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이란 무엇일까요? 

 

글 / 민영덕    

 

찬양(讚揚)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찬양대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예배의 찬양선곡(選曲)문제와 소리의 현실화 과정에서 자주 지적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여러 문제점들을 바라보면서, 찬양의 기초적인 이론과 합창발성, 발음, 그리고 부조화한 음성들을 Blending 시키면서, Blending된 각 part 들의 소리를 모아 이를 Balance화 하는 여러 과정들을 series로 글을 써 볼까 한다.

 

series의 내용들은 필자의 학습경험과 오랜 실무경험 그리고 국내,외의 각종 문헌과 자료들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목 차-


【1】찬송의 정의에 대한 역사적 과정

2】찬양의 대상은 누구일까 ?

【3】우리는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해야 할까 ?

【4】받는 상대에 따라 찬송가를 분류해 본다고 하면

【5】믿는 자에게 왜 찬송은 중요할까 ?  

【6】우리는 왜 찬송을 불러야 할까 ? 

【7】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찬송을 불러야 할까 ?

【8】한국 교회음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  

9】찬양대가 예배중에 찬양할 수 없는 곡들

10】Gospel music 이란?

 

 

【1】찬송의 정의에 대한 역사적 과정

 

1. 찬송에 대한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의미들 

 

- 할랄 (halal)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99번 사용된 단어로서, 이 말은 “할렐루야” 라고 할 때의 “할렐”과 같은 것으로서 강조형(强調形)의 동사인데, 그 뜻은 깨끗하게 하다, 들어나게 하다 혹은 영광을 돌리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 할랄은 즉, 할렐루야이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말인데, “할렐”은 찬양을 의미하고, “루” 는 너희들을 의미하고, “야” 는 여호와의 단축형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 “해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할랄)을 받으시리로다“ (시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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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Hallelujah) 찬양의 핵심이며 찬양의 시작이고 찬양의 끝으로서, 확신하는 믿음에 대한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과 환호의 결정으로서, 극도의 환희와 열정에 대해 특별한 응답을 나타내는 경우에서만 사용되어  왔던 말이다.   

       

 구약, 시편에서 24번 사용된 “할렐루야”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와 권세와 능력과 영원하심을 찬양함에 있어서 최고, 최상, 최선의 낱말로 사용되어진 말이었고, 신약, 요한 계시록 19장 1절, 3절, 4절, 6절에서 4번 나타나는 “할렐루야”는 완성된 구원과 완전한 보상과 완전한 통치와 어린양의 대 혼인잔치를 축하하는 결정의 찬양으로서 표현 

된 말이라고  볼 수가 있다.  

 

- 야다 (yada)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90번 정도 사용된 단어로서, 두 손을 들어 경배하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실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야다)할지로다”  (시107:8,15,21,31)

 

- 바락 (barak)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200번 이상에 걸쳐 사용되었는데, 찬양에 나타나는 경우에는 70번 정도의 말로 무릎을 꿇다, 송축하다, 경의를 표하다, 라는 뜻

   도 담겨져 있다.

  +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찬양(바락)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 지어다”(시96:2)

  

- 자마르(zamar)

   이 단어는 거의 모두 詩歌에만 사용되어졌으며, 구약성경에서는 40번 정도 씌어 졌다.

   그 뜻은 악기의 줄을 퉁기다, 노래하다, 등으로 나타난다.

  +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자마르)하며 그 모든 기사를 말할 지어다” (대상16:9) +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

     (자마르)하리니” (시9:2)

 

-샤바흐(sabah)

   이 단어는 찬양의 감탄적인 형태로 씌어 졌으며, 그 뜻은 외치다, 큰 소리로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으로 구약성경에서는 단지 7번 정도만 사용 되어졌다.

  +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샤바흐)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랄)할지어다”  (시147:12)

 

  이와 같이 씌어진 히브리어의 뜻을 살펴보면 찬양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자랑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 경배하며, 감사하고 노래하며, 큰 소리로 외치고 무릎을 꿇고 송축하며, 경의를 표하는 등, 인간이 지닌 몸과 마음의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행위로,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찬송의 어원에서는 음악적인 소리의 개념은 포함되어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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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시대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찬송은 없었다. 단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음률에 맞춰 불렀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시편에 나오는 소샤님, 슈산, 알, 알무드랍벤, 마할렛.등의 이름이 찬송곡조가 아니었는가? 하는 구약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2. 찬송에 대한 신약성경 헬라어의 의미

 

- 아이네시스(ainesis), 아이노스(ainos), 아이네오(aineo)   아니네시스는 아이네오에서 나오는 말로 찬양과 찬미(히13:15)의 뜻이고, 이이노스는 찬양과(눅18:43)과 찬미(마21:16)를 뜻한다고 하며. 그리고 아이네오는 아이노스에서 유래된 말로 찬양하다, 찬송하다(눅2:13,20; 눅24:53; 계19:5), 찬미하다(행2:47 행3:8~9)의 뜻이며, 찬양하다는 눅19:37, 롬15:11에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말은 모두 찬양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졌다.   +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아이네오)하여 가로되...” (눅 2:13)  +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아니노스)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

 

- 독사(doxa), 독사조(doxazo)

  일반적으로 “독사”는 영광으로, “독사조”는 영광을 돌리다로, 그리고 때로는 찬양 또는 찬양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독사)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2:14)

  +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독사조) 하려 하노라 (롬15:6)

 

- 에파이노스(epainos), 에파이네오(epaineo)

  "에파이노스“는 명사로서 칭찬, 찬양, 찬미, 찬송, 포장 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에파이네오“는 동사로서 찬양하다, 칭찬하다

  의 뜻으로 (눅16:8 고전 11:2 롬15:11)사용되어지고 있다.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에파이노스)이 되게 하심 이라” (엡1:12)

 

 ※ “에파이노스” 나 “에파이네오”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을 나타나는 말이다.

