어지는데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샘에서 흐르는 상시천이자 전통적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의 장애물인 야르콘(Yarkon) 강이다. 샤론의 지리적인 북쪽 경계는 해발 300-400미터 높이의 갈멜 산이지만, 솔로몬 시대의 제 3지방 행정구역에서 항구 도시 도르(Dor)가 빠진 점으로 미루어 타니님 하천으로 한정하고 있다.

샤론의 남북의 길이는 50킬로미터, 그리고 동서의 폭은 평균 17킬로미터 정도로 전체 면적은 약 850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샤론은 지형적으로 볼 때 남북으로 평행되게 달리는 세 개의 통로와 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몇 개의 하천들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서쪽의 통로는 바닷가에서 형성된 낮은 사암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천들의 경로를 막아서 늪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샤론 지역은 1950년대 이전까지도 늪지의 말라리아 모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였다.

 

가운데 위치한 남북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붉은 모래로 이루어진 40-50미터 정도로 솟아 있는 낮은 구릉지대이다. 가장 동쪽의 통로는 중앙 산악지대로 이어지는 야산으로서 좋은 토양으로 이루어진 비옥한 지대이다.

 

지중해 쪽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통로는 척박한 사암과 모래지역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다만 키가 작은 상수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동쪽의 통로는 폭이 6킬로미터쯤 되는 지역으로서 물이 잘 빠지는 비옥한 농토인데 주로 북부에 잘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 예로부터 밀, 보리 등의 곡물 재배가 가능했고 성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선화가 피어 있는 샤론은 바로 이 지역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지역을 따라 남쪽의 이집트에서부터 북쪽의 시리아로 이어지는 국제 무역로인 해안길이 지나고 있는데 샤론과 북부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므깃도로 가는 세 갈래의 길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남쪽의 길은 갓(Gath)에서 갈라져서 하데라 하천의 상류를 따라 동쪽의 도탄과 이블르암을 지난 이즈르엘 평야로 이어지며, 중간의 길은 이론 골짜기를 따라 아루나를 통과하여 바로 므깃도 남쪽으로 나오게 되며 가장 북쪽의 길은 요크네암으로 연결된다. 

 

나. 주거 역사  

샤론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지리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도시들은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 시리아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로인 소위 ‘바다의 길(Via Maris)’과 중앙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쪽의 지중해로 흐르는 하천들을 따라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샤론 지역의 대표적인 고대 도시들은 초기 청동기 시대의 아펙을 비롯하여 중기 청동기 시대에는 대부분의 도시들인 소코(Socho), 텔 즈로르(Tel Zeror), 아펙(Aphek), 텔 메보락(Tel Mevorakh), 헤페르(Hepher), 텔 폴레그(Tel Poleg), 텔 그릿사, 텔 미칼 등이 발달하였다.

 

철기 시대에 들어와서는 블레셋 민족이 텔 카실라에 정착하였다. 솔로몬 시대에 샤론은 제 3주에 속하였으며 소떼를 많이 방목한 것으로 나타난다(대상 27:29). 앗시리아 식민지 시대에 샤론은 도르(Dor) 구역에 속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헤롯은 샤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도라(Dora), 가이사랴, 아폴로니아, 안티파트리스 등의 네 도시를 중심으로 네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특히 대규모 토목 공사로 12년에 걸쳐 건설한 로마식 대도시인 가이사랴 항구 도시는 당시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5. 중앙 산지

 

성서적 사건의 핵심지역은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 중앙 산지이다.

중앙 산지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주된 활동 무대인 세겜의 모레 상수리, 베델, 아이, 살렘,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브엘세바 등이 위치한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은 출애굽 이후 열 두 지파 중 중심적인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유다 지파가 차지한 곳이기도 하다.

