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6~7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 누구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막상 기도하려고 하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거나 딴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의 예배시간에는 한 사람이 회중을 대신하는 대표기도 순서가 있습니다.

대표기도 순서를 맡은 사람은 너무 긴 시간 동안 중언부언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대표기도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정도의 시간으로 내용을 적절히 예배에 맞게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어느 수양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늦은 밤에 숙소에서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 중년 부인의 목소리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자신의 지난날의 고생과 서러움을 쏟아내는 끝없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살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인데 새벽까지 그 눈물의 하소연 때문에 그날은 잠도 설쳤습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에는 한 맺힌 것과 슬픔을 쏟아 놓는 부분도 있지만 새벽 내내 그런 것만을 외치는 것이 제대로 드리는 기도일까요?

 

1. 왜 기도해야 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을 갖기 위해서 기도는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기도라는 통로로 대화합니다.

대화는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 정상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함정에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26:41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는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7:7 말씀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처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 중에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7:11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아무리 가난한 아버지라도, 가난한 엄마라도 자녀가 원하는 것은 할 수만 있으면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복을 받는 통로가 곧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야고보서 5:16에서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성실하고 올바른 기도생활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2. 기도에 대한 오해

 

기도는 말 잘하는 사람만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엉성한 기도나 심지어 벙어리의 말없는 가슴앓이 속의 기도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나 말을 잘 하는 기도를 듣다 보면 기도는 듣지 않고 “그 사람 말 되게 잘 하네!”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말 못하고 떠듬거리는 그 기도가 얼마나 진실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웅변이 아니고 가르치려고 하는 훈계도 아닙니다.

어떤 어이가 건너 방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 자전거를 꼭 사 주세요.”라고 소리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앞에 있던 형이 나무랍니다.

“기도하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귀가 아프잖아.”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안방에 있는 아빠가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사 주시니까 그렇지!”

기도는 일방적인 청탁의 통로가 아닙니다.

기도 중에 “주시옵소서!”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미숙한 기도입니다.

잠언 30:15에서는 늘 달라고만 하는 기도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이렇게 지적합니다.

“거머리에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항상 무언가 달라고만 하는 것은 마치 남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말합니다.

쌍방이 말을 주고받는 것이 대화이듯이 바른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우리가 말하는 것이 잘 조화된 것입니다.

전화를 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쏟아 놓는 것은 연설이나 웅변일 뿐입니다.

기도는 아버지 등에 업힌 아이가 아빠의 귀에 들리도록 “아빠,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고, “아빠, 장난감 사 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간청과도 같은 것입니다.

장난감을 받은 날은 너무 좋아서 아빠에게 매달리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기도인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구약의 야곱처럼 생명의 위협 앞에서 긴장이 감도는 영적인 씨름과도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축복하지 않으시면 저는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그것은 깊은 계곡 낭떠러지에서 밧줄에 매달린 사람이 위를 향해서 구해달라고 외치는 절규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여러 형식만 갖지만 결국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도는 배워야합니다. 말하는 법만 아니라 듣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하는 것이나 섬기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웠는데, 특히 기도에 있어서는 주님께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가르쳐주신 것이 마태복음 6:9~13절에 기록된“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의 모범이 되지만 주기도문만을 100번 1,000번 되풀이한다고 해서 좋은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3.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의 삶과 죽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등,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인정하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과 은혜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잘 안 나올 때에는 찬송을 한 곡 부를 수 있습니다. 음정이 틀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음정이 틀린지 맞는지를 감독하는 음악선생이 아니십니다.

마음의 진실함을 부시는 분이십니다.

멜로디를 모르거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소리 내어 부르기 어려울 때는 가사만 읽어도 좋습니다.

찬송가의 내용 중에 참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평생에 우리가 한 번도 부르지 못한 찬송가가 얼마나 많은 지 아십니까?

 

둘째,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구원하신 은혜, 위험에서 보호하신 은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 좋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주신 은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주신 은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연습이 되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당장 감사한 내용을 적으라고 하면 적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불평만 생각납니다.

그러나 감사를 훈련하면 많은 제목들이 생깁니다.

감사가 많은 기도일수록 신앙성장에 유익하고 기도응답이 빠릅니다.

마치 기름을 많이 넣어서 잘 돌아가는 기계처럼 신앙생활이 훨씬 힘 있고 매끄럽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자백하십시오.

경건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백, 손과 발과 눈과 마음으로 지은 죄에 대한 자백,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 대한 자백, 기도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은 불충성한 자백, 이런 자백을 해보았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을 일주일 내내 만났는데 한 번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회개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것들 모두 다 해당이 됩니다.

