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규명해 보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학자에 의해 여러 방면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기원에 대한 논의는, 결국 '특별한 창조주의 계획과 의도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설과 '우연히 물질이 결합하여 고등 동식물로 진화되었다'고 하는 설 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창조론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그 일차적 논거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 많은 창조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화석을 포함한 과학적 자료들이 창조를 지지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지만, 그동안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적 권위를 누리던 진화론은 그토록 많은 과학자에 의해 지지를 받아왔지만, 자료와 과학 법칙들이 진화론을 전혀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창조과학의 이해>, 허성욱, 도서출판 영문, 123쪽).

 

여기서는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여러모로 살펴보려 한다. 먼저 창조론에 대해 알아보자. 창조론은 우주와 지구와 인간 등이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아래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창조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고 이를 유지하고 운행하고 계심을 알려 주었다. 삼라만상의 질서 정연한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 신비를 나타내는 증거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태양계 내의 질서는 계속 유지되고 운행되고 있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지구는 시속 약 11만km의 어마어마한 속도로 0.1초도 틀리지 않고 태양과 1억 5,000만km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태양을 1년에 한 바퀴씩 돌고 있다. 시속 11만km의 속도는 시속 110km로 달리는 승용차의 1,000배에 해당하며, 또 시속 1,0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약 100배에 해당하는 빠르기이다. 그런데 지구가 날아가는 속도에서 이 속도가 가장 이상적인 속도라는 점이다. 만일 이보다 더 빨리 돈다면 지구는 공전궤도를 이탈하여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것이고 이보다 더 늦게 돈다면 태양으로 빨려 들어가 녹아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창조는 과학 진화는 비과학>, 김치원, 도서출판 갈릴리, 252쪽).

 

그리고 달은 달대로 시속 약 3,400km의 엄청난 속도로 0.01초의 오차도 없이 38만km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 달에 한 바퀴씩 지구를 돌고 있다. 이러한 달의 원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달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와 반대로 속도가 너무 느리면 달은 지구에 충돌하게 된다. 또 나머지 태양계 내의 수많은 별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각각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다. 이러한 질서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지혜와 인격을 가진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설계에 따른 것이다(앞의 책, 258쪽).

 

신약성경 로마서 1장 20절에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였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KJV)"고 쓰여 있다. 이처럼 우리는 태양계 내에서도 대자연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고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창조주가 없다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다음, 진화론에 대해 살펴보자. 진화론은 삼라만상이 우연히 생겨났고, 이 모든 우주와 지구와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창조를 전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마저도 부인하는 무신론적 사상이다. 이러한 진화론은 우연을 믿는 일종의 신앙 위에다 진화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런데 과학이란 원래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최초의 원인이 오직 '우연에 의해 발생'했다는 비과학적인 토대 위에서 생겨났으므로 참과학이라 할 수가 없다(<태초에 하나님이>, 배용찬, 예영커뮤니케이션, 83쪽).

 

이처럼 진화론은 '우연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가설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진화 이론들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었음이 수시로 드러나기도 했다. 예컨대 1891년 듀보이스라는 사람이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발견했다고 하는 직립원인은 화학 처리된 원숭이로 판명되었다. 처음 그가 발견한 것은 '현대 인간'에 가까운 수준의 두개골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발견한 것이 원숭이의 두개골이었음을 자백했다. 30년 동안이나 그 사실을 숨기다가 죽음이 임박해서 그의 양심은 큰 고통을 받았고 급기야 진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결국, 자바원인은 속임수로 드러났다(<하나님이 가라사대>, 패리드 아브라미, 전도출판사, 96쪽).

 

그리고 1912년 영국 런던의 필트다운 지역에서 발견된,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중간 단계의 화석으로, '필트다운인'이 있었다. 이 필트다운인은 진화론자들이 기대했던 그대로 인간 조상의 모습을 갖춘 진화의 완벽한 증거였다. 그러나 1953년 이 뼈들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불과 수십 년으로 측정되어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것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석 사기극' 중의 하나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결국 1962년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필트다운 화석'이 가짜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한 손에 잡히는 창조과학>, 이은일, 두란노, 31쪽).