 

사울 왕의 고향이 베냐민 지파 지역의 중심지인 기브아였으며, 다윗은 유다 지파의 한 소읍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헤브론에서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이 죽은 후 갈라진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중심지는 비옥한 골짜기 평야에 자리잡은 세겜이었으며, 그 후 디르사와 사마리아로 수도가 이전되었다. 역사적 아이러니 때문에 오늘날 중앙산악 지대의 대부분은 소위 ‘요단강 서안(West Bank)’이라 불리는 지역으로서 소수의 유대인 정착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가. 유대광야(Judean Desert)  

유대광야는 북으로는 베델산지에서 여리고로 이어지는 와디 켈트, 남으로는 디모나, 서로는 중앙산악 지대의 분수령, 그리고 동쪽 경계는 사해로서 전체 면적은 2,8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1998년에 체결된 평화협정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80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넘겨주기로 되어 있다. 오늘날 유대광야에는 카아브니(Kaabni), 사라야(Saraya)부족들의 베두인들이 살고 있으며 전체 숫자는 약 6,000명에 달한다.

 

이 곳의 연중 평균 강수량은 120-140 밀리미터 정도이며 적게 오는 지역은 50 밀리미터이다. 유대광야의 야생동물들은 표범을 비롯하여 늑대, 하이에나, 여우, 산양, 영양 등이 있다.

 

6. 요단 계곡: 요단원류, 훌라 호수, 갈릴리 호수, 요단강, 사해

 

요단 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 골짜기인 시리아-아프리카 단층의 일부로서 요단강의 근원인 단(Dan)에서부터 상 요단강을 지나 해저 210미터의 갈릴리 호수, 그리고 하 요단강을 따라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해저 400미터의 사해에 이르는 약 200킬로미터 길이의 저지대이다.

요단 계곡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평야지대이며 늪지대의 말라리아 때문에 강변에 사람들이 살 수 없었다.

 

가. 훌라 골짜기

 

단에서 시작된 상 요단강은 골란고원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차단되어 거대한 늪지인 훌라 골짜기와 평야를 형성했다.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예로부터 우가릿 문서에서 ‘쌈코 바다(Yam Samcho)’라 불렸던 훌라 호수가 있었다. ‘훌라(הלוח)’는 아랍어 ‘훌레’에서 유래했으며, 이것은 탈무드의 아람어 ‘훌라타(אתלוח)’에서 유래되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서는 ‘울라타(Oulatha)’로 나타난다. 훌라 호수는 그리스 어로 ‘싸마코니티스(Samachonitis)’로 불렸는데 이는 우가릿 어의 ‘쌈코 바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전에 발행된 성서 지리학 책들에는 ‘쎄메코니티스(Semechonitis)’로 자주 표기되기도 한다.

 

7. 네게브(Negev)

 

네게브는 원래 남쪽이라는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광야를 지칭한다. 네게브 광야의 넓이는 12,000 평방 킬로미터로서 이스라엘의 30퍼센트에 해당된다. 

 

8. 요단 건너편(트랜스 요단): 바샨, 길르아드, 암몬, 모압, 에돔

 

요단 건너편은 평균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로 형성 되어 있다.

요단 건너편에는 남쪽의 홍해에서부터 북쪽의 다마스쿠스까지 이어지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통과하는 곳으로서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유목민들이 일찍부터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부터 차례대로 바샨, 길르아드, 암몬, 모압, 에돔 지역으로 구분되며, 이중에서 암몬, 모압, 에돔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적대 세력들이었다. 

 

가. 길르아드(דעלꔹ, Gilead)   

히브리어 지명의 길르아드는 ‘갈-에드(דע־לג)’, 즉 ‘증거의 돌무더기’로서 라반과 야곱 사이의 계약(창 31:43-48)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원래 이 지역이 거친 산악 지대기 때문에 ‘거칠다’는 뜻의 ‘가아드(דעג)’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길르아드의 지리적 경계는 좁은 의미로 볼 때 북쪽으로는 야르묵 강, 남쪽으로는 얍복 강, 서쪽으로는 요르단 강, 그리고 동쪽은 광야 지대 등이다. 

