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유적 속성

정의

하나님이 절대적 실존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속성이다.

자존성

하나님은 그의 존재의 근거를 그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이며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케 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존하시고 독존하신 분만이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영원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불변성

자존성의 필연적 부산물로서 그의 실유뿐 아니라 그의 계획, 의지가 동일하시고 목적과 약속에 변경이 없음을 뜻한다.

무한성

모든 유한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시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뜻한다.

유일성

단수성과 단일성을 뜻한다. 단수성이란 수적으로 오직 유일하시고 한분이심을 뜻한다. 이것은 수적 유일성을 말할 뿐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의미한다.

단일성

신의 본질의 내적, 품성적 유일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분리나 복합이 없는 분이심을 말한다.

                                                                공유적 속성

정의

하나님이 가지시는 인격적 속성을 뜻한다. 이는 인간의 성품 속에도 들어 있는 공유적 속성을 말한다.

영성

하나님은 인간의 오관으로 식별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은 곧 생명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천사, 마귀, 인간은 영적 존재이므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자성성

하나님은 의식적이며 지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성경이 하나님을 가리켜 ‘빛’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지성적 존재이심을 의미한다.

도덕적속성

이는 다른 어떤 소성보다 우리 인간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속성이다. 이 속성은 성, 의, 선으로 구분된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다.

주권적 속성

하나님이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오직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다스리시며 대하시는 그의 절대적 권리이다.

유복적속성

하나님은 복있으신 분이시다. 이는 대내적으로는 유복하시고 대외적으로는 영광으로 나타나신다. 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과의 관련에서 그리고 일반 및 특별계시와의 불가분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광채와 찬란함이다.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분류

 

속성

정의

성경구절

단일성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신 6:4

무한성

하나님은 제한도 종료도 없으시다.

왕상 8:27,행 17:24

영원성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끝이 없으시다.

창 21:33,시 90:2

영성

하나님은 보이시지도 나눠질 수도 없다.

요 1:18,딤전 1:17

불변성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불변하시다.

말 3:6,약 1:17

주권성

하나님은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최고의 통치자이시다.

엡 1:21

전지성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시 147:4-5,마 11:21

전능성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신다.

마 19:26,계 19:6

편재성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

시 139:7-12,렘 23:23-24

사랑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베푸신다.

엡 2:4-5,요 4:8

유복성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신 7:7-8

정의성

하나님은 편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로우시다.

행 10:34-35

은혜성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때를 따라 은혜를 입히신다.

출 34:6,딛 2:11

 

 ▶ 하나님의 속성 도표

능력

전지, 전능, 무한성, 불변성, 주권성, 완전성, 무오성, 단일성, 초월성, 단순성, 영성, 생명성, 내재성, 불가시성

도덕

사랑, 정의성, 자비, 유복성, 거룩성, 진실성, 거룩, 공평, 성, 선, 자비, 은혜, 인내, 신뢰성, 도덕적 존재

시공간

영원성, 자존성, 편재성, 무한성

 

               

 

하나님의 속성 : 말로 전달할 수 없는(비공유적) 속성  

                                                                         - 프레드 클루스터(미국 칼빈신학교 조직신학교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는 하나님을 “그의 존재, 권능, 거룩하심, 정의, 선,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이라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물음 4)“벨기에 신앙고백서”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오직 한 분이신 영적 존재가 존재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 무한하시며, 전능하시며, 완전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모든 선의 충만하신 원천이시다.”(제1항) 이렇게 표현된 대부분의 어휘 등은 하나님의 “속성” 혹은 “완전”이라고 불리운다.

이 속성들은 성경에 계시되며, 하나님의 다양한 역사하심 가운데서 그에 의하여 집행되며, 증명된 하나님의 완전이라고 정의 된다 개혁 신학자들은 자주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속성”과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으로 구분했다. 하나님의 속성 중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속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유적 속성이며, 반면에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은 인간에게서 그와 비슷한 것을 찾아 볼 수 없어 비공유적 속성이라 한다. 후자의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은 – 통일성, 독립성, 영원성, 무한성, 불변성 –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존귀한 특성을 강조한다.