 

이러한 가짜 화석의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진화론자들은 지금까지 중간 계층의 연결 고리 하나도 제대로 증거물로 제시하지 못했는데, 겨우 제시한 것은 돌연변이나 환경에 의해 파괴된 기형 생물들뿐이었다. 상술했듯이 진화론자들은 삼라만상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고 믿으며, 하나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창조론자들은 우주 만물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지혜와 설계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양자 간의 세계관과 견해 차이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에 걸쳐 엄청난 대립과 충돌이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대립과 충돌에 대해 시대나 상황에 따라 여러 면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19세기 다윈 이전 시대에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하는 창조론 사상은 고정관념화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어떤 도전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론적 세계관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난 이후부터 급격히 바뀌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성경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신앙심을 잃게 되었다. 당시 진화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59년에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모든 생명체는 오랜 기간에 걸쳐 무생물로부터 우연히 발생했으며,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종들이 분화되고 진화되었다"라고 서술했다. 이리하여 진화론은 그 시대의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유럽으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위세는 대단하여 가는 곳마다 맹위를 떨쳤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도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론'은 거의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류 문명에 적지 않은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다윈의 생존경쟁 개념을 계급투쟁의 개념으로 바꾸어 공산주의 이념을 확립하여 마침내 공산주의가 생겨났다. 또한, 히틀러의 민족 우월 사상도 진화론의 우생학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유대인의 대량 학살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천문학자나 지질학자들은 우주나 지구가 진화의 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했으며, 물리학자나 화학자들도 진화론을 신봉하게 되었다(<태초에 하나님이>, 77~82쪽).

 

그러나 무엇보다 진화론에 가장 큰 영향과 타격을 받은 것은 기독교였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근본을 위협하는 진화론이 등장했을 때 처음에는 대부분 거세게 반발하였지만, 결국에 가서는 진화론의 위세에 밀리면서 수많은 성경학자나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우주 창조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에 그들은 차츰 유신론적 진화론이나 점진적 창조론과 타협하여, 결국에는 변질한 자유주의 신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과학을 진리의 척도로 여기면서, 성경에 기록된 창조나 노아의 홍수 등의 초자연적인 사건을 신화나 전설로 해석하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 그리고 성경의 절대 무오성을 부정하고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였다. 이러한 결과 수많은 기독교인이 성경을 불신하고 교회를 떠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대에 유명한 부흥사인 '찰스 템플론 목사' 같은 사람은, 한때는 젊은 시절, '빌리 그레함 목사'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 진화론과 타협한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뒤에는 신앙을 저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어 하나님과 작별을 고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 수천 명씩 모이던 교회가 불과 몇십 명밖에 남지 않은 예도 있었고, 또 문을 닫는 교회도 속출하여 그러한 교회는 마침내 골동품 가게나 박물관이나 술집 등으로 개조되거나 심지어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이처럼 진화론은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이후 약 100년 이상이나, 쓰나미의 위력처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분야를 휩쓸어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세가 남아 있다.

 

이처럼 진화론이 창조론을 뒤집어엎고, 가는 곳마다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한 지 약 100년이 지날 무렵,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화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창조 과학의 등장과 함께, 진화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창조 과학이란, 창조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데에 기초한 활동으로 미국의 '헨리 모리스' 박사가 성경의 창조를 믿는 여러 과학자와 함께 '창조연구협회'를 설립하고, 1972년에 샌디에이고에 창조과학연구소를 만들면서 생겨난 창조 과학 운동이었다(<창조과학 콘서트>, 이재만, 두란노, 98~105쪽).