“내가 이번 달에는 수입이 더 많았는데 나만을 위해 썼습니다.” 이런 자백을 해보았습니까?

아내나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었는데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한 경험이 있습니까?

마음에 품은 미움과 시기와 음란에 대한 자백 등 많은 것을 주님 앞에 자백하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자백하지 않는 것은 안경이 더러워져서 앞이 잘 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가 안 됩니다. 진정한 자백은 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잠언 28:13 에서처럼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말씀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께 중보하십시오.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나라의 통치자와 지도자들을 위해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교회 목회자와 사역자들을 위해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서, 병들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북한 등 공산권에서 신앙의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해서, 어려운 선교지에서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전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와 직장과 가정과 학교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중보기도가 제일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개인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이것은 주로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학업과 직업과 봉사와 장래를 위해서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필요한 것에 대하여 사실대로 고하십시오.

병든 부분의 완쾌를 위해서,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공급을 위해서, 믿음의 성장과 사역의 열매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앞의 다섯 가지를 정리해보면. 찬양, 감사, 자백, 중보, 간구입니다.

이 내용의 첫 글자를 따서 합치면 ‘찬감자중간’이 됩니다. 뜨거운 감자가 아닙니다.

외우기가 쉽습니다. 이 순서는 바뀌어도 되지만 내용을 잊지 마십시오.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는 분들은 앞에서 말한 첫 글자를 마음에 기억하고 기도해보십시오.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마무리할 때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구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서 밑에 붙이는 서명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의 기도만 들으십니다.

어떤 낯선 이가 집에 찾아와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쪽지 한 장을 내 놓습니다. “아빠, 내 친구에게 그걸 주세요. 아들 올림.”

이렇게 서 있다면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의 요구나 마차나지이기 때문입니다.

 

4. 언제 기도하면 좋을까요?

 

아침에 깨어나면 “하나님, 잘 잤습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아침이 되었는데도 눈을 뜨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잠들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하루를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쳐보십시오.

식사가 준비되었을 때, 허겁지겁 먹지 말고 감사기도를 하십시오.

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먹이를 가져다 줘도 돼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평생 동안 먹이를 줘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면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기도하면 눈에 뛸까 봐, 눈만 잠시 비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코를 만지면서 맘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급하니까 손도 안 올라가고 누만 꾸벅 감고 2초 동안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부끄럽습니까!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결혼 문제나, 위기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하십시오.

그때 소리 지르며 기도하십시오. 즐겁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요청만 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좋은 것을 받을 때 “야, 잘됐다.” 그러면서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감사의 기도를 하십시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는 짧게나마 축복의 기도를 하십시오.

만일 그 집에서 복을 받지 않으면 그 복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일하거나 운동하거나 걸으면서 눈을 뜬 채로 마음으로 늘 기도하십시오.

에베소서 6:18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참 신기하게도 성경에는 눈감고 기도하지 않으면 듣지 않으신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고 기도할까요?

사람들과 주변이 의식되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운전할 때는 어떻습니까? 저는 차 안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차 안에서는 혼자뿐이므로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골방이 아니라 “골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으니 참 좋습니다.

한 번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가 다 끝났으면 찬송을 부르십시오.

누가 그러는데 틀린 가사로 부르면 하나님께서 다 고쳐서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도 성령 안에서 기도가 이어지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라, 그러나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 더욱 기도하라, 왜? 지금이 가장 위험한 때이기 때문이다.”

 

5.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주의할 점들

 

첫째, 너무 형식적인 말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단어도 너무 많이 되풀이하면 그 진실한 의미를 상실합니다.

‘정말로’, ‘참말로’ 같은 표현도 너무 반복하면 듣기에 거북합니다.

기도는 말이 많은 데 있지 않고 그 진실함과 간절함에 힘이 있습니다.

 

둘째, 진실된 의미도 없는 습관적인 단어 사용에 주의하십시오.

기도할 때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전능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내용은 맞지만 너무 수식어가 많다 보면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어느 장로님의 대표기도는 서론이 길어서 스스로가 헷갈리는 것을 봤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나 “거룩하신 하나님” 또는 “살아계신 하나님”등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사람이 듣게 하려고 꾸미지 마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나 회중이 들으라고 멋지게 꾸미다 보면 위선자의 기도가 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유식한 기도가 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유창한 기도보다는 겸손한 기도가 더 좋습니다.