 

- 율로게토스(ulogetos), 율로기아(ulogia) "율로게토스“는 ”율로게오“에서 유래 된 말로 칭찬받는, 축복받은, 찬송받을, 찬송할, 찬양을 받음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율로기아“는 ”율로게오”에서 유래된 말로 칭찬, 찬양, 축복, 복, 연보, 많음, 찬송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낱말은 절대로 사람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해서만 사용되어지는 말이다. 그리하여 주로 복된, 찬양 받으신 뜻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 “찬송(율로게토스) 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1:3)

+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음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율로기아)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계5:12)

 

   ※ 이 “율로게토스”나 “율로기아”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찬양의 용어이다.

 

- 엑쏘몰로게오(exomologeo)

  "엑쏘몰로게오“의 뜻은 동의하다, 고백하다, 자백하다, 감사하다 허락하다, 시인하다, 등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고백하다는 뜻을 가진 ”호몰로게오스“에

   서 파생된 말이다   

  +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엑쏘몰로게오) 하리로다”(롬15:9)

 

- 휨네오(hymneo), 휨노스(hymnos)  "휨네오“는 무엇을 향하여 노래하다, 찬양하다, 찬미하다, 찬송하다의 뜻이고 ”휨노스“는 찬송과 찬양을 뜻한다고 한다.   + “이에 저희가 찬미(휨네오)하고 감람산으로 나아 가니라 (마26:30) + “시와 찬미(휨네오)와 신령한 노래들로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

   며 찬송(휨노스)하며” (엡5:19)

 

- 프쌀로(psallo), 프쌀모스(psalmos)    “프쌀로”는 영적인 무아의 상태에서 찬양의 노래를 하다, 가락을 짓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구약성경 히브리어 자마르 (노래하다, 악기의 줄을 퉁기다)에 대한 헬라어 “프쌀로”이다.  

+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프쌀로) 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프쌀로하리라” (고전14:15)  

   “프쌀모스”는 단지 명사로서 신성한 노래, 찬송가 시편, 찬양, 찬송, 성가, 찬양의 노래 시를 뜻한다.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양의 노래(프쌀모스)를 부를지니라” (약5:13)

 

- 메갈루노(megaluno)"메갈루노“는 ”메가스“에서 유래된 말로, 크게하다(마 23:5), 찬양하다(눅 1:46), 크게... 여기다(눅1:58), 높이다(행10:46 19:17), 위대하여지다(고후10:15), 존귀히 되게 하려하다 (빌 1:20)등의 말로 쓰인다.  

 

+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메갈루노)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로 기뻐하였음은..” (눅1:46) 신약성경에 나타난 찬양의 헬라어 의미를 정리해보면,찬양, 찬미, 영광, 명예, 영예, 칭찬, 축복, 동의, 고백, 자복, 감사, 노래, 울리다, 연주, 신성한 노래, 위대하게, 선언, 크게하다, 높이다, 확대하다 등의 내용들이다. 결국, 찬양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냄에 그의 영광과 명예와 영예를 드러내고 영화롭게 하며, 칭찬하고 축복하고 그에 대하여 동의하며, 고백하고 자복하고 감사하며, 자백하고 시인하며, 노래하고 울리며 연주하고, 신성한 노래로 위대함을 선언하고 크게 나타내며, 높이고 확대하여 하나님의 모든 것을 노래하므로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3. 찬송에 대한 현재의 정의 

 

  찬송에 대한 최초의 정의를 내린 것은 주후 633년 스페인 톨레도 종교회의였다. 그 회의에서 찬송가의 3가지 요소로 노래(Canicum), 찬양(Laudem), 하나님(Deity)이 포함 된다고 결정했는데, 그 결정 된 찬송의 정의는,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찬송이라고 한다’ 이였다. 그 내용은 어거스틴의 주장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찬송이라고 정의를 했었던 것이다.   그 후, 찬송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저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을 간추려 보면 아래와 같다.

 

- 루이스 엘슨(Louis C. Elson)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거나 예배를 드리는 노래로서, 교회에서 부르게 된 짧은 종교적 서정시다.

 

- 필 커어(Phil Kerr)    기도하는 노래로서, 거룩한 하나님이나 그의 삼위 중 일위께 직접 간구하는 것이다.

 

- 제임스 데이비스(James P. Davies)

   인간이 하나님께 관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노래, 인간이 인간에 관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노래, 인간이 하나님께 관하여 인간에게 말하는 노래.

 

- 칼 프라이스(Carl F. Price)

   기독교 찬송가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표현한 서정시이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의 태도 혹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노래로 불러서 나

   타내는 것이다. 이는 형식에 있어서 단순하고 운율적이어야 하며, 순수하게 감동적이어야 하고, 표현에 있어서 시적이고 문학적이며, 질에 있어서 신령

   해야 하고, 생각이 직접적이고 뚜렷하여 그 찬송을 부를 때, 회중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의 주장을 간추려 보면,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로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행위’, 등 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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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찬미의 제사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 15)  

 

첫째로, 제사(祭祀)란 무엇일까?