 

나. 암몬(Ammon)  

암몬은 구약시대에는 라밧 암몬이라 불리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도시국가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 도시는 얍복 강의 원천이 되는 수량이 풍부한 샘으로 인해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암만 시내 중심부에 있는 요새에는 중기 청동기 시대에 건설된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요단 건너편의 다른 세력인 모압이나 에돔과는 달리 암몬 세력의 지리적 경계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중심 도시 라밧 암몬에만 국한 되어 왕조를 형성했던 도시국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다. 모압(Moab)  

모압은 해발 1000미터의 고원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사해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동쪽에는 넓은 아라비아 광야에 접해 있다. 모압의 남쪽 경계는 세렛 골짜기이며 북쪽 경계는 사해 북동부의 모압 평지로 불리는 곳으로서 암몬 세력에 접해 있다. 모압의 중심 지역은 아르논 골짜기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약 90킬로미터, 그리고 동서의 폭인 약 25킬로미터 정도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압의 중심 도시는 디본(Dibon)이며 이밖에도 마다바, 헤스본, 크데못, 키르-모압 등이 있다.

 

라. 에돔(Edom)  

에돔은 요단 건너편 남부 지역에 위치한 해발 15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로서 중심도시는 보스라였다. 

 

9. 시나이 반도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잇는 연결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면적이 약 6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삼각형의 지역이다.

시나이 반도의 북쪽 경계는 지중해이고 서쪽과 남쪽은 각각 홍해의 끝부분인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이지만, 동쪽 경계는 이스라엘의 남부 네게브 광야로 연결되어 그 지리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오늘날 지중해 연안의 가자 지구에서부터 에일랏에 이르는 약 200킬로미터 길이의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일반적인 시나이 반도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 성서시대에는 ‘이집트 하천’, 즉 오늘날의 ‘와디 엘-아리쉬’가 시나이 반도와 가나안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시나이 반도는 지리적으로 북쪽의 사막지대과 중앙의 석회암 야산지대, 그리고 남쪽의 화강암 고산지대 등으로 삼등분된다.

 

대부분 모래로 덮여 있는 북쪽의 지중해 연안에는 이집트 삼각주 지역에서부터 가나안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국제적 무역로가 예로부터 발달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길을 ‘호루스(Horus)의 길’,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불레셋 땅의 길’(출 13:17)로 불렀다. 중앙지역에는 카데스 바르네아를 거쳐 이스라엘의 남부 네겝 광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남부지방에는 해발 1500미터 이상의 화강암 고산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10억 년 전부터 형성된 이 지역은 붉은 색의 화강암과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2642미터의 카타린 산이며 시나이 산의 높이는 2285미터이다. 

 

시나이 반도에는 겨울철에 비가 약간 오며 대부분 10밀리미터 정도이지만 남부의 고산지대에는 이보다 많은 50밀리미터 정도이며 눈으로 내리기도 한다.

광야지역의 강우가 겨울철에 집중되다 보니까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경우 주로 골짜기에 위치한 베두인 마을을 덮쳐 큰 피해를 내기도 하며, 또한 한편으로는 일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현상도 3-4년의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시나이 반도의 교통로는 북쪽의 ‘블레셋 땅의 길’(출 13:17)을 비롯해서 ‘수르의 길’(창 16:7), ‘세이르 산의 길’(신 1:2), ‘홍해 광야길’(출 13:18) 등인데 이 중에서 ‘블레셋 땅의 길’은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시리아를 거쳐 소아시아의 힛타이트 지역과 메소포타미아로 향하는 국제적인 무역로 및 군사로였으며, 일정한 거리마다 요새와 정거장 시설을 갖춘 전략적인 도로망을 개발했다.

 

이 길은 신약시대에 들어 와서는 ‘비아 마리스(Via Maris)’, 즉 ‘바다의 길’로 불려졌다. 오늘날 이집트에서부터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교통로는 북쪽의 가자 지구에 위치한 라피악흐 통로와 남쪽의 아카바 만의 타바에서 에일랏으로 이어지는 통로 등 모두 두 군데이다.

