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원전(原典)은 없다.

모두가 기원 4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생겨난, 5천 5백 종류 복사본이다.

이유는 손으로 베껴 쓸 때마다, 내용이 고쳐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전인 <시나이 사본>이 역시 바티칸 사본과 마찬가지로 기원후 4세기경에 씌어졌는데 1844년에 시나이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시나이 사본>에는 수정된 곳이 1만 6천 군데나 된다.

  

초기 기독교는 2백여년 동안 구약성서 이외에는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사도 바울의 편지도 모두 필사본입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서」가 생긴것은 바울이 전도여행 중 에베소 동네 가서 교회를 개척한후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있을 당시에는 교회가 잘 운영되었지만, 바울이 떠나고 한참 지나니 교회내에 여러분란이 생기게 되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 교인중 한사람이  바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교통이 좋지 않은 당시에 바울이 다시 돌아가서 해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탄의 꾀에 빠지지 마라........." 등의 내용을 써서 그 메신저에게 건네주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에베소서」가 된 것이다. 

 

고린도 전서,고린도 후서, 로마서 전부 이런 식으로 성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초기에는 사도들의 이름을 가장한 온갖 위조편지가 많았다.

그런 편지들의 온갖 사본들을 모아서 A.D. 4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데에서 편찬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가 만들었다. 


성경은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다. 

예수님은 희랍어를 전혀 몰랐다. 예수님은 지금은 死語가 되어 버린 아람어라는 토착말을 사용하셨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최초의 기록도 단지 예수님 말씀일 것이라고  말들을 예수님이 죽은지 4∼50년 경 후에,

그것도 아람어에서 희랍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은 것이다. 

원본자체가 번역본이다. 정경(正經)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경(正經)을 성립시켰다. 

초대교회의 신도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파루시아 즉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였다.

사도바울 자신이 자기 생전에 예수가 호령을 치면서 천사들의 소리와 신의 나팔소리를 반주로 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때는 이미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고 자기를 포함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구름에 휩싸여 공중에서 예수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살전 5:16∼18). 

 

예수의 재림이란 그러한 사실의 모습으로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현실화되어 일어난다고 확신했고,

후년에 그는 재림 전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간적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빌 1:20∼25).

 

대체적으로 초대교인들은 최저한 AD150년경까지는 긴박한 파루시아의 기대 속에서 살았다. 

즉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현세는 단순한 준비과정에 불과했으므로 현세 속에서,

즉 역사 속에서 자기 이름을 남긴다든지 역사 속에서 무엇을 성취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경전이 일차적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이러한 지연 속에서 초기 기독교는 파루시아를 비종말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비종말화는 점차적으로 역사의식속에서 교회론으로 가게되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는 조직으로서 이 세계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이다.

교회야말로 천국의 지상에 있어서의 역사적 표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의 사상적 물줄기의 완성을 바로 우리는 어거스틴의 카톨릭 교회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초대기독교 문헌의 정경화는 이러한 교회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통적" 경전을 구분해 내어야만 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A.D. 150년 경까지만 해도 사도나 기존경전의 인물이름을 빌어 무명으로 혹은 가명으로 성경을 쓰는 일은 전혀 위작의 나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우리는 케리그마, 즉 예수의 수난,죽음,부활,승천, 그리고 그의 행위와 말의 수집이 원래 구전의 전통(oral tradition)이었다.

그리고 그 구전은 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주축이었고 이 구전 자체가 희랍어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희랍어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다 죽고 난 후에는 이 구전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있게되어 복음서의 제작은 이러한 구전의 보존을 위하여 이루어졌고, 또 구전간의 차이에서 오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각 파벌들이 자기들의 구전을 기록하게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와 의례(liturgy)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 때문에  제1세기 말경에는 상당수의 복음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어떤 복음서들은 사도의 이름을 빙자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의 직언이라고 하여 그 권위의 우위성을 보장받으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에 대해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복음서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정통성의 근거는 사도 저작성(apostolicity)이었다. 

 

이 사도적 저작성이라는 기준자체가 애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으로는 분쟁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고 2세기에는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아세아를 중심으로한 동방교회 사이에 정경의 기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심각히 대두되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2세기 말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3세기의 오리겐(Origen), 

4세기초의 유세비우스(Eusevius)등에 의한 신학적 논란을 거쳐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히브리인 복음서(Gospel of the Hebrews), 

애굽인 복음서(Gospel of the Egyptions), 

 

바울행전(Acts of Paul),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요한행전(Acts of John),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 

베드로 묵시록(Apocalypse of Peter), 

 

도마복음서

12사도 교의서(Didache),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  등등은 여러 분류방법에 의해 경전으로 탈락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오늘의 27서가 정경으로 규정된 것은 아리아니즘(Arianism)의 비판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독교 정통성의 옹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원래는 집사)에 의해서였다. 

 

라틴교회는 제롬(Jerome)의 영향 하에 아타나시우스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성경의 27권 형태는 4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동서방교회에서는 기존의 성경을 썼다. 

예를 들면 4세기 중엽의 시나이티쿠스 코우덱스판본(Codex Sinaiticlus)은 바나바서와 헤르마스서를 정경에 포함시켰다. 

 

시리아의 교회에서는 타티안이 편집한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 5세기까지 쓰였고,

7세기에 내려와서야 비로소 시리아에서는 27권짜리 경전이 쓰여지게 되었다. 

 

그 뒤로 1546년에 라틴 벌게이트(the Vulgate)가 인쇄되기까지 텍스트 그 자체는 계속 유동적었다. 

 

마틴 루터는 경전성의 기준을 "사도성"과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는 것"의 두 척도에 두었는데,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후자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네 편을 신약의 마지막에다가 포괄시켰다. 

 

이러한 텍스트의 역사적 과정을 고찰해 볼 때 성경 그 자체의 일점일획의 절대적 권위에 포괄적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을수없다. 

심지어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서에 그렇게 쓰여 있다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인데도 성서 내용하고 틀리니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가 일점일획도 안틀린다고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성경의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고,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났다.

 

구약은 39권- 929장 -23214절- 592439단어- 2738100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신약은 27권- 270장 -7967절  - 132253단어-   933380글자로 이루어졌다. 

신구약66권- 1199장- 31181절- 724692단어-  3471480글자가 있다.

 

성경은 각편의 제목이 있고, 세부적으로 나누어 장, 절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 제목을 달아서 기록했거나 장, 절을 구분하여 기록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제목과 장, 절로 나누어 찾아보기 좋도록 한것이다. 

 

신약성경의 절 구분은 1550년 프랑스의 인쇄업자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에 의해 표기 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우리말 개역성경의 장 절 구분은 MT나 LXX이 아닌 Latin Vulgata를 많이 따르고 있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권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며,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결론

성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과정을 거쳤다. 

 

1) 구전:

예수의 육성음(아람어)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증발했으며,

예수의 말씀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상 흐른 뒤,

그 후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2) 번역:

예수가 구사했던 언어(아람어)는 최초로 희랍어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영어 번역판만 해도 100여 종이 넘는다. 

 

3) 필사:

이 희랍어로 쓰여진 것조차 원본은 없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필사본들은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다. 

사본에도 5,000종이상이 된다.    

 

4) 기타: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고, 장과 절의 구분시 많은 오류 발생했고,

정경과 외경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도 , 복음서의 수정, 가감, 삭제 편집 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神性)과 같은 중요한 교리조차도 몇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찬반투표로 종교회의에 의해

결정되었던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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