‘제사’ 라는 단어는 구약적인 용어이다. 이 ‘제사’ 는 반드시 제물(비둘기, 양, 소 등)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제사는 신약에 와서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되었고, 마침내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 예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예배의 형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 그 다음에는 성도들의 찬미와 복종이 포함되지 않다면 진정한 예배라고 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예배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찬미하고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찬미(讚美)’란 무엇일까? 찬미는 하나님께 존경을 바치는 행위로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며 그의 위대하심을 명상하는 행위”라고 하겠다. 그리고 복종은 무엇일까? 복종은 “하나님과 하나님 뜻에 인간자신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헌신과 헌금 등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로, 입술의 열매는 무엇일까 ?

예배의 3요소는 ‘찬송’, ‘기도’, ‘말씀’을 가리킨다. 다 이것들은 ‘입술’을 통하여 재생되고 현실화가 되어진다. 말씀은 씨앗과 같은 것이기에 설교를 통하여 그 씨앗을 심령의 밭에 심는 행위라고 한다면, 기도는 그 말씀의 씨앗을 싹틔우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으며, 찬송은 그 말씀의 싹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열매에 비유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찬송은 생활의 열매인 믿음으로 형식화 된 가사(歌詞) 즉, 의미(意味)의 형식으로 드려지는 것이지 음악(音樂) 즉, 소리(音)의 형식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2. 미국 찬송가 협회(the Hymns Society of America)는 칼 프라이스(Carl F. Price)가 주장하는 찬송가의 정의를 지금까지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2】찬양의 대상은 누구일까 ?

 

1. 성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 하겠나이다” (시21:13)

시편 기자는 찬송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전능하신 권세와 엄위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피조물의 마땅한 의무와 도리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2. 성자 예수님이시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하더라” (계5:12) 

 

  그러나 성경 전체 중에서 성령님께서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성령님께서 격이 낮으셔서 찬송을 받지 못하신다는 그런 뜻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은 영광과 권세와 능력에 있어서 동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러나 찬송의 대상만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통하여 이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로만 캐토릭 교회에서는 아베 마리아를 부르며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송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비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찬송으로 영광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행위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신, 구약성경 66권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내용이 구약성경에서 351회, 신약성경에서 48회가 나타나 총 399회의 기록이 존재한다. 이러한 구절 속에서 찬송이라는 단어 前, 後에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께, 여호와를, 여호와께”란, 찬송의 대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로 비춰볼 때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찬송의 관계는 아주 특별하고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그러한 사실을 확증해 보여주는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 여호와는 찬송이라 (신7:21) - 찬송은 하나님이 하신일 (욥36:24) -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 (시22:25) - 찬송은 하나님께서 창조했다 (시61:11) - 나 여호와를 찬송하라 명령 (시62:9) - 나의 찬송이라 (사43:21)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찬송 자신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찬송이라고 하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3】우리는 하나님의 무엇을 찬양해야 할까 ?

 

1.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출15:2)

 

2.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대하5:13), 인자하심을(시136:1~26), 선하심을(시136:1), 공의로우심을(시51:14), 지혜로우심을(시136:5), 진실하심을(시117:2), 노하기를 더디 하심을(시103:8), 은혜로우심을(시103:2,8), 그리고 성실하신(시71:22)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해야 한다.

 

3. 우리는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요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1:3~4)

 

4. 우리는 소망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 너희는 저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벧전1:21)

 

5.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해야 한다.  

+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시21:13)

 

6.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한다.  

+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시148:13)

 

7.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찬양해야 한다.  

+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시7:17)

 

8.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6:3)  

 

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해야 한다.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로다(시56:10)

 

10.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을(시66:2~4), 영화로운 이름을(느9:5, 대상29:13), 크고 두려운 이름을(시99:3), 지극히 높으신 이름을(시7:17), 아름다운 이름을(시8:1), 거룩한 이름을(시30:4),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빌2:9), 주의 이름을(시9:2, 시 68:4, 시103:1, 욥1:21, 단2:20, 사25:1, 삼하22:50) 찬양해야 한다.

 

11. 우리는 하나님의 행사를 찬양해야 한다. 아름다운 일을(사12:5), 능하신 행동을(시150:2), 말씀의 “도” 행하심을(시138:5), 기이한 일 행하심을(시107:8), 두려운 일 행하심을(신10:21), 성실과 진실하심을(사행25:1), 하나님의 하신 일을(욥36:24)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내용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높여 드려야 할 줄 안다.  

 

【4】받는 상대에 따라 찬송가를 분류해 본다고 하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선교 1백주년을 맞이하여 개신교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찬송가의 필요성에 따라 주후 1983년 11월에 발행된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찬송가에 실려 있는 558장의 곡들을 보면 대략 10% 정도가 찬송가(Hymns)이고, 그리고 대략 30% 정도가 복음 찬송가(Gospel Hymns)이며, 나머지 60% 정도가 복음성가 및 기타 성가들로 편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편집을 하였는지를 알아보면,

 

1) 예배용으로 찬송가 및 복음 찬송가를 편집했고,

2) 부흥집회나 전도 집회용으로 복음성가를 편집했고,

3) 절기에 따라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기타성가를 편집한 것들이다.  

