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성경에 나오는 이 처음 몇 단어는 세상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 말을 믿으면 이어지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믿을 수 있다. 창세기는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그러나 그 누구도 다 이해할 수 없는 창조에 대한 유일한 권위 있는 증언과 해설을 제공해준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당연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부인하려 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고 말한다. 그들이 부패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니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구나."(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이다(시 14:1; 53:1). 성경이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있듯이 그분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첫째가 되셔야 한다.


• 창조인가, 재창조(회복)인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1:2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대한 여러 보수적인 해석 중 한 가지인 창조-재건(再建) 견해는, 1절과 2절 사이에 큰 재앙(아마도 사단의 타락- 겔 28:11-19)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최초의 완전한 창조가 ‘혼돈하고 공허’(토후 תּהוּ 와보후 בּהוּ)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땅을 ‘황폐하고 공허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으므로(사 45:18 참조), 대재앙만이 2절의 혼돈 상태를 설명해줄 수 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했다’(하예타, הָיְתָ֥ה)로 옮겨진 단어가 “…하게 되었다”로도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어질 대창조요 재건설 행위를 위한 예비적인 움직임이었다. 나머지 구절들은 인간이 거주하도록 땅을 예비한 6일간의 창조와 재건설을 묘사해준다.


1. 첫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하나님은 빛을 명하여 어둠 가운데서 빛을 비취게 하셨다. 낮과 밤의 순환을 정하셨다. 그러나 이 행위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넷째 날의 행위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는 3차에 걸친 분리 사역이 나타나 있다. 즉 (1)빛과 어두움(4절) (2)물과 궁창(7절) (3)바다와 땅(9절)의 분리이다. 후일 바울은 이 태초에 빛과 어두움의 분리된 것을 구원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의 분리에 적용시킴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성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고후 6:14).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 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추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고린도후서 4:6)

• 낮이라...밤이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하는 창조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는 곧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시 74:16)임을 의미하는 동시에(1:10) 낮과 밤 양자 사이에는 생동감과 적막, 생명력과 정체 등과 같은 차이점이 있음을 나타낸다.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아침에 앞서 저녁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빛이 비추어 낮이 시작되기 전 까지는 계속 어두움만 있었던 저녁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고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둘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창 1:6)

지구는 아마도 무거운 기포(氣泡) 형태의 두터운 수분 층으로 완전히 에워싸였던 것 같다. 둘째 날에 하나님은 이 두터운 층을, 물로 땅을 덮은 부분과 구름을 이루는 부분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대기층(창공 혹은 “궁창”)을 두셨다(궁창(라키아, רקיע)는 원어상 의미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板)'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궁창을 하늘, 즉 지구 바로 위의 광활한 공간(별들의 하늘이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셋째 하늘이 아니라)이라 부르셨다. 20절은 이 지상의 하늘은 새들이 나는 영역임을 명백히 해준다.


3. 셋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9)

궁창을 통해 물을 나누신 하나님은 지표면을 덮은 물에서 뭍이 나오게 하셨다. 그렇게 해서 땅과 바다가 생성되었다. 또한 셋째 날에 하나님은 땅에서 각종 채소와 과목이 나오게 하셨다.

세째 날은 하나님의 창조역사 중에서 최초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의의를 지닌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창 1:11)


4. 넷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창 1:14)

주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발광체로서, 또한 일자(日字)를 정하는 수단으로서 하늘에 두신 것은 넷째 날에 비로소 이뤄졌다.

'징조(오트, אות)' - 자연적인 현상 혹은 사건에서 보여지는 '표징(sign, signal)으로 번역되었다(출 10:2). 이런 일이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이적'(출 4:17)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천체의 변화가 하나님의 메신저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된 계시(성경)이 없던 동방 박사들에게 별을 통해 살리신 사건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사시(모에드, מעד) - '지정하다', '고정하다'(야아드, יעד)에서 기원, '새들의 이주 시기'(렘 8:7),'축제의 절기'(시 104:19; 슥 8:19)등과 같이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반복되는 전환의 시기를 가리킨다. 한편, 일자와 연한은 네째 날 만들어진 태양 및 천체의 운동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기본 단위인 '날'(日)과 '년'(年)이란 뜻이다. '주관하게 하시고(16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멤솰라(ממשׁלה)'는 '다스리다'(왕상 9:19), '관찰하다'(렘 5:28)란 뜻이다. 즉 큰 광명인 해와 작은 광명인 달이 낮과 밤을 구분하여 주어진 사명을 담당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월 성신숭배 사상과 점성술적인 미신에 빠져 있던 고대인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월성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또한 이들의 역할은 단지 낮과 밤을 구분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일자와 연한을 식별케 하는 데 불과함을 교훈한다.


5. 다섯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창 1:20)

다섯째 날엔 물에는 고기가 가득하고, 땅에는 새와 곤충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새”로 옮겨진 단어는 “나는 것들”을 의미하며, 박쥐와 아마도 나는 곤충을 포함할 것이다.