1. 예비 고찰

(1)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속성과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은 모두 한 분,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 성부, 성자, 성령 – 의 속성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많은 신들 중의 한 신으로 고찰하기 위하여 그 속성들이 일반적으로 신의 속성들인 것처럼 논의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분명히 유신론적이며 모든 속성들은 곧 유일하신 참된 성경적 하나님의 속성들이다. 이러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특성의 의식은 때때로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인 하나님의 통일성(Unitas Singularitas) 항목에서 논의 되었다. (참조 : 신 6:4, 왕상 8:60, 사 44:6, 막 12:28, 엡 4:6, 딤전 2:5).

(2)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과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속성은 모두 동등하게 성부, 성자, 성령께 속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를 논의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속성을 논의해야 하는 절대적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논의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바,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본질의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위의 말로 전달할 수 없는 특성, 즉 생성(generation), 파생(filiation), 영성(spiration)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3) 속성에 대한 논의는 또한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인정해야 한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속성들에 관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을 결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4) 속성들은 신적 존재의 본질적 특성들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러한 속성들을 하나님께 속하게 한 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자신의 속성들을 성경 안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계시하신다. 이러한 속성들은 객관적이며 실제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은 본래의 모습대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와 구속 안에서 행하신 그의 역사 안에서 집행되고 증명된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속성들은 하나님 존재의 많은 부분들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속성들 각각은 하나님 존재의 일부나 혹은 단순히 하나님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본래 모습대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 더 나아가서 “사랑”이나 혹은 “독립성” 같은 한 속성을 탁월하게 승진시키며 다른 속성들을 단순히 그 속성의 세부적인 구분들이라는데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속성들 사이에 상호관계성이 존재하는 한편,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 사이에는 신적으로 계시된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단순성”이라는 항목에서 자주 논의된다.

2. 특수한 속성들

이제 특수한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고찰해 보자. 하나님의 “통일성”과 “단순성”에 대해서는 논의했으며 여기서는 “독립성”, “영원성”, “무한한 공간성”, “불변성”에 대하여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논의한 주제들의 원천과 규범은, 신학의 어디에서나 처럼 절대적으로 영감을 받은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혀둔다.)

(1) 독립성[Independence]

성경은 하나님의 독립성을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낸다. 모세를 이스라엘과 바로 앞으로 보내었을 때 그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고 표현하였는데 모세를 보내신 분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신”(요 5:26)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요 맘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다.”(행 17:25)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며”(엡 1:1), 그의 “도모는 영영히 서신다.”(시 33:11)

이러한 견지에서 하나님의 독립성은, 하나님은 자신 밖의 다른 어떤 존재에 의존하시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전체의 존재와 섭리와 역사하심에 있어서 자족하시는 존재이심을 나타내는 “완전”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하심의 근원을 자신 안에 두셨지만 그는 “자기 원인적”이거나 혹은 “자기 발생적”이신 분이 아닌데, 그 이유는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독립성”은 하나님의 “자존성” 개념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독립성은 그의 실존뿐만 아니라 그의 전 존재, 속성, 법령, 창조사역, 섭리, 구속 등의 특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독립성에 대한 성경적 견해는 성경의 하나님과 스피노자나 혹은 헤겔의 추상적이며 철학적 신개념인 “절대자”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을 배격한다. 자존하시며 독립적이신 성경의 하나님은 전체 피조물에게 창양 받으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피조물의 창조주 되시며 유지하시는 분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세계를 다스리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전에는 인간과 친교관계를 가지셨으며 타락 이후에는 은총의 언약 안에서 인간과 새로운 친교관계를 세우셨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지만 그는 때때로 직접적이고 부차적인 원인들을 통하여 그의 뜻을 실행하신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기록하시는 매우 중대한 사역에 있어서 인간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2) 영원성[Eternity]

하나님의 무한성은 때때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이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특성을 내포하는 절대적 완전으로 고려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속성들은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인 무한성의 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성이 하나님의 영원성과 무한한 공간성으로 고려되는 것은 원래 시간과 공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처소되시는”(신 33:27) “영원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진술하는데 그는 세상 창조전부터 즉, “영원부터 영원까지”(시 90:2)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딤전 1:17)이시며, “알파와 오메가”(계 1:8)되시는 분이다. 그는 “영원히 거하시며”(사 57:15), 그의 “연대는 무궁하시며”(시 102:27),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벧후 3:8)