 

1. 찬송가 또는 찬미가 (Hymns) 예배용 찬송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또는 삼위일체 중 1위께 존귀의 찬양을 노래에 담고 있는 것을 말한다.

 

- 거룩 거룩 거룩 (9장)

- 전능의 하나님 (77장)

- 온 세상이 컴컴하여서 (96장)

- 나의 생명 드리니 (348장)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404장)  등 이 있다.

 

《특   징》

- 내용  : 감사, 찬송, 기도, 찬양 등

- 아멘유무 : 있음

- 후렴  : 없음

- 시적구분 : 서정시

- 부르는법 :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호소력 있게, 굴종적으로 - 예배사용 : 예배의 처음과 나중 사용

- 특성  : 직접적이고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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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코드는 영국의 윌리엄즈 허니스(Williams Hunnis)가 1583년 그의 자작 찬송가집에서 모든 찬송가 말미에 “아멘”을 붙인데서 유래하게 되었다. 아멘은 형용사로서는 “진실한” 뜻이고, 명사로서는 “진리”, “진실”, 부사로서는 “참으로” 라는 뜻이 있으나, 찬송가에서는 받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가장 짧은 기도로 “그렇게 되어 지이다”  라는, 뜻으로 매우 중요한 기도라는 사실로 쓰이고 있다.

 

2. 복음 찬송가 또는 복음 찬미가(Gospel Hymns)

 

하나님을 찬송하되 직접적으로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또는 삼위 중 1위께 대하여 창조하신 만물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노래들을 말한다.  

-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182장)            

- 갈보리산 위에 (135장)

- 주 예수 넓은 품에 (476장) 등이 있다.

 

《특   징》

- 내   용  : 십자가의 보혈, 구원의 역사, 사랑, 창조, 등

- 아멘유무 : 단독은 없고 복합은 있음

- 후   렴  :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음

- 시적구분 : 서사시 - 부르는법 : 서술적으로, 진지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 예배사용 : 설교 전, 후

- 특   성  : 객관적

 

3. 복음성가(Gospel-song)

 

  ‘찬송가 및 찬미가’ 와 ‘복음 찬송가 및 복음 찬미가’는, 모두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다. 그러나 복음성가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송이 아니라, 인간들이 구원받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자기의 간증을 노래하여 성도들이나 불신자들에게 교훈과 권면과 위로의 내용을 전달하여 함께 호응하는 노래들을 복음성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가들은 하나님과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래들이다.

그러므로 찬양음악으로서는 아주 부적합하므로 예배 중에 찬양대의 찬양용으로는 부적합하므로 사용은 철저히 금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성가는 멜로디에 담은 위대한 설교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호응도와 응집력과 전파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백 번 설교를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은혜로운 복음성가 한 편을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일상 신앙생활에서의 사용은 좋다고 본다.

 

  그리고 이 복음성가는 무한한 호소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전도 부흥 집회 시의 사용은 아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디(Dwight Lyman Moody)와 생키(Lra David Sankey)의 전도team도, 휫틀(Daniel Webster Whittle)과 블리스(Philip Paul Bliss)의 전도team도, 맥그라나한(James Mc Granahan)의 전도team,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의 전도team들도 모두 이와 같은 방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많은 전도의 결실을 맺었다고 하는 것이다.

 

- 어둔밤 쉬 되리니 (370장)                       

- 어서 돌아  오오 (317장)              

- 가슴마다 파도친다 (303장)                    

-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355장)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371장)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401장)    

- 행군 나팔 소리로 (402장)                        

- 내 맘이 낙심 되며 (406장)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208장)    

- 내 평생에 가는 길 (470장) 등 이 있다. 

 

특  징》

- 내   용  : 간증, 권면, 교훈, 위로 등

- 아멘유무 : 없음 - 후   렴  : 있음 - 시적구분 : 서정시

- 부르는법 : 기쁨이 충만하게, 진지하게, 호소력 있게

- 예배사용 : 할 수 없음(헌금 송, 기타 송도 마찬가지)

- 특   성  : 직접적이고 주관적이다

 

4. 기타 성가

 

 찬송가, 복음 찬송가, 복음성가에 속하지 않은 애매한 성가들을 말한다.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482장)   간증 같이 보이나, 기도하는 시간에 대한 성격의 노래로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다. 

- 내 너를 위하여 (185장)   예수님의 입장에서 쓴 성가이다. 

- 어지러운 세상 중에 (366장)   1, 2, 3절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쓴 성가이나 4절은 주님께 간구하는 성가이다. 

- 교회, 선교, 성례, 장례, 절기와 행사(어버이의 날, 감사절, 기타)에 관한 성가는 받는 상대가 없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나 섭리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없는 

  것들은 다 소속 불명의 하나님과는 직접적인 관계나 관련이 없는 성가들이다. 이러한 성가들은 관계된 행사 때나, 또는 주일학교 교육용으로 사용되어지는 것

  들로 보면 되겠다. 