 

이러한 창조 과학자들은, 과거 다윈 시대에는 '진화론의 허구성'을 지적할 만큼, 과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진화론'이 생겨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만약 오늘날에 다윈이 그때와 같은 진화론을 내놓았다면, 그것은 인정을 받기는커녕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다윈 당시에는 과학이 오늘날보다 훨씬 덜 발달하여, 진화론이 제대로 검증을 받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분야가 당시의 진화론에 맞추어서 이미 체계를 세워 왔기 때문에 진화론은 지금까지 튼튼한 아성을 구축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홍콩, 일본, 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창조 과학 운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진화론의 허구성을 파헤치며 창조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성경이 사실임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1999년 미국 캔자스 주에서는 교육위원회에서 찬반 투표 결과 6대 4로 진화론을 교과과정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또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버리고 창조론을 가르치기로 하자 종교계와 과학계 간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교육위원 18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오하이오 주 모든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론과, 진화론을 비판하는 이론을 둘 다 배우고 졸업시키기로 했다. 이러한 것은 진화론을 반증할 만한 과학적 자료들이 충분히 나와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창조는 과학 진화는 비과학>, 39~42쪽).

 

국내에서도 창조 과학 운동은 1980년 한국대학생선교회가 주최한 '80세계 복음화 대성회' 기간 중에 열렸던 창조 과학 세미나를 통해 시작되었다. 이때 헨리 모리스, 택스톤 등 여러 창조 과학자는 강연을 통해서 창세기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자, 이에 한국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세미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한국과학기술원의 김영길 교수였다. 그는 창조론 세미나에서 중심 역할을 한 10여 명의 과학자와 함께 한국에서 창조론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여러 차례 모임을 했다.

 

그 후 1981년 1월 여의도에서 150명의 사람이 모인 가운데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면서 창조 과학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창조 과학자들의 열정적인 헌신으로 한국창조과학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그 후 창조과학회는 수백 명의 이공계 박사들과 1,500여 명의 회원과 1만 2,000여 온라인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의 기독 과학자들의 단체가 되었다. 현재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이 방문하는 등, 인터넷을 통해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날 창조 과학자들에 의해 진화론의 허구성이 입증될 때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에 기초하여 쌓아 온 학문을 사수하고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린 진화론 사상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과학과 신학의 새로운 논쟁>, 조덕영, 예영커뮤니케이션, 125~132쪽).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끊임없는 발전의 원칙'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복잡한 원소들이 간단한 원소들로부터 발전했으며, 복잡한 형태의 생명도 단순한 조직으로부터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의 조상도 원숭이로부터 점차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에는 "모든 종류의 생물을 하나님이 그 종류대로 창조했다(창1:21)"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인류의 조상도 원숭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창조했다고 나온다. 예수님도 신약성경 마가복음 10장에서 창세기의 내용을 언급하며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10:6)"라고 하며 창세기 1장의 역사성을 인정하였다.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신봉해 왔던 수많은 사람은 진화론이 사실일 경우에는 금세와 내세에 서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거짓이고 창조론이 사실일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지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믿음에 따라 심판할 것"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윈처럼 진화론을 신봉해 왔거나,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다윈은 18살 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국 성공회의 신부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4년 후에 졸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성경의 창조론을 믿는 견해에 서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신부의 길보다는 생물학에 관심이 더 많아서 약 5년간 탐사선을 타고 탐사 여행을 한 후 생물학 분야에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지질학자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영향을 받아 점진적 창조론을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사고를 바꾼 뒤 결국 무신론적 진화론자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다윈과 같이 창조론을 믿다가, 중도에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사고를 바꾼 뒤, 마침내 무신론자로 전향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기원 과학>, 한국창조과학회, 두란노, 52쪽).

 

진화론은 인간들에게 무신론 사상을 주입해 왔으며, 진화론은 그 바탕에 무신론 사상을 깔고 있다. 무신론은 신을 인정하지 않거나 신을 믿지 못하게 하는 사상으로서 '사탄의 역사'이며, 진화론의 배후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사탄의 역사로 진화론에 미혹됐다. 무신론적인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기독교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결국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나타나며, 나아가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구분된다. 이것은 마침내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의 갈림길로 나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불과 유황이 타는 영원한 지옥 불 못으로 간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계 21:8).

권영문 /<성경적 기독교와 엉터리 기독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