 

넷째, 기도하는 것을 과시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기도할 때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골방은 아무도 없는 곳을 말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식구가 많기 때문에 골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골방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하는지 아십니까?

아파트에 사는 그분은 기도할 때마다 붙박이장 속에 들어간답니다.

붙박이장의 옷들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앉아서 한두 시간 정도 혼자 기도하고 나온다고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기도의 힘을 상실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칭찬을 들으면 이미 상을 받았으므로 하늘에서는 상급이 없습니다.

기도는 조용히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특히 금식기도의 경우에는 더욱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하십시오.

 

다섯째, 기도하고 교만해지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가끔 기도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도대체 저 사람은 언제 기도할까?”

자신을 빼놓고 다른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기도를 안 한 사람입니까? 기도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세리의 기도는 들으셨습니다.

세리는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 말밖에는 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 조심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41일 금식기도를 하고 예수님보다 하루를 더 했다고 자랑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여섯째, 거짓된 기도를 피하십시오.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를 하지 않거나 순종과 헌신을 말하면서 불순종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기도로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l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기도하거나 양심에 거리낌이 되는 기도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건성으로 기도하고서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맺는 것도 이상합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삶이 곧 기도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6. 기도의 응답

 

기도할 때 즉시 “예!(Yes)"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고 때에 맞는 기도이므로 즉각 응답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우상 숭배자들과 싸울 때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늘에서 즉시 불이 쏟아졌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파할 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할 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기도는 기도가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응답을 받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아니오!(No)"입니다.

아무리 간구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경우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몸의 병이 낫기를 간구했지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일생 동안 몸에 질병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항상 엎드렸습니다.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안 돼”라는 응답이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만하면 족하다고 하시며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어힐 나중에 보면 복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직(Not yet)"입니다.

아직 때가되지 않아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입니다.

부모는 어린 자녀들의 많은 요구를 들었을 때 거절과 기다림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기다려야 합니다.

확실히 거절이 아니라면 응답될 때까지 평생 그 기도를 중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7. 개인 기도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10가지

 

첫째, 자연스럽게 기도하십시오.

거룩한 자의 흉내를 내는 것처럼 음성을 바꾸거나 틀에 박힌 말보다는 자연스런 표현이 낫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대한 것이므로 최고의 공대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가 생활이 되도록 하려면 평소에 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참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하나?

음식도 먹어야하고 잠도 자야하고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은데 이것이 가능할까요?

기독교 잡지에 실린 글을 일고서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습니다.

 

남의 집에서 도우미 일을 하던 한 자매가 “나는 쉬지 않고 기도해요.”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아침에 깨어나면 하나님, 오늘도 내가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해주세요.

옷을 입으면서 하나님,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게 해주세요.

얼굴을 씻으면서 얼굴만 씻지 말고 마음도 씻게 해주세요.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그릇을 닦는 것처럼 저의 생활도 깨끗이 닦게 해주세요.

아기를 돌보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해주세요.

잠자리에 들면서 하나님, 내가 평안하게 안식하게 해주세요.

읽기만 해도 정말 하루 종일 기도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기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대표기도 하는 것을 보면 성경을 읽는 사람인지 아닌지 조금은 분별이 됩니다.

성경을 많이 마음에 두고 기도하면 성경에 합당한 기도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기도가 가증스럽습니다.

 

셋째, 진실하고 정직하게 기도하십시오.

우리 마음은 부패하기가 쉽습니다.

사과와 귤을 먹고 껍질을 집에 있는 휴지통에 버리면 며칠 지나지 않아 과일 껍질들이 휴지통 안에서 시커멓게 썩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신선함이 사라지고 악취가 날 수 있습니다.

위선적이며 이중인격적인 기도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믿음으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염려가 생기면 마음에 먹구름이 생깁니다. 컴컴해지고 앞뒤가 보이지 않습니다.

헤매기 쉽습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을 잡초로 뒤집어씌우는 것과 같아서 밝은 빛을 막고 곰팡이가 생기게 합니다.

“하나님, 염려를 주께 맡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다섯째, 마음에 죄를 품고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헛된 기도일 뿐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기도자 사이에 담을 쌓는 것같이 그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당연히 기도가 드려지지 않습니다.

이사야 66:18에서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는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특히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한 후 각 방에 들어가 기도해보십시오.

기도가 되던가요? 안 된다고 성경에 써있습니다.

마음속에서 화가 막 치밀어 오르고 분노가 있고 억울함이 있을 때 기도해보십시오.

기도가 되던가요? 미안하다고 먼저 말해야 합니다.

말로 하든 눈으로 하든 표정으로 하든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다.