 

  그러므로 이런 애매한 성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양이 아니므로 찬양대는 이런 부류의 성가는 예배 시에는 절대로 연주하지 말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담긴 입술의 열매가 없는 성가는 듣지도 기억하시지도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알고가기 코너▶

 

- 음악은 두 가지의 형태가 있다. 하나는 음악이라고 하는 “소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음악 속에 감추어진 “가사”를 즐기는 것이다. 소리를 즐기는 것을 세속음악이라고 한다면, 가사를 즐기는 것은 교회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리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 속에 감춰진 보화인 그 내용을 즐기며 기뻐하고 또, 그 내용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는 것이 우리 성도의 마땅한 도리가 아닐는지.....

 

- 성가(聖歌. sacred song)는 기독교에서 부르는 종교가곡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 66권중에 찬양과 찬송이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볼 수는 있겠으나 그러나 성가란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성가란 단어가 사용되어져 왔을까? 물론 성스러운 노래라는 뜻으로 사용 되어져 왔지만 그러나 이 말의 유래를 찾아본다면 일본말 “세이까”라는 말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계 지도급에 계시는 분들은 성경적이지 않은 ‘성가’를 ‘찬송’이나 ‘찬양’으로 바꿔 호칭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성가대”의 호칭도 “찬양대”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믿는 자에게 왜 찬송은 중요할까 ? 

 

  믿는 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경과 찬송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이 둘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은 관계로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그리고 가르침과 명령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즉, 상의하달(上意下達) 이라고 말 한다면, “찬송”은 하나님에게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여 그 감사의 기도를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즉, 하의상달(下意上達)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 두 요소의 상하거래라고 하는 것은, 마치 한 우물에 두 개의 두레박을 도르래에 매달아 놓은 것같이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하나가 올라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과 축복의 두레박이 성도들에게 내려가면, 바로 성도들의 감사와 찬송의 두레박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하의 이동과 거래가 잦으면 잦아질수록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의 관계는 밀접해지고 원만해 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찬양은 바로 하나님 자체이시기 때문에 찬양 부르기를 원하시고 또, 찬양으로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을 부르시기 위해서 찬양을 부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말씀 중에서 찬송의 중요성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기뻐 받으시기에 우리의 찬송 중에 계신다고……. (시22:3)

- 황소의 제물보다 찬양을 더 기뻐 받으신다고……. (시69:30,31)

-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 (사43:21)

-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찬송이 쉬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파수꾼을 세우신다고……  (사62:6,7)

- 오직 추수할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요 (사6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찬양의 열매를 거두시기 위하여 우리인간의 마음 밭에 기쁨의 씨, 사랑의 씨, 감사의 씨, 축복의 씨를 심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또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금실(golden string) 위에 끼어 놓은 신앙의 구슬이 찬송이라고 하는 사실도 깨달아, 그 금실에 찬양의 구슬을 정성스럽게 많이 끼워 신앙의 큰 열매를 거두시는 찬양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리고자 한다.

 

 

【6】우리는 왜 찬송을 불러야 할까 ? 

 

1.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시43:21)

 

2.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명령이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계19:5)

 

3. 예수님께서도 친히 찬송을 하셨으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막14:26)

 

4. 입술의 열매이기 때문에 찬송을 불러야 한다. +이르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

 

5. 성령을 받는 길이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시68:35)

 

6. 날마다 나의 죄 짐을 지고 용서해 주시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니라” (시68:19)

 

7. 제사보다 귀하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호14:2)

 

8. 지음을 받았으므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148:5)

 

9.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으니 찬송을 불러야 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5)

 

10. 믿는 자들을 구속하셨으니 찬송을 불러야 한다.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사 51:10)

  

  루터는 1538년 게오르그라우의 노래집 서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음악은 값진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보배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찬송하고 찬송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 인간에게 한 음악을 주셨다” 고,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인간들이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찬양밖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찬양을 통하여 더 영화로워지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미 있는 찬양을 준비하여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하여 오늘도 귀 기울이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眞, 善, 美가 담겨져 있는 진정한 찬양이 드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7】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찬송을 불러야 할까 ?

 

1. 내용을 알고 불러야 한다.  

찬송이 감사의 노래인지, 고백의 노래인지, 기원의 노래인지, 등을 분명히 알고 거기에 맞게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2. 음악적으로 바르게 불러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서양 음계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연주 방법도 그에 따라야 하며 특별히 음정, 박자, tempo 등에 맞춰 불러야 한다. 그런데 어떤 성도님들은 은혜롭게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지만 그 말씀은 틀린 말씀이다. 왜냐하면 음정, 박자, tempo 등에 맞춰 부르는 것이 더 은혜롭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3. 감사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찬송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찬송을 부를 때 흐르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4. 애조를 띠면서 부르지 말아야 한다.  

현, 생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바라보면서 힘겹게 애조를 띠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는 찬송은 바람직한 찬송방법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세타령조의 노래와 탄식적인 허망한 노래보다는 기쁨과 감사가 녹아있는 그러한 찬송을 찾고 계신다고 하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대의 연주도 애조가 숨어있는 단조(minor scale)로 작곡된 찬양곡 보다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있는 밝은 찬양을 드리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5. 산만하게 부르지 말아야 한다.

찬송을 부르면서 자리를 정리정돈 한다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또는, 옷을 벗는 그러한 행동은 삼가야 하겠다.

왜냐하면, 찬송은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장식용의 노래가 아니라, 예배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올려지는 아주 귀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6. 샤머니즘의 기능을 고대하면서 불러서는 안 된다.  