하나님은 동물을 만들 때 '각기 종류대로'만드셨다. 1장에서만도 10회나 사용된 '각기 종류대로'(11,12,21,24,25절 등)라는 표현은 창조시 모든 생물은 이미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 species)의 형태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기 종류대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미노'는 '종류'(Kind), '종'(species)을 뜻하는 '민'에서 파생된 말인데, 성경에서 이 말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 개 종류와 고양이 종류 등 제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결코 매와 까마귀,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조상으로서 어떤 기본적인 소수의 종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변천 과정을 거쳐 저급한 종에서 고등한 종으로의 발전이나, 종과 종사이의 상태변이를 주장하는 진화론(evolution theory) 은 비성서적 견해이다.


6. 여섯째 날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창 1:24)

여섯째 날 하나님은 동물과 파충류를 처음 창조하셨다. “종류대로”란 표현 속에 재생산의 법칙이 거듭 밝혀져 있다. 생물학적인 생명의 “종류” 안에는 주목할 만한 변이(變異)가 있긴 하나, 그러나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인간창조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의 창조의 최고봉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과, 또 인간이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것처럼 인간도 삼중적인 존재(영, 혼, 몸)이다. 하나님과 같이 인간은 지성과 도덕적인 성품과, 다른 존재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본능을 뛰어넘는 감정적인 속성을 지녔다. 여기에는 육체적으로 닮았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동물과 대조적으로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요, 논리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존재요, 그리고 창조적인 존재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복을 주어
기본 뜻은 '무릎 꿇다'(시 95:6). 이 말이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찬송하다'(9:26), 피조물에게 적용될 때에는 '축복하다'(27:33)란 뜻이 된다. 여기서 복의 내용은 이어지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풍성케 하는 것인데, '복주다'란 말 자체에도 '풍족케 하다'(신 33:11)란 뜻이 있으므로 증식에 대한 내용이 더욱 강조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생육'은 '열매 맺다'라는 뜻으로 풍부한 결실을, '번성'은 '많을'(7:17) 뿐만 아니라 '크고'(스 10:13) '강한'(대하 11:12)상태를 뜻한다. 이와 같이 유사한 언어를 반복하여 기술한 것은 하나님이 생물들에게 생명의 보존력과 번식력을 축복으로 주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축복은 오늘날에도 생명체마다 제각기 갖고 있는 자기 방어 수단과 독특한 출산 방식으로써 종족을 보존, 번식시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충만하라
하나님의 '채워주심'(렘 15:17)으로 '넘칠'(수 3:15)정도로 '가득한' (6:13)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축복의 신적 기원을 풍부함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창 1:29-30/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본 구절들로 보아 본래 동물들은 초식성(草食性었고 인간은 채식(菜食)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홍수 이후에 변하였다(9:1-7 참조).

창조의 6일은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날들이었나, 아니면 지질학적인 연대였나? 아니면 모세에게 창조 기사가 ‘계시되던’ “극적인 환상”의 기간이었나? 그 기간이 문자 그대로의 태양일 기간이었음을 반박할 만한 과학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24시간의 날들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의 다른 어디서든 이 단어들은 정상적인 날들을 의미한다. 아담은 제7일 내내 살다가 930째 해에 죽었으며, 따라서 제7일은 지질학적인 연대일 리가 없다. 구약성경에서 “날”이 숫자와 함께 사용되는 곳마다(“첫째 날” 등) 그것은 문자적인 날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에 쉬라고 명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이 6일간의 노동 후에 제7일에 쉬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렇게 명하셨다(출 20:8-11). 여기서 일관성 있는 해석을 내리려면 ‘날’이란 단어가 같은 의미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한가지 난점(難點)은, 우리가 아는 대로 태양일의 날은 넷째 날이 이르기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14-19절).

하늘과 땅의 창조는 그 연대를 인간이 가늠하여 알 수 없다.

인간의 창조 역시 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계보가 주어져 있으며, 또한, 계보상에 가능한 공백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 존재했을리는 만무하다.

요한복음 1장 1절, 14절, 골로새서 1장 16절, 히브리서 1장 2절 등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창조에 있어 능동적인 행위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창조의 다함없는 경이로움으로 인해 그분은 세세토록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7.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엿새 동안의 창조가 끝난 후 하나님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시니 심히 좋았다.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마무리지어 주는 이 귀절은 지금 까지 반복되어온 감탄사(10,12,18,21,25절)보다 한층 더 고조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나 흠도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성취되었음을 대변한다.

안식하시다
*창 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일곱째 날 하나님은 창조활동을 마치고 안식하셨다. 이것은 피로로 인한 휴식이 아니라 일이 잘 마쳐진데 대한 안식과 완성의 휴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1) 이후로 하나님께선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2) 피조된 천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한다.

이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지는 않으셨으나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하는 원리는 가르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하여 훗날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 신 5:15). 그리고 구약 시대 이 안식일을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요 20:19 ; 행 20:7 ; 고전 16:2)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안식일인 주일을 지키는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안식의 원뜻을 좇아 그 날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일곱째 날을 복주시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본 구절은 장차 인간에게 주어질 안식일 제도가 인간을 위한 (막2:27) 복된 것임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안식일을 지키기 싫어도 지켜야만 하는 강제 규정인 것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는 비극이다.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성결하다고 선언하다', '거룩한 것으로 간주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곱째 날 자체가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로 간주하셨기 때문에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거룩하다'는 말은 그것이 세상 열락을 추구하던 것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그분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뜻임에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 중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으면서 일곱째 날만을 형식적으로 기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라 하겠다(마 23:16-22).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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