 

 
시나이 반도에는 중기 구석기 시대인 2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석기류를 통해서 밝혀졌으며,

특히 서기전 3500년경 동석기 시대에는 나와미스(Nawamis)라 불리는 유목민들의 독특한 원형 석조무덤들이 시나이 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주로 발견됐다. 북부 시나이 지역에 대한 조직적인 발굴 결과 이미 이집트 제 1왕조 이전시대부터 이곳에는 이집트인들이 진출해 있었으며 고왕국, 중왕국 시대에는 그 흔적이 미미하다가 신왕국 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무역로와 군사로로 개발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북쪽의 지중해변을 제외하고는 시나이 반도에 후기청동기시대(서기전 1550-1200)와 철기 I시대(서기전 1200-1000)의 주거 흔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가. 터키옥 광산

 시나이 남부 고산지대의 서쪽은 예로부터 터키옥(turquoise)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연한 하늘색에서부터 녹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는 터키옥은 이집트 귀금속 장식에 있어서 신의 육체로 여겨지는 황금, 짙은 남색의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그리고 붉은 빛의 카넬리안(carnelian)과 함께 4대 중요 보물로 취급되던 매우 중요한 보석이었다.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최초로 개발한 지역은 와디 마아라의 광산이었다. 조직적인 채굴작업은 제 3왕조의 첫 왕인 사낙크트(Sanakht) 시대(서기전 2686-2667)부터 시작됐으며, 이 광산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이집트인들은 이곳에 전체 면적이 6,000평방미터에 달하는 요새를 건설했다.

 

두 번째의 터키옥 광산은 세라빗트 엘-카딤에 위치해 있는데 근처의 와디 하시프(Wadi Hasif)에서 발견된 토기조각들의 분석 결과, 이미 동석기 시대인 서기전 3500년경부터 채굴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집트는 중왕국시대부터 세라빗트 엘-카딤을 집중적으로 개발했으며 제 12왕조의 아메넴헷트 1세(서기전 1991-1962)는 이곳에 하토르 여신을 위한 신전을 건설했고, 이 신전 유적에서 하토르 여신을 ‘터키옥의 귀부인’으로 표현한 상형문자의 기록이 발견됐다.

 

또한 이곳에서는 서기전 1600년경 기록된 세계 최초의 알파벳으로 알려진 원(原)-시나이어(Proto-Sinaitic)의 기록물이 여러 점 발견되어서 당시 이집트 상형문자권의 광산에서 일하던 가나안 노동자들이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문자의 개발을 시도했던 흔적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 카데쉬 바르네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기간 중 대부분을 머물렀다는 카데쉬 바르네아는 시나이 반도 북동 지역의 베두인 중심지인 쿠세이마(Quseima) 남동쪽 4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작은 오아시스 지역으로서, 쿠데이랏트 샘(Ain Qudeirat)의 물을 이용한 소규모의 작물재배가 가능한 곳이다.

 

1956년과 1976-82년에 걸친 조직적인 발굴결과 이 요새는 이스라엘 왕국의 남쪽 경계를 수비하기 위해서 서기전 10세기 솔로몬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카데쉬 바르네아의 중요성은 이 요새가 서기전 8세기 우시야, 서기전 7세기 요시아 왕에 의해 각각 재건된 점으로 미루어 잘 알 수 있다. 

 

다. 쿤틸랏트 아즈루드  

카데쉬 바르네아 남쪽 5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쿤틸랏트 아즈루드는 왕정시대의 유다왕국의 남쪽 요새로 개발된 곳이다. 서기전 800년경으로 추정된 기록물에는 ‘야훼와 그의 아쉐라(התרשׁאו הוהי)’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사마리아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라. 에찌온 게베르  

에일랏 남쪽 11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제지랏트 엘-파라윤(파라오의 섬)에는 서기 11세기 십자군들이 건설한 해상요새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의 해저 발굴 결과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200미터 떨어진 육지와 방파제로 연결하여 건설한 솔로몬 시대 타르쉬쉬 해운회사가 있었던 에찌온 게베르(Ezion Geber)로 보고 있다.