찬송으로 기적과 이적을 기대하면 안 된다. 누가 찬송을 열심히 하여 병을 고치게 되었  고, 또 문제 해결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샤머니즘이다. 찬송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될 것이다.  

 

7. 무관심하게 부르지 말아야 한다.  

찬송의 중요성을 모르는 신앙연조가 길지 못한 사람들과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무관심한 태도로 찬송을 하는 것 보다는, 찬송시를 마음속으로 읽으며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찬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드리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8. 좋아하는 찬송가나 잘 아는 찬송만 고집하여 부르지 말아야 한다.  

찬송 시(詩)에 담긴 메시지나 음악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잘 알고 있는 찬송에만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여러 부류의 찬송을 접하여 그 가사와 곡에 녹아 있는 더 많은 기도와 감사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야 하겠다.

 

9. 예술 위주의 찬송은 부르지 말아야 한다.  

음악적인 아름다움이나 문학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예배 중이거나 일상 생활에서 찬송을 부를 때는 예술적인 美는 관심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찬송하는 목적은 신앙적 양심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송은 음악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고 다만, 우리의 신앙고백을 음악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잠시 이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우리들의 감사의 기도와 노래이지, 인간들의 안위와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다.

 

◀알고가기 코너▶

 

찬송과 찬양은 같은 뜻의 말이다. 그러나 사용상의 차이는 약간 있다.

 

- 찬송 :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도의 노래란 뜻도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리는 노래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어지는 말이다. 예배 시 모든 회중들로 인하여 연주되는 노래이기도 하며, 개인별로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노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 찬양 : 찬송은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노래라고 한다면, 찬양은 입술의 노래뿐만 아니라 기악, 손뼉, 몸동작 기타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회중 속에서 특별히 선별 되어진 사람들이 합창곡으로 불리우는 예배음악의 자료에 의하여 찬양대가 연주하는 노래의 뜻으로  사용되어지도 한다.

 

 

【8】한국 교회음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 

 

1. 가사내용에 하나님에 대한 찬양, 감사, 간구 등이 있어야만 진정한 찬송이 되는데, 그러나 기독교적인 노래(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송, 성도들이 함께 교감하는 노래 등 도)모두가 찬송가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어져, 아무 곳에서나 아무 곡이나 가려지지 않고 마음대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하는 점.

 

2. 하나님에게 드리는 찬송행위가 설교 분위기용으로, 예배 분위기용으로, 혹은 장내정리용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고 하는 점.

 

3. 부흥 사경회나 전도 집회를 인도하시는 많은 목사님들이 찬송가를 무가(巫歌)처럼 타락시키고 있다고 하는 점. 

 

4. 찬양대의 찬양이나 회중의 찬송이 ‘은혜용’으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는데, 찬송과 찬양은 은혜받기 위한 사전조건이 아니라, 

 은혜 받은 결과에 대한 감사의 행위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점. 

 

5. 각 교회는 예배시에 예배용이 아닌 곡들을 많이 연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래들을 보면, 가사내용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

이 아니라 예배 참석자들을  향하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자들을 향한 전도와 교육용이라고 하는 점. 

 

6. 찬양대원들의 교육이 대부분 음악적인 한쪽 면에만 너무 치우쳐져 있어 찬양대원들의 영성개발이 소홀해지고 있는데, 찬양

대원들의 음악교육 못지않게 영성개발도  지휘자들의 몫이 된다고 하는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점. 

 

7. 찬양대의 찬양선곡에 있어서, 대부분 찬송가를 외면하고 일반 성가곡집에 수록되어 있는 대곡들만을 선곡하고 있으므로, 찬양대원들은 이를 원만히 소화 시킬 능력이  부족하여 은혜의 감동이 되는 찬양을 드리지 못하고 있고 또, 이를 듣는 회중들도 뜻 모를 찬양대의 소리만을 듣고 있다고 하는 점.     

 

8. 찬양대가 사용하고 있는 일반성가곡집에 수록된 곡들은 가사가 너무 ‘비신학적’ 이거나 아니면 ‘어법’에도 잘 맞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도,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너무 음악적인 면에서만 치중해, 예배 음악이라기보다는 세상 음악처럼 연주하고 있다는 점. 

 

9. 찬양과 경배가 확산되면서부터 ‘부르고 듣는 식’ 의 찬양이, ‘움직이고 보는’ 찬양형태로  변해져 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찬양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을 의식하는 찬양형태로 변질 되어질 수 있다고 하는 점.  

 

10.찬송은 크게 3가지 1) 예배적 기능(Worship function), 2) 교육적 기능(educational function), 3) 전도적 기능(evangelistic function)을 말하는데, 여기에 관련된 음악들을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졌다고 해도 예배의 본질이 바뀌어 지지 아니한 것처럼, 절대로 찬송의 본질도 흐려지거나 바뀌어 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거룩하시니, 우리가 부르는 찬송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9】찬양대가 예배중에 찬양할 수 없는 곡들

 

 음악의 흐름이 다이내믹하고, 호소력이 뛰어나 많은 성도들이 애창하고 있는 -본향을 행하네(김두완 曲). -살아 계신 주(Bill Gaither 曲) -주님의 뜻대로(Phillip Landgrave 曲), -아름다운 수레(흑인연가)외 많은 감동적인 곡들은 예배 시간에 연주하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찬양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들이 자신들에게 제시하여 감흥을 주고받는 성가로서 " ~해요, ~하라, ~하리, ~하리라,~하세요.~하겠네, 가리라, 얻겠네, 되리라, 등등의 주관적인 말로 씌어진 곡들로, 인간들에게 간곡히 권유하고 또 동참을 호소하는 노래"  대부분 그 가사의 초점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 인간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본향을 행하네’ 를 봅시다. 그 주된 내용은, 순례자가 갖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노래인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간적인 위로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과연(果然)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될 수가 있겠는지요?

