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여자애 끓는 구리물에 넣었을 가능성은…

 

 지난 1일, 광주(光州)시민의 날 행사에서 금남로 1가에서 ‘민주의 종’ 타종식이 열렸다. 강원도 화천군은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을 추진하며 지난 달 30일 평화의 댐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진리나 자유, 평화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상징물은 주로 종이다.


우리 문화재 중 최고로 칠만한 종은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神鍾·일명 에밀레종)일 것이다. 국보 36호 상원사종(725년 제작)에 이어 두 번째(771년 제작)로 오래됐다. 종에 얽힌 전설이나 소리의 아름다움 등에서 다른 종을 압도한다. 그런데, 수십 차례 주조(鑄造) 실패를 거듭하다 여자 아이를 넣자 종이 완성됐다는 에밀레종의 전설은 사실일까?


1998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학술조사를 하면서, 종의 성분 분석도 했다. 의뢰를 받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종 12군데에서 샘플을 얻어 극미량원소분석기로 성분 분석을 했다. 1000만분의 1 이상만 들어 있어도 성분 분석이 가능한 기기였다. 그 결과, 뼈의 성분이 되는 인은 검출되지 않았다. 성분 중 85%는 구리였으며, 주석은 14%였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신형기 박사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무조건 전설의 근거가 없다고 얘기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람의 비중은 구리보다 가벼워서 설령 사람을 넣었더라도 ‘성분’이 위로 떴을 것이고, 제작 당시 이것을 ‘불순물’로 봐서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학계는 지증왕이 죽었을 때(502년) 순장을 폐지시켰던 신라가 거의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종을 잘 만들려고 산 사람을 끓는 구리물에 넣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문헌 상으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지영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와 불교미술사학자로 활동 중인 성낙주 서울 중계중 교사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밀레종에 대한 가장 오래된 우리 기록은 1935년 간행된 ‘조광(朝光)’ 1호에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이 쓴 것이다.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의 무당 노래(무가·巫歌)에 에밀레종 전설과 비슷한 구절이 있으며, 한말(韓末) 외국 선교사들이 채집한 설화 채록본에도 에밀레종 전설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만약 에밀레종 전설이 사실이라면, 8세기 후반 에밀레종을 만들면서 정말 사람을 넣었다면, 왜 1100여 년 동안 관련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이와 관련한 설화나 전설의 형태로 기록을 찾게 됐는지 의문인 것이다. 삼국사기는 물론, 불교 이야기를 많이 기록한 삼국유사에도 ‘에밀레종에 여자 아이를 바쳤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이 교수는 “통일신라나 고려 때의 에밀레종 전설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이 전설을 후대의 창작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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