영원성은 시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그의 “완전하심”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시다. 그는 성장이나 발전이나 성숙을 경험하시지 않는다. 그는 세상 전부터 존재하셨으며, 영원 가운데서 지금도 거하시며, 심지어 역사가 끝날  때에라도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계속 존재하실 것이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은 시간의 한계에 예속되지 않는다고 인정해야 할지라도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은 “역사의 주”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전개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때가 찼을 경우였다.”(갈 4:4) 시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의미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날은 금요일이었으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확신있게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 31:15)라고 고백해야 한다.

(3) 무한한 공간성[Immensity]과 편재성[Omnipresence]

하나님은 바로 가까이에 계시며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이 홀로 비밀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33)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다.”(사 66:1)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무소부재하시며 전지하신 하나님의 장중을 벗어날 수 없다. (시 139편)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 17:27)

이러한 말씀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영원성은 공간과의 관계에서 그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의 “편재성”은 이러한 초월적인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어느 곳에든지 여전히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여기서 다시 이러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속성에 대한 긍정적인 함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는 육체를 가지시지 않으며 따라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예루살렘이나 혹은 다른 어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요 4:21)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아들을 보내신 곳은 곧 이 세상이었다. 그리고 현재 전 우주를 통치하시며 주관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역사가 끝날 때 육체적인 몸을 입고 다시 오실 것이다.

(4) 불변성[Immutability]

하나님은 성경에서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는 빛들의 아버지”(약 1:17)라고 묘사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신다.”(말 3:6)고 단언하셨으며, 그의 뜻의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셨다. (히 6:17)

불변성은 하나님의 존재와 법령과 사역에서 그의 끊임없으심과 변함없으심을 나타내는 완전하심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그분의 법령과 계시와 사역에 대하여 신실하시며 영원히 동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안으로부터의 변화나 혹은 자신의 밖으로부터 변화도 전혀 경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불변성이 하나님의 어떤 후회에 관한 몇몇 성경적 주장들에 직면하여 유지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사울의 불신실함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삼상 15:11)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특별한 말씀이 동일한 장에 나타난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사울)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다윗)에게 주셨다고 말한 후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삼상 15:29, 민 23:19)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후회” 개념은 인간들의 험악한 죄와 관련하여 그의 불쾌함과 슬픔의 깊이를 묘사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anthropomorphic)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끊임없으심과 불변하심은 오직 그의 신실한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사울로부터 왕국을 취하여 다윗에게 주신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하나님의 후회가 표현되거나 혹은 함축적으로 암시된 상황과 관련된 경우들도 있다. 이 경우 일반적인 규칙은 예레미야서 18장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만일 그들이 나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8)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하여 니느웨성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장을 내리지 아니하셨다.”(욥 3:10, 3:9, 4:2) 아모스와 요엘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하나님의 후회가 나타난다. (암 7:3, 6, 욜 2:13)

이러한 경우들에도 또한 ‘후회’라는 어휘는 그분의 약속 혹은 위협 안에 표현되거나 혹은 함축적으로 암시된 상황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신 응답을 표현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후회’개념은 하나님의 불변성 개념과 모순된 다기 보다는 오히려 성경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약속에 영원히 신실하시며 참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가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며”(시 110:4), “그의 모략은 설 것이다.” (사 46:10)

그러나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은 움직이시지 않거나 혹은 활동하시지 않는 분이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항상 활동하시는 분이며 결코 움직이지 않거나 일하시지 않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창조하신 그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권적이고 불변하신 모사와 뜻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통치하신다. 자기의 모든 피조물 안에서 영원하시고 주권적이신 하나님은 그의 법령을 집행하시며 자기 자신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히 13:8)으로 증명하신다.

3. 결론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속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초월적인 위대하심을 묘사한다. 그분은 자족하시며, 모든 것이 충분하시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어느 곳에도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그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정의와 선하심과 진리에 있어서 변하시지 않는 영원히 동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신학은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신학적 입장은 하나님의 속성교리 안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성경적 교리는 신학의 전체에서 반영되어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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