 

‘살아 계신 주’ 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곡의 중반부터는 삶에 기쁨이 늘 충만하다는 자기 신앙간증을 노래한 것인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개인의 신앙기쁨을 노래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뜻대로’ 는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어디든지 가겠다고하는 간증을 노래한 것인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외시한 이러한 간증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양이 될 수가 있겠는지요? 

 

‘아름다운 수레‘ 아름다운 수레가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위로의 노래인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인간을 노래한다는 것이 과연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찬양이 될 수가 있겠는지요? 

 

물론 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가(聖歌)들은 인간적(人間的)인 측면(側面)에 치중(置重)된 노래들로서,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直接的)인 간구(干求)와 헌신적(獻身的)인 요소(要素)들이 모두 결여(缺如)되어 있기 때문에, 예배(禮拜) 사용(使用)은 모두 적합(適合)하지 않은 노래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한 때, 명망 있는 교회의 이름 있는 찬양대의 연주를 듣고 이를 여러 분야별로 분석하는 공동작업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분석되어지는 각 찬양대의 연주를 들어보면, 예배 찬양음악인데도 불구하고 30~40% 정도가 위에서 예로 지적한 것과 같이 하나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성가들로서 대부분 ccm 계열의 현란한 rhythm과 vocal 같은 계통 등으로 작, 편곡 되어진 성가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가 말하고자하는 논점은, 음악의 경건성과 대중성에 따른 구성요소와 형식(classic계열, pop계열, jazz계열, 등등)을 가지고 예배음악이다 아니다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그 음악에 내재 되어있는 노랫말 가사에 focus를 맞추고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신가? 아니신가? 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연주되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성가들에 대하여 굳이 평을 한다고 하면,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 아닌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한 service적(?) 차원에서 연주되어지고 있는 성가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그렇다면, 교회음악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자와 교회음악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자 "자기 자신들의 성경적 무지로 인하여 잘못 되어진 예배음악의 형태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찬양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을 목도"하게 될 때는, 이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와 잘못이라기보다는 찬양사역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무지와 또한, 소신 없는 목회자들의 처신으로 인하여 발생된 문제라고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은, 찬양대의 찬양에 경건한 마음으로 동참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크신 은혜와 크신 구속의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어야 할 성도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구속의 열매가 전혀 없는 찬양대의 감성적인 음악소리에 감동되어 ‘아멘’ 이라고 큰소리로 화답하는 장면이다. 이는, 어떤 말로 부언 설명을 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잘못 된 것이 틀림없다. 이것도 또한,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큰 책임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인간의 제일 된 목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그 하나님을 영원히 기뻐하는 택한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의식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은총과  성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성령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서 경배, 찬양, 감사, 참회, 봉헌, 간구의 행위로 드려지는 것이 예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예배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드리는 찬양을 가리켜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들은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는지.....

 

“아모스 5장 22-23절”을 보면,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 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심을 볼 수가 있다.   

 

그렇다.

정성위주의 제물로 드려져야 할 예배음악이, 시대적 요구와 변혁에 따라 그에 응대하다 보니, 세속적이고도 상업적인 정체불명의 성가들조차도 채 걸러지지 아니한 상태로 교회에 유입 되어지고 또한, 하나님과는 직접적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성가들이 무비판적으로 연주 되어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는 분명 하나님의 경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것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호된 질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광야에 버려진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된 예배음악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지금도 엄중한 경고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알고가기 코너▶

 

미국나라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Gospel-music을 창작하고 공연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그들은 기독교음악의 개념을 떠나서 Gospel-music이 오래전부터 일반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인식 되어 왔기 때문에 신자나 불신자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라도 다 Gospel-music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물론 그러한 음악이 맹목적으로 좋아서 심취한 경우도 있겠으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작업한 Gospel-music 한 곡이 크게 히트하게 되면, 그들은 연간 1백만 불 이상의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돈 방석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보혈의 공로” 와  “구속의 도리”가 이러한 성가들에서는 대부분 삭제되어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교회음악 출판사들은 값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러한 성가들을 무분별하게 수입하여 출판하고 있으며 또한, 각 교회 찬양대들도 유행의 시류를 타는 것처럼 내적인 입술의 열매가 놓인 가사의 내용보다는 외적인 음악의 내용을 우선시 해 이러한 부류의 성가들을 앞 다투어 경쟁하듯이 예배시간에 연주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성가들의 가사 내용과 곡 내용들을 한 번 살펴보면, 과연 이러한 노래들이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찬양 음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는 것은, 유독 필자만의 아집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찬송학자 James F. davies의 찬송 정의(본 책자 5 page 참조)처럼, “누가 누구에 관하여,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과 소망과 감사와 보혈의 공로와 구속의 도리가 모두 생략된 채, 복음 전하자, 찬양하자, 감사하자, 영광 돌리자 등등의 앞뒤가 맞지 않는 낱말들을 서로 꿰맞추고 연결하며 얼버무리는 가사와 그리고 이러한 가사를 계속 반복하게 하는 단순한 melody와 또한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격한 감정을 유발케 하는 rhythmharmony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성가들이 바로 상업적인 Gospel-music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ccm 이나 Gospel의 또 다른 특징은, 빠른 tempo 와 잦은 박자의 분할과 엇박, 변박의 남용, 그리고 blue note등의 사용, 화성의 TDS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5도 화성을 4도 화성으로 진행시키고, 화음의 3화음을 의도적으로 중복시켜 투쟁과 강한 인상을 심기도 하며, 건반악기를 타악기처럼 두들기는 개념으로 연주를 하기도 하고, 타악기인 드럼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들김으로 인하여 리듬에 주술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러한 것들이 이 음악의 특징이랄 수 있다.