음란한 생각과 미움, 분노를 마음에 가득 품은 채 헛된 기도를 드리는 시간낭비를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

시편 66:18에서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섯째, 끈기 있게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질병으로 고생하지만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하고 매달려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 구원받아야 할 때를 기다리며 하는 중보는 평생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년씩 기도해도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마음이 돌맹이 처럼 단단해지고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사단이 속삭입니다.

할 일고 많은데 그만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마지막까지라도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힘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8:1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겸손한 자의 기도가 응답됩니다.

교만한 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도 교만한 자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명령하는 것처럼 지시하듯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자신을 낮출수록 주님께서 높아집니다.

한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중병에 걸렸을 때 “말씀만 하시면 낫겠습니다.”라고 했던 바로 그 겸손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6에서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야고보서 4:10에서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덟째, 절실할 때는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금식하며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음식을 먹어도 돌처럼 느껴져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너무 간절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금식기도는 특별한 힘이 있어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첫 선교사를 파송하기 전에 온 성도가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금식은 일정한 기간 음식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오락을 금하고 기도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원에 갈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일,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루 이틀 정도 해보십시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물을 조금씩 마시면서 한다면 도움이 됩니다.

평범하게, 남에게 과시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시는가를 기대하십시오.

구약의 성도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을 때 종종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아홉째, 매일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으십시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새벽이나 아침, 또는 고요한 밤 시간이 좋습니다.

요즘은 아침 7~8시가 되면 자동차 소리가 얼마나 많이 들리는지 모릅니다.

소음이 조금 덜 한 때, 또는 아침이 어려우면 밤에라도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보십시오.

TV, 라디오 모두 다 끄고 아이들을 재우고 다른 가족이 잘 때 그런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보십시오.

조금만 부지런하면 아침에 일어나 성경 읽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외로운 산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한 적이 참 많습니다.

 

열째, 기도 목록을 작성하고 응답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노트를 준비하여 한쪽 면에 기도제목을 모두 기록하십시오.

하루 종일 생각한다면 쓸 것이 가득 찰 것입니다.

기도할 때 처음에는 코트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기도하십시오. 보고 읽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하게 되면 외워지기 시작합니다. 외우면 쉬워집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기도가 응답되어 해결되면 오른쪽 면에 응답된 기도내용을 하나씩 표시하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제목들이 늘어날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고전적인 책들의 저자 바운즈(E. M. Bounds)는 기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도는 모든 것 중에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고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숭고하고 가장 약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기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아무도 막지 못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평생 해야 하는 일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항상 배워야하는 위대한 작업이다.

기도와 거룩한 삶은 하나이다.

기도의 골방은 게으른 사람들의 휴식처가 아니라 영적 전쟁의 현장이요 최전방이다.

기도의 골방은 그리스도인에게 힘을 공급하는 발전소와 같다.

그래서 기도가 짧고 허술하면 그의 신앙도 허약하고 뿌리가 얕다는 것을 의미한다.

뻣뻣하게 서 있는 자보다 하나님 앞에 낮게 엎드린 자가 더 높은 곳을 향한다.

허둥대며 달리는 자보다 바닥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더 빨리 간다.

돌처럼 강하게 움켜쥔 두 주먹보다 조용히 맞잡은 기도의 손이 더욱 강하다.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는 것보다 고요히 감은 기도의 눈이 더 멀리 본다.”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단과 정면충돌에서 승리하도록 중보하십시오.

중보기도는 전쟁터에 나간 군인을 위해서 대포로 지원사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미리 바닥에 무릎을 꿇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단은 날뛰는 사람보다 기도의 사람을 더 무서워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전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번의 설교 때문에 많이 지쳐 있었는데 마침 그때 원주민들이 와서 “한 번만 더 해주세요.

한 번만 더 설교를 해 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지친 몸을 이끌어 부슬부슬 비 내리는 처마 밑에서 다시 설교를 했습니다.

밤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옆에서 도와주던 원주민의 팔에 의지하여 집에 돌아왔습니다.

새벽이 오고 리빙스턴이 일어날 시간이 됐는데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항상 리빙스턴을 도와주던 조수가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대답이 없어 문을 열었을 때 방안의 촛불은 거의 다 타서 바닥에 붙어 있었고 리빙스턴은 무릎을 꿇은채 숨져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 제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다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은 조용히 자는 것처럼 죽음을 맞고 깊어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 굽힌 무릎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굽힌 무릎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하소서! 주님 만나는 날에도 무릎 꿇고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기도제목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실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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