 

마. 시내산(Mt. Sinai)  

오경의 야훼(J) 전승과 제사장(P) 전승에서 시내 산으로 표기되는 모세의 산은 엘로힘(E) 전승과 신명기(D) 전승에서는 호렙 산으로 나타난다.

모세가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 산의 위치에 관해서는 성서 상으로 이집트의 나일 삼각주 지역과 가나안 사이에 있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러 학자들이 각각 다른 지역의 시내 산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아나티(E. Anati)는 자신의 체계적인 답사와 유물 수집을 통해서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카르콤 산(Har Karkhom)을 시내 산으로 여겼다. 또한 모세가 미디안 지역에서 야훼를 만난 것에 착안하여 요르단 남부와 사우디 아라비아 서북부 지역에서 시내 산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아마도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서기 1세기 바울이 시내 산을 아라비아, 즉 나바테야(Nabatea) 왕국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갈 4:25)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오늘날 제벨 무사로 불리는 시내 산은 이 지역에 기독교가 정착한 서기 3세기부터 비롯됐다.

 

서기 250년경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알렉산드리아 지방에서부터 피신해 온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시나이 반도 남부의 가장 큰 오아시스인 와디 페이란(Wadi Feiran)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부터 남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2070미터 높이의 세르발 산(Jebel Serbal)을 시내 산으로 여겼다. 하지만 와디 페이란은 로마 군인들에게 쉽게 발각될 수 있어서 수도자들은 좀 더 산속 깊은 곳으로 이동했고 근처에 샘이 있는 한 골짜기에 정착했다.

 

그들은 샘가에 자라는 떨기나무를 호렙 산의 모세(출 3:4)와 연관시켰고, 이 장소를 신성시하기 위해 성소와 망대 등을 건설했다. 서기 4세기 로마제국에 그리스도교가 공식종교로 인정되면서 이곳에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가 건설됐다. 서기 6세기 중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제국의 남쪽 변방인 시나이 반도를 지키기 위해 일종의 전략적인 요새로서 이곳에 대규모 요새 수도원을 건설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수도원은 서기 548-565년 사이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된 것이다.

 

서기 7세기 무슬림들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지만 수도사들의 친 이슬람 정책으로 수도원이 보호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아랍인들이 수도원 남쪽의 해발 2285미터 봉우리를 ‘제벨 무사’, 즉 ‘모세의 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서기 1000년경 카타린 성녀의 유해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2642미터의 산 봉우리에서 발견되면서 이 봉우리를 카타린 산이라 부르게 됐다.

이집트 콥트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서기 250년경 태어난 카타린은 알렉산드리아 귀족 출신의 처녀로서 수도자 생활을 하다가 서기 305년 막시마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 당했다고 한다.

 

서기 1000년 이후 카타린 성녀의 유해가 수도원으로 안치되면서 성 카타린 수도원으로 불려지게 됐다. 서기 726년부터 시작된 성상파괴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의 구내 도서관에는 희귀한 고대의 성화들이 수 백점 남아 있으며 세계 최초의 그리스어 성서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ticus)이 이곳에서 19세기 중엽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독일의 티셴도르프가 1844년부터 15년에 걸친 노력 끝에 거의 탈취하다시피 빼돌린 이 소중한 성서는 오늘날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 사본과 함께 최초의 신약성서의 사본으로 손꼽힌다. 오늘날 시나이 산을 찾는 순례자들은 해발 15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성 카타린 수도원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 오르는 높이는 약 800미터 정도이다.

 

마지막 750여개의 돌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그 곳에는 성 삼위일체 교회당과 이슬람교의 사원이 있다.

 

 

(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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