 

 

10】Gospel music 이란 ?

 

1.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ccm은 그 시대에 유행하는(comtemporary)음악양식에 기독교적(christian) 메시지를 결합한 음악(music)을 의미하는 말로, 일반 대중음악 style의 (창법, 연주형태 등) 오락성이 아주 강한(가사만 빼면 일반 대중음악과 똑 같다) 교회음악을 말한다.

 

- 음악 형식 : 팝/록, 하드록/헤비메탈, 펑크, 테크노 팝, 랩, 뉴웨이브, 서던록/클래시컬 록, 어빈/댄스 팝, 컨츄리 록, 발라드, 코미디/유머, 포크/어쿠스틱,  인스피레이셔널 /이지리스닝/mor, 아카펠라 (빌 보드지의 분류표에 의거)

 

- 가사내용 :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  성경말씀과 성경구절 암송 가사,  크리스챤의 참된 신앙생활,  빛과 소금 역할 못하는 교회 질책,  자장가,  QT를 위한  가사

 

 

2. Gospel song

 

- 음악 형식 : 전통 가스펠,  블랙 가스펠(소울, 소울 가스펠, 리듬 앤 블루스),  컨츄리 가스펠 (블루그래스),  서던 가스펠,  가스펠 휨 등.  (빌 보드지의 분류 에 의거)

 

- 가사내용 :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의 간증을 노래하거나,  성도들에게 권면하여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호소하는 노래 등을 복음성가(Gospel- song)라 함. 

 

3. Praise and worship

 

- 음악 형식: 포크,  팝,  아카펠라 및 중세음악의 장엄함에서 현대적인 alternative- music (록 음악의 총칭) 까지 다양하게 구사함.

 

- 가사내용 : 찬양과 경배,  성경말씀 찬양,  기독인의 신앙생활,  기독인의 도덕,  청소년들의 교육적인 내용, 개인의 체험,  사회정의와 사회부조리 고발,  절기  음악,  자장가,  묵상음악,  개인QT, 등을 노래함.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인식되어 사용하고 있는 Gospel-song이라는 실제적인 말은, ccm이나 praise and worship를 두고 하는 말로서, 앞으로는 정확한 명칭사용으로 작은 혼돈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Gospel musicccm이나 gospel이나 praise and worship 등을 총칭하는 대중 기독교 음악이라는 것이다.

 

  글을 맺을까 한다.

 

 찬양(讚揚)은 죄(罪)로 말미암아 다시는 하나님을 볼 수없게 된 우리들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恩惠)를 베풀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罪)가 다 사(赦)하여 지고, 또 하나님께서 불러주심에 대한 감사(感謝)로 하나님을 칭송(稱頌)하고, 찬미(讚美)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외치고 크게 자랑하며, 또 하나님을 인정(認定)하고 기리며, 노래하고 그 앞에 나아가 경배(敬拜)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여 드러내는 행위(行爲)로서, 그 내용(內容)은 성도(聖徒)들의 신앙고백(信仰告白)과 값진 신앙경험(信仰經驗)을 시(詩)라고 하는 형태(形態)에 옮겨 담아서, 이를 또, 음악(音樂)이라고 하는 표현방법(表現方法)을 사용하여 아름답게 포장(包裝)하여 하나님에게 올려드리는 최상(最上)의 감사(感謝) 제물(祭物)이라는 것이다. 

 

  이 때, 제물(祭物)이 된 찬양의 알맹이는 가사(歌詞)이고, 그 가사를 감싸주는 껍질은 음악(音樂)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는 소리(音樂)라기보다는 가사(노랫말)에 더 큰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讚揚)을 드리기 위하여 창조(創造)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願)하시는 찬양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은 다음에 마음과 정성(精誠)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대(偉大)하심과 공의(公義)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찬양(讚揚)하는데 전력(全力)을 다 하여야 하겠으며, 나아가 회중찬송(會衆讚頌)은 정성위주(精誠爲主)의 찬송으로 준비(準備)하고, 찬양대(讚揚隊)가 드리는 찬양(讚揚)은 음악적(音樂的) 최고(最高)의 가치(價値)로 다듬어진 감사(感謝)의 찬양으로 준비(準備)하여 하나님 전(前)에 최고(最高)의 제물(祭物)로 돌려 드려서 온 천하(天下)에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더 높이 들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使命)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끝.

 

 

Halleluj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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