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다식 세종 '국민 임금'
드라마 '대왕 세종' 인기 타고 다양한 업적 등 관심 높아져

세종대왕 어진(임금의 화상).(위 사진)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아래 사진)

 

TV 역사 드라마 ‘대왕 세종’이 인기를 끌면서,

세종 대왕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중에는 세종을 다룬 어린이 책이 다수 선보였다.

세종과 관련된 궁금증을 Q&A 형식으로 알아본다.

 

△세종은 누구?:

1397년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도’. 한글과 집현전으로 대표되는 인문학, 이천 등이 상징하는 과학, 박연과 맹사성이 이끈 음악 정비를 두루 주도한 ‘왕중왕’이었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며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54 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안질과 소갈증 등을 앓았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었으며 몸도 뚱뚱했다. 자녀는 18 남 4 녀나 뒀다.

 

△셋째 아들이면서 왕위에 오른 이유?:

조선은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다음 왕이 되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 양녕 대군은 기이한 행동으로 원성을 샀다.

둘째인 효령 대군은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왕조 실록 태종 18 년의 기록에는 다방면에서 성군이 될 자질을 갖춘

충녕 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고 적혀 있다.

 

△‘전하’와 ‘저하’의 차이는?

임금은 전하(殿下)로, 세자나 세손은 저하(邸下)로 부른다.

전하는 임금이 신발을 벗어 놓는 댓돌보다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저하는 임금의 집인 어전에 가기 전 머무는 집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하란 가장 높고 귀한 사람을, 저하는 곧 전하가 될 사람을 일컫는다.

 

△세종의 책사는 누구 누구?

책사란 왕의 정책을 보좌하고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조언하거나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을 말한다.

세종의 책사는 집현전의 학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정인지는 천문학ㆍ언어학ㆍ수학ㆍ약학 등 모든 분야에 능통한 ‘만물 박사’였다.

 

△장영실은 관노였다?

맞다. 관청을 위해 일하는 남자 노비, 즉 관노(여자는 관비)였다.

관노비는 사노비에 비해 전문성이 있으며, 몸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세종의 눈에 든 뒤 훗날 하늘을 관측하는 기구인 ‘간의’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만든 게 아니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세자 시절 아이디어를 내 만들게 했다.

 

△세종 시대 3 대 과학자는?

이순지ㆍ이천ㆍ정인지를 꼽는다.

세종이 공을 들인 분야 중 하나가 천문학이다.

이순지는 천문학의 기초인 역법 이론을 세웠다.

이천은 혼천의 등 천문 기구 제작 책임을 맡았다.

정인지는 ‘농사직설’을 펴내는 데 기여했다.

 

△집현전은 어떤 곳?

학자들의 연구실이자 도서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외교 문서를 만들거나 역사를 기록하는 일도 담당했다.

훈민정음 창제 역시 이 곳에서 이뤄졌다.

변계량ㆍ정인지ㆍ신숙주ㆍ성삼문 등이 집현전을 이끌었다.

 

△왕 이름 뒤에 ‘종’과 ‘조’를 붙이는 이유는?

왕의 명칭은 왕이 죽은 뒤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이름이다.

따라서 왕이 살아 있을 때는 불리지 않았다.

‘종’은 태평 성대를 누린 왕이나 왕위를 정통으로 이은 왕에게 붙여졌다.

‘조’로 끝나는 이름은 새 왕조를 세웠거나 큰 어려움을 이겨낸 왕,

반정을 통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왕에게 붙여졌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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